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K1.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호그 남작 납치피살사건 이후, 영국 정부는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아일랜드 자치법을 개정해 자치의회의 권한을 늘려주는 한편, IRA 간부들에 대한 대규모 수사작전을 펼쳐 갈라치기를 시도했죠. 그러나 상황은 이미 그들의 통제를 벗어난지 오래였습니다. 얼스터 지방을 중심으로 한 연합파, 신교도 주민들과 아일랜드인들 간의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자치의회에 참여하던 온건파들 역시 하나둘씩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급기야, 자치의회 참여를 허락받은 온건파 정당인 ‘피어너 팔’과 ‘피너 게일’이 IRA와 재연합, ‘신 페인’ 당을 재창립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곧 아일랜드가 독립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고, 런던은 더 이상 참지 않았습니다. 키스 조셉 총리는 이번 사태를 지난 제3차 아일랜드 대투쟁처럼 장기화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하며, 처음부터 대규모의 화력을 투입하는 작전을 지시했습니다. 일명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라고 불리는 전략이었죠.
1973년 1월 25일, AV-8 해리어 공격기 등을 동원한 대규모, 동시다발적 타격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인 소요사태 진압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마치 아일랜드인들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는듯 폭탄과 미사일, 기총이 모든 대도시를 휩쓸었죠. 그 뒤에는 지상군 병력이 지역을 점령하는 안정화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잔혹행위가 벌어졌음은 당연했고 말입니다.
상황은 빠르게 안정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공적 진압은 성공적 유지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이라는 국명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영국에게 있어 아일랜드는 해외 식민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게 되었고, 민중의 인식도 그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항쟁이 기다리고 있었죠.
전비 부담 또한 문제였습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면서, 돈을 아낀다면서요? 정부는 아일랜드 반란분자들에 대항한 영웅적 승리를 홍보해대고 있지만, 과연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건 두고볼 일입니다.
A1. 미국을 다시 정상궤도로?
로버트 버드는 국민들의 불신과 불안감, 그리고 일말의 희망과 함께 대통령직에 취임했습니다. 버드 행정부는 재정적자 완화를 위한 긴축재정, 극단주의 구축, 퇴폐문화 근절, 환경오염 완화를 4대 국정목표로 선정하고, 의욕적인 국정에 나섰습니다. 가장 먼저 타겟이 된 것은 어느새 미국에 만연해진 마약 사용에 대처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명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리화나 등의 저강도 약물이야 이전에도 암암리에 만연했으나,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최근 2년간 코카인, 메탐페타민, 헤로인, LSD 등 수많은 고강도 약물들의 남용사례가 줄을 이었고, 마약중독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습니다. 마약 유통의 급작스러운 확대는 실로 중대한 문제였죠.
마약단속국(DEA)이 정식 출범하고, DEA 요원들은 마약성 작물의 재배지이자 향정신성 약물들의 잠재적 원산지인 중남미로 대거 파견되기 시작했습니다. 파시스트 아르헨티나가 전비 확보를 위해 정부 주도로 마약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개시했죠.
그러나 남미의 마약 유통업자들을 아무리 족쳐봤자 수송라인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급 불안으로 코카인 등의 시세가 폭등하면서 유통업자들의 이익이 크게 늘어났죠. 10상자를 배달하다가 9상자는 적발되어 뺏기고 1상자만 배송에 성공하더라도 여전히 상당한 순이익을 경험하는, 포기할 수 없는 장사가 된 것입니다.
버드 행정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마약류 단순 사용자 역시 즉각 구금해 기소할 수 있게끔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게토’ 또는 ‘슬럼’이라 불리는 유색인종 및 빈민층 밀집구역은 마약과 조직범죄, 불성실, 부도덕의 온상이었습니다. 명령을 받은 경찰들은 해당 지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검문에 나섰고, 행정명령 발동 첫 한달동안만 무려 36,000여명의 마약 유통자 및 사용자를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 중 대다수는 미국 내 마약산업 근절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 사용자이거나, 심지어는 한번도 마약을 해본적 없는데도 경찰의 묻지마 수사로 검거된 이들이었죠.
교도소 재소자 수는 겉잡을 수 없이 폭등했고, 백인 경찰과 흑인 및 히스패닉 시민들 간의 갈등사례 역시 크게 늘어났습니다. 호기심으로 마약을 피워봤다가 얼떨결에 감옥에 들어가게 된 유색인종 청소년들은 교도소에서 범죄조직에 스카웃, 출소하자마자 조직원으로서 더 큰 범죄에 가담하게 되겠지요.
다만 이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해서는 비교적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습니다. 볼리비아 일대에서 작전 중이던 DEA 요원 3인이 실종되어 끔찍한 사체로 발견된 것입니다. 당연히 발칵 뒤집어진 DEA는 대대적 수사를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더 윗선에서 수사를 막았습니다. 분명, CIA가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S1. 왕자의 난
한때 중동을 주름잡던 지역강국,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은 극심한 내홍에 빠져있었습니다. 지난 제2차 중동전쟁에서의 패전으로 젯다와 담맘의 통제권을 사실상 상실한데다, 배상금에 대한 압박으로 경제상황 또한 좋지 못했습니다. 제3대 국왕 파이살 이븐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개혁정책과 부의 공유를 내세우며 강한 국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었으나, 이 역시 정국불안으로 지지부진한 상태였죠.
