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십 년 전의 일입니다.
청년 시절 제가 소속하여 활동하던 단체의 한 임원의 부친께서 당시 폐암(?)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습니다.
그 임원되는 분이 자기 아버지의 병문안 염불을 왔으면 좋겠다고 직접 요청을 하였습니다.
제가 염불 ㆍ독경을 주로 주관하는 터라 목탁과 경전을 챙겨서 회장이신 법사님과 몇몇의 도반들을 대동하여 세브란스 병원엘 몰려갔더랬습니다.
복장은 거의 다 네꼬다이(넥타이)를 매고 정장 차림을 하였었습니다. 그래야 누구든 불교를 함부로 업수이 여기지 못한다는 회장법사님의 부탁 탓입니다.
회장법사님은 언제든지, 추우나 더우나 늘 정장차림으로 업무를 보고 사람들을 접대하셨습니다.
병원에 당도하자
아들되는 임원이 반가이 맞아주셨고 그 부친께선 병색이 완연하셨지만 눈은 뜨고 계셨던 걸로 기억 됩니다.
다인실이었는데 병고쾌차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살살 제가 목탁을 치면서 삼귀의 반야심경에 이어 천수경을 독경해나가는데 도무지 어색하기도 하고 가슴이 떨려서 목탁을 제대로 칠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이 소심한 모습에 그 아들임원은 목탁을 제대로 크게 쳐가면서 하라고, 평소 민형답지 않게 왜그리 겁이 많냐고 짜증을 내며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면서 "이 병실엔 최소한 야소(예수)쟁이는 없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놓고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그 아들임원이 파워가 아주 센(?)사람인 걸 아는 터라,
"앳다 나도 모르겠다" 하며 저도 눈 딱 감고 목탁을 크게 내리치면서 예의 그 구성진 저의 염불 독경소리를 멋드러지게 쏟아내었습니다.
목탁과 염불소리가 병실 밖 복도에까지 흘러번져 갔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들께서 처음엔 한사람이, 그래도 해 제끼니깐 수간호사를 대동하여 간호사들이 떼로 몰려와 항의하고 멈출 것을 요청했습니다.
거기서 물러날 아들임원이 아니지요.
예수교는 날이면 날마다 와서 노래부르고 손뼉쳐도 되고 불교는 왜 안되냐고,
그렇다면 아예 환자를 받을 때 종교를 구분해서 기독교만 받던지 해야지 다 받아놓고는 찬송가는 되고 염불은 안된다는게 말이 되냐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었지요.
끝내 당직의사인지 주치의사인지가 와서는 환자를 위해 하시는 종교의식이니 열심히 기도해주시라 는 말을 하고는 꼬리를 내리며 돌아갔습니다.
하여 저는 좀 미안한 감정도 들고 했지만 천수경 끝에 관음정근을 멋들어지게 이어갔습니다.
이 사이 이런 소동으로 타병실의 휠체어 탄 환자분들이나 가족들이 복도로 많이들 나왔고,
아예 한둘씩 저희 병실 문을 열어젖힌 바닥에다가 신문지를 깔아놓고는 앉기 시작하더니 어떤 이는 눈을 감고 합장하면서 관세음보살 염불을 따라하기도 했더랬습니다.
이른바 병실법회를 보는 듯했습니다.
이윽고
염불 축원을 끝맺자 어느 노보살님(?)은 저희를 끌어안고 연실 반갑다고 치하를 해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젊은 신사분들도 불교를 하느냐고 하셨고,
어떤 이는 교회나 성당에선 수시로 드나들며 기도해주곤 하는데 뜻밖에도 목탁소리가 울려서 너무나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났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때 이후
우린 그 어느 곳이든 잠재적 불자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곳곳에서 불법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분들이 많다는 걸 깨달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자그마한 목탁소동은
캐톨릭정신을 이념으로 하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벌어진 불교 최초의 병실법당 한마당일지 모릅니다.
그 부친환자께서는 몇주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는 유사이래 세브란스병원에서 그악스럽게 목탁을 쳐대던 최초의 젊은 불제자가 되었는데.
아마도 그 이후 그 병원에서 그렇게 장시간 목탁치며 염불ㆍ독경한 사례는 많지 않을 걸로 여겨집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아들임원에 대하여 이런 생각은 듭니다. 부친의 쾌차기도에는 관심없고 오직 병원측과의 싸움에만 열을 올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말입니다.
그러니 떼로 몰려온 간호사들이나 주치의도 백기를 들었지요.-^-^-^
추억은 아름다우나
불교 저변 인구가 줄어드는 마당에 전법ㆍ포교를 햐야하는데 나이탓
건강탓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부처님 뵐 면목이 없습니다.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마하살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첫댓글 세브란스 병원에서(?)
생각만 해도 그 풍경이 어마어마하게 그려집니다.
당시 사람들로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일이었을 테니까요.
정장 차림으로 청년불자의 존재감을 당당하게 내보이신 것에 현진 거사님의 목탁, 염불, 독경 소리라면 가이, 그 기도가 얼마나 장엄하였을까를 미루어 짐작합니다.
짝짝짝~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읽어주시고 수희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다 지나간 날들의 젊을 적 객기였기는 한데 기분은 좋았답니다.
요즘은 그리하기가 더 어렵겠지만 당시만 해도 교희인들의 병실기도는 안하무인이었어요
그런데도 불교라고 제지를 하려니까 싸워이긴 거지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