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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필 스승 처음 만나다
1996. 6. 16
영혼이 깨어 있는 분이다. 그렇게 믿어져. 근데 이 선생 말씀이 인자 그걸 보셨든지 놀음하는 사람은 한 사흘 밤씩 잠 안자도 놀음한다 말이야. 그런데 진리의 말씀을 듣는데 어떻게 자느냐? 그런 말씀을 하는 것 같아요. 그 그걸 할 말씀은 아닐 텐데. 그런데 양림 회관에서 그 집회했을 때 이 선생이 가서 말씀하실 때는 모두 내 앞에 앉아있어. 데 죄송합니다. 제가, 자올지(졸지)를 않해. 앞이니까 다 보인다 말이야. 앞만 보려고 해도 보여. 그 절대 그 장담할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이 잠은 암만 결심을 해도 막 잠 올 때는 못 이기지 안 해요?
이 선생 말씀 들을 때도 아아 안 잤으면 하고 꼬집어도 잠이 와. 잠이 그럴 때도 있어요. 그런지 말씀을 절대 들을 필요를 느끼지도 않아요. 안 하고 안 들려요. 소리는 들려도 아무 말씀이 들어오질 안 해. 그러면 해남교회서, 그 인자 그 얘기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 때 이준묵 목사 참석했거든요, 그 집회. 마침 끝에, 친구니까 이 선생보고 아 좀 우리교회 언제 와서 한 번 집회를 인도해주십시오. 그것을 제가 들었어요. 근데 듣기는 쾌히 승낙을 하지는 안한 것 같아요. 그러나 또 거절도 아니고 승낙도 아니고 그래요. 확실한 약속을 안 하고 거절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 언제 갈지도 몰라. 날짜 정한 것도 아니고 가기는 갈 것 같으면서도 날짜는 아무 때 간다고 안 해요.
근데 가만히 보니까 언제 가시기는 가실 텐데, 내가 따라 갈 수 없을 랑가? 내가 가겠다고 할 수는 없고 가자고 하셔야, 언제 갈 것인데 가자고 하실랑가? 그러나 가면, 그 때는 차를 제가 차를 잘 못타니깐 얻어먹어 가면서 가야할 텐데, 말이여. 내가 밥을 얻어다 드릴 수 있는가? 그러실 리가 없걸랑요. 그래 ‘나 갈 랍니다.’ 그것도 못해요. 제 마음으로 품고 있었는데, 이 선생이 그랬대요. 속을 아셔. 그 말 생각을 아신 거 같아요. ‘얻어먹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낫지 않냐?’ 아 그런 제게 인자 위로를 준거야. 제가 뭐 말로 표현도 안했는데 거기를 갈라면 내가 얻어서 이 선생님을 드리고 내가 그래야 할 텐데. 그게 걱정인데, 얻어먹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더 낫지 않냐? 그 만큼 위로의 말씀을 했어요. 아 아 어떻게 속을 아실까? 저는 한 번 얻어먹지를 못해봤어요. 마음은 오히려 더 부끄러워서 못했거든요. 지금도 못하고.
근데 인자 가을 어느 때쯤 인가 가자고 그러대요. 그랬는데 아마 이틀 걸려가지고 차를 탔 던가 모르겠어요. 그 트럭을 탔어. 트럭 뒤에도 막 사람이 꽉 말이야, 트럭을 탔으니 뒤에서 아아 서서가지. 서서 해거름까지 가도록 밤에 늦게까지 가도록 서서 갔어요.
사람이 어찌 많든지 그래 밤에 몇 시나 됐는지 모르지만 해남 일등여관으로 들어갔죠. 일본사람이 하던 여관인가 몰라. 일등여관. 아 돈도 한 푼도 없는데 아침에 일어나시더니 여기 좀 있으라고, 나를 인자 인질로 잡혀놓고, 교회를 가시더니 목사님이랑 오셨어요.
그 때 김 선생이, 처음에 이 선생이 사양하다, 사양하다 인자 말씀을 그 때 그랬대요. 삼 일 날 밤이였던가 모르겠어요. 근데 한복 떨어진 한복을 입었는데 삼 일 날 밤에 교인들 올 것 아닙니까? 이 목사님이 자꾸 자기 양복을 걸쳐주면서 입으라고. 요러고 입으면 말 안 듣는다고, 마지못해 걸쳤던 가 몰라. 삼일 날 밤에는 그런 광경만 봤어요. 그러곤 인자 그 이튼 날 보통은 강대상 밑에 책상에다 앉았어요.