국내에서 복수주의, 극우주의, 이슬람 통합주의 열풍이 거세게 부는 가운데, 창업군주 이븐 사우드의 9남 파흐드 왕자는 다른 꿍꿍이를 세우는 중이었습니다. 수다이리 왕비의 자식들 및 그 직계친척으로 구성된 ‘수다이리 일파’를 중심으로 파이살 국왕을 축출하고 다시금 이슬람 세계를 규합해 복수전에 나서자는 계획이었죠. 그가 보기에 현 국왕은 레반트의 비위나 맞춰주며 국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 유약한 군주에 불과했습니다.
3월 10일, 파이살 국왕은 그의 조카이자 왕족인 파이살 빈 무하이드의 총탄에 맞아 절명했습니다. 빈 무하이드 왕자는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배후를 가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사우드 왕실 전체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수다이리 일파는 빠르게 행동에 나섰습니다. 파흐드, 술탄, 압둘라흐만, 나예프, 투르키, 살만, 아흐메드 왕자를 비롯한 일파들이 정국을 장악한 것입니다. 국방장관을 맡던 파흐드 왕자는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다른 왕자들의 신변을 하나둘씩 확보했으며, 호텔 한 채를 통째로 감옥으로 사용해 모든 이들을 감금하거나 암살, 또는 협박을 통해 외국으로 추방해버렸습니다.
새로 왕위에 오른 파흐드 알 사우드의 입장은 간결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는 선언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세계의 수호자로서 공산주의의 사탄 레반트 연방을 멸할 것이며,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손을 사칭하는 ‘자칭 하심 왕가’를 멸문시킬 것이라고.
바야흐로, 지하드의 시작이었습니다.
MA1. 중동 전쟁은 계속된다.
사우디 왕가의 지하드 선언은, 제 3차 중동 전쟁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확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편이 주판알을 튕기는 시간이 잠깐 있었지만, 결국 전원이 참전하며 레반트-쿠르디스탄-남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터키-이집트-리비아-이란의 매치가 성사 되었습니다.
각각의 참전 이유는 명확합니다. 터키와 이란은 쿠르디스탄의 멸문과 복수, 이집트-리비아의 경우는 본토 수복, 쿠르디스탄은 자국 수호입니다. 물론, 이유만으로 참전 할 수 있는건 아니고, 전비를 수급할 수단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초전에서 반 레반트진영이 모두 기선을 잡으며 전쟁의 시작을 알렸고, 왕국으로 복귀한 이란은 개전 1주일만에, 레반트 진영을 몰아내, 쿠르디스탄 인민 공화국 전역을 수복하고, 기세를 몰아 모술-키르쿠크까지 전진했습니다. 이제, 본 전역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MA1-1. "아직도 당신들이 승전국이라 생각하는거요?"
반 레반트 연맹은, 전초전 이후 치러진 본 전역에서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담맘과 젯다의 군대를 몰아내고, 시나이 반도에서도 군대를 쫒아냈으며, 유전 지역에서는 이미 철수할 수 밖에 없었고, 모술과 키르쿠크를 넘어, 바그다드로 군대를 진공 시켰으며, 시리아의 해안인 라타키아, 타르투스를 넘어 트리폴리를 바라보고 있었죠. 쿠웨이트와 바스라도 함락 했습니다. 즉, 레반트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만 했습니다. 수도가 남아있고, 군대가 남아있어도, 그걸 유지할 돈이 없다면 전쟁을 지속할순 없습니다. 물론, 굴욕적이라면 걷어 찰수 있겠지만...
반 레반트 진영의 요구 사항은 상당히 길었지만, 요점만 말하자면, 베이루트 협정을 찢어버리고, 쿠르디스탄을 없애고, 연방을 갈기갈기 찢겠다는 소리였죠.
레반트의 입장에선 말도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베이루트 협정은 그렇다 치고, 연방을 찢고, 왕가를 넘겨라? 이건 망하라는 소리 아닙니까? 따라서... 단독 강화 협상을 위한 물밑 공작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사다트의 경우는 그래도 타협할 수준이었기에, 그쪽을 중심으로 펼쳐 나가고 있었습니다.
MA1-2. 반 동탁 연합도 흐지부지 했습니다...
결국 레반트는,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를 구워삶는데 성공했습니다. 시나이 반도 반환 이외에 큰 목적이 없던 것과, 그 이상의 큰 대의는 없던것, 거기에 소련이나 미국과의 관계와 전비또한, 굳이 이 전쟁을 더 지속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가중 시켰습니다.
또한, 터키와 이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쿠르디스탄 문제만 해결 된다면, 저쪽 사우디의 미친 조건을 따라줄 이유도 없거니와, 이란의 경우는 내전과 왕가 복귀 이후 충분한 전공도 얻었고, 전비를 더 낭비 해선 안된다는 의지가 있었죠.
