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살이 되었을땐 10대를 마감한다는 시원섭섭한 마음...그 20살을 보내고 난 뒤의 지금의 왠지 모를 서글픔...
스무살의 난 다시 돌아올수 없는 이날의 설레임의 흔적을 먼훗날 무엇으로 회상을할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20살에 대한 나의 마음을 글으로 남김이 21살의 문턱에 도달하기 시작한 나의 조급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여유롭개 해주지 않을까?
내 나이 스무살이었습니다.
*Long ago*
오늘도 닭울음소리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홀로 쌀을 씻고, 책을 읽고, 피리를 부는 사람...그는 바로 나다.
300년 전의 나는 외딴 섬에 홀로 살아가는 가난하고도 외로운 선비였다. 세상사의 온갖
시름을 너무 어린 나이에 느낀 후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이 섬에 온지도 어느덧 3년...
나의 아버지는 청렴결백하고 검소한 사람으로써 모든 것이 바른 사고방식으로 행동하신 분
이었으나 주위의 간신의 모함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난 그때이후로 바르지 못한
세상의 흐름에 한탄하였고, 방탕한 생활을 보내며 그들을 증오하였다. 그러던 중, 친형
이 벼슬을 하기에 이르렀고, 붕당정치로 인해 썩을 대로 썩은 나라사정에 대한 나의 강력
한 만류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두고 떠나갔다.
그 이후로 난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섬에서 시를 쓰고, 피리, 아쟁을 연주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날 타지에서 온 사람에게 시를 한수 읊어 주었는데 그날 이후로 전국각지의 서생, 선비들이 나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 이후로 그들과 토론을 하고 시를 읊었는데, 하루하루 모르는 사람을 알아간다는게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대부분은 벼슬을 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학문을 닦는것이었으니까... 그 실체를 알게 된 나는 그들과의 만남을 거절했고,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씩 발걸음이 사라져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내겐 피리와 아쟁,지필묵이 있었으니까...
*사무치는 그리움. 그리고 슬픔*
20살이 되던해...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겨울이 되면 난 연례행사처럼 삼순구식을 해야만 했고 소를 몰며 피리를 불수도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난 영양실조를 앓게되고, 면역성이 약해진 나의 몸엔 감기까지 동반하는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난 너무나도 슬펐다.
죽는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홀로 느낀 외로움과 그리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억제하고 살아왔는지 사선에서야 조금씩 알거 같았다. 난 떨리는 손을 바로잡고 붓을 고쳐 잡은채 한지로 깔려있는 내 바닥과 벽에 비둘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마리에 비둘기를 방안에 한가득 그려놓고 난 의식을 조금씩 잃어갔다.
서기 2002년 겨울... 난 지금 수만명이 지켜보는 무대에 서 있다. 유난히도 추운 이 겨울이 나에게는 무엇을 의미할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관객들의 물고기 같은 돌출행동, MC의 짖궂고 저질스러운 농담, 관계자 측의 비리... 난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정신이 몽롱해짐을 알 수 있었다.
*시도
3년전..난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대학을 가기 위해서이다.
공부를 했다. 대학을 가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했다. 뿌린대로 거둔 다는 말이있어서인가? 성적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친구와 선생님 사이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반면에 나의 마음은 왠지 모를 서글픔과 억압된 현실에 괜시리 슬퍼졌다. 심란해진 맘에 머리도 식힐겸 학교 영상제 관람을 하러 갔는데 한 코너의 영상에선 기타연주자가 나와서 기타를 때리고 뜯고 현란한 플레이가 내눈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린 나의 구미를 당겼는데... 뭐랄까? 말로 표현할수 없는...새로운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였지만 그건 나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난 참을수 없었다. 마치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성욕,수면욕를 충족시켜야하는 그런 느낌을 받으며 나는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정보의 바다...인터넷에서 수많은 기타 연주자들의 동영상과 음악을 들었지만 좀전의 현란하고도 장엄한 연주소리는 전혀 찾아볼수가 없었다. 난 더욱 갈망했다. 잠이 쏟아지는데 잠을 자면 큰일이 일어나는 상황에서와 같이 말이다.
*만남*
그렇게 별 수확 없이 하루는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난 우리나라에서 음반시장 5손가락안에 든다는 타워레코드를 찾아갔다. 역시나 빌딩전체가 음반과 음악관련 도서로 이루어져 있었고, 고객들도 어린 얘에서부터 60대의 노신사까지 다양했다. 캐롤이 울려퍼지고 램프도 점화되어 있어서인지 오늘이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난 1층에서 음반을 구경하였는데 모두 댄스와 발라드의 한마디로 오버 그라운드의 인기가요 일색이었고, 그 여러 가수들의 포스터 사이로 조그만 글씨로 '2F Rock&Jazz'라고 표기된 것을 보고, 그때서야 Rock & Jazz코너는 2F에 있다는 것 알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1층의 발랄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래피티와 축음기, 머리긴 락커들의 사진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머리를 모두 다 세운 사람, 긴 머리의 남자등 고객들도 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람이 많았다.
