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3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일치를 위해서 일하게 해 주십시오.
매년 태풍이 몰아 불어치면 어려서 내가 만난 ‘태풍 사라’를 생각합니다. 태풍 사라는 1959년 9월 한반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인데 그 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을 다닐 때였습니다. 최대 중심 풍속은 초속 85m, 평균 초속은 45m, 최저 기압은 952hPa을 기록하여, 그 당시에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최저 기압이었다고 합니다. 경상도에 특히 큰 피해를 남겼다고 하는데 사망·실종 849명, 이재민 37만 3459명, 총 1900억 원(1992년 화폐가치 기준)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그 때 태풍이 지나간 9월 18일 학교를 가는데 다리는 끊기고 내는 범람하고, 학교의 지붕이 날아가고,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지붕이 날아가 학교 가는 길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우산도 쓸 수 없었고, 우리들은 바람에 날려가 언덕 빼기에 곤두박질쳐 걷지도 못할 지경인데도 학교에 가 봤더니 지붕은 날아가고, 여기저기 흩어진 것들이 완전히 전쟁을 치른 형국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다행스럽게도 대나무가 장벽처럼 둘러 처져 있고, 산 밑에 있어서인지 큰 피해는 없었지만 그 때 정말 혼쭐이 났습니다. 그리고 바람 앞에 모든 것이 날아가고, 자연의 엄청난 재난에 사람은 완전히 미소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하느님을 원망하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집이 허술하고, 먹을 것이 없고, 일하는 사람들이 없는 집만 골라가면서 많은 피해를 입었고 죽게 생겼다고 했습니다. 농사는 다 망쳤고, 홍수에 겨우 숨을 돌린 논에는 모래가 뒤덮었고, 돈 바닥에서 큰 돌들이 떠밀려와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가로수나 나무가 길거리에 누워 있어서 나무에 다친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떠내려가는 가재도구나 돼지를 건지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모두 흩어진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묘사하시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정한 평화를 모르는 사람들과 도성을 보시고 안타까워 울음을 터뜨리신 모습입니다.
진정한 평화와 평화의 원천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평화의 원천께서 베풀어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줄 모르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그렇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도 그렇습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이념과 이기적 사상을 관철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아집과 편견으로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헛된 세상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살육하고, 평화를 깨트리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종교와 이념과 국가 간의 이익을 떠나서 정말 하느님의 진정한 평화 안에서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깨닫고 진정으로 맞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감겨져 그 진실을 모르고 살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잘못 살았던 삶을 반성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 잘못을 용서 청하면서 평화와 사랑을 간구해야 우리의 생명을 보전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하여 맞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을 우리 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 안의 모든 것이 태풍에 휩쓸려 산산 조각나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제자리에 붙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이 흩어지지 않도록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제대로 알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정말 세상을 품어 안으시는 주님께 모든 인류가 하나 될 수 있도록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매 순간 찾아오시는 주님을 외면하고 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2,15-29
그 무렵 15 배교를 강요하는 임금의 관리들이 모데인에서도 제물을 바치게 하려고 그 성읍으로 갔다.
16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이 그 관리들 편에 가담하였지만 마타티아스와 그 아들들은 한데 뭉쳤다.
17 그러자 임금의 관리들이 마타티아스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이 성읍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존경을 받는 큰사람이며 아들들과 형제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소.
18 모든 민족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처럼, 당신도 앞장서서 왕명을 따르시오.
그러면 당신과 당신 아들들은 임금님의 벗이 될 뿐만 아니라, 은과 금과 많은 선물로 부귀를 누릴 것이오.”
19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20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21 우리가 율법과 규정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소.
22 우리는 임금의 말을 따르지도 않고 우리의 종교에서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소.”
23 그가 이 말을 마쳤을 때, 어떤 유다 남자가 나오더니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왕명에 따라 모데인 제단 위에서 희생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24 그것을 본 마타티아스는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달려가 제단 위에서 그자를 쳐 죽였다.
25 그때에 그는 제물을 바치라고 강요하는 임금의 신하도 죽이고 제단도 헐어 버렸다.