다만, 사우디와 예멘은 그들과 달랐기에, 저들을 욕하며 전쟁을 지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통일을 해야할 예멘, 지하드를 선언한 사우디. 타협이 불가능한 명분이기에, 이들은 계속 그 의지로, 전쟁을 지속할겁니다.
MA2. 누가 이겼나가 중요한가? 세계가 망하지 않은것이 중요하지.
중동에서 개별 강화가 이뤄진 이후, 사우디와 레반트는 다시 전쟁을 시작했고, 사우디가 우세를 거뒀습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미 언급한 열강의 개입이겠지요. 즉, 파격적인 협상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무조건 열강이 개입할테니까요.
따라서... 파흐드 국왕은 열뻗쳤으나, 한번 참고 타협하기로 했습니다. 베이루트 협정의 무효화와, 추가 배상금을 요청하는것으로 이 전쟁을 끝내기로. 위신은 상당히 깎이겠지만, 어쩌겠습니까. 꼬우면 확실히 이겼어야지요. 물론, 더 꼬운건 레반트일것입니다. 베이루트 협정에서 달게 꿀 빨던쪽에서, 반대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니... 그들의 전성시대는 끝난셈이군요.
A1. 최종 해결책.
아르헨티나는 남미 대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영토 획득이나 배상금은 없었지만, 브라질의 선제 침공을 무찌르고 국토를 지켜내었으니 승리라 하기 모자람이 없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거리는 승리와 종전의 기쁨에 환호하는 활기찬 민중들로 가득합니다. 물론, 그 기쁨을 즐기는건, 오로지 '백인' 뿐이어야 합니다. 더럽고 천한, '비백인' 이 VE를 즐기는건 사치이고, 오만이며, 죽어 마땅하니까요.
전쟁 때는 전쟁에 모든 여력을 쏟아야 하므로, 아르헨티나 정부는 비백인들을 게토와 같은 격리구역에 집어넣어 강제 노동을 시키기로 합의했지만, 종전한 지금은 그때와 전혀 다릅니다.
이제, 약속을 지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이너 서클과 정부 수뇌부들은 산티아고의 한 건물에서 회의를 가졌고, 이 회의에서 ‘국내 인종문제에 대한 최종적 해결책’이 가결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비백인들은 기존의 게토에서의 삶이 호사로 보일 정도의 고난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게토에서 죽는편이 편했다고 말하게 되겠지요!
이 조치는, 당연하겠지만, 아르헨티나 정부가 죽거나, 비백인 전원이 삶에서 자유로워 지거나, 둘 중 하나가 이뤄질때까지 영원할겁니다.
아르헨티나는 이제 완벽히 순수해질 것입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가신 총통이시여. 천국에서 지켜보고 계십니까? 이 모습을 보신다면. 당신께서도 만족하시리라 믿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만든 세계를 볼 천국의 마지막 사람이니까요.
S1. 공직 기강.
보리스 옐친 사건은, 소련 공직계를 싸그리 쓸어버릴 폭풍을 몰고왔습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해, 크렘린은 행정부로 시작해, 사법부, 군부, 재계, 학계, 위원회 모두 가릴것 없는, 대대적 감사-숙청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KGB가 주도해, 수 개월간 감사 작전이 벌어졌고, 결과는 믿기 어려울정도였습니다.
누구의 말마따나, 나라에 돈이 없는게 아니라, 도둑놈이 많은것 이었습니다. 노멘클라투라, 관료, 법조인. 심지어 이런 부패를 밝혀내고 처벌을 담당한 감사관들까지 한통속이었습니다. 자기 지위로 술 사는데나 쓴 옐친 정도는 양반이었습니다.
이런자들을 그대로 둔다면, 국가는 망할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런자를 모두 내쫒아도, 망국으로 갈 지름길을 타게 되겠죠.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문제는 온건파건, 혁신파건 누구든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만연해 있다는겁니다.
결국, 크렘린은 결정을 내릴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부를 해임한다면, 행정 공백등으로 인민이 아사할 수밖에 없으니, 심한놈부터 쳐내서 경고를 가하고, 반 부패 캠페인을 실시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공직자 윤리법또한 강화하며, 감사원을 공수처로 개편까지 해야겠군요.
이 조치는, 기존 관료를 대체할 새로운 관료진이 배출 될 때까지 지속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AF1.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
세계는 냉전으로 인해 혼란스럽지만 아프가니스탄은 평화롭습니다. 뭐 이런 사막과 산맥만 가득한 깡촌에 별볼일이 있겠습니다만은. 오늘도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자히르 샤 폐하의 통치 아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겁니다.
... 어제까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라디오 카불에선 충격적인 방송이 나왔습니다. 전 총리 모하마드 다우드 칸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을 폐위시키고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을 선포했다는 소식 말입니다.
