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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서울의 NO.27
터키리그에서 리그 준우승 3번, 컵대회 우승4번등 많은 팀을 우승시키며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터키를 3위에 올려놓은 귀네슈. 그는 그 해 히딩크 마저 제치고 유럽축구연맹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명장이다.
그 후 2007년, 한국대표팀의 감독을 맡고 싶어했던 귀네슈는 축협이 외국팀을 맡은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하자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고 한국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기 위해 FC서울의 감독직을 맡게된다.
귀네슈는 07년, 취임식에서부터 폭탄같은 발언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에도 대표 선수가 많지만 프로 느낌이 나지 않았다."
"(K-리그는) 골이 적게 터졌고 재미가 없었다."
"선수들은 나를 왕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친구가 돼야 하는데…."
07년, FC서울은 시즌초반부터 놀라운 경기력을 보여주며 5연승을 질주했다. 하지만 시즌 중반이 되자 부상 선수만으로도 베스트 11을 꾸릴 수 있을만큼 1군 선수 거의 전원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하게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되어 아쉽게 6강 플레이오프에 안착하지 못한 7위로 시즌을 마무리 하게된다.
한편 귀네슈는 이 시즌, 경기 하루전에 엔트리를 제출해야하는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며 비판을 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귀네슈의 의견을 연맹에서 수용하여 이때부터 경기에 나서는 선수의 엔트리는 경기 1시간 전에 발표를 하도록 하게 되었다.
또한 이 시즌 FC서울은 다음시즌, 어느팀의 어느선수 보다도 값진 어린선수들의 등장을 예고했다.
부진했던 07시즌을 뒤로하고 맞게된 08시즌.
시즌 전부터 우승을 목표로 하고 달렸던 시즌답게 귀네슈는 시즌 초부터 센세이셔널한 경기력을 K리그에서 구현하며 그동안 연고이전의 여파로 팬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FC서울을 단번에 K리그의 인기팀중 하나로 만들어낸다.
게다가 06시즌 이후 잠시동안 부진에 빠져있던 박주영 선수를 다시 살려냈고 08년 여름, 프랑스리그의 AS모나코에서 박주영에게 러브콜을 보내자 귀네슈 감독은 한국축구를 위해 기꺼이 박주영의 프랑스이적을 허락해 줬다.
그리고 서울의 미래, 쌍용도 국대에 발탁되어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차붐과 이정수, 이관우, 이운재, 송종국, 마토, 에두등이 있던 수원 역시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주며 서울과 리그 1위자리를 놓고 엎치락 뒤치락을 하며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승부처, 리그 후반기에 맞이하게 된 빅버드 원정.
경기는 무승부로 종료가 되는듯 했으나 기성용의 놀라운 버저비터골로 서울이 승리를 가져가게 된다. 이제 남은 경기에서 이 승점차만 유지를 한다면 FC서울의 정규리그 우승이 확정 되는 순간..
이기거나 비기기만 해도 서울이 우승을 하게 되는 리그 마지막 경기.. 부산원정에서 고전을 하던 서울은 이청용의 발차기 퇴장 이후로 급격히 무너지며 끝내 2대0로 패하며 정규리그 2위로 정규리그를 끝마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6강 플레이오프가 남아있었다.
울산과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수원과의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게 된 서울.
1차전에 미리 승부를 짓겠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 fc서울은 아디가 코너킥에 이은 헤딩골로 먼저 선취골을 기록하며 분위기를 먼저 잡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반전에 수원의 원클럽맨 곽희주가 동점골을 뽑아낸 이후 서울은 다시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제 2차전이 열리는 빅버드에서 승부를 낼수밖에 없는 상황.
초반부터 서울은 최원권의 헛발질로 에두에게 첫골을 헌납하고 만다. 하지만 뒤이어 이청용이 센스있는 돌파를 통해 PK를 얻어내고 정조국이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후반전, 에두의 돌파를 저지하기 위해 김치곤이 무리한 태클을 하는 바람에 서울은 수원에게 PK를 헌납하고 만다.