막상 2층에 올라와도 막막했다. '수많은 음반사이에서 무엇을 구입해야 하나? 에이, 그냥 아무거나 우선 들어봐야겠다.'
난 수많은 음반사이에서 빨갛고 검정색의 음반자켓의 왠지 뭔가와 달라보이는 한 음반을 집어 들고 찬찬히 살펴보았는데 '카니발 콥스'라는 유럽의 한 그룹이었다. 괴기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한치의 망설임없이 PLAY를 하였다.
처음의 설레임과 달리 그 음악은 첫곡부터 으시시했고, 가사말 또한 저질스러워서 당장 스탑을 누르고 다시 제자리에 갔다 두었다. 그렇게 여러 음반을 들어봤는데도 불구하고 어제의 내 귓전을 멤도는 그 사운드는 어느 한켠에도 들리지 않았다.
난 도움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위를 두리번 거렸는데 2층의 점원 사이로 그 점원들을 관리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한 사내를 발견하였다.
그 사내는 정결해보이지 않는 까만 긴머리와는 달리 화려한 노란 정장을 입고 있었고 양 손에는 별과 보안관마크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으며,구두는 언발란스한 초록색을 신고 있었다.
중요한건 기타를 안고 영화 로망스의 '로망스'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필히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고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노벨상을 타야할 사람이라는 순간적인 상상을 하면서 그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그는 기타에 심취되어 나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였고 나 역시 그의 연주에 방해가 될까 조용히 그의 연주를 감상했다.
잠시후 그가 나를 의식하고 더러운 여드름사이로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뭐 찾으시는거 있으세요?"
난 그말에 흠칫 놀랐다. 생긴건 꼭 소림축구에 나오는 푸줏간주인임이 확실한데 목소리는 맥심모카골드광고의 등장하는 안성기보다 더욱 지적이었다.
난 내 속마음을 들킬까 싶어 조바심에 우선 기타를 친다는것에 대한 동경을 나타냈다.
"전 기타 전혀 못치는데...정말 멋지네요"
"아... 이거요? 그냥 조금씩 칠때도 있어요. 음악을 한다는게 왠지 모르게 좋거든요."
이 사람이면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것 같았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 어제일을 말 했다.
"아.. 그래요? 기타연주 영상을 봤는데 그 음악이 잊혀지지 않는다구요?"
"아뇨, 연주보다 그 음이라고 해야하나? 소리에 너무나도 매료 된걸요..."
"그럼 제가 궁금증을 풀어드리죠."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일렉기타 하나를 꺼냈
고, 이펙터라는 발판이 달린 장비에 잭을 꼽고 기타를 연주했다.
"이 소리인가요?"
"아니요"
"그럼 이소리 였던가요?"
"이것도 아닌데요...물고기가 파닥거리는듯한 소리였어요."
"그럼 이 소리인가요?"
"아니요."
이러길 수차례...그 푸줏간 주인도 지쳤는지 기타를 스탠드에 세워놓고 나에게 물었다.
"그럼 무슨 소리일까요? 제 이펙터에 있는 소리는 전부 들려드렸는데."
"그런가요? 어젠 막 연주자가 기타를 때리고 뜯고 문지르고...암튼 공격적이고 음이 튀는
소리 였어요."
"아...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죠...때리고 뜯는것이면 일렉기타가 아니고 베이스네요."
"예 베이스요?"
"예, 일렉기타에서 2줄이 없고 낮고 굵은 소리를 내는 기타인데... 베이스의 슬랩을 보신
거로군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푸줏간주인은 음반을 하나 꺼내 들려줬는데 한 흑인이 그려져있었고, 그의 이름은 마커스 밀러였다.
설레임에 두근거리는 마음가지 담아서 PLAY를 누르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220볼트 전류에 감전된 느낌을 받았다.
그 음악인 것이다. 아니 어제부터 내 귓전을 멤도는 그 소리..'.아...이것이 베이스란 악기의 슬랩이라는 연주법이라는거구나.' 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며 푸줏간 주인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푸줏간 주인은 가게 뒷편에서 무언가를 꺼내 오더니 비디오로 재생을 하였다. 아마도 비디오 테잎 같았는데 화면에선 그 흑인 연주자가 베이스로 슬랩을 하고 있었다. 우린 짜장면을 먹으며 그 화려한 플레이를 감상했다.
"저 마커스 밀러라는 사람은 지금 살아있는 베이시스트 중 몇손가락안에 드는 훌륭한 뮤지션이지."
어느덧 푸줏간주인은 나에게 말을 놓기 시작했고, 나 또한 아무런 혐오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럼 저 악기를 배우고 싶은데요. 어떡하죠?"