다우드 칸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나라를 어찌 잘 이끌어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개혁 정책, 즉 여권 신장이나 문맹 퇴치, 세속화를 실시하고 미국과 소련에게서 지원을 받아 산업화, 근대화를 이끌어보려 하는데... 국내 및 국제 정세가 과연 그의 뜻대로 이루어질까요?
제2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 참전해 아프가니스탄은 카이베르파크툰크와, 발루치스탄의 절반 등 19세기 듀랜드 라인으로 상실한 영토들을 되찾았습니다. 발루치스탄 전체를 차지해 고토를 전부 회복하려던 계획은 파키스탄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했지만요. 그런 파키스탄은 종전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칼을 갈며 아프가니스탄에게 상실한 영토들을 되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특히 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서의 패배 이후로 국가 전체의 군사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국내도 그리 안정되있다고 하진 못하겠군요.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40년간 바라크자이 왕조의 지배 하에서 각 부족의 족장들이 자치권을 부여받는 부족 연합왕국 체제였는데. 중심을 잡아주던 왕가가 없어졌으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군요.
또한 아프가니스탄은 60년대부터 소련과 군사교류를 시작해 소련에 많은 사관생도들을 유학보냈는데. 이들은 유학 도중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하게 되어 공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인민민주당이라는 아프가니스탄 토박이 공산당도 있습니다. 온건파와 강경파로 갈라져 있다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것은, 친소노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방에선 정부의 세속화와 근대화에 반대하는 이슬람 신정주의자들의 세가 강해지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옵니다.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없이 작은 새싹과도 같은 신생 공화국이 과연 잘 해나갈 수 있을까요? 대통령 각하. 행운을 빕니다.
W1. 우린 늘 답을 찾을 것이다…
1969년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미국과 소련의 달 착륙에도 불구하고, 우주경쟁은 쭉 지속되었습니다. 선두주자인 소련은 달 탐사를 넘어 야심차게 화성 탐사를 다음 목표로 잡았고, 미국은 궤도 우주정거장 건설을 우주개발의 미래로 선포했죠. 그 외에도 중국, 독일, 영불우주국, 유고슬라비아 등이 후발주자로 나섰습니다.
제임스 웹이 이끄는 미 항공우주국 NASA는 무려 550톤을 수송할 수 있는 초대형 발사체 “시 드래곤”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발사되는 길이 120미터짜리 거대로켓이 굉음과 함께 하늘로 치솟는 장면은 전세계로 중계되었고, 모든 이들은 벌려진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1973년 미국의 기술력이 집약된 스타필드(Starfield) 우주정거장이 15년 수명으로 기능을 시작했고, 이는 엄청난 성과였습니다.
이 성공에 고무된 후발주자들의 약진 역시 인상깊었습니다. 중국은 첸쉐썬 박사 주도로 저렴하고 안정적인 저궤도 로켓 양산에 성공, 인공위성과 유인우주개발에 나름대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일본공화국 등 위성제작기술을 가진 국가들과 장기계약을 맺어 발사를 위탁하게 된 것 역시 굉장히 고무적인 성과였죠.
독일 공군 우주개발사령부 역시 베르너 브라운 박사의 합류 이후 독자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둘에 비해 약간 밀리지만, 영연방과 프랑스의 합작기관인 영불 항공우주국 역시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해 당당하게 우주경쟁에 한 발을 걸쳤습니다. 놀라운 것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역시 독자 기술로 인공위성을 띄우고 궤도 유인비행에 성공했다는 것으로, 이 성과로 유고는 동서방 모두에게서 협력 러브콜을 잔뜩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련은… 거대한 암초를 만나야 했습니다. 대규모 구조개혁과 그에 따른 고위공직자 감찰 과정에서 코롤료프는 심한 모욕을 받고 분사했고, 베르너 브라운 국장의 과거가 폭로되었습니다. 브라운 박사는 나치 부역자라는 모욕과 조리돌림뿐만 아니라 바실리 미신을 승진 시켜 퇴사 압박까지 가했습니다. 나치 정권 하에서도 꿋꿋이 버텼지만, 결국 그는 고국행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직 기강 수사로 분위기가 어수선한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최고 상사들이 잘려나가 중심축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결국 관련 공직자들은 부패와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화성행 로켓들은 제각각 치명적인 문제로 인해 궤도 탈출조차 하지 못하거나, 화성으로 향하던 중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유인탐사는 꿈도 꿀 수 없었죠.
이런 가운데 미국이 무지막지한 시 드래곤 로켓 발사에 성공하자 소련 우주국에는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미국의 우주정거장에서 핵탄두가 발사되어 반격도 해보지 못하고 멸망한다거나, 시 드래곤 로켓에 차르 봄바를 능가하는 초거대 핵탄두를 탑재해 동구권 전체를 방사성 잿더미로 만들 거라는 근거없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우주국 예산 역시 대폭 삭감을 면치 못했고, 소련 내부에서는 돈낭비에 불과한 우주개발 대신 미사일 요격이나 정밀 순항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다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우주개발은 이제 새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화성 등 외행성 탐사보다는 지구궤도에서의 연구활동을 가속화하여, 이왕 바깥으로 나갈 거면 제대로 나가자는 움직임이 주류가 된 것입니다. 우주경쟁은 어떤 미래를 맞게 될까요?
