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의 여인 小喬
조조(曹操)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은 오(吳)의 대도독(大都督) 주유(周瑜)와 촉(蜀)의 공명(孔明)은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다음 전투에서는 화살을 이용한 화공법(火攻法)을 쓰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손권(孫權)의 모사(謀士) 감택(闞澤)이 조조에게 가, 손권에게 불만이 있는 황개(黃蓋)가 조조에게 귀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조조는 처음에는 의심했으나 나름대로 조사한 데다, 황개가 주유의 명에 반항해 태형을 받았다는 소위 고육지계(苦肉之計)의 계책에 넘어가 위장 투항자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조조가 장간(張幹)을 오나라에 보내 실상을 조사하였으나 그만 역계략에 넘어가 황개를 받아들인 것이다. 황개의 충고로 조조는 화공법을 쓰기로 했다. 조조의 수군 도독 모개(毛玠)와 우금(于禁)은 조조의 지시를 받고 크고 작은 선박을 잘 배치하여 고리로 연결했다.
조조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대를 실은 배는 북소리를 울리며 진지를 떠나 남으로 향하였다. 첩자 방통(龐統)의 계획을 얻은 것을 하늘에 감사하며 배를 철고리로 연결하여 강물 위를 평지화한 것이 조조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조조가 순유(筍攸)에게 말했다.
“화공법은 바람 부는 계절이라야 진가를 발휘하지. 지금은 계절적으로 서풍과 북풍이 부는 계절이야. 우리는 서북쪽에 진을 치고 적은 남쪽에 진을 치고 있으니 화공법을 써도 불길이 적들에게만 미칠 것 아닌가. 하니 두려울 게 무엇이 있겠느냐.”
장군들은 조조의 탁견에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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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적벽>에서 소교로 출연한 임지령. |
小喬의 조언으로 동남풍을 일으키는 孔明
주유도 조조를 격파하기 위해 역시 화공법을 쓰고자 했지만 바람이 일지 않았다. 그저 조조의 요새와 군세를 바라보며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쓰러지며 피를 토했다. 공명을 만난 주유는 “내 근심이 병을 불러온 것 같으니 무슨 좋은 비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공명이 길게 설명을 하였다.
“저는 천서(天書)를 통달한 바 있어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도독께서 동남풍이 불기를 원하신다면 남병산(南屛山)에 칠성단(七星壇)을 쌓으십시오. 9척 되는 높이를 3단으로 쌓고 120명이 기를 들고 올라서면 제가 단 위에 올라 법문을 외워 사흘 동안 동남풍이 불게 하겠으니 걱정을 마십시오.”
“사흘이 아니라 단 하루만 큰 바람이 일어도 승리를 거둘 수 있겠소.”
이전에 주유의 아내 소교(小喬)는 남편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이 지역의 기상변화에 정통하다는 노인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노인은 기상변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사실 이곳의 기후에 대한 것은 주유도 공명도 잘 알지 못했고 더욱이 조조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소교는 전투가 있는 11월 20일경에는 잠시 바람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노인의 말을 남편에게 전해주기 위해 소교는 먼저 공명에게 전갈을 보냈다. 곧장 남편에게 전한다면 아녀자의 이야기 따위는 무시해 버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명도 그 노인을 찾아가 기상변화에 대해 자세히 듣고 주유에게는 마치 자신이 뛰어난 도사나 된 것 같은 연극을 꾸민 것이다.
“제가 11월 20일 갑자일(甲子日)부터22일까지 바람이 일도록 하겠습니다.”
공명의 말을 듣고 주유는 그 자리에서 병이 사라져버렸다. 그날이 되자 공명의 지시대로 주유는 제단을 쌓았다. 1층에는 28개의 기를 달았는데 동쪽에는 푸른색 기 7개를 청룡(靑龍) 모양으로 꽂고 북쪽에는 검은 기를 세워 현무(玄武) 모양을 만들고 서쪽에도 회색 깃발로 백호(白虎)를 이루고 남쪽에는 주작(朱雀) 모양의 기를 달았다. 2층에는 64개의 노란 깃발을 동서남북, 동남동북, 서남서북의 8방으로 나누어 각기 8개씩 둘러 꽂았다.
맨 위층에는 4명에게 각각 관을 쓰게 하고 색이 다른 도포를 입혀 세워놓았다. 단 왼쪽에 선 사람은 바람의 방향을 알 수 있도록 닭털이 달린 장대를 들고 있고 오른쪽에 선 사람은 바람의 속도를 측량하기 위한 장대를 들고 있었다. 뒤쪽 한 사람은 보검을 받들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향료를 들고 있었다. 단 아래에는 24명의 군사가 둘러싸고 있었다.
공명은 엄숙한 걸음으로 단 위로 올라갔다. 방위(方位)를 살피고 나서 향을 피우고 그릇에 물을 붓고 하늘을 우러러 주문을 외웠다. 그러고 나서 단에서 내려와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불타는 적벽
주유는 참모들을 불러들였다.
“동남풍이 불면 바로 전투 준비를 갖추도록 하시오. 그리고 손권에게 원군을 청합시다.”
