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백석산 대흥사(白石山 大興寺)
2024.9.8(일) 강원 오지속의 명산 평창 재래봉(619m) 산행을 마치고 동해(자택)로 귀가중
15:50 백석산 대흥사에 도착하여 약 25분간 대흥사 경내를 둘러본다.
백석산 대흥사는 평창군 대화면에 소재한 천태종사찰이다.
백석산 대흥사 건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1960년대 초 밤이면 짐승소리에 겁이나 다니지 못하던 깊은 산골, 평창군 대화면 대화리 백석산 계곡에서 한 도인이 수행에 전념하고 있었다.
태백에 거주하는 90된 노인이 이곳을 지나다 키가 큰 분이 하얀 도포를 입고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구인사에 산부처님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니, 그 분이 바로 백석산에서 수행하시던 분이셨다고 한다.
이분이 바로 상월원각 대조사로 이곳 백석산 대흥사 터에서 오래 전에 수행정진 하시던 곳이라 전해온다.
이러한 이유로 1968년 가을에 대조사님으로부터 대흥사 사찰 명을 받아 현 위치에 절을 건립하였다.
<대한불교 천태종 백석산 대흥사 표시석>
구인사가 총본산인 천태종은 지금부터 약 1400년 전인 594년 수나라 개황 14년,
중국의 지자대사가 법화경을 중심으로, 5시 8교 교관과 일심삼관의 수행법으로 선(禪)과 교(敎)를 통합한 불교종파다.
지자대사가 계시던 산이 천태산이라 그 이름을 따서 천태종이라 명명되었다.
우리나라에 처음 천태교학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 초기 백제 현광법사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정식으로 천태종이 개립된 것은 고려 숙종 2년 대각국사 의천 스님에 의하여 국청사에서 천태종이 설립되었다.
이후 조선조 억불정책에 따라 5백여 년 동안 역사 속으로 은몰되었던 천태종(天台宗)은
근세에 이르러 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에 의해 중창되어 일천한 역사에도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어 가고 있다.
백석산 대흥사 일주문
천왕문 표시석
"사대천왕(四大天王)·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도 한다. 욕계육천(欲界六天)의 최하위를 차지한다.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帝釋天)을 섬기며, 불법(佛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毘沙門天王)을 말한다.
그 부하로는 견수(堅手)·지만(持鬘)·항교(恒憍)가 있는데, 이들은 수미산의 아래쪽에 있다.
또한 사천왕은 이들 외에도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지쌍산(持雙山) 등 일곱 겹의 산맥과 태양·달 등도 지배하고 있다. "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대화리 소재 백석산은
옛 부터 ‘강아지(개)가 올라가지 못하는 산’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도토지골)에는 백석산에 강아지를 억지로 데리고 가면 몇 시간 뒤에 죽는다는 말이 돌 정도로 개가 무서워하는 곳입니다.
호랑이가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백석산 자락에는 호랑이의 기세를 등에 업은 대흥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흥사가 이곳에 터를 잡은 때는 천태종 중창조인 상월원각대조사 재세시인 1960년 후반이지만
평창 지역에 천태불교의 싹을 틔운 때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에 천태불교의 씨를 뿌린 이 중 한 명은 이재홍 불자입니다.
그는 1955년 구인사를 방문해 상월원각대조사를 친견한 뒤 지역에 천태불교를 알리기 위해 힘썼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60년 자신의 집에서 첫 법회를 봉행하며 대흥사 건립의 초석을 마련하고
1969년 요사채 낙성식에 상월원각대조사가 직접 참석하시어 사찰명을 대흥사(大興寺)로 명명했습니다.
<상월 현각대조사 법어>
"실상은 무상이고 묘법은 무생이며 연화는 무염이다
무상으로 체를 삼고 무생에 안주하여 무량으로 생활하면
그것이 곧 무상보리요 무애해탈이며 무한 생명의 자체구현이다.
일심이 상청정하면 처처에 연화개니라."
대흥사 대웅보전
남북통일세계평화민함락
"이 세상에 내것이 어디있나 사용하다 버리고 갈 뿐이다."
상월원각대조사 설법중에서
조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