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
스물셋, 나는 한 남자의 끈질긴 말에 넘어갔다.
그는 나를 원했지만 나는 그의 집안을 보았다.
그 선택이 어떨지 그때는 몰랐다.
독일에 도착한 뒤
나는 독문학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그는 기계공학을 했다.
겉으로는 함께였다.
그러나 지난 후에야 깨달았지만 그때 이미 우리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독일 여자와의 관계를 들킨 날,
그의 표정은 놀랄 만큼 가벼웠다.
내가 무너지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은 것은 나뿐이었다.
별다른 감정의 변화가 없었던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마주한 사람의 표정중 가장 서늘한 것으로 새겨져 있다.
이혼은 빠르게 끝났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돌아갈 곳이 없었다.
친정은 형편이 안 됐고 나는 도움을 청할 자격도 없었다.
파트타임 일을 전전하며 한 학기를 위하여 4년을 더 버텼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톱으로 바닥을 긁었으니 버틴다는 말조차 사치였다.
7년 만에 학부를 마쳤고
추천서 없이 두드린 도서관 문이 작게 열렸다.
그 문을 붙잡고 30여 년을 버텼다.
그동안 그 남자를 다시 본 적은 없다. 일부러라도 마주칠 기회를 피했다.
그렇지만 내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를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눈이다.
사람을 잘못 본 일. 그 어리석음은 시간이 지나도 새록새록 새로울 뿐이다,
쑥뜸은 겉을 태워 속의 고통을 덮고 흉터를 남기지만 통증은 사라진다.
그러나 내 안의 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전부를 태워버린 지금도 식지 않았다.
그 뜸자리는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남아있는 가장 잔혹한 흔적이다.
사족)
제 바로 위 언니의 이야기를 제가 작성했어요,
지는해님의 뜸 흉터를 보고 평생동안 제 언니의 마음 속 깊이 새겨진 뜸의 흉터를 떠올렸습니다
첫댓글 글을 읽자마자 독일에 유학 갔던 전혜린씨가
문득 생각이 나네요.
"불꽃같은 여자" 라는 책을 쓰기도 한 것
같았는데....
한동안 그 책의 내용이(그분의 독일에서의 생활??)
제 마응속에 남아있었습니다.
^^
데미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슬픔이여 안녕,어린 왕자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시 여고생들의 필독서 맞아요 ㅎ
전혜린 번역한 루이제 린저, 프랑스와스 사강책도 많이 읽었어요 .
@둘째
아 ~ 그렇군요. 화이팅 ~ !! (^_^)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해 어쿠, 말 많이 하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기님~^^ 하트 뿅뿅 ~
과거의 일을 상처로
갖고 있으면 빚이 되고
경험으로 여기면 자산이
된다 고,(법륜스님 어록)
몸의 상처는 시간지나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느닷없이 덧나기도 하죠.
사람으로의 한생애가
저마다 한편의 드라마,
내가 주인공인 내삶을
잘 운용하여 지혜롭게
살고지고 입니다.
( 남을 밟고 서거나
남의 불행위에 쌓는
행복을 욕망하지
않아야함의 단서조항)
저의 경험에 비추어
우선은 아프지만
차라리 " 너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으니 이혼
하자" 함이 정직할듯,
헤어질 용기도 없으면서
주기적으로 바람을 펴댄
울집남자...ㅎㅎ
부부의 일은 신도 모른다
하더군요. 왜 사냐건
그냥 웃지요.
운명의 사슬에 매인
슬픈 즘생이여~~
파닥파닥 푸다닥~
날개짓 하러 가고
있답니다
전철안에서...ㅎㅎ
ㅎ 댓글이 그냥 법문처럼 들려요 ~
불심깊은 사모님 ^^
@지는해 ㅎ 시원하게 풀고 오세요 푸드덕~~~~
춤도 운동도 불심도 무엇이던 열심히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겠어요 .
아 옛날이여
흉터는 통증을 기억나게 한다.
그러나 기억은 지울 수 없다.
내가 만든 통증이 아닌지를 생각한다.
우리의 가치관과 그들은 다르다. 적응해야 하지 않는지? 성을 유희라 생각하니.
흉터가 남긴 기억 - 그 기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겠구요.
