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따라 아들의 귀가는 늦었다.
밤 12시가 다 되어 돌아온 아들은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자기를 응접실로 부르는 엄마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들이 소파에 앉자 영희는 우선 국과수에서 온 편지를 보여 주었다.
“이게 무엇이에요?”
편지를 받으며 아들이 묻는다.
“우선 읽어보아라.”
겉봉을 보고 편지가 국과수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머리를 갸웃거리며 내용물을 꺼내 읽어본 아들이
“아니!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외국 여행을 가셨는데.”
하며 황당한 표정이 되어 엄마의 얼굴을 건너다본다.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이 편지를 받고 하도 황당하고 터무니가 없어 무시하려고 했어. 그래서 이 편지를 받고도 너희들에게 보여 주지 않았는데, 오늘 국과수에서 또 전화가 왔어.”
하고 오늘 저녁때 있었던 전화 내용을 말해 주었다.
“그 사람들이 무얼 한참 잘못 알았군요. 아버지 외국 나가실 때 엄마가 배웅하셨잖아요.”
“그래! 그래서 나도 그렇게 말했어. 너희 아버지는 외국 여행 중이니 그럴 리가 없다고, 그랬더니 수사를 돕는 뜻에서 와서 확인해달라는 거야.”
“그 사람들 무슨 일을 그렇게 해요. 더욱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경찰이.”
아들은 무척 기분이 나쁜 모양이다.
“참! 한심하긴 해. 그렇지만 수사에 협조해 달라고 저렇게 떼를 쓰니, 어쩌겠냐? 가보아야지.”
“그래도 엄마가 다른 남자의 시신을 보셔야 한다는 것이 게름직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것이 마음에 걸려 처음에는 못한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사를 진행 시킬 수가 없다며 난처해지는 자기들의 입장을 보아서라도 꼭 좀 보아달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내일 11시까지 가기로 했어.”
“그럼! 제가 같이 갈까요? 어머니 모시고?”
“너 내일 회사 일은 어쩌고?”
“내일 아침에 전화해야죠. 집에 일이 있어 오전에는 회사에 못 간다고.”
“그럼! 그러지마. 가서 확인만 하고 오면 되는데, 무얼.”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국과수 직원이 같이 입회한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야. 그 전화 받고 공연히 마음이 불안하고 울적해서 너에게 말해보는 거야.”
“아버지는 외국에서 건강하게 여행하고 계실 거예요. 어머니가 아버지 배웅까지 하셨잖아요? 걱정마셔요.”
“그렇겠지?”
“그러면요.”
아들은 엄마를 위로하며 자신에게도 확신을 주려는 듯 강하게 말한다.
“알았다. 올라가 쉬어라.”
“네! 그럼 저 올라갑니다. 안녕히 주세요.”
그때 오늘은 다른 때 보다 일찍 들어와서 이 층 자기 방에서 자고 있던 딸애가 마침 물을 먹으러 나왔다가
“엄마! 오빠하고 늦게까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 거야? 나만 빼놓고.” 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몰라도 돼.”
영희는 이 문제를 딸애까지 알게 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에게서 대답을 듣지 못한 딸애가 오빠에게
“오빠! 무슨 일이야?”하고 묻는다.
“엄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시잖아.”
하는 오빠의 대답을 듣고
“나만 빼고 엄마 오빠가--- 그래만 봐 아빠 오시면 다 일을 테니까.”
하는 딸애 말에 엄마도 오빠도 이상하게 전율을 느낀다.
다음 날 영희는 집을 나와 국과수로 가지 않았다.
어제 아들과 한 이야기가 영희에게 다시 확신을 주었기 때문에 국과수까지 가서 남편의 생사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다른 때 보다 일찍 귀가한 아들이 국과수에 다녀왔느냐고 묻는 말에
“안 갔다. 어제 너와 이야기 후 너희 아버지는 확실히 외국에 계시는데 국과수에 가서 생사를 확인한다는 것이 이상할 것 같아서, 어찌 보면 너희 아버지한테 죄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잘하셨어요. 저도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어요.”
