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이 다 되어 바꾸려다 낡은 메모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고려 의종 때의 슬픈 설화 "
"문학 창작의 비결 "
"구보 씨의 방임"
"강릉 비오리, 오영수 단편" 들이었다.
메모 당시의 떠오른 생각을 적었을 텐데
최근엔 단어 몇 가지만 습관적으로 간략히 적기만 해서 그냥 메모로만 끝나는 일이 되고 만다.
수첩 속에 적힌 단어 중
비오리는 지난겨울 강릉 바닷가에서 마주했던 바다비오리다.
철새로 겨울 강릉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오리의 일종으로
바닷가에 까맣게 내려앉은 군무가 장관이라 폰으로 찍고 메모를 했다.
비오리는 때 묻지 않고 뭔가 지적이며 막연하게 매혹적이라 여겨지는 느낌이어서 이전부터 새겨 두었던 단어인데
이런 느낌과는 달리 먹성이 좋은지 먹이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거칠게 보이기도 했던 새다.
그런데 오영수 소설가의 단편 중에 '비오리'라는 소설이 있다.
주로 한국적인 소박한 인정을 서정적으로 그린 그의 작품들처럼
소설은, 아이마저 돌보지 않고 화려한 도시생활을 뿌리치지 못하는 아내 경이를 남겨두고,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간 주인공.
주인공은 아내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지내는데 마침내 아내가 시골로 찾아온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내가 필요 없다는 듯이 행동하다가
아내가 울며 가방을 버리고 돌아서자, 주인공은 '경이'를 부르며 쫓아간다.
그리고 비오르르 비오르르...... 어디서 비오리가 자꾸 울어댔다. 라고 끝맺으며
'비오리'는 이 지방에만 있는 새라고 하나 학명 (學名) 기타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라고 덧붙인다.
아마 그 당시에는 인터넷 검색을 못했을 테니
오영수 작가는 비오리가 철새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문학적으로 변용한 것인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비오리’라는 단어가 왜 내게 오래 남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왜 '비오리' 라는 단어가 매력적으로 느껴질까?
부드러운 리듬감과 일상어라기보다 옛말 같은 고전적인 분위기,
‘빛나는 오리’, ‘멋스럽게 빗어 놓은 머리’ 같은 감각과 상상을 불러오는 단어.
그래서였을까.
물속을 헤엄치며 묵묵히 제 먹이를 찾던 그 새에게서
나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제 몫의 삶을 살아가는
어떤 고고함을 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죽을때까지 늙지 않는
동물이 새 라더군요.
오리도 포함이겠지요.
보여주거나 보여지는
것의 의미 없슴이지만,
그모습 그대로의 삶도
존재 한다는 자연의 신비
이네요^^
저도 글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문구들을
메모 해 둔 노트가 있는데
적을때뿐 다시 들춰보진
않았네요. ㅎㅎ
글탐으로 쟁여둔 욕심의
편린들 이련가 싶네요^^
새는 늙지 않는다는 말, 처음 들어요.
그러고 보면 비오리가 매년 겨울 강릉 바닷가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도,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도 그런 까닭인가 보네요.
"글탐으로 쟁여둔 욕심의 편린"이라는 표현이 참 좋아요.
저도 메모만 했지 막상 꺼내 보면 왜 적었는지조차 가물가물 ~
그래도 가끔은 묵혀둔 메모 하나가 뜻밖의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적어두는 습관 자체는 버리지 말아야겠다 싶습니다.
노트 한번 다시 들춰보세요 재미있는 글 거리 건질지도 모르잖아요 ^^
어머 새들은 늙지않고
수명 다하면 돌아가나봅니다
인간은 늙는게 젤 힘들다는데.
새처럼 가면 참 좋겠네요
갑자기 일본드라마 북의나라에서가 생각이 나네요
바람난 부인두고 아이둘 데리고 깊은 산속으로 떠난 남편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은 엄마를 기다리는데
어느날 엄마가 오는데 아빠가 못만나게 합니다
엄마가 탄 기차가 지나가는 강건너서 기차를 보며 손흔들며 달리던 아이~~그걸 알아챈 엄마의 눈물ㅠ
감동적으로 봤던 24부잔이었는데
비오르 비오르만 울어대더라ㅠ.ㅠ
메모하는 습관은
폰시대에 아직도 하시나봅니다
눈물샘 자극하는 일본 드라마를 보셨군요.
비오리는 짧은 분량으로 대표작은 아니라고 하네요,
학명 (學名) 기타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특이해서 검색 해본적이 있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았구요.
긴 댓글 고마워요 정아님. ^^
ㅎ 폰맹 소릴 듣는답니다. 에고고.
바닷가 근처에 살면서 예사로 봤던 것을 둘째님은 글 씨앗으로 쟁여 놓으셨군요 오영수님 작품 속에도 비오리가 있군요
저도 메모는 열심히 해놓는데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그렇다고 쌓아둔 메모 용지 쉽게 버리지도 않아 책상만 어질러져 있지요 ㅎㅎ 짜드라 뭔 글을 쓰겠다고 둘째님 글 잘읽었습니다.
애구 아니예요 운선님처럼 작가도 아닌 제가 무슨 글을 쓴다구요,
장리정돈 못하고 잘 잊어버리는 편이라 그냥 습관적으로 적는 편입니다,
도움되는 경우가 많기는 해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긴가민가 하잖아요,
나둔데,^^
둘째님도 지는해님도 운선님도
비슷 하군요.
요즘은 종이 노트가 아닌
폰 메모장에 주로 쟁여 놓기만하지
그때 뿐.
글 뿐 아니라.
스트레칭 운동법.
음식 레시피까지.
모아놓고 실천도 못한다는.
저도요, 나둔데 ㅎㅎ ^^
습관이예요, 그냥 쓰쓱~ 끄적여 놓으면 한결 편안해요.
그냥 스쳐 지나가면 잊어버리게 되니 아깝잖아요.
어쩌다 꺼내면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네 하고 놀라기도 하구요.
손바닥에도 적기도 하고 그랬어요 ㅎ
메모하는 습관이라
다들 좋은 습관을 두셨네요
전 메모 대신
내 고물창고속에
글 쟁여두고 가끔씩 꺼집어 내 보곤 합니다 요즘은 손폰으로 뭐든 다 되니.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고물창고 - 보물창고 겠지요.
행복한 그런분들이 더러 있어요,
자신의 보물창고나 블로그를 비공개로 해놓고 타인에게는 공개나 발표도 하지않으면서 자신만이 즐기는 그런분들이 제 주위에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자존감이 저는 많이 부럽답니다. 고마워요~-^^
저도요, ㅎㅎ
메모는 잘하는데 그것으로 끝일 때가 많습니다.
이젠 늙어서, 심지어 제가 짧게 적어 놓은 메모를 나중에 보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를 때도 있어요. ㅎㅎ
공감 가는 내용을 뛰어난 필력으로 써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저도요, 나둔데요 ㅎㅎ ^^
저도 그렇습니다. 나중에 보면 무었때문에 이런 메모를 했을까 가물가물해요, 정성들인 메모가 아니라서 더욱 그렇겠지요. 고맙게 읽어주시니 황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