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행복
아침에 눈뜨면 일어나기 싫다는건 세상 살이가 귀찮다는 것일게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을때가 가장 행복하다. 간밤 책상다리 걷어차는 악몽을 꾸어가며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비몽사몽, 아무런 생각없어 뇌속에 행복만이 가득찼다. 그러나 하나 둘 바깥세상 잠재의식들이 스멀스멀 뇌공간을 파고들면, 혼란스런 행복의 조각들이 하나 둘 망치듯 빠져나간다. 그래서 요즘은 새벽잠 없는게 억울하단 생각마져 든다.
어느 언론사 주필 출신의 유튜브 썸네일 제목이 떠올랐다. '세뇌탈출(洗腦脫出)'...이렇게 조합된 단어는 사전에도 그 의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가진 생각을 개조하거나, 새로운 것을 주입하는 것, 세상의 찌든 생각에서 깨어나란 뜻인성 싶다.
대뇌속 원초적 행복의 조각과 대체되며 자리바꿈 하는 것들, 어제의 못다푼 고민거리, 오늘에 다가올 불안한 예단(豫斷), 그리고 쌓이고 쌓인 못다푼 삶의 과제들...
그래서 비우라고 하였던가? 세상 사람들은 (자기 것은 예외로 하고...)남의 손에 쥔것을 내려놓고 쿨하게 살아가기를 상상하지만, 그때의 비움은 물질보다는 마음이 우선일 것같다.
침대곁에 비스듬히 누워 창밖을 본다. 떠오르는 햇살은 지나치게 눈부시다. 태양광이나 명태덕장에나 좋아할듯...릴케의 시 '가을날'의 원문은 이랬다.
'이틀만 더 남극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그래 맞다. 나만 살짝 눈감으면 평화가 올텐데, 굳이 햇살더러 얄밉다며 눈살을 찌프릴까?
햇살이 강할수록 행복지수는 낮아진다. 내보이고 싶은 자아의식 보다 감추고 싶은 내 안의 허물과 고뇌가 더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우주허블은 끝없이 팽창하고, 지구는 품고있는 물질은 변해도 그 질량은 불멸한다는 '질량보존의 법칙'이 유지된다.
의문은 남는다. 고생총량의 법칙, 불행총량의 법칙은 그렇다치더라도, 인간도 물질이라는데야, 영혼에서 왔다가 실체(육체)에서 다시 한줌의 재로 사라지는 과정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세계는 모난 기후와 생존경쟁으로 아우성이다. 빈껍데기 인연이 싫어 휴대전화속 지문 바랜 연락처를 지우고, 소식뜸했던 카톡과 밴드문을 나섰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였다. 살만하니 웃는다는 생각은 안해 보았을까? 내면에 충실한 사람들은 왜 헛웃음이라도 짖지 않는걸까?
우리에게 주어진 24시간, 사람들은 그중 3%(43분?) 정도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행복)을 하며 보낸단다. 거기에다 잠든 시간(8시간) 제하면...
행복을 느끼며 산다는건 철학적 체험이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근원이고 삶의 척도다.
행복은 자신만이 느끼는 특권이다. 그런데도 실성한듯 나만이 구시렁대던 개똥철학도 이젠 맛이 갔다. 헛웃음이라도 웃고 애써 꽃길 걷는(행복한)척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