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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설집 서평
흘러가는 우리네 삶과 같은 유장한 이야기
──황석영, 『여울물 소리』
오혜진
황석영이 누구인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이야기꾼이자 시대의 부침에 저항하며 뚜렷한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짧게 언급할 수 있는 소설가이다. 여러 가지 수사가 붙을 수 있는 이제는 노년의 이 작가가 나에게는 『장길산』의 황석영이다. 자세한 내용조차 가물가물해지는 지금이지만 그럼에도 『장길산』은 나에게 대하소설과 역사소설의 입문서이자 시대를 보는 바로미터를 제시해준 책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주는 치열한 한국전쟁 당시의 상황 대신 황석영의 『장길산』은 조선시대 그야말로 민초들이 겪었던 생활상과 삶의 형태를 아주 흥미진진하고도 맛깔나게 풀어낸 품새가 일품인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일천했던(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조선시대 광대들이나 노비들의 삶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고, 당시의 시대상과 현재를 비교하며 읽어보는 그 맛에 빠지기도 하였다.
19살의 나이에 처음 접한 황석영의 소설 세계는 깊고 웅숭깊었고 그 맛이 아주 진진했다. 그 이후로 접하게 된 『객지』, 『삼포가는 길』에서부터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 『손님』까지. 황석영의 작품은 에둘러가거나 빙글 돌려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정면으로 마주보는 리얼리즘 소설의 진수를 보여준다. 때로는 건조하고 때로는 담담하게 툭툭 던지는 그의 작품 속 목소리들은 삶의 현장들을 치열하게 살아내야 나올 수 있는 필력으로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독자에게 전달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였는지, 아마도 2007년 발표된 「심청」 이후로 내심 황석영이란 이름에 대해 왠지 모를 의구심이 들었다. 소설을 왜 보는가?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소설에 접근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혹은 소설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나름대로 떠들 수 있는 근거이자 전제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소설이란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이다. 그것도 시도 때도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수다스러운 친구. 그 이야기들은 현실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이 아니기도 하다. 그 맛깔난 이야기의 구비구비마다 때로는 눈물을, 웃음을, 한숨을, 괴로움을, 안타까움을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한다. 그러기에 그 친구의 여러 가지 목소리는 저마다의 다른 색채와 느낌으로 늘 반갑고 새롭다. 그런데 이 친구가 돌연, 현실의 뉴스처럼 변장해서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녹음된 기계음으로 혹은 복화술로 말한다면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내게 황석영의 최근 몇몇 작품들이 그랬다. 뉴스의 일부분을 고스란히 가져다 놓은 듯한 사건들,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작가인 듯, 개성도 특징도 없는 꼭두각시 같은 인물들의 나열, 그렇다고 플롯의 진진함이 살아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하여튼 매력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바리데기』, 『낯익은 세상』, 『강남몽』 등이 그랬다. 이럴 리가 없는데…. 우리의 이야기꾼 작가께서 노쇠하셨나, 뭐 이런 생각까지 하며 다소의 실망과 투덜거림을 쏟아냈다. 너무 많이 쓰신 걸까. 어이쿠, 또 작품이 나왔네. 음 어쩔까 하며 읽은 소설이 바로 내 앞에 있는 『여울물소리』.