UK2. The Dark Side of the Moon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는 많은 인기를 끄는 아티스트였습니다. 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 릭 라이트, 닉 메이슨. 모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음악가들이죠. 중산층 출신, 강경 진보좌파, 사회체제에 대한 강한 비판, 캐치한 멜로디, 분명한 메시지… 비틀즈가 해체된 이후 이들은 영국의 로큰롤을 상징하는 아티스트가 되었습니다.
핑크 플로이드는 1973년 3월 1일 여덟 번째 정규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발매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아일랜드 학살을 비판하는 내용의 곡이 수록되어 있었고, 이는 정부의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켰죠. 조셉 내각은 보수 성향 언론들과 음악방송 임원들을 동원해 핑크 플로이드 견제에 나섰습니다만… 존 레논을 필두로 한 영국의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로저 워터스를 옹호하면서 그다지 재미를 못 보고 물러서야 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음악적 견해 차이로 싸워대던 4명의 멤버들은 환멸감을 느끼며 전에 없이 단결했습니다. 그리고 예정되어 있던 남유럽 투어를 진행했습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나폴리를 거쳐 베오그라드 콘서트로 마무리되는 일정이었죠. 수많은 풍파를 겪은 핑크 플로이드를 남유럽 팬들은 크게 환영했습니다.
그러던 8월 11일, 베오그라드 콘서트 앵콜 무대에서 리더 로저 워터스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습니다. “여러분, 자유세계라는 단어만큼 참신한 개소리가 있을까요? 저흰 할만큼 했습니다.” 원래 도발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많이 하던 이들인만큼 대부분의 대중들은 이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멤버 4인이 귀국 비행기를 타는 대신 감쪽같이 잠적하자 전 유럽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1달여 뒤, 핑크 플로이드는 독일 베를린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공산세계로 망명한 것입니다. 공산체제의 폐쇄성을 견디지 못하고 서방으로 망명한 이들은 많았어도, 그 반대는 드물었습니다. 그것도 문화계의 리더가 말이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까요? 아니, 고칠 생각은 있는 걸까요?
G1. 데모크라시, 컴백홈!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스위스에 망명했던 빌리 브란트가 화려하게 귀환하면서 동구권을 휩쓴 68혁명의 불길은 타협과 절충으로 마무리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진 건 아니었습니다. 코스타스 콜리기아니스(Κώστας Κολιγιάννης) 총서기가 무려 20년간 장기집권하던 그리스 민주공화국에서 뒤늦게 대규모 봉기가 벌어진 것입니다. 분단정국을 빌미로 강력한 스탈린주의식 통제정책이 시행되던 그리스였으나,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군중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습니다. 섬쪼가리 몇개로 겨우겨우 연명하는 그리스 왕국따위, 그냥 쳐부숴버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공산당 지도부의 무능때문에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위대한 사상가의 고향인 그리스가 이 비참한 꼴을 견뎌야 합니까?
이 소식을 들은 크렘린은 그간의 지침대로 콜리기아니스에게 양보를 권했습니다. 양보란, 곧 “목은 붙여줄테니 알아서 꺼져”라는 뜻이었죠. 곧 하릴라오스 플로라키스(Χαρίλαος Φλωράκης)를 필두로 하는 새 지도부가 취임했습니다. 그러나 시위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플로라키스는 배급제도 개편,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 권리 확대, 점진적 다당제 회복, 선거권 보장, 언론검열 완화를 내세우며 사태 진정에 주력했으나… 그건 애초에 시위대의 목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정보당국의 보고에 따르면, 그리스 시위대의 명목상 리더는 멜리나 메르쿠리(Μελίνα Μερκούρη)라는 유명 여배우였습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수뇌부 역할을 하던 것은 아테네 국립 게오르기우스 시안토스 대학교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굳게 결집된 학생 투쟁가들이었죠. 이들은 공산주의와 금권 자본주의를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리스 공산당 정부를 몰아낸 뒤 크레타의 역겨운 국왕 놈과 그를 꼭두각시로 조종하는 군부 파시스트들까지 분쇄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모스크바의 지도부는 고뇌에 빠졌습니다. 비동맹주의 유고슬라비아가 발칸을 가로막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를 잃는다는 것은 지중해로의 접근을 차단당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중동에 대한 세력투사가 대폭 감소할 것이 뻔했습니다. 불과 한달 전 레반트 연방이 제3차 중동전에서 패배해 위기에 몰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스의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죠.
“이건 히틀러 이래 우리에게 닥친 가장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로미코 장관회의 상무회 주석이 안드로포프 총서기를 쳐다보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습니다. 안드로포프는 밤새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는지 머리숱이 확연하게 적어진 것 같았습니다. 모든 간부들이 총서기의 입에 주목했고, 드디어 그가 말을 꺼냈습니다.
“동지들. 잘 들으시오. 그리스 문제에 관한 우리 당의 방침은 강경 진압이오. 그 이외에는 생각할 수조차 없소!”