근데 그 책상 우에다가 국화꽃을 끊어다가 장식을 해놨다고. 김 선생은 내 죄인 때문에 나 죄인을 기쁘게 하기위해서 이 국화꽃을 희생했다. 불교에서는 꽃 끊은 것을 죄라고 하거든요. 왜 그런가 말이야. 그 꽃을 끊었다고 해서 죄가 아니지만은 원 뜻이 있지 않겠어요? 그 인자 끊어서 보자는 요새 꽃 재배하는 사람들은 그것 아니요? 꽃 끊어 팔기위한 목적 아니요? 그 말씀을 시작할 때 누가 말 들었냐? 저하고 같이 갔어도 같이 갔어도 못 알아들어요. 그러면 그 처음 온 목사는 알아들었는가? 못 알아들었어. 김 선생은 알아들었거든요. 아 꽃을 저렇게 사랑하신 분이라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겠냐? 그거 받아들인 거여. 이 그 받아들인 것이.
한 해 겨울인가는 몰라도 밤에서 추운겨울에도 교회당 강당에서 이불 놓고 자고, 소제(청소) 다하고, 밤 비밀로 뭐하지. 그거 교인들 잘 모르거든. 나중에야 인자 목사가 알게 됐지. 모르게 했단 말이야. 그러면 벌써 그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히 됐어요. 아마 모르긴 해도 복음서 다 외었을 거여. 그도 그런 말 안하거든. 우리 복음 설명을 안 하는 거거든요. 해석을 안 해요. 이 선생도 그랬고, 이 선생님이 쪼금 해석도 하는데도 있고 그랬었지 만은 안 해요. 그 뜻을 깨달아서 풀이를 해도 절절히 이렇게 해석을 안 해요. 저는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해본 거고. 교만으로 자랑 하는 것이지.
참으로 성경을 알면 성경은 구체적인 해석을 안 한다. 그 비유로써 뜻을 그냥 얘기를 하는 것뿐이지. 제가 생각하기에는 성경을 아시는 분은 이 공(空) 이나 이 현필 선생이나 그 분들은 아시는 분이다. 그렇게 믿으면 돼요. 아시는 분, 그래 인자 어떤 성경이든지 그 뜻에 간단한 그 중요한 것만 이렇게 딱 얘기를 해주지요. 아주 간단하면서도 전체가 통하는 말씀을. 그때 한 사날 해남에서 집회를 했다. 김 선생밖에, 받아들인 사람은 김 선생 한 사람 뿐이다. 그때 집사가 나중에 장로 되어 가지고 또 국회의원도 되었거든. 그래 가지고 광주에서 와이(YMCA) 총무도 했고.
그런데 그 때 오히려 그 국회의원 된 사람이 이 선생을 소개해주고 그런 분인데 나중에는 인자 몸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가니까 깔봐버려요. 더 근데 언제인가 그 교회 교인 같아요. 국회의원 한 분이 왔어요. 그이도 인제 그 사례 축사 증거를 하데요. 하는데 다 다른 분은 사모님에 대해서 증거를 안 하는데, 그 분만은 사모님에 대해서 자세히 하더니만 그 분만은, 그러나 해남교회가 겉으로라도 고만치 되는 것은 목사님 자신만이 아니에요. 사모님의 그 내조가 위대하다 게요. 왜 그러냐? 그 같은 친구라도 이 목사님은 이 선생의 그 인격을 다 이해를 못했거든요. 만나면 서로 변론해. 네가 잘못이요. 내가 옳다. 옳다. 그렇게,
이 선생은 그런 표현 안 해도 그거 인자 잠깐 받아주어요. 받아주어. 그래도 그 사모님만은 이 선생을 이해한 분이다. 독신으로 살아야 했을 텐데. 독신으로 살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됐다. 또 깊이 마음으로 그렇게 이해를 하신분이에요.