서로 다른 가치관 속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이어서 더 오래 남았을것으로 유추만 하지요.
싸움은 끝나도 상흔이 남고, 쑥뜸으로 병고를 다스린 자리에도 흉터가 남지요.
문득, 랭보의 유명한 싯귀가 떠오릅니다.
오 季節이여 오 城이여, 상처(결함)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둘째님의 언니께서는 큰 상처로 인한 흉터를 가지셨지만,
시련과 싸워 버티고 이겨낸 그 상흔은 고귀한 것이지요.
극심한 비염 때문에 서암뜸을 뜨던 30대 후반의 제 모습도 떠오릅니다.
제 마음 속에 새겨진 크고 작은 삶의 흉터들도요.
그렇게 나이들어 여기까지 왔네요.
언니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해요, 우리랑 달라 보이고 낯선 느낌을 많이 받아요, 가치관도 그런것 같아요,
서암뜸 처름 들어요, 저도 비염이 심합니다, 눈도 가렵고 목도 아픈 증싱입니다.
흉터요?저도 적진 않습니다 ㅠ
@둘째 서암뜸이 1990년 대 후반에 유행했는데 지금은 쏙 들어갔어요.
수지침과 함께 유행했지요.
혼자서도 뜸을 뜰 수 있는 쑥뜸 키트를 사서 집에서 뜨곤 했어요.
뜸 흉터도 그리 깊거나 심하지 않았지요.
효과는 있었는데 넘 번거로워서 오래 계속하지는 못했어요.
@달항아리 고마워요 자상하신 달항아리님 ~~
저는 비염이 심할땐 주사를 맞았어요,
완치약은 없다고 하니 알약을 복용합니다, 알레그라는 조금 졸리지만 효과가 강하고 클리리텐은 졸리진 않지만 효과가 미미해요
언니의 힘들었던 인생을 본인이 그려 봤군요
갑자기 지금 저희 형제 자매와 연락을 끊은 막내
여동생이 떠오릅니다
저도 그 애의 엉킨 삶의 자국들을 단편적으로 듣고
봤지만 둘째님처럼 깊이 들여다 볼 생각도 나름대로
글로 재편해 볼 생각은 못하고 살지요
연을 끊은지 오래 되어 그렇게 이해 하고 싶은
자매의 정도 희미해져서 일까요?
오히려 자주 왕래 하는 둘째 동생의 내면은 나름
이해 하고 싶고 들춰내고 싶은 마음은 들더군요
형제고 자매라도 함께 대화하고 만나야 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집집마다 어려운 사정이나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듯 해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라 마음고생이 많았던 언니예요. 그 당시 유학까지 갔으면 진취적이고 깨였을텐데 ~ 아주 답답한 사람입니다,
이 글을 읽는데 왜 자꾸만 독일 괴테의 동산을 짓고 괴테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름은 잘 생각이 안나지만 골라듄이던가 건축에 관한 다큐 방송을 봤어요
꾸미지않는 수수한 그 여인의 인생 철학이 자꾸 떠 오르네요
다시 찾아 봐야겠어요
저도 치매인지 이름이 생각이 안나고
어떤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때가 참 많아요
언니의 상처 얘기
공감이 갑니다
여주시 강촌면에 가면 '여백서원'(如白書院)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서울대 독문과 명예교수인 전영애 교수님이 공부하고 가꾸는 정원이다
둘째님
찾았어요
여백서원의 전영애 교수
@요 요 ㅎ 저도 지금 찾아보았습니다.
평생 괴테에 빠져지낸분이네요, 요요님이 그런분을 좋아하시는군요. ^^
흉터없는 인생이 있을까요,'
위 답글에 여고생들의 필독서 중 '루이제린저'의 글도 읽으셨다는데,
저도 그중에 특히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는 아직도 기억이 조금 납니다.
남자에게 종속된 삶을 살지 않고 자유롭게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니나.
저도 다시태어나면 주체적인 삶으로 살고싶다는.
글을 참 편안하게 쓰십니다.
ㅎ 창피하지만 저도 루이제린저 책 보란듯이 끼고 다녔어요. 애고~ 오글거리고 등에 땀납니다 ^^ 고맙습니다. 리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