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삼촌이 누나 좋아하는 것 같지?”
다음 날 저녁, 은경과 지운이 저녁을 먹으러 나간 뒤
재민이가 심각하게 김여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
김여사는 짐짓 모른 척하며 재민의 말을 받았다.
“그래서 말인데… 할머니, 나 다 나으면 누나랑 결혼해야겠어!!”
재민이의 황당한 말에 김여사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재민아… 그게 무슨 말이야…?”
“누나랑 나랑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거든. 근데 갑자기 삼촌이 끼여들라고 하잖아.”
“재민아…”
김여사는 도통 무슨 말로 대꾸를 해야할 지 난감하기만 했다.
“할머니가 삼촌한테 얘기 좀 잘 해줘…”
재민이의 부탁이 장난같이 들리지가 않았다.
“재민아… 차선생님은 재민이 선생님이야…
그리고 재민이는 아직 결혼하기에 너무 어리고…”
“난 어리지 않아!!”
“그런게 아니라, 할미말은 재민이는 아직 유치원도 다녀야하고, 학교도 가야하고…
그러니까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거야…”
재민이를 설득하느라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한 김여사는
두서에도 맞지 않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유치원 다녀도 되잖아!!
내가 그러는 사이에 누나가 다른 사람이랑 결혼이라도 하면 어떡해??”
정말로 단단히 화가 나 보이는 재민이였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재민이가 할머니를 나직히 불렀다.
“할머니… 그럼… 삼촌한테 부탁할까? 삼촌이라면 들어줄지도 모르니까…”
“무슨 부탁?”
한 풀 꺽인 목소리의 재민이 말에 김여사는 굳었던 표정을 살짝 풀었다.
“내가 클 때까지만 누나랑 결혼해서 살라고… 그리고 내가 크면 돌려 달라고…”
“재민아…”
어린 아이의 깜찍한 발상에 김여사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지운씨… 저기 일본 가는거…”
“왜? 안가기로 한 거잖아…”
저녁을 먹는 내내 은경은 무슨 말인가 해야할 것 같아 망설였다.
하지만 차마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이였다.
병원 정문에 이르자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가야하는 거면 나 신경쓰지 말고 그냥…”
“그냥 뭐? 어떻게 니가 신경이 안쓰여? 내 인생에서 지금 제일 신경쓰이는 게 넌데…”
은경의 말은 지운에 의해 뚝뚝 잘려 나갔다.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 줄 아는데… 걱정마, 재민이가 다 알아서 할꺼야…”
“그게 무슨 말이예요?? 재민이가 알아서 하다니…”
뜬금없는 재민이 얘기에 은경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까 재민이 얘기 못 들었어? 그 놈이 눈치가 뻔한데 결혼 얘기 꺼낸 거 보면… 후후”
무슨 생각인지 지운은 말을 하다말고 의미심장한 웃음까지 내비췄다.
은경은 그런 지운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와… 나 이제 집에 가는거야?”
환자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재민이가 침대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
재민이의 짐을 챙기던 은경이 환한 웃음으로 재민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너무너무 좋아… 그리고 집에 가면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좋은 일?”
은경이의 질문에 재민이는 개구장이같은 미소만 살짝 흘릴 뿐이였다.
“그런 게 있어… 히히히”
“할머니, 삼촌, 누나… 다, 일루 빨리 와봐…”
저녁을 먹고 나자 재민이가 성급하게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왜 그러니…?”
김여사의 안색이 떨떠름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은경은 전혀 무슨 일인지 감이 안 잡히는 얼굴로, 지운은 뭔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재민이가 앉아 있는 쇼파로 걸어갔다.
“삼촌은 여기에다 내가 불러주는 말 좀 써줘…”
식구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지운앞으로 하얀 종이와 볼펜을 내미는 재민이였다.
“무슨 말?”
볼펜을 잡으며 지운이 재민이를 올려다 보았다.
“나 하지운은 조카 하재민이 어른이 될때까지만
차은경누나와 결혼해서 살겠다고 약속합니다.”
눈까지 지긋이 감고 심각하게 준비한 말을 내뱉는 듯 보이는 재민의 표정에
다른 세 사람은 기가 찬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재민아… 그 얘기는 안 하기로 하지 않았잖니…”
김여사가 냉정을 되찾은 듯 딱딱한 반응을 내보였다.
“언제요? 나 다 나아서 집에 왔다고 누나가 다른 데 가면 어떡해요?
누나가 다른 데 안가려면 나랑 결혼을 해야하는데 내가 아직은 어리다고 했잖아요.
할머니가…
그래서 잠깐만 삼촌이랑 결혼하게 해야겠다고 그랬더니 할머니도 다른 말 안하셔 놓구는…
삼촌도 그러겠다고 했지? 그러니까 여기다 약속한다고 써…”
재민이의 말에 지운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저 고개만 끄떡거리고 있었다.
은경은 김여사도 있는 데 재민이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
조마조마한 맘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재민아, 결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또 다시 김여사의 차가운 음성이 거실에 깔렸다.
“하재민… 할머니 말씀대로 결혼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긴 한데…
니가 자꾸 이렇게 보채니까 삼촌도 어쩔 수가 없잖아…
너 정말 어른이 될 때까지만이다.
삼촌이 너때문에 특별히,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거야.
너 어른되서 누나랑 결혼하라고 하는데 싫다고 하면 안돼… 알았지?”
표정을 자뭇 심각하나 지운은 속으로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그런 지운에게로 김여사의 따가운 눈초리가, 은경의 어이없어 하는 눈빛이 전해지고 있었다.
