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에는 6좌의 철비가 있다. 국내에서 제일 많은 철비를 가진 도시이지만
관리 부실의 상징으로 보인다. 철비의 몇 좌는 부식되어서 새긴 명문이 보이지 않고 비의 명문은 따로 풀이를 하지 않았다.
거제 시청에 문의 하니 별도로 금속문을 조사한 자료조차 없다고 한다.
가지고 있으면 뭐하냐!!
제대로 관리도 못 하면서........이 비들은 유리관을 씌워 빗물이나 바람에
더 이상 풍화와 부식을 방지 하던가 아니면 실내로 옮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순상국은 정부에서 내려온 고위 관리이거나 아니면 지방을 순회하는
관찰사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경상도 관찰사를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 비에 새겨진 인물이 그 지역을 방문을 하지 않고 징을 울려서
백성의 민원을 들어주기에 비를 세우는데 疎를 올린 것에 대한 것이기에 대부분 그 지역에서 비를 세우는데 관찰사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巡 相國 홍종영 영세 불망비
앞면; 巡相國洪公鍾英永世不忘碑 순상국홍공종영영세불망비
甲辰九月日邑民立 갑진구월 일 읍민립
1844년 9월에 고을 백성이 세움.
찬시: 一境漁磯 恩並山高 民以賴活 德與海渴
濟溺寶筏 猶石可轉 救難䔒薩 爰銘于鐵
풀이;
일경 어장의 은혜는 산처럼 높아 백성이 이에 힘입어 살고
바다에 의지하며 덕으로 살아가는데
백성을 어려움에서 건져내고
굴릴 수 있는 돌은 그대로 이네
만민을 구난하는 보살이셨네
사랑하는 마음으로 철비에 새기노라."
해설: 1844년 9월에 거제읍민이 세웠다. (높이 123cm, 나비 25cm)
글이 새겨진 부분은 홈을 파서 비의 두께가 얇고 上部는 꽃잎의 형태로 보이는데 두껍게 처리되었다.
헌종 9년(1843년)에 경상도관찰사에 임명되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碑는 경상도관찰사 홍종영(洪鍾英)의 퇴임에 맞추어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一境은 거제지역에 있는 어장과 경계를 말한다.
濟溺은 어려움에서 구하고 물에서 건져주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寶筏은 覺筏이라하며 불교에서 깨달음의 길을 뗏목의 항해에 비유하여 보벌(寶筏)이라 한다. 제약보벌은 백성을 어려움에서 건져내고 올 바른 길로 안내한 것으로 풀이 하였다.
猶石可轉--은 굴릴 수 있는 돌은 그대로 이네로 풀이 하였지만 여기서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변함 없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돌처럼 마음대로 굴릴 수 없는 마음, 곧 심지(心志)가 굳어서 확고부동한 마음이다.
《시경(詩經)》 〈백주(柏舟)〉에 “나의 마음은 돌이 아니니, 굴릴 수가 없다네.〔我心匪石 不可轉也〕” 하였다.---- 이 풀이는 몇 번이고 수정을 하여서 찾은 내용이다......송시는 옛 고사가 많기에 풀이가 참으로 어렵다......
홍종영 洪鍾英 (1788년~1857년)
남양 홍씨,
조선후기 문신으로 예방승지, 이조참판, 보은군수, 이조판서, 행호군, 대사헌,
병조판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