그렇게 말씀을 듣는다. 자기가 들어줄 수 있는 그 생활환경이 되어 진 만큼 들린 거야. 내가 용기 있게 잘 간다 하는데서는 안 들려요. 자기말만 최고지. 다른 사람 말은 받아주지 않아요. 그러니 모두 변론과 서로 다툼이 생겨요. 변론으로 다툼이 생겨요. 왜 그러냐? 상대편을 얕보는 것 아니요? 내가 더 낫다는데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남의 의사를 존중히 여기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인격을 높여 주는 것 아니요? 제가 좀 평하자는 것이 목적이 아닌데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니까 말씀을 듣는 것 이해하자니깐 말씀을 구체적인 거 말이 나왔습니다. 만은 제 자신도 그런 게 아 말을 하려면 모두 평해서 한다 말이야. 그러니까 참으로 뜻은 못 깨달아서 그래. 또 우리가 서로 배우려고 하는데 있어서는 분별력을 기르는데 있어서는 그 말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목적은 아냐, 배우려니깐, 내가 배울라니까.
남의 예를 드는 것이 실례가 되죠. 되지만은 내가 배우려니까,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에서는 누가 더 앞에 서있는지 모르죠. 몰라요. 실지 무능하고 죄의 상태에 있는 거는 내 자신이죠. 뭣이든 장담할 수 없고 누구에 대해서 잘못했다 할 수는 없는 일이죠.
그러게 여기서 1~2절의 그 내용이 율법학자들이 들어야 할 것 아니에요? 예수님 말씀을 율법학자들이 들어야 할 사람이지, 못 들어. 자기들이 학자니까 율법의 선생이니까 누구한테 듣겠어요? 그것이 문제란 거여. 난 학자다. 나는 배운 사람이고 남을 지도한 사람이고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런 위치에 있으면 예수를 전혀 이해를 못한다. 그런 게 한문에도 ‘성인이 되어야 성인을 안다.’ 그런 말이 있다 말이여. 말하자면 예수를 알라면 예수의 마음을 가져야, 성령에 같이 계셔야 알 것 아닙니까? 이 내 마음 가지고 깜깜한 이 내 마음가지고는 세속적인 세속에 쩌 린 마음가지고는 아무리 알고자 해도 알 턱이 없어요. 깜깜한 밤에 빛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보겠어요? 빛이 있어야 분별을 하죠. 빛도 밝아야 확실히 분별하지, 희미하면 어떻게 돼? 반딧불에서 뭐 어떻게 봅니까? 반딧불만큼 빛도 없는데 말이야. 깜깜한데 어떻게 합니까? 더듬은 것뿐이지. 손으로 더듬어서 짐작 하는 거야. 소경이 코끼리 몸을 드려다 보는 거와 같다는 말이여. 세리들과 죄인들만이 말씀을 들을 필요를 절실히 깨달은 거예요. 말씀을 들어야한다. 예수의 말씀을 들어야한다. 들리면 모여 들었다는 말이야. 우리가 지금 뭐더러 모여들었는가? 아침은 의례 것 기도회 보니까. 두려워 모여들었다. 두려워 모여들었다.
내 요번에 서울에 모임에서는 일반적으로 강하게 아주 막 아쉽다, 좀 더 좀 더 그 만큼 했다 말이야. 그래서 그에 대해서 고맙다 말이야. 그 얘기는 누가 들었겠냐? 교인들이 모두 목사에게 그렇게 하더란 거여. 하아 조금 시간 좀 더, 어찌 어찌 그렇게 쪼끔 청했냐? 나는 기념예배라 해서 뭔 뭐 써 부치고 그렇게 하련가 했더니 그 아무것도 없어요. 또 정식강당 큰 강당이 있는데 거기도 안하고 조그만 하게 앉아서 해요. 걸상이 아니고.
그것에 고맙다는 그런 거, 아쉽다는 그런 거, 또 그런 기회가 있으면 바라는 거, 그래 지금 요번에 그때는 인자 고 만큼 교회가 넓혀진 것이죠. 아마 그 교인들이 앞으로 저 지지리 많이 올 거예요. 오후에 잠깐 어디 있다고 창경원인가 거기 있다고 갔거든요. 갔는데 갔다 와서 목사아들이 김 선생보고 아 뭐 좋지 않읍디까? 그 아무 말도 안했단 얘기여. 저 나 있는 데는 지지리인데 거기에는 거기다 대면 몇 천배 나았다고 그래요. 와 그런 게 아니고 그런데가 얼마나 좋은가, 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셀 수도 없는 새들이 노래를 부르고 맑은 물이 흐르고 그렇게 몇 천배 나았다고 그곳이. 사람이 모두 억지로 만들어 놓은 거거든요. 방죽을 만들어서 고기를 갖다 넣어서 뭐 그걸 관리하는 사람들은 막 억지로 만들어 놓은 거여.