오호라. 이제사 ‘살아있으시네~’를 외칠 정도의 작품이 나왔다. 물론 『장길산』의 그 생생함은 아니지만. 그럼 간만에 만나는 황석영 작가님의 설설 풀리는 이야기를 이제부터 조금씩 맛을 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은 관기였다가 전주에 기녀 두엇을 둔 색주가의 딸 ‘연옥’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집에 술을 먹으러 온 이신통을 만나 정을 통한다. 이미 기혼자였던 이신통을 뒤로 하고, 연옥은 양반집 첩으로 가지만, 여러 사정에 의해 파혼하고 다시 어머니에게로 돌아와 주막을 벌이며 살다 그와 재회한다. 연옥은 그의 행적을 쫓는다. 그의 삶과 밀접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옥은 그를 조금씩 이해하고 그리워한다. 여러 인물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된 이신통의 삶은 근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의 어지러웠던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그럼 이신통은 누구인가. 우선 그는 양반가의 서얼이다. 여전히 신분제가 남아있던 조선 후기 족쇄와도 같은 신분의 모순으로 인해 공부를 했음에도 과거를 보지 못하는 신세를 견디지 못해 이신통은 집을 떠나 한양으로 무작정 올라간다. 우연히 주막에서 서일수를 만나고 둘은 한양구경을 다니다 과거 시험을 대신 봐주는 대작 서수가 되고, 그 와중에 무위영에 있는 김만복을 만난다. 근대화를 맞이하기 직전, 서서히 몰락해가던 조선은 과거시험장 역시 철저하게 변질되었다. 황석영은 마치 질펀한 장터 같은 과장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김만복 일행의 접 근처에도 장사치가 들어서는데 아낙네가 내려놓은 광주리에는 인절미에 절편이며 시루떡이 그득하고 남정네의 지게에는 잘 익은 탁주가 찰랑찰랑 채워진 술동이가 놓였다. 사내는 또한 지게 꼭대기 세장 목에 조롱박을 세개 매달아두었다. 접군이 열이요 대작 서수가 넷에 선비가 세 사람이니 대식구를 만난 셈이고, 바로 한 발짝 옆과 앞뒤에 어슷비슷한 장막들이 있으니 커다란 주막에 손님 가득한 형국이 되었다. 모두들 조롱박에 탁주를 퍼마시고 한편으로는 떡으로 요기를 하는데, 그들 부부도 대목이라 술과 떡을 저자보다 훨씬 비싸게 팔아치운다. 과장이 어디라고 감히 장사꾼이 들어올 수 있겠냐마는 수문장이나 수직 군사들도 인정전깨나 받아먹었고 모두 한통속인 데다 세시풍속이 되어버렸으니 모른 척하는 셈이었다.(190~191쪽)
엄숙해야 할 과장이 ‘세시풍속’이 되어버린 상황을 재미있게 펼쳐놓은 작가는 그러한 세상의 부정과 한계에 염증을 느끼는 이신통을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시골 양반의 대작 서수가 되어줄 준비를 하는 와중에 이신통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전기수가 되어 자신의 말재주를 풀어내기도 한다. 본명이 이신이었던 신통의 이름도 여기서 얻게 된다.
헌데 더러 언패는 읽어보았소?
예, 시골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기로 종종 읽어주었지요.
허 그러신가? 이거 초면에 예가 아니지만 나는 이 집 주인이고 윤가요. 손님 성명은 어찌 되우?
이신이라 합니다.(…중략…)
그 차라리 이신통이라 허우. 전기수 이름은 듣자마자 마빡에 알밤 맞은드키 딱! 하고 기억나야 되는 법이여.(…중략…)
이신은 졸지에 신통이가 되어 『장끼전』의 책장을 여는데, 어쩐지 자기도 모르게 들뜨고 신이 나서 절로 말이 나온다.(163~164쪽)
졸지에 신통이가 된 과정도 우습지만, 그걸 또 자연스럽게, 아니 운명처럼 들뜨게 받아들이는 신통의 모습도 신통하다. 이신통의 어린 시절과 서일수와 한양에서 겪은 일들은 그의 누이와 매제인 송우경의 입을 통해서 여옥에게 전해진다.
소설의 큰 밑그림은 여옥을 통한 이신통 삶의 재구성이다. 여옥은 이어 서일수에게 천지도와 이신통과의 인연을 듣게 된다. 소설 속 천지도라 지칭되는 동학은 서일수와의 인연을 통해 이신통 삶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이신통의 옛 정인이었던 백화를 통해서는 애오개패에섞여 사계축놀이를 벌이고 다니던 재담꾼 이신통의 모습을 엿본다. 사계축놀이는 “산대놀이처럼 밤새 노는 판이 아니었지만 주로 굿거리의 재담사설에 잡가 소리로 이어지는 식이라서 여러 패거리가 함께 모여 대경연을 벌이기에 적합했던 것(313쪽)”으로 작가는 놀이패의 그 흥겨움을 고스란히 소설 속에 옮겨놓는다. 타령에 이어 발탈 놀이꾼이 재간들을 선보이고, 사설시조에, 가곡에 그야말로 우리네 조상들의 신명나는 한판 놀이패를 설렁설렁 보여준다. 이 중 이신통이 했던 재담의 한 장면은 그의 재주와 신명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지금은 멀어진 그 한판을 멋지게 펼쳐보인다. 그 재미진 한 장면을 함께 놀아보자.
그래, 너는 정말 유람을 다녔냐?
다녔지. 이래 봬두 팔도강산을 무른 메주 밟듯 하고 다닌 사람이다.
건건이 발로?
건건이 발로라니? 건건이는 느이 애비 밥상에 놓은 게 건건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맨발로 말이다.
맨발은 점잖지 못하게 왜 맨발로 다녀? 의관정제를 하고 다니지.