"내가 베이스도 잘은 못쳐도 너 가르쳐줄만큼은 되는데...가르쳐 줄까?"
"그래요? 감사합니다."
난 몇날 몇일동안 돈을 모으고 부모님게도 지원을 받아 170만원을 모아서 푸줏간 주인을 찾아갔다.
우린 낙원상가로 갔는데, 베이스가 너무나도 많아 뭘 사야할지 막막했다.
푸줏간주인이 말하기를
"우선은 니가 맘에 드는거 아무거나 하나 골라봐라."
난 모양만보고 스타인버거의 헤드리스 베이스를 집어 들었다.
"스타인버거는 비추천인데... 이건 어때?"
푸줏간 주인은 펜더 아메리카 스탠다드를 가르키며 말했다.
"아..이것도 괜찮네요."
"괜찮다니 다행이군. 우선은 소리도 좋아야겠지만 니 맘에도 들어야지."
푸줏간주인은 그 펜더베이스와 똑같은 여러 베이스를 연주해보더니 세 번째 베이스를 가리키며, "이놈이 제일 쓸만하네"
"그래요?" 그리고선 나도 몇번튕겨봤는데 잘은 몰라도 느낌이 좋았다.
기를 산 그날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수 없었다. 모든게 즐거웠으니까~
이른 아침, 난 겨울과 어울리지 않는 진한 햇빛을 받으며 푸줏간주인을 호출했다. 내가 그에게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연습공간이 없어서 더럽고 어두운 우리집 지하실에서 연습을하고 레슨을 받는것이다. 교육비는 물론 무료였으며 내가 밥을 사주는 것이 전부 였다.
난 남들이 Bon jovi, 메탈리카를 들을 때 난 빅터우튼,자코페스토리우스, 마커스 밀러의 곡들을 들었으며, 남들이 메탈을 최고시 여길 때, 난 락의 초견이라고 불리는 펑크를 동경했다. 그렇다. 난 여느 10대와는 사상이 틀렸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난 나날이 발전해갔고 청출어람은 거쳐 일취월장을 하였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 또한 일년전에...그 영상제를 보기전과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생각지도 않았던 베이스를 갑자기 배워서 이 순간까지 왔으니깐...
난 오늘 푸줏간주인을 찾아가서 그 동안 남몰래 준비해왔던 '크로매틱 환타지'를 들려줄 예정이다. 내심 설레이는 마음으로 낡아빠진 지하실 문을 열려다가 지하실에서 새어나오는 음악소리 때문에 그 손놀림을 멈췄다.
'감미로운 트럼펫소리...재즈에서나 듣던 브라스의 감미로운 소리가 우리 냄새나고 지저분한 연습실에서 울려퍼지다니...푸줏간 주인이 그럴리는 없고...'
난 문을 살며시 열었는데 푸줏간 주인은 앉아서 한 사내의 트럼펫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 옆에 서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그 사내는 키는 180에 장동건이 울고갈 정도로 영화배우 뺨치는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로 자신의 이미지에 걸맞는 척 맨지오네의 'Feel So Good'를 연주하고 있었다.
"흠흠"
"어, 왔냐? 인사 드려라. 내 고향 선배다."
"예에?"
경악했다. '저렇게 멋지고 잘 생긴 사람이 푸줏간 주인의 선배라니...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물어봐도 푸줏간 주인이 서너살은 거뜬이 많아 보이는데...역시나 사람은 생긴거만 보고 판단했다가는 큰코 다칠 일이야...'
"반가워요."
"네, 좀전에 연주한 'Feel So Good'저 정말 좋아하는 곡이예요."
"그런가요? 플루겔혼이 없어서 트럼펫으로 한거예요." 아 베이스라면서요? 한곡 들려주 시겠어요?"
"네 그러죠."
오늘은 날이 참 잘 맞아떨어지는 운수가 좋은 어렸을 적 카드게임을 해서 내가 싹쓸이한 그런 날임을 예감하고 나는 크로매틱 환타지를 연주하려고 손가락을 풀기 시작하고 베이스 잭을 앰프에 연결했다.
심호흡을 한번하고 난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주하는 내가 술에 취해 만취상태가 된 취객처럼 더 오바하기 시작하면서 그러나 하나의 흐트러짐없이 연주하였다.
이윽고 난 장동건과 푸줏간 주인의 딱벌어진 입을 보았고 주위의 사물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자식~ 나 모르는 사이에 언제 연습했냐? 재즈에 입문해도 되겠는데?"
"베이스 실력 상당하네요. 어린 나이에."
난 경력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남들이 10시간 연습할 때 난 집중해서 2시간을 연습한다. 무조건 악기를 오래 잡고 늘어진다고 실력이 늘면 개나 소나 쥐나 개나 최고의 기타,베이스 테크니션이 되어있을것이니까...
그렇게 장동건을 영입하고 푸줏간주인과의 인연도 벌써 3년째가 되어갔다.
