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敎會) 지도자(指導者)의 사명(使命)<2>
<말선31-157> 교회(敎會)의 책임자(責任者)는 자기(自己)를 위하여 정성(精誠) 들여서는 안 된다. 수많은 무리(武吏)를 위하여 정성(精誠)을 들여야 한다. 한 사람을 위하여 정성(精誠)을 들이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記憶)하지 않을 수 없다.
<말선11-290> 지도자(指導者)는 자기(自己)를 과대평가(過大評價) 해서는 안 된다. 심정(心情)의 빚을 지지 말라 자기(自己)가 어떤 책임자(責任者)의 위치(位置)에 있다 하더라도 항상(恒常) 배우는 자(者)가 되라
<말선207-355> 앞으로 경제문제(經濟問題)는 전부(全部) 다 교회(敎會)가 책임(責任)져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傳道)를 해야 됩니다.
<말선207-340> 지도자(指導者)는 언제든지 정성(精誠)을 들이는 때가 있어야 됩니다. 새벽에 일어날 때는 시신경(視神經)이 쉬다가 깨어나는 경계선(境界線)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오늘 교회(敎會)에 무슨 일이 있겠구만, 오늘은 이런 식구(食口)가 오겠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유능(有能)한 의사(醫師)는 환자(患者)의 얼굴 색깔만 봐도 무슨 병(病)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길을 걷는 것만 봐도 아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여러분들도 영적(靈的)인 안테나가 높아서 감정능력(感情能力)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성(精誠)을 들여야 됩니다. 기도(祈禱)하라는 것입니다. 기도(祈禱)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말없이 그 환경(環境)을 완전히 점령(占領)하는 것이 기도(祈禱)입니다.
선생님(先生任)은 지금까지 중얼중얼하면서 기도(祈禱) 안 합니다. 그렇지만 24시간 기도(祈禱)하는 것입니다. 어디 가나 자기목표(自己目標)를 중심삼고 24시간(時間) 기도(祈禱)하는 거예요. 밥을 먹으면서도 숨을 쉬면서도 기도(祈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自己)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류(人類)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 일념(一念)을 중심삼고 정성(精誠)들여 가지고 사방(四方)을 한 바퀴 돌면 이렇게 되지 않습니다. 평형(平衡)을 이루어 가지고 원형(圓形)이 되는 것입니다.
<말선42-159> 정성(精誠)이란 한꺼번에 드리는 것이 아니다. 설교(說敎)할 때도 대중(大衆)을 앞에 놓고 설교(說敎)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 사람을 놓고 설교(說敎)한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은혜(恩惠)받아 눈물을 흘리면 그것이 전체(全體)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구장(地區長)이나 지역장(地域長)들이 교회(敎會)를 발전(發展)시키지 못한 이유(理由)는 뿌리도 없이 공중(空中)에 떠 있는 설교(說敎)를 했기 때문이다.
<말선42-163> 목회자(牧會者)는 3일에 한 번씩이라도 식구(食口)들을 위하여 기도(祈禱)해 주어야 한다. 설령 떨어져 나간 사람이라도 그를 위(爲)해 계속(繼續) 기도(祈禱)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이 책임(責任)을 다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그 계승자(繼承者)가 나올 때까지 기도(祈禱)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정성(精誠)의 토대(土臺)만 남아 있으면 아무리 식구(食口)가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뜻있는 사람을 보내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구(食口)가 떨어져 나갔다고 해서 절대(絶對) 낙망(落望)해서는 안 된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한 식구가 떨어져 나가면 그 사람과 성격(性格)도 비슷하고 걸음걸이도 비슷한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모든 면(面)에서 월등(越等)히 나은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 정성(精誠)들인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事實)이다.
<말선30-129> 여러분이 설교(說敎)할 때 그 제목(題目)으로 옛날에 한 번 했다는 것을 식구(食口)들이 알면 기분(氣分)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원리강의(原理講義)를 할 때도 옛날식(式)으로 하면 기분(氣分)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四季節)에 따라 변화(變化)를 느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말선207-383>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교회장(敎會長)하면서 목사(牧師)니 뭣이니..., 앞으로 목사(牧師)라는 말 함부로 쓰면 안 돼요. 목사(牧師)가 되기 쉬운 줄 알아요? 기성교회(旣成敎會)를 보게 되면 집사(執事)로부터 장로(長老)를 거치고 그 교회기반(敎會基盤) 위에 유명(有明)한 목사(牧師)들이 보증(保證)해 줘야 신학교(神學校)에 갈 수 있습니다. 몇몇 목사(牧師)가 보증(保證)해 주지 않으면 신학교(神學校)도 못 갑니다. 암만 대학(大學)을 나왔더라도, 앞으로 이것을 제도화(制度化)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선생님(先生任)이 이 땅에 언제까지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있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제도화(制度化)해 가지고 전통적체제(傳統的體制)를 딱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법(法)을 통(通)한 체제(體制)를 만들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선33-182> 이 땅(地)위에 사는 동안 공적(公的)인 길을 가는 사람이 지혜(智慧)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제일(第一) 무섭고 제일(第一) 크고 제일(第一) 강(强)한 사람이다.
