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컬럼리스크가 소개하는 입시철 아파트 풍경은
대학 입시가 갖는 사회적 긴장도를 잘 표현해 주는듯 합니다.
모대학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입시생을 둔 부모의 경우에는
'부부관계'마저 '유보'하거나 '생략'한다고 하더군요.
사정이 이쯤되면, 아파트 이웃들에게 '까치발하고 실금살금 살자'는 주문은 당연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허긴, 제가 다니는 교회에는 아주 오랫전부터,
대학입시자 명단과 고등학교 진학자 명단이 걸렸고,
입시시즌인 요즘에는 그들을 위한 특별새벽기도회가 진행중입니다.
있지도 않은 '고입'까지 들먹이니,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긴장과 불안은 증폭될 것이고,
그 심리적 불안때문에 교회는 문전성시를 이룰 테지만,
기도하는 마음에는 온통 '타인의 대한 배제'를 갈망하는 것은 아닐까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의 '공부'는
'너도 잘하고, 나도 잘하는' 상생의 방정식이 아니라,
'너 보다 내가 잘해야 이기는' 독식의 방정식이기 때문입니다.
이틀전 원주YMCA 주부 특강에 갔더니,
많은 젊은 주부들께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공부 안시키면 너무 불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온통, 시험불안 조성 기제들이 널린 사회이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불안이란 것도
실은 '자가발전'되는 측면도 매우 강하지 싶습니다.
'타인준거'(다른사람을 비교의 대상으로)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불안'이 강할수 밖에 없는 탓입니다.
특히, 타인준거의 삶의 방식은 위쪽에 대해서는'열등감'을 갖지만,
아래쪽 사람들을 보면서는 '우월감'을 갖게 되지요.
그러니, 누구인들 타인보다 못하게 살고 싶겠습니까?
공부를 통한 자식의 '대박심리'는,
이런 삶의 방식에서 출발하고, 갈수록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변화하지 않는한,
어떤 정책이 도입돼도 아파트의 그 웃지 못할 협조문(호소문?)과
교회나 여타의 종교기관에서의 격문이나 기도회는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삶의 방식을 바꾸자고 소리친다고 바뀌는 것은 아닐테지요..
우리의 '화폐신봉주의'가 지금같은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오랜 시간 살면서 '학습'된 결과라고 본다면,
다른 삶의 방식을 위해서는 오랜시간 그같은 삶에 대해 '학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자기준거'의 삶을 연습할 수 있는 공간과 터전,
이를 실제화 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 등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지금의 모든 학교가 국민이 세금으로 운영되는만큼,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노력도 게을리할수는 없는 일이구요.
교육의 공공성!
사교육 시장에서 하지 않는, 그러나 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를 말한다고 보면,
지금의 학교교육은 크게 빗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파트 출입구마다 커다란 게시물이 붙었다. 수능시험이 얼마 안 남았다, 결전의 날을 앞두고 입시생들이 신경이 날카롭다, 지금이 가장 중차대한 시기다, 피아노도 치지 말고 아이들도 뛰어놀지 못하게 하고, 강아지도 짖지 못하게 하고, 페인트칠이나 공사도 하지 말고, 숨죽이고 살아주길 바란다는 내용이다. 옆집에 강도가 들어도 모른체하는 주민들이지만 해마다 이 협조사항은 놀랄 만큼 잘 지킨다.
대학입시는 로또복권과 유사하다. 당첨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나머지는 꽝인데도 누구나 당첨될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로또 광고는 ‘4800만이 행복해질 때까지’라 선전하며 전 국민에게 당첨의 기회가 있을 것 같은 환상으로 유인하고, 대학입시는 최고의 학벌을 가지면 인생역전이 가능한 현실에 기대고 있는 한판 승부다.