G2.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따른다.
크렘린에서 중앙 회의가 끝난지, 2시간. 외교국과 국방 위원회는 미칠듯한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파견을 위한 차출과, 그로 일어날 외교적 문제를 최대한 무마하기 위해서...
그리고, 최대한 빠른 협상에 성공했습니다. 차출에는... 꽤 고성이 오갔고, 병사들의 자원이 없자, 강제로 끌고가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이번 작전은 요 근래의 방침과 반대되는 일이었으니까요. 영공을 열기 위해서, 유고에 쥐어준 뇌물과, 이번 작전에 투입할 물자... 가 얼마나 클지 모르지만, 그리스는 지켜내야만 했습니다. 피고름이 흐르고, 외교적 방침을 깨는 일이라해도... 당장, 레반트의 전성기가 끝난 지금,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그리고, 회의가 끝난지 1주일도 되지 않아, 그리스의 시위대는 짓밟혔습니다. 그리스의 민주화 요구는 다시금 피로써 흩어졌습니다. 사상자의 수는 집계 되지 못했지만, 미루어보아... 최소 5자리는 될것 같군요. 이렇게 그리스의 정부는 지켜졌습니다. αλλά... άξιζε τον κόπο?
S1. 스톡홀름 증후군
그리스에 도착한 소련의 붉은 군대가 비무장 시위대를 무참히 도륙한 이후, 스웨덴 정계는 일대 파란에 휩싸였습니다. 자신들이 세운 독트린에 정확히 반대되는 행동을 아무 거리낌없이 할 수 있다면, 스웨덴 시민들이 자기네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타게 엘란데르 전 총리를 대신해 새로 총리직을 인수한 사회민주노동당의 올로프 팔메는 즉시 원내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의회 외교특별위원회를 개최했습니다.
첫번째 타자, 좌파당의 젊은 당수 라르스 베르너가 포디엄에 들어섰습니다. “최근의 불미스러운 사태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정세를 고려해본다면 현상을 유지하는 편이 낫습니다. 신뢰가격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폴크헴메트(*인민의 집, 스웨덴의 복지체계)는 유지불능이 될 겁니다.” 적지않은 의원들이 현실주의적 주장에 내심 동감했지만, 대놓고 표현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애매하자 두번째 타자인 베르틸 올린이 들어섰습니다. 그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자유당의 당수였죠.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결했습니다. “폴크헴메트는 국가경제를 지탱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지, 절대적 지도원리가 아닙니다. 소련의 영향권 하 국가들의 주권이 그저 말장난임이 밝혀진 지금, 우리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현상을 타파해야 합니다.” 올린은 서방 국가들과의 자유무역을 재개할 경우 당장 복지체계를 전면 개편하는 비용이 들겠지만, 근시일내로 국가경제가 정상화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1시간 20분에 걸친 올린 당수의 경제학 강의가 끝나자, 의원들과 팔메 총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다음 발언자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지막 타자는 초로의 노인으로, 그는 이미 정계를 은퇴한 인물이었습니다. 스웨덴 사민주의 체제의 설계자, 에른스트 비그포르스가 연단에 들어서자, 팔메 총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의원들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죠.
“폴크헴메트, 렌-마이드너 모델… 고작 방법론이라고 하기에는 그 대체품을 찾기 위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테고, 그렇다고 수단에 너무 집착한다면 주권의 위기를 얻게 될 거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래도 다시 중립국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소? 동유럽의 경제개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지금 우리의 판로를 제한적이나마 지킬 수 있을테고, 서방과의 자유무역 역시 재개할 수 있겠지. 물론 양쪽에서 손해는 좀 보겠지만, 경제체제는 유지하면서 적당히 출구전략을 꾀할 수 있게 되오.” 즉, 비그포르스는 중립국 회귀안을 제시했습니다.
특별위원회의 의원들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회의는 무려 일주일을 내리 끌었고, 가끔 고성이 오갔지만 전반적으로 생산적이었습니다. 결국 “스웨덴 주권의 미래와 외교정책”이라는 제목의 198쪽짜리 보고서가 채택되었죠. 팔메 총리는 연단에서 보고서의 결론부를 읽었습니다.
“스웨덴 왕국의 외교노선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비그포르스의 제안이 통과 되었습니다. 신뢰 가격의 보호는, 역설적으로 신뢰 가격이 깨진다면, 대비도 못한체 무너져 내리는것을 의미했습니다. 반대로, 자유무역을 재개했을때는, 당장 무너져 내리는것을 의미하지요... 결국, 안정. 안정성을 채택했습니다.
F1. 파시스트들에게 죽음을…?