내 나이 올해로 스무살...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동경한 D대학 문예창작과에 당당하게 입학했고, 베이스도 한석봉 붓글씨 연습하듯 열심히 하였다.
*새로운 시작*
우리 셋은 밴드 결성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눴는데 트럼펫을 연주하는 장동건이 보컬&트럼펫을 맡기로 결정했다. 역시나 복식호흡에 능해서인지 트럼펫은 물론이고 노래실력 또한 내일 당장 음반을 낼 수 있을정도로 수준급수준이었다. 나머지 드럼만 구하면 어느정도 해결될터인데 중요한건 드러머가 없다. 우리 셋은 일주일동안 드럼연주자를 한명씩 구해오는 임무를 맡고 바로 뿔뿔히 흩어졌다.
각지방 팔도를 유랑하며 드러머를 찾기 위해 힘썼는데 누구하나 Feel이 오는 그런 드러머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깨가 축 처진채로 난 종로3가를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 한 사내가 낙원상가에서 새로 구입한듯한 드럼 스틱을 허공에 놀리며 주위사람을 의식하지도 않고, 이어폰에 모든 것을 의지한채 눈을 감고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난 바로 Feel이 꽃혔음을 물론 이고 그의 손놀림...드럼 스틱을 잡고 있는 손 모양새...그리고 메탈,속주에 길들여져있는... 좋아는 하지만 즐기진 않는 그런 뮤지션이 아닌 JAZZ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이 그려져있는 티를 보는 순간 놓쳐서는 안될 인물이라고 느끼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날 보고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저기요. 드럼 치시나 봐요?"
"아 이거요? 그냥 취미삼아 하는건데요 뭐."
"그래요? 바쁘시지 않다면 음악적인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아요?"
"그쪽이 차를 산다면 마다할리 없죠."
우리는 강남의 E커피샾으로 갔다. 난 음료 따위엔 관심이 없어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는데 그 소년은 생과일 키위샤워에 바나나케잌까지 한조각 주문했다.
"아,그래요? 전 베이스를 치는데요. 밴드를 하나 만들려고 해요."
난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는 뽀얀 피부에 어울리지 않는 검정색 뿔테안경에 눈썹까지 내려오는 긴머리 그런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었다.
역시나 그는 나와 우리 멤버들의 꼭 취향에 맞는 음악관념이 있었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었다. 말투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포부...자신은 음악을 하면서도 서울대 법학과에 꼭 입학해서 우리나라의 노동법등 법전의 50%를 개정한다는 바램도 내비췄다.
"저와 밴드를 결성해보실 의향은 없으신가요?"
"공간과 멤버가 있으면 물론하죠. 지금까지 장소와 멤버의 제약을 받아 혼자만 했는걸요."
"그럼 잘됐네요. 그럼 내일 저희 연습실에 한번 오세요 많은 얘기 나눠봅시다."
"네"
난 테이블위의 티슈하나를 뽑아 간단한 약도와 내 연락처를 메모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고 우린 커피샾을 나와 헤어졌다.
얼마나 찾아헤맸던 드러머인가...그 커피숍을 나왔을때의 기분이란... 짝사랑하던 여자가 나에게 넘어왔을때보다 기분이 더더욱 좋았다. 난 바로 연습실로 향했고,푸줏간 주인과 장동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 모두들 만족하는 눈빛이었다. 우린 푸줏간 주인이 쓴 그의 자작곡을 몇번 합주하고 잠이 들었다. 모두 지쳤던 모양이었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있을 무렵 그가 왔다. 그 모범생을 보는 순간 우리 멤버는 입이 귀에 걸려 있을 정도로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이 무색할만큼 모범생은 숫총각처럼 볼이 빨개지며 겸연쩍음을 표현했다.
우린 그를 드럼에 앉히고는 그에게 플레이를 요구했다. 그는 우리의 드럼을 보고 조금은 실망한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적응했는지 약하게 Jazz의 리듬부터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눈을 감고 들으면 왠만한 실음과 교수 저리가라의 완벽한 리듬감이었고 이내 신기에 가까운 솔로 플레이가 펼쳐졌다. 절대음감 푸줏간주인은 입을 딱 벌렸고, 장동건 역시 햝고 있던 슈팅스타를 떨어뜨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나 역시 손에 들려진 메트로놈의 박자를 하나의 오차도 없이 맞닥드려지는 그의 드럼 애드립에 혀가 내둘러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린 그의 연주가 멈춘줄도 모르고 망부석처럼 얼어있었다. 짧은 적막감을 깨고 모범생이 입을 열었다.
"잼 한번 해볼까요?"
"그러지."
푸줏간주인의 한마디가 끝나고 우린 각자의 악기를 집어들었다.
