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소쇄원(瀟灑園)
양산보는 이곳 담양 창평에서 태어났다. 15살 때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여 조광조의 문하생이 되고 2년 뒤 1519년 스승이 대사헌으로 있을 때 현량과에 급제하였다. 그 해에 조광조는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기묘사화)을 조작한 훈구파의 모략에 의해 능주(지금의 화순)로 귀양을 갔고, 같은 해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양산보도 스승을 따라 벼슬길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어릴 때 노닐던 계곡을 오르내리면서 작은 정자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일찍이 동진의 도연명이 41세 때 팽택 현령을 사임하면서 ‘내 어찌 쌀 5말의 봉급을 위해 그에게 허리를 굽힐소냐?’란 말을 남기고 낙향하여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남긴 것을 흠모해 왔고, 송나라 유학자 주무숙(周茂淑)의 애련설(愛蓮說)을 즐겨 읽어 도연명과 주무숙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여기에 작은 정자를 세워 맑고 깨끗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담아 소쇄원을 세운 것이다.
역시 이 고장 출신인 송강 정철이 쓴 “소쇄원 초정에 부치는 시”에
“내가 태어나던 해에 이 정자를 세워
사람이 오고 가고 마흔 해로다
시냇물 서늘히 벽오동 아래로 흐르니
손님이 와서 취하고는 깨지도 않네.”
라고 읊었으니 송강의 출생 년인 1536년으로 건립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고 유홍준 교수는 그의 답사기에 전하고 있다. 이 정원을 건립하는데 송순, 김인후, 임억령, 김윤제 같은 분들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소쇄공은 후손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하였는데 “절대로 남에게 팔지 말것, 내 발자국 닿지 않은 곳이 없으니 상함이 없게 할 것”이었는데 전란 등으로 손상되었으나 다행히 목판으로 남긴 ‘소쇄원도’가 있어 복원에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여기를 찾은 게 몇 번 되지만 이번에 좀 더 자료를 조사하여 그 뜻을 확실히 알고 친구들에게 전하는 입장에서 답사를 하게 되니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배우라는 말이 나왔나보다.
지금 소쇄원은 사적에서 명승(40호)으로 승격하였고,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아쉬움이 있다면 갈수기라 계곡 물이 겨우 바닥을 적실 정도라 그 운치가 반감되지만 최대한 자연을 살려 소박한 공간에서 55세를 살다 간 한 선비의 소박한 마음씨를 새겨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아 흐뭇하다. (2011.6.3)
<지리산 휴게소(광주방향)에서>
<이 멋쟁이 소나무들이 300년이나 되었답니다>
<소쇄원 안내도, 소(瀟:물맑을 소) 쇄(쇄:씻을 쇄) 말하자면 맑고 깨끗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조선시대 정원으로 보존이 가장 잘 된 곳이다>
<소쇄원 주변으로 대숲이 울창하여 선비의 고고한 정신을 돋보이게 한다>
<소쇄원 입구>
<오곡문, 오곡문(五曲門)은 내원(內園) 북동쪽 담장에 있었던 문으로 문은 없어지고 담장에 현판만 보존되었고「소쇄원도」에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계곡물이 흐를 공간을 두고 담장을 축조했다>
<담장 너머 풍경, 우물도 보이고 계곡을 따라 길이 나있다>>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廬)라 담장에 써있다. 쇄자는 담장에 쓴 글자처럼도 쓴다. 양산보의 호가 소쇄공이고 그가 과거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마다했으니 처사라 불렀고 마지막 글자 려자는 초가집이란 뜻이다. "소쇄공이 살았던 초가집"
<제월당: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뜻하는 건물인데 주인이 거주했던 공간이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내려오려면 이 작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머리조심이란 글자가 붙었지만 이마를 박는 사고가 생긴다>
<소쇄원도,소쇄원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음>
<광풍각, 소쇄원의 하단에 있는 별당으로 건축된 정면 3칸, 측면 1칸 전후퇴의 팔작지붕 한식기와 건물이다. 중앙 1칸은 온돌방으로 뒷면에는 90cm 높이의 함실 아궁이가 있다. 방의 문턱에는 머름대를 구성하였으며, 문은 삼분합의 들어열개문으로 되어 있다. 막돌허튼층의 낮은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방주를 세웠으며, 주두와 소로, 장혀, 굴도리로 결구된 평5량가구이다. 천장은 연등천장과 우물천장을 혼합하였는데 서까래가 모이는 부분은 눈썹천장으로 되어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서까래는 선자서까래이다.
<광풍각 현판글씨,
<현지 해설사의 안내를 받는 장면>
<광풍각 3m 정도 아래로는 계곡물이 흐른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내려오는 돌계단.
<광풍각에서 이 운치있는 다리를 건너야 제대로 광풍각을 볼 수 있다>
<개울을 건너 광풍각을 보다>
<작은 연못에는 잉어들이 노닐고 광풍각이 보인다>
<광풍각을 좌측에 두고 기념 사진 찰칵>
<연못 주변에 창포가 한창이다>
<대숲이 우거진 주변 풍광>
<쌍교 떡갈비집에서 푸짐한 점심을 먹다>
<떡갈비를 눈요기만 하게 해드려서 죄송>
<모두 5인방인데 맨 왼쪽 친구의 섹소폰은 저음이라 따로 연주했다>
<열심히 연습하였기에 그 기량도 날로 발전한다>
<섹소폰에 푹 빠진 친구들>
<이용한 식당>
<담양 죽녹원에 오르기 전 담양천 풍경>
<저 건너 우거진 숲이 관방제림이다>
<죽녹원 오르는 길>
<전망대에서 본 담양문화회관>
<담양 시가지 전경>
<죽녹원 입구의 작은 공연장>
<이런 대숲 산책로가 많이 조성되어 있다>
<대숲의 장관, 과연 대나무의 고장답다>
<이런 정자도 잇고>
<전직 대통령도 찾은 곳>
<의향정이란 현판이 있는 정자, 땀을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다>
<철학자의 길 답게 사색에 잠신 어떤 철학자상>
<1박2일 팀도 다녀가고>
<죽림욕이 이렇게 좋데요>
<지금 막 솟고 있는 죽순, 20cm정도이니 맹종죽인 듯하다>
<죽제품 판매장에서>
<죽부인을 안고 자면 과연 시원할까, 본부인이 질투라도 할까봐 눈을 돌리고 말다>
<한가운데 죽순을 보세요.높이가 제법 되는 것으로 보이니 왕대 죽순인 것같다>
<죽녹원 전망대>
<모형소가 실물과 흡사하다>
<죽녹원 입구 풍경>
<관방제림, 1648년 부사 성이성이 축조했고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 2km 이어지는 담양천 제방에 200-300년 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다>
<수종은 주로 푸조나무(111그루)이며 팽나무돠 개서어나무 등 130그루 정도가 서있다>
<정겨운 징검다리>
<이 제방은 나무들의 천국이다>
<담양천을 가로지르는 홍예교, 그 다리 위에 나무다리가 하나 더 있는 느낌입니다>
<관방제림 풍경>
<관방제림의 노거수>
<홍예교를 건너는 여인들, 한가롭기만 한 모습이다>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
<제방 우측엔 국궁장이 있다>
<이름하여 연무정>
첫댓글 어제 우리 내외가 담양 구경을 갔었습니다. 아기자기한 정경들이 좋아 카페에 올리려고 마음 먹었으나 본인의 솜씨가 좋지 못하여 남의 것을 허락받고 올립니다.
덕분에 담양 구경도 잘 하고 떡갈비도 잘 먹고 갑니다..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담양 죽녹원의 댓바람 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