물에다가 기둥을 세워가지고 한 쪽 기둥은 그래가 집을 지어가지고 왕이 거기서 쉬는 곳이라 모두 그렇게 해놓았다. 비원이여 비원, 모두 하나 자기 마음 기쁘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희생을 시켰냐 이거여. 도저히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이해 못할 것이라 말이야. 그런, 그런 독재가 어디 있고 자기하나 근데 시방 그 공산주의 사회도 그 권력가진 사람이 또 독재를 하지 않아요? 어디가 공평이 있느냐 말이요. 땅에 말만 그렇지. 더 내용에는 은근한 계급이 더 심하다 는 거요. 겉으로만 평등을 말하니 말이야. 그에 땅에서는 평등이 없어요. 개인 개인에도 예수님 모신 영혼만 평등이죠. 어느 자리든지 감사하고 낮은 자리면 더 좋고 제일 낮아지면 인자 하느님 만나본다. 다른 자리에 예수를 만난다면, 높은 자리는 떨어지게 마련이고, 높은 자리는 떨어지고 멸망할 것이지. 거기서 성공할 건 아니거든요. 높은데서 한 번 떨어져가지고 예수를 만나야지. 떨어지면 만나는 것이고 바울사도가 다메석 도상에서 한 번 깨져서 예수를 만나가지고 깨졌지 않습니까?
그래서 되는 것이지. 그냥 올라가 가지고는 떨어지게 마련이야. 모태로부터 태어나 가지고 쭈욱 올라간 것으로는 안 된다 말이야. 떨어져야 돼. 한 번 떨어져야 돼, 한 번 완전 자기 품을 포기해야 한다. 자기부정을 해야 한다. 자기만이 죄인걸 알아야 된다.
바울사도가 상당히 올라갔다가 떨어지지 않습니까? 자기이상은 없는 듯 그런 의기양양했던 사람이 떨어져서 다메섹 도상에서 떨어진 이후로는 뭐냐? 나는 죄인 중에 괴수였구나. 긍게 떨어져 버리잖아요? 떨어졌다는 사실, 죄인 중에 괴수였구나. 그러나 죄인 중에 괴수였기 때문에 이런 자비를 입었다. 누구든지 나를 본받아라.
어떤 죄가 드러나서 낙심할 것이 아니다. 인자 죄가 드러났으니 희망이 있다 말이야. 죄가 드러나지 않을 때는 이 오늘 말씀은 탕자 형아는 언제 돌아올 것이냐? 동생은 알거지가 됐기에 이제 참 하느님 참 아버지를 만난 것 아니요? 영의 아버지를, 자기의 영혼이 있을 수 있는 영원한 세계를 발견 한 게 아닙니까? 참 자기사명 자기위치, 자기가 있어야 할 곳 목적지, 발견한 것이에요. 아주 떨어져버렸으니까 알거지가 돼버렸어요. 이 아버지 말씀도 아버지 뜻도 탕자가 알아듣지. 형은 못 알아들어요. 형은 통하지를 안 해. 암만 타일러도 소용없어요. 야아 네 아우는 죽었다가 살았고 잃었다가 찾은 것이고 내 것은 다 네 것 아니냐? 너 왜 그러냐 말이야. 암만 아버지가 위로해도 ‘아 그러겠습니다.’ 하고 얼른 회개했어요? 아니에요. 다스려지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가지고 그 마음이 무슨 평화가 있겠어요? 분해 죽겠죠. 아버지만 아니면 아우 저 놈을 쫒아내 버리든지 죽여 버리든지 하겠는데 아버지 땜시 차마, 속으로는 아버지도 죽인 것 아니야? 미워하니까 속으로는 그 동생보다 아버지가 더 미웁지 않느냐 말이야. 그런 놈을 받아준 아버지 진짜 그건 세상 아니야? 세상, 그 마음에 탕자 형의 마음에 무슨 말씀이 들어가요? 아버지가 위로해도 소용없다 말이야. 그런게 탕자의 마음 이 그러니까 누가복음15장은 1~2절은 우리들을 설명한 거 에요. 율법 학자나 바리새인은 누구를 말하느냐? 탕자형의 태도라, 아버지보단 자기가 더 알고 있다는 말이야. 1~2절을 설명한 거야. 여기 그 하나보고 고만 봅시다.