모범생이 먼저 Jazz의 기본 비트로 박자를 이끌어감으로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그때 바로 나의 베이스 찌르기 연주가 시작되었다. 여러 코드를 조합한 즉흥연주인 것이다. 베이스가 들어가고 이내 곧 펑키한 기타 사운드가 펼쳐졌다. 역시나 절대음감 푸줏간 주인이 나의 코드 진행형을 짧은 시간에 꿰뚫은 것이다. 내가 딴생각을 하는것도 잠시, 장동건의 트럼펫 연주가 이어졌다. 때론 감미롭게, 때론 어택음으로 연주하는 장동건의 트러펫 연주는 역시나 그가 복식호흡의 귀재라는 것을 증명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연주는 20여분동안 끊히지 않은채 계속되었고, 서로의 천재성에 우리 모두 사자를 맞닥드린 토끼처럼 놀랐다.
"와우~ 모두 리듬감이 대단하시네요."
"이건 환상의 팀웍이야..."
푸줏간 주인이 자작곡악보를 꺼내며,
"이제 우리 자작곡을 해보는게 어떨까?"
"한번 해볼까요?"
푸줏간 주인이 쓴곡은 재즈로 시작하여 중간부분에서도 리듬은 계속 Jazz비트를 맞추되 주법은 락으로 바뀌는 그런 왠지모를 생소한 음악이었다.
"자칫 지저분할수도 있겠지만...이 곡은 내가 몇 년전부터 다듬어오던 아주 애착이 깊은 곡이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기타를 치며 그 노랠 불렀는데, 역시나 멜로디와 리듬은 매우강해 우리의 맘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는데 그의 노래소리에 우린 모두 괴로워했다.
우리 멤버는 종로 4가를 지나던 중 낙원상가로 향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상가내가 분주하고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함에 난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이내 궁금증이 해소 되었다.
한 드러머가 상가에서 드럼을 치는데 그 드럼연주를 환상에 가까운 예술으로 승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까만 머리에 구찌 선글라스에 프라다 벨트,조르지오 알마니 정장에 까르띠에 시계,부담없는 구찌구두에 루이비통 가방을 옆으로 멘채 드럼을 연주하였는데 돈많은 강남의 명품족이라는게 바로 나의 뇌리를 스쳤다. 그의 주변에 있는 밴드멤버로 보이는 이들도 그 사내와 비슷한 복장으로 하나같이 시건방져 보였다.
그의 드럼 연주가 끝나자 그 추종자들은,
"너보다 드럼 잘치는 사람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드럼 하나만큼은 끝내준단 말이야."
등등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우릴 보고는 자기네들끼리 시시덕 거리며 비웃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린 허름한 옷차림에 모범생의 가방사이로 삐죽 솟은 위태로울 정도로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은 드럼 스틱...장동건의 50년이 넘은 트럼펫 케이스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곤 그 중 한명이 모범생을 슬쩍 밀치고 갔는데 모범생의 드럼스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웃기 시작했고 난폭한 푸줏간 주인이 그들을 응직하기 위해 두주먹을 불끈쥐고 달려들려 했으나 나와 장동건은 그의 두팔을 잡고 싸인을 보냈다.
'저 녀석들은 돈이 남아도는 놈들이야. 섣불리 행동하면 안돼."
'그래도...너희들도 모범생이 치욕스런 망언을 들은거 봤잖아.'
'좀 더 두고보자.'
바로 그때 모범생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드럼 스틱을 주워 두손에 쥐고 좀전에 그 놈팽이가 치던 드럼에 앉았다.
그러자 그 명품족을 비롯한 상인과 주위사람들 모두 수군거리며 비웃기 시작했고 어디에도 우리편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도 그는 건방진만큼이나 실력자였었나보다. 모범생은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드럼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눈을 감고 마음으로 연주하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와아~"
"어린 나이에 대단한데...~ 저 나이에 저렇게 잘하는 사람 첨봐..~"
"와~ 대단한데...~"
모두들 좀전의 비웃음이 호감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명품족들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는지 사람들을 밀치고 가게를 빠져나갔다.
어느새 사람들은 드럼연주에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모범생의 연주는 30분동안 계속되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우리에게 한웅큼의 명함을 주었고 우린 그 사람들의 환호성을 뒤로 한채 낙원상가를 빠져나왔다. 통쾌했다.
'양주만 마신 너희들이 쓰디쓴 소주의 맛을 아느냐?'
*대회*
우린 모두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너무나도 평온했고 난 잔디밭의 꽃밭에서 어린소녀들이 학교를 마치고 놀이하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았는데 불현 듯 푸줏간 주인처럼 생긴 한 지저분한 아이가 내게 와서 내 뺨을 강하게 때렸다.
"앗 따거."
난 순간 잠을 깼고 잠이 깸과 동시에 푸줏간주인의 한마디를 듣게된다.
"모두들 이리 와봐라"
우린 옷 매무새를 바로 하고 푸줏간주인이 있는 연습실 한켠에 있는 테이블에 모였다.
