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미국에서 한글키보드가 안되는 상황이라 차선책으로 쓴거라 쌍시옷하나도 안되있고 글자깨진것도 많아요 양해부탁해요
축구의 시작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해군이 전해준 축구는 고종의 갑오개혁 필두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근대화의 바람이 불기시작한 조선에는 잇다라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학교가 세워지고 그에따라 축구 역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엇다. 그후 YMCA야구단으로 유명한 황성기독청년회가 운동부를 조직하며 야구단과 함께 축구단을 조직하엿고 그후 궁내부의 현역운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한축구구락부와의 최초의 축구경기가 벌어지게 된다. 구름관중이 운집한 이경기는 무승부로 끝낫다.
제대로된 축구경기가 될을리는 만무하다.돼지오줌보를 이용해 논과 밭에서 펼쳐진 경기에서는 가장 높게 혹은 가장 멀리 차내는 선수가 호날두고 메시엿다.
겨례의 자존심. 조선축구단
1925년 4월 당시 제정난에 시달리던 불교청년회 축구단을 유지하면서 불교청년회 회원인이건표를 사령탑으로 하는 조선축구단을 발족시켯다.
단장 : 박윤관
감독 : 이건표
고문 : 정인창
선수 : 김원태(주장), 손재수, 김충배, 박긍진, 김영희, 손희염, 김원해, 김제정, 권태호, 최대순, 황점룡 등
조선축구단은 전조선축구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햇고 구락부나 상하이에 잇던 당시 조선의 축구스타들을 영입하며 명실상부 조선 최강의 클럽으로 자리매김햇다. 그들은 1926년 일본원정을 떠낫고 8경기서 단한번도 지지않아(5승 3무) 우리민족을 감격에, 일본축구게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햇다.
한편 축구단을 운영하던 백명곤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조선축구단은 재정적인 위기에 봉착햇고 1933년에는 서울을 연고로 하는 경성축구단이 창단되 많은 선수들을 빼앗기고 팀은 해체 직전까지 간다. 하지만 만석꾼의 아들인 최성면을 스폰서로 조선일보 기자 이원용을 매니저로 하여 재조직하여 1933년에 열린 전조선축구대회에서 경성축구단을 꺽고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1934년에는 경성과 평양의 선수들을 골고루 선발해 사실상 대표팀이나 다름없는 구성으로 해외원정을 떠나 두차례 원정에서 무패를 기록햇으나 1935년 전조선아식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것을 끝으로 창단 11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평양의 무오축구단
1918년 무오년에 창단되엇는데 축구단의 이름은 창단년도에서 따온 것이다. 평양을 연고로 한 이 축구단은 대성학교.숭실중학,숭실전문출신들을 주축으로 하엿고 타 지역의 선수들도 영입하여 조선축구단의 전신인 불교청년회 축구단과 함께 조선의 강자로 강림하엿다.
불교청년회와 무오축구단의 라이벌전은 특히 열기가 뜨거ㅤㅇㅝㅅ는데 이후 경성-평양의 라이벌구도의 전초가 되엇고 이는 경평축구대회로 이어진다. 제1회 전조선 축구대회에서 첫경기와 제2회 전조선축구대회 결승전에서 두팀이 맞붙엇는데 모두 무오 축구단이 승리햇다.
조선 축구단에 이어 2번째로 해외원정을 기획햇으나 원정비를 도난당해 실패한 해프닝을 남기기도한 무오 축구단은 전조선축구대회에서 2회우승, 관서체육회가 주관하는 축구대회에서 6회의 우승을 하엿으며 1933년 창단된 평양 축구단에 흡수된다.
민족 최대의 축구잔치 "전조선축구대회"
1921년 부터 서울에서 열린 전국규모의 축구대회로 1940년 제21회 대회를 끝으로 페지되엇으나 이후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fa컵으로 부활하게 된다.
2012년 fa컵에서 우승한 포항. 이 대회는 뿌리가 깊다.
1910년대 당시 전국적인 축구열풍이 불어 성인축구팀들과 학원축구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낫고 이는 전국규모대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되는 분위기를 형성햇다.
1921년 조선체육회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에서는 학생부와 성인부에서 심판의 판정에 불복해 결국 우승팀을 가려내지 못햇고 제2회에서는 학생부의 휘문과 성인부의 무오축구단이 우승하면서 초대 우승팀이 가려ㅤㅈㅕㅅ다. 이후 19회부터 조선축구협회에 의해 주최되엇고 초기에는 2월이나 4월 학교운동장에서 개최되엇으나 이후 10월이나 11월 경성운동장을 배경으로 개최되엇다.
청년부에서는 조선축구단이 4회로 가장 많은 우승을 햇고 전문부에서는 연희전문이 지역별로는 서울의 축구단이 가장 많은 우승을 하엿다.
http://www.kfa.or.kr/kfa_history/result_list_014.asp 전조선축구대회결과
일제의 조선체육회 강제해산에 따라 전조선축구대회는 조선축구협회에 의해 존속되어 19회부터 제게되엇지만 3년만에 일제의 구기종목금지령으로 폐지된다. 그후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fa컵으로 부활한다
첫댓글 유럽팀들 창단배경과 비슷하네요 저 명맥이 계속 이어졌엏다면 우리도 100년가까이 되는 팀들도 있었을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