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내 몸의 청소제가 한 줄로 섰다
아침마다
내가 먹고 바르는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내 몸에도 청소제가 참 많구나.
혈압 약,
기름기 약,
갑상선 약,
관절 약,
바르는 크림,
그리고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어딘가에서 묵묵히 일하는 성명불상의 약 하나.
가만히 보니
내 몸 안에도 부서가 참 많았다.
혈압 담당,
기름기 담당,
관절 담당,
피부 담당.
내가 물 한 컵을 들면
약통들이 일제히
말하는 것 같다.
“형님,
오늘도 출근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약 먹는 일이 조금 서글펐다.
내가 벌써
이렇게 약을 챙겨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약은 나를 늙었다고
놀리는 물건이 아니라,
아직 더 살아보겠다고
몸과 맺는
작은 협정문 같다.
“짜게 먹지 말 것.”
“괜히 열 받지 말 것.”
“몸이 보내는 공문을 모른 척하지 말 것.”
“무리한 자신감은 즉시 중단할 것.”
그중에서도
가끔 재미있는 것이 있다.
입술이 거칠어져
크림을 바르는 날이면,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입술에
자물쇠 하나 채우는 날이다.”
사람은 말로
위로도 하지만,
말로 사고도 친다.
괜히 한마디 더했다가
하루가 시끄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입술은 조용히 말한다.
“형님,
오늘은 침묵 처방이 더 효과적입니다.”
맞다.
입은 열기 쉽지만,
수습은 늘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의 청소다.
몸은 약이 챙기고,
피부는 크림이 달래준다.
그런데 생각은?
마음은?
속에 쌓인 서운함은?
이것들은
약통에도 들어가지 않고,
처방전에도
이름이 없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어질러져 있는 날,
냉장고 한쪽에 앉아 있는
빨간 두꺼비가
슬쩍 눈에 들어온다.
녀석은 말없이 앉아 있다가
내가 문을 열면
이렇게 묻는 것 같다.
“형님,
오늘 마음 상담 예약하셨습니까?”
나는 피식 웃는다.
물론 소주가
마음의 치료제일 리는 없다.
잘못 맡겼다가는
간이 먼저 민원을 넣는다.
“형님,
그 청소는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당하는 겁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은
가끔 잔 하나 앞에서 조금 솔직해진다.
“오늘 서운했던 것, 여기까지.”
“괜히 붙잡던 생각,
이제는 좀 내려놓자.”
그렇게 중얼거리면 해결된 것은 없어도
마음이 잠시
가라앉는 때가 있다.
하지만 진짜 청소는 결국 내가 해야 한다.
말을 조금 줄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괜한 고집을 내려놓고,
몸에게
미안했다고 한마디 건네는 일.
그게
나이 들어 배우는
진짜 청소법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약을 챙겨 먹고,
입술에는 조심을 바르고,
생각에는 쉼표를 놓고,
마음에는
조금 부드러운 웃음을 뿌려본다.
회의 결론은 간단했다.
몸은 약으로 돌보고,
말은 조금 줄이고,
마음은 웃음으로 닦을 것.
그리고 빨간 두꺼비는 치료제가 아니라,
가끔 옆에서
내 말을 들어주는
생활 상담원쯤으로 남겨둘 것.
.....................................
※ 덧붙임
그동안 카페에 올렸던 글들 가운데
나이 들어가는 마음과 생활 속 작은 깨달음을 담은 글들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조용히 늙어가는 기술》탁구시인 著
궁금하신 분은 아래 부크크 서점에서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조용히 늙어가는 기술 @탁구시인 著 - BOOKK 서점
첫댓글 아따 잘썼네요
혹시 국문 과 아니세요
네, 국문과 맞습니다 살다 보니 글감은 참 많이 생기더군요.
좋게 읽어 주시니 오늘 마음이 괜히 더 따뜻합니다.
조용히 늙어가는 기술
참고해야 할거 같아요 ㅎㅎ
조용히 늙어가는 기술도
결국 하루하루 연습인 것 같습니다. ㅎㅎ
웃음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큰 기술 같아집니다.
어머 축하합니다
의인화법이 참 재미있었는데 책으로 묶으셨네요
약은 늙음의 서글픔보다
덕분에 나 지금 건강하게
탁구 즐기고 있다는겁니다
저도 요즘 다시 탁구시작
신나게 놉니다
세상 매력적인 탁구~~!!!
의인화법을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고맙습니다.
맞습니다.
약도 결국
아직 잘 살아보자는 몸의 응원 같더군요.
다시 시작한 탁구,
신나게 오래 즐기시길 바랍니다. ^^
너무 공감 가는 글입니다 책을 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약으로 몸부터 다스려야 합니다 몸이 수굿해지면 다음은 마음입니다 나이 들면 몸 상태 따라 마음이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젊음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늙으면 몸이 시키는 대로
그날 하루의 평안을 구하게 되더군요 ㅎㅎ
몸이 편해야
마음도 조금 따라 웃는다는 말씀,
공감됩니다.
나이 들수록
몸의 평안이 하루 기분을 많이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축하합니다
내글이 책으로 나오는 그 설레임 얼마나 근사할까요
고맙습니다.
내 글이 책 한 권으로 묶여 나오는 걸 보니
쑥스럽기도 하고, 오래 적어온 시간들이 괜히 떠오르더군요.
설렘도 있고,
조용한 뭉클함도 함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