오원 장승업의 ‘홍백매도(紅白梅圖) 10폭 병풍’(19세기 후반)은 길이 4m가 넘는 열 폭이나 되는 대작에 매화 두 그루가 호방하게 그려져 있다. 붓질의 속도감이 이 작품의 장점. 거침없는 붓질은 작가의 호탕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봄이다. 꽃들의 전쟁이다. 정말 큰일 났다. 국토는 온통 거대한 화원으로 바뀌었다. 겨우내 추웠던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내고 드디어 꽃들은 다투면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화려한 단장이다. 하얗고, 노랗고, 빨갛다. 모습도 제각각으로 아름답다. 새봄을 맞이하고자 푸른 이파리도 피우기 전에 꽃부터 올렸다.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 개나리, 진달래 등. 대충 이런 순서로 꽃은 등장한다. 그러다가 벚꽃은 화려한 강산의 절정으로 봄을 단장한다. 올해에도 나는 꽃들과 함께 새봄을 맞이했다. 다만 지구 온난화 현상은 꽃들조차 개화 순서를 헷갈리게 했는지 두서가 없기는 했다. 그래서 벌과 나비들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옛날 선비들은 계절에 따른 대표적 식물로 자신의 지조를 상징화했다. 그래서 사계절에 따라 사군자(四君子)를 두었으니, 바로 매란국죽(梅蘭菊竹)이다. 문인화가들은 난초와 대나무를 즐겨 그렸다. 하지만 꽃 그림의 백미는 매화라고 할 수 있다. 신춘의 전령사 매화. 설중매(雪中梅)라는 말이 있듯이 눈 속에서 피는 꽃 매화, 그 기상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화(梅花)는 한자말이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과 같은 꽃은 순수 우리말인데 매화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교육을 독점했던 지배계층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한자(漢字) 사회의 주역인 양반 사대부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매화 향기는 은은하면서도 멀리 간다. 그렇다고 매화 향기는 돈 주고 살 수도 없다. 키가 작은 매화나무의 향을 맡으려면 허리를 숙여야 한다. 기품 있는 고매(古梅)를 감상하려면 탐방길에 올라서야 한다.
현재 서울 용산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특이한 전시를 열고 있다. ‘조선, 병풍의 나라’라는 제목 아래 병풍 작품을 모은 전시다. 한국은 병풍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병풍을 사랑했다. 병풍(屛風)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바람을 막는 물건이란 뜻이다. 외풍이 심했던 예전의 가옥 구조에서 병풍의 역할은 컸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혹은 국가 차원의 커다란 행사에는 으레 병풍이 등장했다. 한마디로 병풍은 움직이는 벽화로 장식성과 더불어 기능성이 강했다.
조선왕조 개국 초기부터 병풍의 비중은 컸다. 국왕의 의자 뒤에 있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병풍은 왕권을 상징한다. 국립고공박물관 제공
화조책가도 8폭 병풍(花鳥冊架圖八幅屛風), 조선, 종이, 세로 166.2cm, 가로 376cm, 민속 17457, 국립민속박물관
모란도병풍(牡丹圖屛風), 19세기 ~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창덕6442, 병풍 각 폭 세로: 203cm, 가로: 52.5cm | 화면 각 폭 세로: 167.5cm, 가로: 45cm, 국립고궁박물관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달린 모란 줄기가 가득찬 여러 폭의 화면으로 구성된 그림이다. 비슷한 형태의 도안화된 그림이 각 폭에 반복되고 있으며 장식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모란도병풍은 4폭 · 6폭 · 8폭의 형태이며, 병풍 높이가 3m 이상일 정도로 대형인 것도 있다. 모란 줄기만 그린 것과 모란 줄기가 올라오는 지면에 괴석이 놓여 있는 형태로 그린 것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세부적으로 조금씩 다른 화풍이 구사된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수직적인 구도와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화풍을 보여 준다. 모란꽃은 크고 화려한 모양 덕분에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으며 꽃 중의 왕이라는 뜻의 ‘화왕(花王)’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왕실에서는 부귀라는 본래의 상징 의미를 넘어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상징을 담은 모란 그림을 큰 규모의 병풍으로 만들어 중요한 의례에 사용하였다. 모란도병풍은 가례(嘉禮)와 같은 경사스러운 일뿐 아니라 국장(國葬)과 같은 흉례(凶禮) 때와 왕실 사당인 종묘(宗廟)에서 여러 가지 의례를 올릴 때, 그리고 진전(眞殿)에 왕의 어진(御眞)을 봉안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 조선시대, 세로: 165.9cm, 가로: 388cm, 고궁2591, 국립고궁박물관
곽분양은 곽자의(郭子儀, 697-781)를 말한다.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평정하고 그 공으로 분양왕(汾陽王)에 봉해져 곽분양으로 불리었다. 곽분양은 그의 삶과 관련하여 부귀와 복록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이 《곽분양행락도》는 8폭 병풍으로 진한 색채로 그려져 있다. 제1폭과 제2폭은 정자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을 표현하였다. 제3폭, 제4폭, 제5폭은 곽자의가 차일 아래에 앉아 무희ㆍ기녀들의 춤과 연주를 감상하고 있고, 그 주위에 아들ㆍ사위ㆍ신하들이 기립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제6폭, 제7폭, 제8폭은 곽자의 집안에서 여성들과 아이들이 노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요지연도(瑤池宴圖), 작가미상, 조선 17세기 말-18세기 초, 絹本彩色, 가로: 156cm, 세로: 504cm, 고궁3763, 국립고궁박물관