"우리나라에서 치뤄지는 락 페스티벌이 있는데 사상최대 규모로구만... 지역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르는 팀이 13팀뿐이래. 대상 상금은 자그마치 800만원에 여러해택이 주어진다는군. 어때? 한달후에 펼쳐질 이 페스티벌... 우리도 도전해볼까?"
"두말하면 잔소리죠. 합시다."
모범생도 한마디거들었다.
"해야죠.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좋다. 그럼 오늘부터 자작곡 연습부터 다시하자."
"예~에~"
푸줏간주인은 다시금 우릴 자신의 곡에 길들여지게 하였다. 사실 참으로 휼륭한 곡이다. 이걸 어떻게 편곡하느냐과 관건인데 역시나 Jazz와 Rock를 조합해 연주하기러 하였다.
Jazz...역시나 어려운 음악이다. 재즈의 맛을 뽑아내기란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만큼이나 힘들었으며, 단기간에 되는 작업이 아니었다. 우리가 지쳐 조금씩 흥미가 잃어가려고 할 때 군기반장 푸줏간 주인이 웃옷을 벗고 우리에게 눈알이 튀어나올정도로 큰 목소리로 다그치기 시작했다. 우린 묵묵히 듣고만있었고 역시나 지쳐있었다.
바로 그때 장동건이 비디오테잎을 하나 가져와 재생을 하였는데, 우드스탁의 라이브 테잎이었다. 우린 눈이 빛난채 그 비디오를 화면이 뚫어져라 보았으며 조금씩 손에 땀을 쥐기 시작했고, 비디오가 끝남과 동시에 우린 각자의 포지션에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푸줏간 주인의 채찍보다는 장동건의 당근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연습하길 2주... 이제 조금씩 연주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나 하는 그런 엉성한 음악을 거부했다. 완벽주의자 푸줏간주인, 천재성의 모범생, 주체할 수 없는 Feeling의 나...그리고 복식호흡과 센스의 달인 장동건...우리 넷이 모여 무언가 획기적이고 전설적인 곡을 만들기 위해 피를 토하는 혼신의 힘을 다했으니까...
대회가 2주 남은 이 시점에서 난 곡의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역시나 문예창작 수업을 즐겼던 나로써는 글쓰는 것이 연주와는 다른 또 다른 매력에 희열을 느끼며 가사를 하나 둘씩 써내려갔다.
장동건은 불타오르는 오르는 사랑과 이별...억압된 세상사에 대한 감정을 모두 실어 노랠를 불렀고 전주나 간주 부분에서는 자신의 트럼펫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였다. 이렇게 완벽해진 곡에 우린 대단한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가고 있었다.
이제 대회가 이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우린 모두 연습에만 몰두한 상태로 기타앰프만 봐도 실물이 날 정도였으며 무엇보다도 휴식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때마침 부모님이 여행을 떠난 상태였고 난 혼자서 공부하는 형을 기분 전환 비용으로 영화티켓을 두장 주고 밖으로 보냈다. 난 그들을 불러모은후 유일하게 자신있는 미트볼 스파게티와 해물볶음밥...그리고 생과일 쥬스를 대접하자 푸줏간주인은 이러한 사랑은 받아본적 없다며 자기 할아버지의 유품인 오베이션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허준호의 '어머니의 자장가'를 불렀는데, 나중에는 노래소리보다 울음소리가 더 커져서 우리가 더욱 듣기 거북할 정도였다. 그렇게 평화롭고도 아늑한 날의 저녁은 삽시간에 지나갔고, 우린 다시 지하실에서 잠이 들었다.
대회를 일주일 남겨놓은 오늘...예선이 있는 날이다. 우린 장동건이 큰맘먹고 옥션에서 공동구매한 전복죽을 먹었는데 모두들 긴장해서 그런지 먹는둥 마는둥하고 지하실을 나섰다.
어제 렌트한 스타렉스를 몰고 우린 예선전 장소로 향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여러 승합차들로 붐볐고, 일대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뭐하는 놈들이 차를 끌고 왔는지 벤,스타크레프트도 꽤 많이 눈에 띈다. 문득 낙원상가에서 본 명품족들이 생각났다. '그들도 왔을꺼야. 코를 또 한번 납작하게 해 주겠어.' 그렇게 몇시간 후에나 우린 주차를 할수 있었는데 위엄있는 장발의 락커, 철없는 고삐리 기타리스트,무지개 빛깔의 다 찢어진 상의의 개성있는 여자보컬도 눈에 띄었다. 역시나 국내 최고 사상 최대의 이벤트답게 수많은 뮤지션들이 즐비하였고, 예선전임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스탠드를 가득 메웠다. 왠지 모를 부담감에 한숨을 쉬자 장동건이 비타민을 주면서 내 맘을 안정시켜 주었다.
'우린 20: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바로 낙오되는거야...'