뭐? 의관정제를 해? 아니, 그럼 너도 욕심쟁이 고리타분 양반 샌님이냐?(…중략…)
제일 먼저 동대문 밖을 썩 나서 망우재를 넘어 떡수에 가서 떡 사먹고, 국수리에 가서 국수 먹고, 양수리에 가서 물 마시고, 양평서 개평 뛰고.(320~321)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재담은 우리네 조상들의 웃음과 유머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양반을 슬며시 비꼬기도 하고, 말꼬리를 잡아 재치 있게 받아쳐내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들이 사뭇 친근하면서도 유쾌하다. 이신통은 이렇게 다양한 경험과 직업, 사람들을 만나면서 차차로 당대의 질곡과 아픔을 체득한다. 무위영 장오영의 반란, 즉 임오군란 와중에, 한양 과장에서부터 인연을 맺어온 김만복의 죽음을 겪고, 몸담았던 천지도가 뿔뿔이 흩어지고 그 교주들조차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때로 접어들면서 이신통은 천지도에 온몸을 바친다. 그는 다른 도인과 더불어 천지도 경서 집필에 힘쓰지만, 악연으로 인해 이복형인 이준의 손에 평생의 스승에 가까운 서일수와 손천문이 교수형에 처해진다. 신통은 자신의 형을 손수 베어냄으로 그 원한을 갚는다.
여옥은 신통의 누이와 매제로부터 그 긴박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잠시의 정인이었지만 평생의 동반자이자 남편으로 여긴 이신통의 삶을 물어 물어 그를 쫓아 물을 건너고 산을 넘는 여옥도 안타깝지만,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싶을 정도의 굴곡진 삶을 산 이신통이야말로 신산스러움 그 자체다. 마치나 개화기를 맞이하여 외세의 거센 풍랑에 맞선 한 조각 조각배와 같은 조선의 신세처럼 이신통 역시 서얼로 태어나 고향이나 부모, 피붙이, 처에게 마음 붙이지 못한 채 전국을 떠돌며 이런 풍파, 저런 풍파를 겪는다. 물론 그 속에 괴로움과 슬픔만 있던 것은 아니다. 서일수를 만나 천지도에 입문하고, 전기수로 시장 바닥을 떠돌며 이야기의 세계로 빠지고, 놀이패를 만나 만담가가 되기도 하면서, 비록 신분의 제약으로 인해 벼슬을 살지 못했지만, 자신의 끼와 재주를 맘껏 펼치기도 한다. 조선시대 장터와 객주를 무대 삼아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패거리의 삶이 이신통이라는 한 남자의 삶을 통해 때론 잔잔하게 때론 넘치게 흘러나온다. 거기에 백화나 여옥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남녀 간의 애틋함도 알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지도라는 시대의 거센 풍랑에 몸을 맡김으로써 목적없이 방랑했던 자신의 삶을 제대로 갈무리한다.
황석영은 때로 늘어지게 때론 구성지게 때론 투박하게 이러한 이신통의 삶을 술술 풀어낸다. 그의 목소리는 유장하게 잘도 넘어간다. 그의 소설은 언제부터인가 한 사람의 생애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모양새였는데, 현대사의 질곡을 넘는 주인공들의 삶이 감정이입 되지 않고 서걱이는 느낌이었다면 이신통이라는 한 남자의 삶은 여옥이라는 여인의 눈을 통해, 혹은 다른 인물들의 눈을 통해 여과되어 풀어나가다 보니 딱히 감정이입이라는 부분에서의 이물감이 사라져 차라리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신통의 삶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개인적인 견해일 수 있겠지만, 황석영 특유의 짧게 끊어지며, 사건이나 행동에 대한 묘사가 더 두드러지는 작가에게는 이러한 방식이 더 어울리는 것은 아닌가 한다. 오래간만에 이 작가의 이야기를 참 맛나게 읽었다. 결국 개화기이건 지금이건 우리 평범한 범인들의 삶은 넓은 강물의 한 줄기 물방울일 수 있지만, 그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옥이 총에 맞아 죽은 이신통의 사체를 이장하기 위해 들른 주막에서 듣는 마지막 물소리나 노인의 소리는 신통 삶에 대한 마무리이자 여옥이나 이 소설 속 모든 인물의 삶에 대한 위로인 듯도 싶다. 이 유장한 이야기 자체가 바로 우리 삶이자 물결이었다는 것을 황석영은 한바탕 신명나게 풀어냈던 것이다.
나는 신통이 쓰던 바깥방에 그의 유골이 든 행담을 옆에 두고 누워서 뒤척거렸다. 흥이 났던지 노인이 쉰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 한 자락이 아득하게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오늘 갈는지 내일 갈는지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놨나.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정들이고 가는 임은 가고 싶어 가나.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에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가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488쪽)
오혜진 /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엮은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와 논문 작업 틈틈이 읽었던 소설에 대한 서평 모음집 독서에세이 『소설과 수다떨기』가 있다. 현재 남서울대 교양과정부 교수로 재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