재민만이 결연한 각오라도 하는 듯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어머니… 아니 엄마… 재민이가 저렇게까지 나오는데 허락해 주세요…
재민이가 안 저랬으면 전 더 심각하게 어머니께 반항했을 거예요…”
결국 재민이는 할머니가 허락하지 않으면 유치원에 안 가는 것은 물론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겠다고, 그리고 평생 할머니랑 말을 하지 않겠다고 어름장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여사는 뜻을 굽히지 않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지운이 따라 들어와 김여사를 독촉하기 시작했다.
“난 너… 하나도 겁 안난다… 재민이가 어려서 철이 없는 게 겁나지… 넌 아니야…!!”
지운의 어떤 말도 김여사의 귀에 들릴 것 같지 않았다.
“제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들으시면 놀라실텐데요…”
조금 전과 다르게 진지한 말투로 나오는 지운이였다.
김여사의 눈빛이 흔들리고 말았다.
“엄마, 엄마… 빨리 빨리…”
재민이의 초등학교 입학식날…
멋지게 차려입은 재민이가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하재민… 작은 엄마, 지금 조심해야 된다고 했지! 천천히 가!!”
재민이를 쫓아 지운이 빠른 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흐뭇한 미소가 만연한 김여사와 조심스런 은경의 모습이 보였다.
“넌 좀 더 천천히 오거라…”
나직한 음성으로 은경을 돌아본 김여사가 몸을 돌려 재민이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내 작지만 단단한 손이 은경의 손을 낚아챘다.
“난 엄마랑 같이 갈거야…”
은경의 팔에 매달린 재민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재민이의 강경한 협박과 지운의 조용한 압박을 견디지 못한 김여사가
지운과 은경의 결혼을 허락한 후,
재민은 은경을 엄마라고 불렀다.
“작은 엄마”를 줄여서…
그리고 결혼한 지 석 달만에 재민이는 동생을 보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사촌 동생이 태어날 거란 걸 알게 된 재민이는
어리광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랑 나랑 나중에 결혼하면 동생이 나한테 아빠라고 해야되는 거지?”
재민이의 기막힌 이론에 은경은 물론 지운도 김여사도 혀를 내두르고야 말았다.
“하재민… 너 이제 많이 컸으니까 얼른 니 엄마랑 결혼해…!!!”
재민이가 한 참 대학 입시를 앞두고 책상 앞에서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때였다.
은경과 티격태격 싸운 어느 날 밤…
지운이 재민이의 방문을 힘껏 열어 제치며 들어와 재민이의 침대에 털썩 주저 앉았다.
“작은 아빠… 난 지금 공부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거든…
글구 내가 총맞았어? 엄마랑 결혼하게??? 나 공부해야 되니까 나가줘…”
재민이의 싸늘한 말투에 지운은 입을 쩍 벌린채로 재민이의 방문을 닫으며 나왔다.
그런 지운을 반겨주는 건 은경의 음흉한 미소였다.
“이리 오시죠… 재혁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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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완결이네요...
그 동안 불성실한 작가의 글 읽어 주시느라 고생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시고, 꼬리 달아주시는 분들 덕에 이렇게 완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전 개인 사정으로 아무래도 당분간은 글을 올리기가 힘들 것 같네요...
다음에 더 나은 모습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감사 드립니다...넙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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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의기적
추천 1
조회 1,729
06.09.02 18:35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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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라인강님~ 더운 날씨에 수고 하셨어요^^은경이, 지운이, 깜찍한 재민이... 그동안 재밌었는데.. 아쉽다~ 푹~ 쉬시고 또 재밌는 글 부탁해요~~~
ㅋㅋㅋㅋ완결축하드립니다~^^
완결축하드려요!!^^!!
오늘에서야 이소설을 다보게되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재미있게 되었습니다~~~~~~~~`` 더나은 모습을 기대할게요~~~~~~~ 님아 화이팅 ㅋㅋㅋㅋㅋㅋㅋ
완결 내셨네요.. 축하드려요~~^^ 그동안 정말재미있게 봤었습니다. 다음 글 기대할게요~~
어어엉~~~~ 안돼요..갠적 사정이고 뭐시기고 간에..글만 올려달라구요~~~~ 번외만 줄기차게 올리셔도 이젠 태클 절때 걸지 않겠어요... 글만 올려주세욤~~~~어어엉~~ㅋㅋㅋㅋㅋㅋㅋㅋ 수고 엄청마이 했시요~~~ㅋㅋㅋ
아놔... 이렇게 끝내시다니!!!!!!!!!!!!!!! ㅠㅠ 일단 완결 축하!!!! 번외편 꼭 올려주세요!!
즐독했습니다... 완결축하드리고... 어여 담소설로 컴백해주세요~^^*
완결 내신거 축하 하구요, 정말 재밋게 봤습니다. 담 소설구 빨리 컴백하는 마음 뿐이네요 ㅎㅎ
우와~진짜진짜 재미있었어요 하루만에다읽었다 클클클 완결왕축하드리고요 컴백하시면 소설제가 다 봐드릴게요 꺄하하 -_-*
하하하 오늘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에구 눈아파랑 안녕히 주무시구요 잘봤습닌다ㅣ
완전 재밌어요~! 왠지 전 재민이랑 되길 바랬었는 데.. 결국 모자 사이로 바뀌다니.. 아쉬워요~ 하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끄는 느낌없이 확실하게 스토리가 이어지고 전개되서 재밌었습니다.
하하.ㅋ 식음을 전폐하고 다 읽었음당^-^ 재밌네요ㅋㅋㅋ
정주행하면서 얼마나고마운지요 우연찮게 만난글이라 감사히잘읽었네요 너무시간이지난글이지만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