한팀 한팀 경합이 시작되고 우리는 서서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크게 눈에 띄지 않은 밴드 사이에서 한팀, 바로 낙원에서 본 강남의 명품족인 것이다. 그들은 악기와 의상부터가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 의상과 사용기 모두 합하면 억대를 혹가하는 상당한 것이여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개처형을 할 때와 비슷한 주목의 효과를 끌어낼수 있었다.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었을땐 일제히 환호하였고, 무대에 내려올 때 사진도 함께 찍자는 소녀가 있을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실력은 역시나 무시 못할 정도 였다. 이젠 우리가 올라가야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를 올랐는데 예선전이여서 그런가? 생각한거 만큼은 긴장되지 않았다. 우린 예선전에선 자작곡을 하지 않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편곡해서 연주했는데, 모두가 고요한 멜로디에 주목하는가 싶더니 락적인 사운드가 펼쳐지자 헤드뱅잉을 하고 일제히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린 속주에 길들여있는 그런 밴드는 아니다. 그러나 완벽에 가까운...아니 완벽한 리듬터치는 그 누구에게도지지 않는 그런 밴드인 것이다. 그렇게 화려하고도 짧은 예선전은 끝이 나고, 우린 렌트카를 돌려줄 생각도 하지 않은채 차 안에서 하루를 그렇게 마감해야만 했다.
이튿날 오후 4시... 그 락페스티벌 홈페이지 본선진출자 명단에 우리 Peaceful of Moning이 당당하게 명시되 있었고 우리는 서로 부둥켜 안고,즐거워 하다가 이내 이성을 찾고 진지해 졌다.
이젠 대회는 4일이 남았다. 4일뒤에 우린 울고 웃는 것이다. 마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선 야수에게 쫒기는 사슴처럼 말이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우린 예정시간보다 2시간이나 일찍 대회공연장을 찾았다.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였는데 벌써부터 공연장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어렴풋히 보아도 소매치기 수십명이 진을 치고 있다는걸 느끼며 우린 대기실로 향했다.
역시나 우리가 젤 늦게 도착한것이었다. 모두 기타를 꺼내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 서로 자기 얼굴을 다듬는게 마치 술취한 맨슨과도 같았다.
간식으로 제공되는 2%와 뚜레주르 빵, 여러과자들로 즐비한 테이블을 뒤로하고 우린 푸줏간주인이 즐겨먹는 'Homemade Cookie'를 먹으며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난 담배를 피기위해 잠깐 대기실을 나와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는데, 명품족 녀석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왠지 낌새가 이상했지만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추풍낙엽처럼 무시하고 담배를 손으로 문질러 끈채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다.
푸줏간주인은 마치 대상을 받은양 미소를 띄며 얘기했다.
"우리가 여기서 대상을 수상하면 말이야, 여러 기획사에서 음반을 내주고, 연습실도 당연하게 제공해주거든. 그럼 우리는 음악만 열심히 하는 우리가 동경하는 환경이 제공되는거야."
장동건도 한마디 거들었다.
"대회는 말야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좋아야 해."
설레이고 즐거움을 얘써 태연함으로 묵인하며 튜닝을 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대회시작 10분전, 우리는 대기실 안 모니터에서 간사한 톤의 목소리 사회자의 진행을 들으며 묵묵히 시간의 흐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출연가수의 오프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참가번호 1번이 무대로 당당히 올라섰다.
"안녕하십니까~ 저흰 T대학교 그룹사운드 알파트로스입니다.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사운드, 비디오, 모든면에서 단연 국내최고의 스케일인 것이다. 우린 그런 무대에 선다는게 너무나도 자랑스러웠고, 모든걸 다가진듯한 삼류 낚시꾼이 70센티의 월척을 잡은듯한 기분이었다.
참가번호 5번인 강남 명품족들이 무대에 올라섰다. 그들은 상당히 고가의 장비를 썼으며 치장에도 들인돈이 왠만한 우리 어려운 이웃들이 소중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돈 이상으로 들인듯했다. 모든 심사위원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에 열광에 가까운 호응을 했고, 우리의 눈까지도 자극했다. 그들은 겉모습만 그런게 아니라 연주력 또한 상당했다. 길들여진 속주...확실히 정해진 각본에 의한 듯한 냄새가 완벽한 연주력 한켠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푸줏간주인이
"저들은 대단한 실력자들이야. 하지만 음악은 창의적이고 의욕이 있어야하는데 저들은 가르치는대로...느낌이 없이 연주하고 있어. 즉흥이란 저런게 아냐."
내 생각 역시 그랬다. 하지만 우리가 어찌 감히 평가할수 있으랴...
잠시후 우렁찬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벌써 대회가 중반으로 치닫고 있군요. 다음은 참가번호 7번 Peaceful of Moning~
우린 무대에 올라가 세팅을 하기 시작했는데, "빨리빨리", 뭐하는 거야? 빨리 시작 해"등의 야유 어린 스탭들의 불평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좀전의 명품족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우리는 그려러니 생각하고 세팅을 끝내고 사인을 보냈다.