다시 프랑스 이야기입니다. 중소상공인옹호연합의 피에르 푸자드가 총리로 선출되어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과 동거정부를 구성했다고 했었죠. 미테랑 대통령의 임기는 1975년까지입니다. 즉 2년이 남았으며, 그동안 여당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주며 얼치기 포퓰리스트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럴수 있었을 것입니다…”
푸자드는 기어이 선수를 쳐버렸습니다. 고향 알제리에서 쫓겨나 극빈층으로 전락한 피에 누아르 권익단체들이 급진화되었고, 몇몇 이들은 정부에 대한 각종 테러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알제 해방전선(LFA)이 그 대표격이었죠. 이들은 OAS를 포함한 극우단체들과 일부 외인부대원들과 결탁해 가두시위부터 폭탄테러까지 광범위한 활동을 벌였습니다. 급기야는 오르세 미술관을 점거하고 관람객들을 인질로 잡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말았죠.
해방전선이 한가지 간과했던 것은, 푸자드 총리는 여간내기가 아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푸자드는 이들의 전략을 간파했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생존권 투쟁으로 포장, 여론의 지지를 얻어 당국의 대알제리 정책을 전환시킨다는 전략 말입니다.
푸자드는 이들이 절대 인질을 해칠 수 없으며, 오르세 미술관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윽고 그는 인질들과의 모든 통신 및 협상 중단을 지시하고, 수면가스 등을 사용한 진압작전을 지시했습니다. 미테랑 대통령은 이 결정에 격분하며 푸자드를 소환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물경 1600명에 달하는 인질들과 귀중한 미술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미증유의 미술관 점거사태 국면에서 미테랑 대통령은 참지 못했습니다. 그는 즉시 비상대권을 발동, 푸자드의 권한을 정지하고 협상 재개를 명령하기에 이르렀죠.
그러나…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었습니다. 푸자드 총리는 즉시 지지자들을 소집하고 샹제리제 거리 한복판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저 파시스트들은 절대로 불쌍한 피해자 같은 게 아닙니다! 여태껏 프랑스의 경제와 사회, 윤리를 병들게 한 나치즘과 파시즘의 잔당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결탁하기 위해 비상대권을 발동한 저 미테랑 대통령은… 파시즘에 동조하기 위해 초법적 수단을 사용한 것이겠지요! 저는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판세는 완벽히 뒤집어졌습니다. 노동자들은 미테랑 퇴진을 외쳤습니다. 그간 보수적 윤리에 억눌려왔던 학생들은 반파시스트 투쟁에 나섰습니다. 대학교수들과 작가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결국 상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었고, 미테랑은 헌법위원회의 최종판결 이전에 사퇴를 결정했습니다.
그 사이에 오르세 점거는 40일째를 맞이했고, 결국 파리 경시청은 원래 지시대로 수면가스를 사용한 진압작전에 돌입, 그간 식량공급 중단으로 쇠약해진 범인들을 모두 체포하고 인질들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수면가스 과다투입으로 6명이 영구적 장애를 입고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긴 했지만, 사건의 규모를 고려하면 일단 성공이긴 했죠.
1973년 10월 12일, 피에르 푸자드는 “우리 안에 스며든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투쟁”을 선포했습니다. 당명 역시 “자유를 향한 전진!(Marche pour la Liberté!)”으로 바꿔달았습니다.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당원들을 흡수한 이 새로운 거대여당은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했고, 프랑스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각각 푸른색, 흰색, 붉은색으로 색칠된 세개의 화살표가 그려진 전진당 깃발이 파리 곳곳에서 휘날립니다. 이것은 반파시스트 투쟁의 시작이며, 강도 귀족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적 전체주의라는 파시즘의 두 가면 쓴 악마에 대항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 폭력과 불관용에는 그보다 더한 폭력과 불관용으로!
“위대한 공화국은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UG1. 어째서 당신이 리더인거죠?
알바니아 공화국과 코소보 자치공화국 사이, 드리니 강 어귀에 위치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신(新)수도 노보슬로베니(Новословении)는 오늘도 분주했습니다. 반파시스트 파르티잔 투쟁을 기리는 크고작은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들은 때때로 살벌하고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주었지만, 전반적으로 모던 브루탈리즘 양식을 채택한 신도시와 어우러져 그럭저럭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연방 국가주석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집무실 책상에 놓인 세계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스에서의 유혈진압을 묵인한 것은 과연 좋은 생각이었나? 모스크바의 소비에트 연방 정부는 과연 프롤레타리아의 국가를 자칭할 자격이 있는가? 그간 티토 주석은 유고슬라비아의 사회주의 독자노선을 수호하기 위해 소련과 때로 대립하고 때로는 협조하며 미묘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화성 미션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그리스의 유혈사태가 전세계에 알려지며 스웨덴이 중립국을 재선언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지도 몰랐습니다.
사실 유고슬라비아가 진작에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데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물론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의 위협도 있었지만, 서구권의 행태가 너무도 한심하여 그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주기가 싫었던 이유가 컸죠. 적어도 모스크바의 지도부는 변화에 대한 의지 자체는 있어보이니, 사태를 관망할 필요도 있었고 말입니다.
그러나 독자적 우주개발에 성공해 모든 이들이 “또 다른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신중하게라도 움직임을 가져가볼 가치가 있을까요?
SA1. 바람 잘 날 없는...
