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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군색한 변명 문하 정영인 생활이 군색(窘塞)하면 군식구가 느는 것도 구차(苟且)하게 마련이다. 생전의 아버지는 집에 군식구가 오는 것을 이주 싫어 하셨다. 아버지께서 군식구란 가족 이외는 전부 군식구였다. 심지어 이모와 이종조카들도 군식구였다. 군식구가 생기면 아버지의 얼굴은 티가 나게 싫은 내색을 하였다. 눈치 빠른 사람은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로……. 이모는 장날이면 가끔 아들 둘을 데리고 우리 집에 들렸다. 워낙 눈치가 굼떠서인지 자주 들렸다. 다 곤궁하고 군색하던 시절이라 더욱 그랬던 같다. 더구나 일찍 남편을 여의고 두 아들을 키우던 이모네는 생활이 군색하고 곤궁했다. 하기야 해 짧은 동절기에 점심은 건너 띄거나 갱시기를 끓여 먹었으니 그 심정 오죽했으랴! 아주 어려운 집에서는 식구를 줄이기 위해서 딸을 더부살이로 보낸 그런 시절이었다. 핏줄은 못 속이나 보다. 나도 우리 딸도 선친의 밴댕이 소갈딱지를 조금 닮았다. 특히 딸은 우리 집에 다른 사람이 오는 것 아주 싫어했다.
글을 쓸 때도 나는 군글자가 많고 군더더기가 많은 편이다. 마치 군기침하듯이…….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살펴보면 군살 천지다. 어떤 경우에는 글이 너절해지고 만연체(蔓衍體)가 되기도 한다. 퇴고(推敲)의 법칙 중에 하나가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말을 빼는 것이라 한다. 군더더기 글을 줄이는 것이다. 되레 이것저것 덧붙이니 글은 난삽(難澁)하기 그지없다. 그 상황이나 사태에 적합한 말을 찾지 못하니 글은 늘어지는 수밖에 없다. 일물일어(一物一語)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사실, 글짓기가 군색한 사람은 그저 덧붙이기를 좋아한다. 마치 늙은 주제에 구십춘광(九十春光)인 것처럼……. 대개 글에 갱비리 같은 사람은 군색한 한 짓을 한다. 군살은 찌긴 쉬워도 빼긴 어렵다. 다이어트가 그러하듯이……. 다이어트를 했다고 해도 덧붙이는 요요현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넣긴 쉬워도 빼어버리기는 어렵다. 그저 군살이 많은 글을 쓰는 사람은 객쩍은 글을 많이 집어넣는다. 내가 그렇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갱국(羹-)이다. 갱국에는 이것저것 마구 집어넣지 않는다. 더구나 제사 음식이기 때문에 정갈한 것만 집어넣고 끓인다. 또 갱국은 먹을 때는 푹 끓여야 한다. 그래야 제 맛이 우러나온다. 글도 그런 것 같다. 갱국 끓이듯 푹 고아야 쓰는 사람의 글맛이 진하게 우러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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