로또 당첨과 자녀의 서울대 법대 합격 중 어떤 게 좋은지 물었더니 대부분 서울대 법대란다. 로또를 꼽은 친구는 돈만 많으면 온갖 과외를 해서 법대에 들여보낼 수 있으니까 꿩 먹고 알 먹기란다. 한수 위다 싶었는데, 친구들은 과외 한다고 실력 없는 놈이 합격하냐, 법대에 들어가면 돈을 싸든 신붓감들이 줄서기 때문에 로또는 저리가라라고 했다. 모든 것이 돈으로 귀착된다.
한 나라의 교육목표는 전 국민의 수준을 높여 경쟁력 있는 교육을 시키는 데 있어야 한다. 최근 경쟁력을 내세워 고교입시 부활을 내세우는 층이 있는가 하면 야당 총재는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평준화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대학이 경쟁력이 없는 것은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 아니고 취업시험 준비와 간판 따기의 전당이 되었고 그것을 용납하는 대학 자체의 문제이지 고교평준화 때문이 아니다. 수능 좋고 내신 좋고 고르고 고른 학생들로만 채웠는데 대학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대학들이 반성해야 할 문제다.
한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의사, 법관, 건축가, 영화감독, 디자이너만이 아니다. 유능한 목수와 야무진 타일공, 실험실의 동물사육사, 세심한 정비공 모두 필요하다. 디자이너인 친구는 ‘시다’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초봉 100만원에 잔업수당 합쳐서 200만원을 받는데도 구하기 어려운 반면, 외국유학까지 마친 디자이너는 널려 있어서 초봉이 60만원인데도 취직 청탁으로 골치 아프단다. 고학력자는 남아도는데 노동자라 부르는 재봉사, 기능공, 숙련공들은 구하기 어려워 중소기업은 문을 닫고 있다. 그런 사회가 경쟁력 있는 사회인가.
단언하건대 우리나라엔 교육은 없고 교육시장만 있다. 그리고 그 시장은 투기장화했다. 대학입시는 열아홉 아이들이 치르는 것이 아니다. 그 부모들이 치르는 것이다. 열몇살까지의 능력은 전적으로 부모의 힘으로 이룬 것이다. 어머니들이 부동산투기를 하듯 자식을 내세워 교육투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아버지들은 학벌사회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정책들만 내놓고 있다. 교육은 돈 놓고 돈 먹기다.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20만원짜리 과외는 200만원짜리에게 지게 되어 있다. 판돈 많은 놈에게 번번이 지게 되어 있는 노름판과 같다. 기회균등 어림없는 소리다.
진짜 부자들은 초등학교부터 세계의 8학군이라는 보스턴으로 유학 보낸다. 그들은 이중국적에 화려한 국제적인 경력을 갖고 귀국해 우리들 자녀들의 머리 위에 올라앉게 되어 있다. 남들이 부동산투기를 해서 돈을 벌었다니까 온 재산을 다 털어넣고 부동산투기에 뛰어들었다가 빈손으로 털고 나오는 꼴이 되기 십상인 것이 교육투기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타워 팰리스의 집값을 한푼 두푼 저축해서 마련한다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이 천박하게 무한정으로 악순환이 계속되는 교육풍토의 고리를 끊는 것은 교육정책이어야 한다. 토지 공개념, 주택거래 허가제, 투기지역 지정, 그린벨트 지정 등은 모두 재산권 침해이며 위헌 소지가 있는 것들이다. 그래도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해 실시하자는 것 아닌가. 진정으로 내 자식 내 가족을 벗어나 우리들의 아이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면 교육투기를 막을 방법이 왜 없겠는가. 다 마음이 없어서이고, 내 아이에게 유리할까 불리할까 생각하고, 이기적인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에 내준 공교육을 바로잡아 ‘공개념’에 충실한 정책을 펴는 것만이 유일한 왕도이다.
첫댓글 어젯 밤 뉴스에 등장한 초등학교 5학년생.학원 여섯 곳을 다니던 중 학습장애를 일으켜 정신과 치료를 받더군요...치유 되어야 할 대상이 어디 그 아이 뿐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