동남아시아는 호주 연방과, 인도차이나 연방이라는 큰 덩어리 둘이 패권을 쥐고있으며,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입니다. 바꿔 말하면, 소련은 발 붙이기도 힘든곳이지만, 변고가 생긴다면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 변고가 될 전환점 한개와, 사건 한개가 비슷한 시점에 터졌습니다. 전환점은, 말레이 반도에서의 미군 철수, 사건은, 태국 민중 봉기였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정세를 알고 있다면, 미군 철수가 의미하는것은 간단합니다. 소수민족인 중국인이 정계, 재계를 장악하고 있는것에 불만을 가진 말레이인들이, 5.13사건을 일으킬 공산이 커진다는것과 함께, 그 혼란을 틈타 말레이시아 공산당 (CPM) 의 재건도 꿈꿀수 있다는것이죠. 물론, 반대로, 민주행동당에서 첸만힝을 능가할 미친 사람도 나올수 있겠지만...
그리고, 태국에서는 군사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민중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타놈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시민들의 열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의 참극을 기억했습니다. 타놈 끼띠까존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무력으로 진압하면, 호주가 개입 할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국왕도 봉기를 지지하고 있다는것까지.
즉, 타놈 끼띠까존은 외통수에 걸린것과 다름 없었기에, 평화롭게 하야... 해,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이제 여기도 선거를 치뤄야만 합니다. 그리고... 타이 공산당은,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74년 사건.
- 한반도 회담 : 이철승의 포격 도발은, 소련이 연달아서 실점을 하는 지금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되었습니다. 미-소-중-남-북. 5자 회담이 열릴것입니다...
- 마약과의 전쟁 2차전 : 볼리비아에서의 사건. CIA는 이 사건에 명백히 개입하고 있습니다. 대체 뭘 꾸미고 있는걸까요. 제 2의 에드거 후버? 아니면...
- 사우디의 내부 : 파흐드왕은 결국 목적에 실패했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시점에서 정통성은 아작이 나있었지만, 목적의식 하나로 국민을 묶어놨습니다. 그런데... 실패했군요. 내전이 일어나진 않을것 같습니다만, 단결을 위해선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동남아시아 정국 안정 : 동남아시아는 혼란스럽습니다... 일단, 태국의 민주 선거가 치러져야하겠고, 말레이시아는... 네, 이란과 비슷한 삼파전이 벌어지겠네요. 정신나간 반 이슬람, 반 말레이 주의자 하나, 이슬람 근본주의자 하나, 스탈린주의자 하나... 음. 이란이 선녀같은건 기분탓일까요? 아무튼...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 오노다 히로 사건 : 오노다 히로는 항복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쇼와 덴노는 이미 없는 사람이고, 일본은 두갈래로 쪼개졌다는거죠. 즉, 이념 선전의 장... 이라고 봐도 될까요. 물론, 북 일본은 관심 없을수도 있겠습니다만.
- 카네이션 혁명 : 포르투갈에서도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근데... 음... 좌익이군요. 독재가 끝나는건 좋은데, 얘네를 믿어도 되겠습니까?
- 영국의 총선 : ... 아일랜드가 어떻게 끝났건, 우리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누군가를 지지해야 합니다. 옆동네 프랑스가 이상하게 돌아가는것도 고려해서...
- 기욤 사건 (변형) : 북**의 간첩 ****가, 남 **의 내각에 소속되어 있다는게 폭로되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명분으로 삼을지, 아니면... 그저 총리가 사임하고 끝날지, 사건의 파장은 어디로 갈까요?
- 공생 해방군 사건 : 극좌 조직은 어디에건 있나봅니다. 근데, 자유진영의 수장인 미국에서까지 난동을 피울줄이야. 차량 폭탄 테러로 300명이나 죽이다니, 양심이 있는겁니까? 아무튼, 이 이후의 대처가 중요하군요...
--------------------------
+ 투고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장인까지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번화는 사건이 적네요. 병마용 발견이라던가, 핵실험같은건 요래요래 있지만, 큰건이...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931117 힌트2:
“미국”이 “미국”이긴 한데, “미국”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돈이 곧 진리 중국은 육군력만 기대 가능한데 그마저도 소련이 있는등해서.
@E.E.샤츠슈나이더 전 머리가 그쪽은 좀 딸리는것 같으니 기다릴뿐.전 영상을 봐야.ㅋㅋㅋ
@E.E.샤츠슈나이더 미국이 미국이 아니라... 그럼 파국이 되나요?(도래미파솔라시도. ㅋㅋ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7.28 14:26
@931117 국중박이 워낙 크죠. 이거 하나로 서울은 문화 6개중 하나 맥스 찍을정도라...
@dear0904 그래도 두번째 갔을땐 다가는데 성공했는데 지금 영상실에 붙잡혔어요.ㅋㅋㅋ
뭐 이번엔 아즈텍전 본것도 있겠다만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7.28 14:33
이제야 돌아가는...세계문화관 몇곳이 한정전시하다보니 마구 찍어댄...아슬아슬...
여기도 이정도인데 세계 3대 박물관은 어느정도인가 두려움을 가진 오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