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念佛)
청화 큰스님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우리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은 한도 끝도 없이
시간적으로 보나 공간적으로 보나
무량무변의 생명존재입니다.
또는 마음차원에서는 너 나 그런 구분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우주가 하나의 마음입니다.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이라는 뜻이나
또는 스스로 자自자 성품 성性자,
자성自性이라는 뜻이나
또는 참 진眞자 같을 여如자, 진여眞如라는 뜻이나
또는 법성法性 또는 법계法界
또는 금강삼매金剛三昧 모두가 같은 뜻이어요.
모두가.
우리 자성自性, 또는 부처불자 성품성자 불성佛性,
또는 참진자 같을여자 진여眞如,
또는 실상實相 실다울 실實자 형상 상相자, 실상이나
모두가 다 같은 뜻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그런 과거의 위대한 성인들은
우리한테 우리의 근본성품根本性品자리
우리가 근본으로 돌아갈 자리,
우리는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왔다가
진여불성으로 지금 돌아갑니다.
우리 고향故鄕은 부처가 되는 길이 우리 고향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공부하는 법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은 다 그렇게 많이 있으나
가장 쉽고 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우리한테 공덕이 많은 것이 염불念佛공부여요.
다른 여러 가지 공부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기독교식도 있고 또는
같은 불교도 여러 가지 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가운데서 우리 마음을
가장 다스리기 쉽고 가장 하기 쉬운 공부가
이른바 염불공부念佛工夫입니다.
본래 내가 부처거니,
부처를 생각하면서
부처가 되어가는 것이 염불아닙니까.
사람들은 염불에 대해서
너무나 소홀히 생각한단 말입니다.
내가 부처인데 부처를 생각한 외에
딴 생각이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가 있습니까.
너나 나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과거나 현재나 모두가
다 부처님의 생명뿐이란 말입니다.
우주가 바로 부처덩어리인데
부처를 생각하면
우리가 무슨 허튼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러고 부처님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무량공덕無量功德을 다 갖추고 있어놔서
우리가 한번 부처님을 외면,
우리가 평소에는
본래 부처이면서 부처를 잊고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처란 것이 무량공덕의 자리기 때문에
부처의 공덕이 조금 줄어지거나 또는
덜하거나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우주에 충만한 그런 부처님 공덕은 항시
그 공덕도 역시 거기에 충만해 있단 말입니다.
그런 공덕이 우리가 한번 외면 왼만치
다시 우리한테 또 역시 공덕이 돌아온단 말입니다.
중생염불불환억衆生念佛佛還憶이라,
중생이 부처를 생각하면 부처는
또 우리를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일 마음을 모으기 쉬운 것이
부처님 이름을 외는 것입니다.
내 고향이고 내 생명의 본바탕이고
동시에 지금 내 마음의 본바탕이고 말입니다.
천지우주가 똑같이 공유하고 있는 생명 바로 자체고.
그래서 그런 부처님을 우리가
그때그때 놓치지 마르시고 정말로
그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부처님은 생명의 빛이고 또는
만덕의 원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부처님의 공덕이
우리 몸 전체에 다 실린단 말입니다.
부처님은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중국 그 명明나라 때 위대한 철인인 동시에 충신이고
또 군인이고 한, 이른바 양명학陽明學의
그 대도사인 왕양명王陽明이가 있어요.
왕양명이가 한 말 가운데서
부처란 것은 비롱환非聾患이라,
부처는 귀머거리가 아니란 그 말입니다.
부처는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생생의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을 속으로 생각하고 이름으로 외나
항시 부처님은 우리를 다시 돌아보고
우리한테 무한히 또
타력적인 여러 가지 공덕을 주신단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 불자님은 방금 말씀드린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소식.
가장 쉽지만 가장 함축성이 많고
불교의 모든 진리를 거기에 다
포함해 있는 가르침으로 해서 꼭
그 인생을 어둡게 살지 마르시고 말입니다.
어둡게 살만한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장에 우리 몸이 그대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손해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생명자체는 죽음이 없단 말입니다.
그 몸뚱이만 바꾸는 것이지
생명은 원래 죽음이 없습니다.
금생에 잘 살았으면 죽자마자
그때는 더 좋은 데에 가 태어납니다.
금생에 잘못 살았으면 그때는 자기 책임으로 해서
이보다 더 못할 수가 있겠지요.
어떻게 하든지 간에 모든 생명은 모두가
다 부처님 자리로 돌아갑니다.
부처님 자리는 바로
우리 생명의 일체존재의 근원자리입니다.
부처님 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또 나왔다가
이렇게 해서 영생무궁永生無窮하니,
우리 생명도 그렇고 우주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셔서 마음을 아주 잘 다스리셔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느끼는 모두는
다 허망하고 꿈같은 것이니까 꿈같고 허망한 것에
너무나 마음을 팔리지 말고.
이런 것은 존재하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사업에 실패한 것이나 또는
어떠한 지금 현재 받고 있는 불행不幸이나 그
런 것은 실체가 없습니다.
다 허망한 것이어요.
아, 꿈이 무슨 실체가 있습니까.
물거품이 무슨 실체가 있습니까.
그렇게 없듯이 우리가 느끼는 그런 몸이 아픈 것이나
자기 아들이 잘못된 것이나 모두가
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배신하고 나가는 것이나
그런 것도 모두가 다 허망한 것이어요.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
사실같이 보이는 것이지
실지로는 결국은 다 허무한 공空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금강경金剛經에서
여래설명如來說名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통달무아법자通達無我法者 진시보살眞是菩薩이라.
통달무아법자,
그 모든, 나라는 것이 원래 없다는
나라는 것이 허망하다는 그런 법에 통달한 사람이
참다운 부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처: 淸華 大宗師 법문마당『金剛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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