수원의 키커는 송종국
서울의 키퍼 김호준은 송종국의 첫 PK슛을 막아내는데는 성공을 했다. 하지만 리바운드된 공이 다시 송종국의 정면에 가는 바람에 송종국이 다시 그 공을 차넣으며 득점에 성공했다.
그 이후 FC서울은 득점을 하기위해 계속 수원을 밀어붙였지만...
2008시즌의 승자는 수원이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경기 종료직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서울의 선수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것 같았다.
그렇게 귀네슈의 FC서울은 우승의 기회를 다음시즌으로 미루게 되었다.
지난 2008시즌의 아픔을 딛고 다시 우승도전에 나선 2009시즌 FC서울
개막전에서부터 무려 6대1 대승을 거두며 많은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잠시 부진을 하기도 했지만
7월에 다시 정규리그 1위로 치고 올라오며 다시 우승도전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바로 7월, FC서울의 에이스였던 이청용이 44억원의 이적료에 볼튼으로의 이적을 확정짓게 되었다. 우승후보라고 생각되었던 서울의 스쿼드가 갑자기 한순간에 얇아졌다고 느끼게 되던 순간..
그래도 잠시동안 FC서울은 저력을 발휘했고 그대로 FC서울의 1위 독주체제가 이어지는듯 했다.
8월 26일, 귀네슈는 포항과의 피스컵 준결승 경기 이후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K리그는 심판 3명만 있으면 우승이 가능하다."
"이러니 사람들이 축구를 안보고 야구만 보는거다."
"한국 축구를 다시 볼 필요는 없다. 이제 야구를 봐야겠다."
등의 인터뷰를 하자 연맹에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귀네슈에게 벌금 1천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이에 연맹에게 화가난 FC서울의 팬들은 모금을 하여 귀네슈에게 1천만원의 성금을 전달하였고 귀네슈는
"터키의 월드컵 3위때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 라고 하며 그 성금을 한국을 위해 기부를 했다.
FC서울은 9월부터 다시 하락세를 맞으며 최강희 감독이 이끌던 전북, 파리아스의 포항과 1위자리를 놓고 엎치락 뒤치락을 하게 되고, AFC 챔피언스리그에선 안태은의 명백한 득점이 인정받지 못하는 오심을 당하며 8강에서 탈락하고 만다.
하지만 서울은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결국 10월 25일, 계속 리그 2위를 유지하며 전북과는 승점 2점차, 포항과 승점 2점차가 차이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제 리그경기는 단 한경기가 남은만큼 이번 경기에서 승리하면 적어도 ACL직행티켓을, 잘하면 K리그 정규리그 우승까지도 노릴 수 있는 상항.
11월 1일, 전남전. 데얀이 PK를 놓치긴 했지만 이후에 데얀이 선취골을 넣었기에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데얀이 득점을 한 이후에 박항서 감독에게 유니폼을 던지는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는 바람에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그 이후 서울은 후반 44분, 전남의 정윤성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포항에게 골득실에 밀려 정규리그 2위자리를 내주고 만다.
K리그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정규리그 2위와 3위 자리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정규리그 2위의 경우 6강
플레이오프와 준플레이오프를 모두 이긴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면 되지만, 정규리그 3위는 6위팀과 6강 플레이오프를 치른 뒤 4위팀과 5위팀의
승자와 준플레이오프까지 치러야하기 때문이다. 두 경기를 더 치르는 것은 체력이 거의 고갈된 시즌 막판에 치명적이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인지 FC서울은 6강 플레이 오프에서 다시 전남을 만나게 됐다.
전남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가던 서울은 정조국의 천금같은 동점골 덕에 연장전에 돌입하게 됐다.
하지만 데얀이 빠진 서울은 연장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끝내 승부차기에 돌입하고 만다.
