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흐드러지는 봄밤… 아쉬움 커지는 까닭은 헛되이 보낸 지난 세월
영화 ‘흩어진 꽃잎’에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소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를 짓고 세상을 떠난다. KINO 제공
[고전영화] 흩어진 꽃잎/ 원제 : Broken Blossoms/ 감독: D.W. Griffith/ 출연: 릴리안 기쉬 Lillian Gish/ 제작년도: 1919년
https://youtu.be/TJwNOyI7NIQ
봄날 꽃이 눈부시다. 하지만 꽃비 내린 다음 날 바닥에 널브러진 꽃잎을 보노라면 서글퍼진다. 조지훈 시인은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고 썼다(‘낙화’). 장률 감독의 영화 ‘당시’(2004년)에도 유사한 내용을 읊은 당(唐)나라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유명한 한시가 나온다.
‘봄날의 새벽(春曉)’
봄잠 취해 날 밝은 줄 몰랐는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소리,
밤사이 비바람에,
꽃잎은 얼마나 졌으려나.
春眠不覺酵(춘면불각효)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夜來風雨聲(야래풍우성)
花落知多少(화락지다소)
봄날 새벽 시인을 깨운 건 새소리지만, 시인이 마음을 기울인 건 밤새 비바람에 떨어진 꽃잎이다. 한시에서 꽃 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시(‘惜花’)는 한시의 분류 항목이 될 만큼 흔하지만(‘文苑英華’), 떨어진 꽃잎에 가슴 아려 하는 시인의 마음에 오랜 여운이 남는다.
불우했던 시인이 아쉬워한 것은 꽃이 아니라 헛되이 보낸 지난 세월일 것이다(이남종). 하지만 이런 자기 연민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동정으로 이 시를 읽어도 좋다(劉永濟, ‘唐人絶句精華’).
영화의 주인공은 수전증 걸린 전직 소매치기다. 그는 집에 틀어박혀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한다. 소매치기 기술을 배운 동거녀가 마지막 한탕을 제안하지만 완강히 거절한다. 주인공은 늘 말없이 TV의 당시(唐詩) 강연 프로그램을 본다. 영화에는 맹호연의 시를 시작으로 8수의 당시가 나온다. 하지만 영화 내용과 당시 사이엔 뚜렷한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에는 주인공의 미래를 연상시키는 이웃 노인이 나온다. 참회라도 하듯 늘 복도를 쓸고 있는 노인도 한쪽 손이 불편해 보인다. 노인은 오해를 받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다.
영화사 초창기 작품인 D W 그리피스 감독의 ‘흩어진 꽃잎’(1919년)에서 아버지의 폭력에 희생된 소녀를 꽃잎에 빗댄 후 많은 영화에서 죽음과 희생의 코드로 꽃잎이 활용됐다. 우리 영화 중엔 5·18민주화운동의 비극을 다룬 장선우 감독의 ‘꽃잎’(1996년) 속 소녀가 그렇다. 한시에서 떨어진 꽃잎은 젊은 시절에 대한 아쉬움, 총애를 잃은 여인의 한탄 등으로 시인의 처지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됐다. 조선 후기 이봉환은 서얼 신분인 자신의 처지를 떨어진 꽃잎에 투영하기도 했다(신익철).
1980년 ‘광주’에서 소녀(이정현)는 엄마와 함께 시내에 나갔다가 잊을 수 없는 아픔을 겪는다.
우리가 떨어진 꽃잎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는 건 각자의 상황과 경험 때문일 것이다. 지난밤 비바람엔 또 어떤 꽃이 졌을까.
✵ 맹호연(孟浩然, 689∼740·唐) 시인은 후베이성[湖北省] 샹양현[襄陽縣] 출생. 고향에서 공부에 힘쓰다가 40세쯤에 장안(長安)으로 올라와 진사(進士) 시험을 쳤으나, 낙방하여 고향에 돌아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만년에 재상(宰相) 장구령(張九齡)의 부탁으로 잠시 그 밑에서 일한 것 이외에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불우한 일생을 마쳤다. 도연명(陶淵明)을 존경하여, 고독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의 한적한 정취를 사랑한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 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라는 《춘효(春曉)》의 시가 유명하다. 일찍이 왕유(王維)의 천거로 현종(玄宗)을 배알(拜謁)하였을 때 근작(近作)의 시를 올렸다가 ‘不才明主棄’라는 구절 때문에 현종의 노여움을 사서 모처럼의 벼슬길을 놓쳤다는 일화가 전하나, 확인되지 않았다. 시집(詩集)으로 《맹호연집》 4권이 있으며, 약 200 수의 시가 전한다.
출처 및 참고문헌: < 동아일보 2023년 04월 13일(목)|문화 [漢詩를 영화로 읊다〈56〉떨어진 꽃잎 흩어진 꽃잎(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 동아일보 [이준식의 한시 한 수] ,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2020-10-30 >Daum · Naver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