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한약방에서는 추저울을 사용했다.
요즈음에는 다이소에서도 오천 원이면 디지털 계량기를 살 수 있으니
이런 추저울은 빈티지 골동품 취급을 받는다.
"사이다, 포도, 라면, 빵, 사과, 계란, 고기, 쌀밥, 김"
먹고 싶은 것이 손가락 열개를 미처 짚지 못하는 명희.
그 명희가 자라서
다방 종업원이 되고
고속버스안내원이 되고
골프장 캐디가 되고
집에 올 때마다 배가 부르더니
음독자살 예방센터에서 숨을 거두었다.
명희가 남긴 예금통장엔 십구만 원이 들어있었다.
조세희는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서
도시가 팽창하던 시절을 기록했다.
조세희가 그린 낙원구에는
난쟁이 가족이 살았고
음독자살한 명희네가 살았고
저울을 든 사람도 살았다.
난쟁이의 가족이 저울을 든 사람에게
저울이 기울어져 있다고
쫓겨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작가는
왜 바람이 한쪽으로만 부는지
왜 흙이 한쪽으로만 쌓이는지
그런 사실적인 상황을 보여주기만 할까?
누가 옳고 그른 - 너무나 명확한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보이기 때문일까?
저울을 든 사람은 그 저울이 기울어 있다는 것을 외면했는데.
기울어진 조세희의 저울은 오늘도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한다.
정확하게 측정 가능한 다이소의 오천 원짜리 디지털 계량기가 이리도 흔한 세상에서,
난쟁이의 공은
그 기울기를 보여주려고
오래전에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내려올 수는 있을까?
첫댓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울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오늘도 저울은 어떠한 것이며 저울을 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떠한 기준의 저울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한다.
이곳 어느 게시판에서 기울어진 저울을 우연히 발견하고 떠오른 단상입니다.
@둘째
기울어진 저울은 어디에나 있어요. 그런 저울에 달리지 않으면 됩니다.
@그려지는 혜안(慧眼)을 갖추셨어요 ^^
7,80년대..도약을 최고의 기치로 내세우던 시절..
영자의 전성시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꼬방동네 사람들..등등
도심 이면에 각자의 애잔한 사연들을 안고 살아가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요새는 세대간 갈등, 정치성향 갈등, 계층간 분배 갈등... 또 다른 기울어진 저울들이 튀어 나오고 있다고 봅니다..
맞아요,
특히 7~80년대는 빈부 격차문제가 심했지요
삼포 가는길, 원미동 사람들도 같은 문제를 다룬 작픔이지 싶어요.
본문이 새삼스럽게 보일수도 있지만, 이전과는 또 다른 저울 이야기 맞습니다. 관심의 댓글 고맙습니다 ^^
저마다의 인생은
" 평등하지 않지만
공평하다" 더군요.
저는 공감해요.
주어진 달란트가 다르고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비겁한? 운명론자 되어
알아차렸다지요.ㅎ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
가면서 불합리와 모순의
울타리에 적응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한쪽 눈을 감고 기다리면
세상이치는 진리와 진실을
비추며 도도히 흘러 감을
보게 되더군요.
나 또한 그 범주 안에서
열심히 잘 살아내리란
다짐을 불끈!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님의 나날은
평안함으로 쭈욱
이어지시길! 화이팅!
(자유수영 가는길인데
벌써 지치네요 아 더워~)ㅎ
깊은 불심이라 그러실거예요,
'공평' - 저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앞으로도 바뀌지는 않을것 같으니 어떡해요, 미움뿐이니 ㅠㅠ
늦게라도 지는해님 불심을 본받았으면 ~ 바램을 합니다. 땀 뜸뿍 흘리셔서 500칼로리는 뻬세요 ㅎ
기울어진 저울 추, 기울어진 운동장,
삶의 출발선에서부터 그런 불평등을 안고 시작하는 사람들은 무기력과 울분에 휩싸이기 쉽지요.
대다수의 우리 민초들이 그러하고요.
난쏘공은 젊은 시절 읽어서 내용은 잊었습니다만,
서늘하게 마음에 와닿던 작가의 사회 비판의 목소리에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딸이 미국에서 박사 과정 공부 중이고 향후 미국에 정착하려 하는데,
아시안 중에서도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시작부터 기울어진 저울추요 기울어진 운동장 격입니다.
미국에서 아시안은 흑인이나 히스패닉보다도 매사에 더 불리하니까요.
예전에는 무심히 보던 헐리우드 영화 속 백인들의 생활 상을 보노라면, 그들만의 리그에 내 딸이 편입하기가 얼마나 힘들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둘째님 제가 한 며칠 카페 글에 댓글을 못 썼습니다만, 둘째님의 뛰어난 글을 매우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모쪼록 이 삶방에서 오래 오래, 오~~~오래 오래, ^^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간청해봅니다.
그렇군요,
매사 마음 쓰이시겠지만, 공부한 젊은 사람들이니 큰 걱정을 않하셔도 잘 헤쳐나갈수 있을거예요,
마이너인 아시안의 주류 사회 진입은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학계쪽은 그래도 공평하다고 하니까요,
제 위 바로 언니가 47년정도 독일에서 생활해서 어려운 점은 저도 전해들었습니다.
낙서 수준의 글을 고맙게 읽어주시니 황송하고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 고맙습니다
미국뿐이겠습니까
한국도 아직 여성들에게 허용된 문은 좁디 좁고
평등이라는 기치에 흉내정도로 열어두었답니다
기업입장에서는 출산 육아에 부담을 안은 여직원은 분명 가성비가 떨어진다 생각해서일까요
@정 아 그렇지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양성 평등은 아직 요원합니다.
네~♡♡♡
ㅎ~♡♡♡ 고마워요
기울어져 있는 저울은
지금도 곳곳에 있죠
격차심한 지금은
태생부터 기울어져 있다고 하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간사는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세상의 이치가 기을어야 하는 것인지 어디에서나 쉽게 볼수있는 광경이지요,
그래도 저울은 균형잡는 것이 목적이니 평평해야할텐데
이곳 작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그렇지 못힌 광경이 보이기도 하더군요,
도시의 사장님 소리듣는 아버지 의 딸로 살아온 내 친구 마리아 는 혼자 쓰는 한달 용돈이 19만원 이라 할때
시골 농부의 딸로 태어나 두 동생들과 자취하며 생활비 한달에 5만원 쓰던 내가
엄청 절친이었다
마리아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극을 보고 왔다고 할때
나는 동아리에서 불우이웃돕기 한다고 볼펜 만들어 파는것은 들고
연극 다녀온 마리아 에게 팔아서 삥뜯어 물감을 삿다 ㅠㅠ
절친인 도시의 사장인 딸인 마리아님은 어떻게 지내시는가요?
삶방 글 대충 훑어보다 '엄마의 시' 라는 보석같은 글을 보았어요,
@둘째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는데
연락을 자주 못하네요
저는 책을 읽었는데 영화로도 되었지요
부인으로 전양자씨가 열연했는데 너무
예쁘게 생기셔서 남루한 옷을 입혀 놔도
없는 티가 안나서 감독이 난감했다는 후문도 있더군요
갑자기 전태일 열사가 떠오릅니다
둘째님 글 감사합니다.
그렇지요 비슷한 이야기이니 그러실거예요,
더블 스탠더드라고도 할수 있는 경도된 시각의 어느 게시판 글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데요,
그래서 적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운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