<요지연도(瑤池宴圖)> 8폭 병풍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요지연도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며, 산수표현, 인물묘사, 색채효과 등에서 현존 요지연도 중 비교적 고식에 속한다. <요지연도>는 서왕모(西王母)가 주나라 목왕(穆王)을 곤륜산(崑崙山) 요지(瑤池)에 초대하여 연회를 베푸는 장면과 여러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 연회 장소로 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요지연도는 중국에서 유래했으며 주로 축수도(祝壽圖)나 반도회도(蟠桃會圖), 즉 서왕모와 목왕의 연회장면만 그려졌으나, 조선에서는 해상군선(海上群仙)의 형식이 결합된 도상이 유행하였다. 왼쪽 세 폭(제6~8폭)은 팔선(八仙)을 비롯한 여러 신선들이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고, 가운데 두 폭(제5·6폭)에는 주요 인물인 서왕모와 목왕이 그려져 있으며, 그 오른쪽 세 폭(제1~3폭)에는 서왕모의 처소가 그려져 있다. 서왕모는 봉황 장식이 달린 오량관(五梁冠)을 썼으며, 목왕은 일월면류관을 쓰고 용포와 방심곡령(方心曲領)을 착용하였다. 여타의 요지연도에는 두 인물의 앞에 찬탁(饌卓)이 놓여 있지만, 이 그림에는 찬탁이 그려지지 않았다. 더불어 바다를 건너오는 신선들은 일반적으로 무리를 짓거나 겹쳐 그려진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 그림에서는 각 신선들이 독립적으로 떨어져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석가(釋迦)와 사천왕(四天王), 보살(菩薩) 등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독특한 구성 때문에 이 그림을 ‘해상군선’이 결합된 초기 단계의 요지연도 도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조선왕조 개국 초기부터 병풍의 비중은 컸다. 국왕의 의자 뒤에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병풍을 펼쳐두었기 때문이다. 왕권의 상징, 바로 이미지를 통치에 활용한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18세기 정조 임금은 책가도(冊架圖) 병풍으로 바꾸었다. 병풍 그림의 유행을 가져오게 한 계기였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화원 김홍도는 병풍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이러한 전통은 양반가를 거쳐 민간으로 퍼졌다. 병풍의 나라를 이룩한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조선 후기에 이르면 금강산이나 관동팔경 같은 산수화 병풍 그리고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나 요지연도(瑤池宴圖) 같은 중국 이야기 주제의 병풍 등이 유행했다. 물론 꽃 그림 병풍 가운데는 모란 그림이 제일 많았다.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했다.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은 조선 3대 화가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장승업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사실 그의 가문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누구에게 그림을 배웠고, 어떻게 활동했고,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하게 알 수 없다. 그냥 조선 말기의 천재 화가로 알려졌고, 그에 대한 본격적 전시나 학술논문은 많지 않다. 대중적 관심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醉畵仙)’으로 잘 알려졌을 뿐이다.
한마디로 장승업은 기인(奇人)이다.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다 술 생각이 나 담장을 넘어 탈출했다는 둥 주색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갖가지 일화를 남겼다는 것이다. 호방한 성품에 달필의 붓으로 다양한 그림을 잘 그렸을 것이다. 정통으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중국풍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도 있다. 게다가 족보도 알 수 없는 까막눈이어서 작품 속 글씨는 다른 사람이 대신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천한 출신이었지만 그림은 아주 잘 그렸다는 전설 속의 주인공 장승업.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병풍 전시에서 장승업의 ‘홍백매도(紅白梅圖) 10폭 병풍’(19세기 후반)을 감상했다. 길이 4m가 넘는 열 폭이나 되는 대작에 매화 두 그루를 호방하게 표현했다. 매화 줄기는 검은 먹으로 중심을 잡고 곁가지를 길게 뻗게 하여 사이사이에 하얗고 붉은 꽃을 가득 매달았다. 화면 변화를 의식해서 비스듬히 뻗은 나무줄기, 그것도 뒤의 늙은 매화는 배경처럼 단순 처리했고, 앞의 주인공을 부각시켜 강약의 대비 효과를 보았다. 붓질의 속도감. 이 작품의 장점이다. 거침없는 붓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스럽게 작가의 호탕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러면서 매화 향기가 가득 서려 있을 가지가지마다의 꽃들에서 눈길을 떼기 어렵게 한다. 이와 같은 매화 병풍을 펼쳐놓고 살았던 주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병풍의 나라 조선의 사대부 문화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하지만 오늘의 아파트 문화는 병풍의 전통을 단절시켰다. 더 이상 움직이는 벽화를 보기 어려운 세태이다.
다시 봄이다. 봄은 왔다 하지만 봄 같지 않은 봄이다. 꽃들은 다투어 산천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즐겁지 않은 세월이다. 그래도 집 안에 꽃을 모셔놓고 즐기고자 한 고상한 마음, 그 마음만은 높게 사고 싶은 봄이다.
출처 동아일보 2023년 04월 11일(화) [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