26 이렇게 그는 전에 피느하스가 살루의 아들 지므리에게 한 것처럼, 율법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27 그러고 나서 마타티아스는 그 성읍에서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나서시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28 그리고 그와 그의 아들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성읍에 남겨 둔 채 산으로 달아났다.
29 그때에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많은 이들이 광야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축일11월 23일 성 골룸바노 (Columban)
신분 : 설립자, 수도원장, 선교사
활동 지역 : 보비오(Bobbio)
활동 연도 : 543-615년
같은 이름 :골롬바노, 골롬바누스, 골롬반, 골룸바누스, 골룸반, 콜롬바노, 콜롬반, 콜룸바노, 콜룸바누스, 콜룸반
아일랜드의 웨스트 렌스터(West Leinster) 태생인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 또는 골룸바노)는 그의 모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아주 어렸다고 한다. 그는 얼마동안 신넬(Sinnel)이란 수도자와 함께 언(Erne) 호수의 수백 개의 섬 중의 하나인 클루아인(Cluain) 섬에서 살다가 뱅거(Bangor)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12명의 다른 수도자와 함께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되었고(590년경), 이 선교활동이 성공적이었으므로 뤽세이유(Luxeuil)와 퐁텐(Fontaine) 지방도 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추종자들이 유럽 전역을 선교하면서,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에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반대를 받았는데, 특히 프랑크계의 주교들로부터 극심한 반대를 받았다. 그는 성좌에 서한을 보내어 실정을 보고하는 한편, 603년에 샬롱(Chalon)에서 개최된 갈리아(Gallia) 시노드에 불참하면서 항의하였다. 또한 610년에는 부르고뉴(Bourgogne)의 국왕 테오도리쿠스 2세의 결혼을 반대함으로써 이 지역의 모든 아일랜드 수도자가 추방당하는 곤경을 겪기도 하였다.
그 후 그는 롬바르디아(Lombardia)의 아리우스계 왕인 아지올드의 영접을 받고 이탈리아 선교에 착수하였다. 그는 보비오, 밀라노(Milano), 제노바(Genova) 등지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들 수도원들은 그 당시에 학문과 문화 그리고 영성의 중심지로서 큰 기여를 하였다. 성 콜룸바누스는 자신의 수도회 규칙, 강론집, 시 그리고 아리우스(Arius) 이단 반박문 등 수많은 글을 남겼다. 그는 615년 11월 23일 자신이 발견해서 성모님께 봉헌한 보비오 수도원 부근의 한 동굴에서 생활하다가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보비오에 있는 성 콜룸바누스 성당의 지하에 모셔져 있다.
축일11월 23일 성 클레멘스 1세 (Clement I)
신분 : 교황, 교부, 순교자
활동 연도 : 30?-101년?
같은 이름 : 글레멘스, 끌레멘스, 클레멘쓰, 클레멘트
성 클레멘스(Clemens)는 로마인으로서 사도 교부의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에게 직접 안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91년경 교황 성 아나클레투스(Anacletus, 4월 26일)를 승계해 제4대 교황이 되었으나,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의 박해 때 크림(Krym) 반도로 귀양을 갔다. 그는 그곳의 광산에서 동료 노동 죄수들에게 열렬히 설교하여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고, 목에 닻을 매단 채 흑해 바닷속으로 던져져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의 유해는 9세기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때, 성 키릴루스(Cyrillus)와 성 메토디우스(Methodius, 2월 14일) 형제에 의해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로마로 옮겨져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클레멘스가 코린토 교회의 내분을 해결하고 이교를 반박하기 위해 쓴 “제1 코린토 서간”은 신약성경 다음으로 오래된 초대교회 문헌으로, 최초의 교부 문헌으로 인정받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그는 로마의 주교가 지니는 권위, 즉 교황의 수위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예수님의 부활과 피닉스 새의 신화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피닉스 새는 500년 동안 사는데,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아라비아로 날아가 둥우리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죽는다. 죽은 몸뚱이에서 애벌레가 나와 죽은 어미의 살을 먹고 자라서 다시 어미의 고향인 이집트로 와서 500년을 산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불사조의 의미와 자기 몸으로 새끼를 기른다는 점에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내포함으로써 후기 그리스도교 문학과 성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방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1월 24일 또는 25일에 기념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골룸바노 (Columban), 클레멘스 1세 (Clement I)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