하지만 FC서울은 믿었던 기성용마저 실축을 하며 3-2로 승부차기에서 패배를 하고만다.
결국 3년동안 서울을 맡으며 정말 아쉽게도 우승을 한번도 차지하지 못한 귀네슈 감독은 오랜 타국생활에 지치는 바람에 자국으로 돌아갈것을 선언했다.
결국 귀네슈의 한국생활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귀네슈가 그동안 남긴 업적들은 엄청나다.
우선 그동안 ㅍㄹ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박주영 마케팅효과만으로 관중을 모았던 FC서울을 K리그 최고수준의 인기구단으로 만들어 놓았고 FC서울의 모든 선수를 국가대표로 만들고 싶다는 공약또한 많이 달성을 하며 한국축구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지금 쌍용없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생각하면...)
(귀네슈 시절 국가대표에 뽑혔던 선수들: 데얀, 정조국,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 김치우, 이승렬, 한태유, 고요한)
그리고 선수엔트리 경기 1시간전 제출등 제도적으로도 K리그를 많이 바꿔놓았으며 항상 한국축구의 안좋은 점이 보이면 보일때마다 쓴소리를 했었다.
그리고 정조국이 훗날 얘기한 귀네슈 감독과의 일화,
귀네슈 감독과는 일이 많았다. 특히 전남전 항명 세레모니는 큰 사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쳤던 것 같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해버린 것이다. 경기를 못나가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골을 넣고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려 했던 건데 방법이 한참 잘못됐던 거다. 그 이후에 참 일이 많았고, 많은 것을 느꼈다. 재미있는 사실은 2008년 후반기에 정말 몸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귀네슈 감독이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항명 세레모니는 없었다"며 들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묻고 떠났다.
다른 감독이었다면 그 사건 이후에 나를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귀네슈 감독이 나를 너그럽게 안아 준거다. 아들이 짜증 한번 부린다고 생각하고 봐주신 거다. 그 일이 있은 후에 골을 넣고 감독님께 달려갔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내게 FC서울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하라면 자신 있게 귀네슈 감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틀 자체가 귀네슈 감독의 것이다. 성적에 운이 없었을 뿐이다. 그 분은 한국 축구에도 도움을 주려 했다. 다만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왜곡된 것이다. 분명 존경 받을 만한 분이다.
그리고, 귀네슈감독이 한국에 있을때 남긴 어록
-축구는 쇼다. 선수가 축구를 재미있게 하면 보는 사람도 재미있게 느낀다.(취임 기자회견)
-한국 대표팀은 수비수도 골을 넣는데 K-리그에서는 수비수가 수비만 하려고 한다.(취임 기자회견)
-대표팀은 선수들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선수를 키우는 곳은 클럽이다.(강릉전훈 기자간담회)
-축구는 경쟁이며 전쟁이다. 왜 상대에게 누구를 내보낼지 알려줘야 하나.(주례 간담회, 경기 전날 엔트리 제출 관행을 비판하며)
-K-리그 일부 감독과 팀이 수비 위주로 경기를 운영하다 보니 골 결정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주례 간담회)
-심판은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가 팬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해야 한다.(수원전에서, 심판이 박주영을 서둘러 교체시킨 것과 관련해)
-이러니 사람들이 축구를 안보고 야구만 보는거다.
-한국 축구를 다시 볼 필요는 없다.이제 야구를 봐야겠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도 쉬지 않고 몰아치는 게 내 스타일이다. 공격축구는 바로 이런 것이다.(하우젠컵 수원전에서, 4-1로 이긴 뒤)
-축구는 하나의 언어
-재료에 대해 100%를 알아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축구는 사람갖고 하는 게임
-솔직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
-골은 공격수 혼자 넣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사랑하기에 언제든지 돌아올수 있다.
첫댓글 좋은글 잘봤어요^^
네슈감독님ㅠㅠ
진짜 다시 보고 싶은데....
감독님..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