아들이 웃으며 한 대답이다.
다시 이틀 후 국과수에서 전화가 왔다.
수사에 협조하는 마음으로 확인해 달라고
영희는 이번에는 더욱 완강히 거부했다.
가보나 마나 그 사람은 자기 남편이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러자
“부인의 말씀은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다만 저희가 수사를 계속하는 데 부인의 확인이 필요하니 꼭 좀 와 주십시오. 그동안 다른 분들께도 부탁해서 몇 분이 다녀가셨지만 모두 자기 가족이 아니라고 하네요. 부인께서도 보시고 그렇게 확인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위치를 가르쳐 주시죠. 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하고 국과수 직원이 말한다.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어쩔 수가 다시 다음날 11시까지 가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이번에는 약속을 꼭 좀 지켜주면 고맙겠습니다.”
국과수 직원의 부탁이다.
다음날 영희는 집을 나와 국과수로 향했다.
내가 왜 거기를 가야하나 무시하고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어제 그 남자의 태도로 보아 오늘 안 가면 또, 전화할 것 같고 그동안 국과수의 행동으로 보아 심하면 찾아올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기왕에 이렇게 나왔으니 수사의 진전을 위해 자기의 확인이 필요하다면 가서 확인해 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과 가서 확인하는 동안에 조금이라도 불쾌한 행동이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 명예훼손에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요구해야지 하는 옹골찬 생각을 하며 국과수로 향했다.
국과수에 도착하여 담당자를 찾았다.
자기가 정형사고 담당자라고 소개한 사람은 오시느라 수고하였다고 하며 영희를 정중히 맞는다.
영희는 그 사람에게 다시 한번 자기 남편은 70일 전에 해외여행을 떠났고 자기가 공항에서 배웅까지 했다는 말을 하곤 왜 그런 사람이 죽었다고 하고 확인까지 필요하다고 하며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정형사가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하지만 기왕에 이렇게 오셨으니 수사에 협조하는 의미에서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한다.
잠시 후 그 사람을 따라 시신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 복도를 따라가며 영희의 생각이 그래서인지 다른 곳보다 조명이 밝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복도를 따라가다 어떤 문 앞에 걸음을 멈춘 정형사가 “여기가 보관소입니다.” 하는 말을 듣자 이상하게 몸이 떨린다.
영희는 몸이 떨리는 것을 막아보려고 아랫배에 힘을 주었으나 떨림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들을 데리고 올 걸 잘못했다고 생각을 한다.
옆에 있던 정형사도 영희가 너무 떠는 것을 알아보고 영희를 부축하며
“몸이 편치 않으십니까?”
하고 묻는다.
영희에게는 그 물음이 “그렇게 무서우십니까?”하고 묻는 것 같다.
“아니에요. 이런 곳이 처음이라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사무실에 가서 쉬고 좀 안정되신 후에 보실까요?”
정형사가 하는 말을 듣고 그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여자지만 너무 무서움을 탄다고 흉잡힐 것 같고 여기까지 왔다 사무실에 가서 쉬었다 다시 오는 것도 번거로울 것 같고 그때라고 안 떨릴 것 같지 않아
“아니에요. 그냥 지금 해요.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몸이 떨리네요.”
하고 영희는 말했다.
“무서워 마세요. 귀신도 잡는 이 정형사가 옆에 있으니까.”
영희의 무서움 증을 더러 주려고 정형사가 너스레를 떤다.
“네! 알았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몸의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정형사의 뒤를 영희는 마지못해 따라간다.
보관함 앞에 섰을 때 그냥 돌아서서 나오고 싶은 것을 이를 물고 참으며 기다린다.
그리고 확인이 끝나면 나를 이렇게 떨게 한 이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하는 생각도 순간적으로 지나간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잘 읽고 갑니다~
구리천리향님
무혈님!
초록 갠디님!
감사합니다.
오늘 내일 추위가 풀렸는데 다음 주 초에 영하 11도의 강추위가 온다네요
모두 추위에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
즐독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