<말선207-351> 통일교회(統一敎會)의 책임자(責任者)는 ⓵경제적(經濟的) 자주능력(自主能力)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능력(能力)이 없는 사람은 책임자(責任者)가 못 된다는 것이 선생님(先生任)의 가르침입니다. 그걸 알아요? 「예」 그다음에는 ⓶ 외교능력(外交能力)이 있어야 됩니다. 세상(世上)에서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의 꼭대기를 딛고 타고 넘어가야 됩니다. 큰 벽돌집을 짓고 담(覃)을 높게 쌓아놓은 집이 있으면 도적(盜賊)놈이 찾아오는 뒷담을 타고 넘어 들어가서라도 친구(親舊)같이 지낼 수 있고, 밤중에라도 밥을 해달라고 해서 얻어먹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친구(親舊)들을 수두룩히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런 외교능력(外交能力)이 있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⓷설득능력(說得能力)이 있어야 됩니다. 설득(說得)하려면 관(觀)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統一敎會)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을 설득 못 한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원리(原理)말씀만 적용(適用)하면 만사백권(萬事百權)입니다. 백과사전(百科事典)이라는 것은 만사백과사전(萬事百科事典)입니다. 무엇이든지 해결(解決)되는 것입니다. 원리(原理) 가지고 못 풀 문제(問題)가 어디 있어요? 알고 보니 남북통일(南北統一) 문제(問題)도 간단(簡單)하잖아요? 가인 아벨 문제(問題) 를 중심삼고..., 다들어 맞지요? 「예」이건 진화론(進化論)에도 맞고, 모든 발전원칙(發展原則)에도 맞고, 다 맞아요,
<말선3-210> 참목자(眞牧者)와 거짓목자도 있을 것이다. 참목자(眞牧者)는 자기(自己)가 참목자(眞牧者)라고 하지 않는다 어느 때나 묵묵히 하나님의 뜻과 모든 만상(萬象)을 자신(自身)의 마음에 품고 나갈 뿐이지 자신(自身)의 입장(立場)을 변명(辨明)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그것을 바로 분별(分別)해야 되겠다.
<말선48-42> 교회장(敎會長)은 아들의 자리인데 아들의 자리는 아담 직계(直系)이다. 개인적(個人的), 가정적(家庭的), 종족적(宗族的), 민족적(民族的), 국가적(國家的)으로 단계(段階)와 차원이 다를 뿐이지 아담 직계(直系)라구요. 그것은 아벨자리라구요.
<말선33-145> 공적(公的)으로 나가다가 사적(私的)으로 나가면 반드시 꺾이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아무리 힘(力)을 가(加)하여도 소용(所用)이 없다.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물질문제(物質問題)를 다루게 되면 끝장이 나기 쉽다. 정신적(精神的)인 분야(分野)를 다루던 사람이 물질적(物質的)인 분야(分野)에 모든 관념(觀念)을 투입(投入)시켜 가지고 바라보고 나가게 되면 대개(大槪) 끝장나기 쉽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物質)과 정신(精神) 중(中)에서 보다 공적(公的)인 것은 정신(精神)이기 때문이다.
<말선209-164> 참(眞)은 위하려고 하는 것이고 거짓(詐)은 위하라고 하는 것이다. 위하려고 하는 사람 앞에 위하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의 복(福)을 빼앗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법(戰法)과 악마(惡魔)의 전법(戰法)이 다른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것입니다.
<말선11-278> 설교(說敎)는 우선(于先) 자기(自己)가 감동(感動)받아야 하고 자기(自己)의 기도(祈禱)도 자기(自己)를 감동(感動)시켜야 한다. 또 설교(說敎)는 동정(同情)받는 입장(立場)에서 해야 한다.
<말선38-56> 부인(婦人)들이 자식(子息)을 버리고 전도(傳道) 나간다는 것은 하늘 앞에 생명(生命)을 다 바쳤다는 조건(條件)이 되는 것이요, 그다음 사랑을 다 바쳤다는 조건(條件)은 사랑하는 남편(男便)을 버리고 뜻을 위해 임지(任地)에 나갔다는 사실(事實)이다. 이것은 남편(男便)보다 하늘을 더 사랑했다는 조건(條件)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선생님(先生任)이 여러분에게 자식(子息)과 남편(男便)을 생각(生角)하지 말고 전도(傳道) 나가라고 한 것이다.
<말선84-79> 먼저 완성(完成)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협조(協助)가 있게 된다. 결국(結局) 인류역사(人類歷史)는 사람 하나 완성(完成)하기 위한 것이다.
<천성경p 531> 사탄의 흔적(痕迹)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절대(絶對)로 임재(臨在)할 수 없다는 사실(事實)을 알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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