공명이 그날 세 번이나 단을 오르고 내렸으나 동남풍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수 황개는 화선(火船) 20척을 준비했다. 뱃머리에는 큰 못을 박고 배 안에는 마른 갈대와 짚을 준비하여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황, 염초(焰硝) 등 인화물질을 올려놓고 기름을 먹인 푸른 천으로 그것을 덮었다. 뱃머리에서 청룡기가 휘날리고 선미에는 작은 배를 매달아놓는 등 모든 준비를 하고 오직 주유의 출격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 바람은 전혀 불지 않았다. 주유는 이처럼 꽁꽁 얼어붙는 동짓달에 과연 동남풍이 불까, 공명을 의심하였다. 그러면서 초조하게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3경에 이르자 난데없이 바람소리가 나더니 깃발이 펄럭이며 흔들렸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이 갑자기 동남풍으로 돌변하였다. 주유는 기쁨에 넘쳐 외쳤다.
“과연 공명은 천지조화의 법에 능통하도다. 그런데 이자가 이처럼 영묘하니 앞으로 동오의 앞날에 화근이 될 것이다. 미리 없애버리는 게 나을 터.”
주유는 장막에서 나와 장수 정봉(丁奉)과 서성(徐盛)을 불러 명했다.
“각기 군사 100을 거느리고 배와 육로로 남병산의 칠성단으로 가라. 거기에 가서 공명의 목을 쳐라.”
정봉은 말에서 내려 칠성단에 이르렀으나 공명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배를 타고 그 자리를 빠져나간 것이다.
조조는 황개가 투항해 오기만을 기다리며 동남풍이 부는 것을 대단치 않게 생각하였다. 조조는 황개의 모습 대신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주유의 감시가 심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군량미가 파양호(鄱陽湖)에 대거 도착하면서 주유가 저에게 순찰을 명하였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강동 명장의 목을 베어 조 승상에게 바치고자 합니다. 오늘 밤 3경쯤 청룡기를 꽂고 나타나는 배가 저의 군량 운반선입니다.”
조조는 크게 기뻐하며 장수들과 함께 배에 올라 황개의 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조조는 상쾌한 바람을 쐬면서 자신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지는 흐뭇한 꿈에 빠져 있었다. 이윽고 멀리 남쪽에서 돛단배가 바람을 타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배에는 청룡기가 꽂혀 있고 기에는 ‘선봉장 황개’라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배가 가까이 오자 정욱(程昱)이 조조에게 말했다.
“오고 있는 배가 수상합니다. 요새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무슨 뜻인가.”
“아무래도 양곡을 실은 배 같지는 않습니다. 양곡을 실은 배라면 무거워 천천히 올 텐데 배의 움직임이 너무 가볍고 게다가 동남풍도 심하게 불고 있어 속임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문빙(文聘)이 10여 척의 순시선(巡視船)을 이끌고 뱃머리에서 소리쳤다.
“승상의 분부이시다. 요새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그곳에 멈추어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개의 배에서 불붙은 화살이 날아왔다. 문빙이 왼팔에 화상을 입고 배 밑으로 떨어지니 부하들은 놀라 모두 도망쳤다.
이때는 이미 남에서 온 배와 조조 요새 간의 거리가 지척이었다. 황개가 칼을 뽑아 휘두르자 앞뒤의 배가 일제히 화염을 뿜으며 요새로 달려들었다. 바람을 만난 불길은 거세게 타올랐다. 거센 물결이 불기둥을 뿜으며 조군의 요새로 해일(海溢)이 이는 듯 밀려왔다. 조조가 고개를 드니 사방이 불바다였다. 황개와 그의 군사가 배를 타고 불을 지르며 조조에게 다가섰다. 황개는 조조가 배에서 급히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를 쫓아가며 “조조를 놓치지 마라!”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장료(張遼)가 황개를 향하여 활을 쏘았다. 화살이 황개의 어깨를 관통하자 황개는 그대로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장료가 조조를 호위하며 말을 타고 도주하자 대장을 잃은 조조의 군사는 엉망이 되었다.
그날 조조의 방대한 수상요새는 전부 불바다가 되었고 대부분의 군사는 싸우지도 못하고 불에 타 죽었다. 살아남은 약간의 군사마저, 몰려오는 강동 군사들의 천지가 떠나갈 듯한 함성에 기가 죽어 물에서 빠져 나오지도 못한 채 죽어갔다. 좌측에서 한당(韓當)과 장흠(蔣欽)이 적벽을 돌아 서쪽으로 쳐들어오고 우측에는 주태(周泰)와 진무(陳武)가 군사를 거느리고 적벽을 돌아 동쪽으로 쳐들어갔으며 중앙에서는 주유가 많은 배를 거느리고 쳐들어갔다.
이것이 조조 대 유비·손권 연합군의 수전인 적벽(赤壁)의 전쟁이다. 조조군의 대부분은 불에 타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나머지는 화살에 맞아 죽고 극소수의 병사는 덤벼들지조차 못한 채 칼에 베이고 창에 찔려 죽으니 살아남은 자를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曹操를 살려줘 상업의 神이 된 關雲長
첫댓글 여자 하나 만족시키지 못하는 남자들이 천하를 쟁패(爭霸)하겠다고 나서니 정말 우습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