적막감이 감도는 무대에서 모범생이 드럼 스틱으로 신호를 주었고 우리는 일제히 연주했다. 우리의 연주가 시작된 것이다.
생소한 분위기의 우리곡은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가기 충분했고 곡 중반부부터는 우린 모두 눈을 감고 즉흥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에 가까운 리듬터치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심사위원 들마저도 수군수군거렸다.
단연 누가 보기에도 우린 최고의 하모닉스,최고의 플레이를 펼쳤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고, 우린 여유있는 미소와는 판이하게 다른 어려운 음악을 한 것이다. 밤새도록 지하실에서 찬음식만 먹으며 연습한...우리이기에...
연주가 끝나고 우린 가쁜 마음으로 무대에 내려오자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좀전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반응으로 우릴 맞이하였고 난 그런 모습을 보곤 마치 우리집 어항속에 있는 금붕어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얘써 미소지어 보냈다.
시간은 다시흘러갔고, 다른 밴드들의 곡을 듣는것또한 우리의 즐거움이여서일까? 대회의 장은 순식간에 막바지에 도달하고 있었으며, 모두들의 아쉬움이 감돌때쯤에 어느덧 국민가수가 되어버린 Y씨가 나와서 분위기를 다시 UP시켜주었다.
담당자가 대기실로 들어와서 공지를 하였다.
"잠시후 대회결과가 발표되니 모두들 자릴지켜주시고, 옷 매무새를 바로 잡아주십시오"
관중들의 분위기나 출연한 뮤지션들이나,인터넷 집계결과를 보면 단연 우리가 선두였다. 난 확실히 우리가 최고의 상을 차지할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몇시간전에 명품족 녀석들과 심사위원의 대화는 아직도 맘에 걸리지만 말이다.
우린 다시 모두 손을 맞잡고 파이팅을 한후 초연함을 되찾은채 결과만을 기다렸다.
결과가 발표되고 대상만을 남겨놓은 상황...우리와 명품족들의 이름은 아직 나오지 않은채 모두들 조마조마했다.
"예, 오래기다리셨습니다. 영예의 대상은,"
풋줏간 주인은 목이 탓는지 맥주로 목을 축이기 일쑤 였고 모범생은 눈을 감고 결과에 승복한다는 듯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영예의 대상은 Red orange~ 축하합니다."
우리는 갑자기 맥이 풀렸고, 주저앉기까지 한다...그렇다. 강남족이 대상을 탄 것이다. 우리는 대상은커녕 입상도 못했다. 이건 유교문화에 길들여진 학연,혈연,지연...마지막으로 돈에 의한 결과이다. 나의 독백은 푸념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는 듯 심사위원은 우리의 눈빛을 피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출연진들은 우리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몇 명사람들이 공정하지 못한 결과에 항의했지만 그런것들에 익숙하지않은 사람들이 모두 제지를 하기에 이른다.
"축하합니다. 대상을 받으셨네요.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마지막으로 Red orange의 앵콜곡을 끝으로 이번 대회를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김창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고 우리의 황당함은 분노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돈,심사위원과의 관계.... 우린 약속이나 했다는 듯이 우린 무대로 올라가 그들의 뒤에서 함께 연주하기 시작했다. 엠프에 우리의 잭을 꼽고 그들의 코드를 따서 즉흥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우리에게 열광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표정도 조금씩 일그러져갔다.
잠시후 우린 여러스탭들의 비난을 받으며 무내에서 끌려내려왔으며 우리의 화려했던 그날의 공연도 막을 내렸다.
*한겨울의 허상*
어두운 연습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회에 미련이 남은건 전혀 아니었다. 다만 나의 음악을 몰라주고, 썩을대로 부패한 우리나라의 현실...이것이 음악적인 분야에서 까지 드러난 것이 한없이 슬펐기 때문이다. 모두 기대가 컸던만큼 아픈 현실에 뭔가를 느끼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덧 하나 둘씩 잠이 들었으며 다음날 아침을 알리는 해가 뜨기 시작했다.
진한 햇빛에 눈을 떳는데 나홀로 잠을 자고 있을뿐 아무도 없었다. 그 날이후로 푸줏간주인과 장동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구닥다리 드럼 위에 곱게 접혀진 모범생의 편지만이 나의 서글픔을 위로해주었다.
"죄송해요. 전 더 이상 음악을 하고 싶지 않네요. 아니 제가 원하던건 이게 아니었어요. 그냥 예전처럼 혼자듣고 즐기는거...그것 또한 나쁘지 않을거 같네요."
'그래, 우린 최선을 다했잖아.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결과를 얻었으니 우린 더 이상 미련두지 말자.
난 아무도 없는 지하실에서 시간이 흘러가는것도 잊은채 그렇게 멍하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