누가복음19장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쭤보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이 왜 절반만 내놨냐? 다 내놔야 할 텐데, 자기가 모르게 토색한 것이 있을 런지 모르니까 그랬으면 한 사배나 갚아야 할 테니까 그 지혜로 반만 내 놓은 거예요. 그러면 인제 다 내놓은 셈이에요. 사배나 갚겠나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믿음의 아들이라 말이여.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잃어버린 거 세 가지 다, 양 잃어버렸다 찾은 거, 돈 잃어버렸다 찾은 거, 아들 잃어버렸다 찾은 거, 잃어버린 것 찾아, 그러면 나는 인자 무엇을 잃어버리고 사느냐? 뭔 잃어버리고 살아요? 안 잃어버렸어요? 우리 아무것도 안 잃어버렸습니까? 잃을 실(失)자 어떻게 쓰냐고 잃을 실(失) 실패라, 잃을 실자 잃어버렸다. 아 실패했다. 외로 삐친 데를 하고 지애비 부(夫)자를 보자. 지애비(夫)를 잃어버렸어요. 왜 그랬어? 말씀을 어겨서 불순종해서, 따 먹지마라는 거를 따먹어 버렸다고. 잃어버렸어. 예수를 잃어버리고 살아요. 머리를 잃어버리고 사는 인간이여. 나 부텀 도, 머리 없는 시체나 다름없죠. 머리가 없어. 몸뚱아리 몸뚱아리만 움직이고 있다 말이여. 머리가 없는데 사람이냐 말이야.
참사람은 예수인데 예수님이 머리시니까 인간이나 만물은 예수의 몸이고 만물의 머리는 그리스도죠. 교회의 머리라 말이야. 그러니 예수를 잃어버리고 살아요. 저기 그런 뜻은 아니지만은 그렇게도 한 번 붙여 본다면
히브리11장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그러죠. ~ 끊김 ~ 바라고 바라는 게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이랬다 말이야, 실상이란 말은 바라고 바랐다는 거여. 실체란 말이야. 실상이고, 이 간주는 그 까지는 없고, 보지 못하는 것들 증거란 데는 로마서8장24절됐고, 고 후4장18절 됐고, 고 후 5장7절, 베드로전서1장8절 그리돼요. 그래 저는 이렇게 한 번 대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바라고 바랐던 바란데 인제 실상, 실체를 만났다고 그래. 그 여 이렇게 대봐요.
사도행전3장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 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느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절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0절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말은 믿음은 예수 화(化) 되는 것 아니요?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 믿음이니까 우리가 바라는 건 참지도자 지아비 참지도자 남편 근데 또 주께서 예정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시리니 그 회개하라는 말이여. 바라는 것들의 실상은 예수 아니냐 말이야. 예수이름으로 살아, 머리 힘으로 사는 인간인데 인자 머리를 만났어. 그러면 참사람이 되는 거야.
‘예수를 보내리니 하느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느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예수란 말이여.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아 예수의 말씀만 들으라는 말이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딱 맞는 아들이니 그의 말만 들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을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느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절
‘하느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키라. 회개하라. 가던 길을 돌아가라 지금 가는 길은 사망으로 가는 길이다. 음부로 가는 길이니 천국의 갈 길로 돌이키라. 하느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누가복음15장.
이와 같이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 가서 잔치가 베풀어진다. 모든 천군천사가 총동원해서 춤을 추고 기뻐한다. 하느님은 회개하는 걸 기뻐해. 한 사람 한 사람 회개하는 걸 기뻐하시지. 세상적인 뭐 썩을 것, 뭐 그런 것 잘해봤던들 그거 뭐 썩을 거뿐이에요. 또 사람한테 존경을 받고 높임을 받아봤자 더 허망한 것뿐이고, 오히려 사람들한테는 천대를 받고 멸시를 받은 결과가 좋은 것뿐이지, 정반대에요. 얼마만큼 멸시를 받았냐 하는 것에 가치가 있지. 얼마나 존경을 받았냐하는 것은 이 멸시받는 원인이 되어버린데 말이야. 반대가 되는데 뭣이 좋으냐? 그러니까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보이라. 악함을 보자 이 인륜도덕에 초월하라. 천륜으로 들어오라. 복음으로 들어오라.
율법적인데서 그치지 말고 복음으로 들어오라. 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