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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방 아저씨
오 영 민
두둥 둥둥둥!
어다선가 북소리가 들려읍니다. 당고(새알심)를 파는 사람이 치는 북소리입 니다.
“약방 아저씨가 왔다아!”
밖에서 누가 외치는 소리에 나는 귀가 번쩍 뜨였읍니다.
“약방 아저씨가 당고를 팔러 왔다아!”
-----약방 아저써가 당고를 팔다니?
밖에서 또 들리는 소리에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지체하지 않고 뛰어 갔습니다.
두둥 둥둥둥!
북을 울리는 당고 장수 아저씨를 둘러싸고 벌써 아이들이 많이 보여 있읍니다. 단숨에 그곳으로 뛰어간 나는 당고 장수 아저씨를 보자 그만 말뚝처럼 우뚝 서버렸읍니다. 비록 허술한 옷차림으로 말할 수 없이 야위기는 하였으나 당고 장수 아저씨는 내가 꿈에서까지 그리워하던 약방 아저씨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약방 아저씨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북을 울리던 손을 멈추고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띠운 채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읍니다. 그리움이 꽉 찬 그 얼굴에는 반가움이 어리면서도 알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얼기설기 서려 있었읍니다.
날이 활짝 개인 하늘에는 솜구름이 두둥실 흘러가고 있읍니다. 소르르 바람이 불자, 어디선가 하얀 아카시아 꽃잎이 열어젖힌 창문으로 사르르 날아들었읍니다.
냐는 아카시아 꽃잎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보았읍니다. 그러자 꽃속에서 개미 한 마리가 바실바실 기어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하하, 개미가 꽃수레를 타고 우리집에 나들이 왔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내 손바닥 위를 살살 기어다니는 개미가 무척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아마 이 개미는 우주여행을 한 사람만큼이나 자기의 여행을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요놈이 꿀을 빨러 들어갔다가 여기까지 뜻하지 않은 여행을 했구나.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나는 문득 아카시아꽃을 따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읍니다. 그래서 손바닥의 개미를 창문밖으로 훅 불어날리고 곧 밖으로 나왔읍니다. 그리고 철사로 갈고리를 만들어서 작대기 끝에 매어가지고 아카시아가 제일 많은 백화여자중학교로 갔읍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어서 학교는 텅 비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교문 안에는 수위아저씨가 지키고 있어서 교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읍니다. 그래서 학교 뒤의 가시철망을 벌리고 살금살금 기어들어갔읍니다. 그때입니다.
“엄마!”
하는, 소리에 허리를 펴고 얼어서던 나는 움칠하여 놀라며 소리나는 쪽을 보았읍니다. 그런데 언제 왔는지 가시철망 밖에는 영수가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자아식!”
나는 가슴을 내리쓸며 영수에게 눈을 흘겼읍니다. 그러자 영수는,
“너, 수위아저씨에게 일러 바친다.”
하고, 엄포를 놓는 것이었읍니다.
“마음대로 해봐. 자아식!”
마음속으로는 떨면서도 나는 영수에게 굽히기가 싫어서 큰소리로 대꾸했읍니다. 그러나 영수는 여전히 생글거리며,
“그러지 말고 내가 망을 봐줄께 아카시아꽃을 따서 같이 나누자.”
하며, 내 눈치를 살핍니다. 나는 그것이 괜찮을 것 같아서 가시철망을 들치고 영수를 곧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읍니다.
바람이 소르르 붑니다. 그럴 때마다 활짝 핀 아카시아꽃잎이 눈송이처럼 하얗게 떨어집니다. 동시에 깨끗하고도 향긋한 꽃냄새가 달콤하게 코를 찌릅니다.
나는 향긋한 그 꽃냄새에 취하여 한참 동안이나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읍니다.
“민식아, 활짝 핀 것으로 꺾어!”
영수의 속삭이는 말에 비로소 나는 정신을 차리고 좋은 것을 찾아 기웃거렸읍니다.
“망을 잘 봐야 한다.”
나는 안심이 안되어 영수에게 주의하도록 일렀읍니다.
“걱정 마, 수위는 절름발이이니까 쫓아와도 문제 없어!”
영수는 아주 자신있게 코웃음을 칩니다.
나는 작대기를 뻗쳐서 쇠갈고리를 제일 소담스런 꽃가지에 걸고 비틀었읍니다. 꽃은 쉽게 꺾이었읍니다.
“자, 이것을 갖고 었어!”
나는 꺾은 꽃을 영수에게 맡기고 또 다른 꽃에 쇠갈고리를 걸고 버틀었읍니다. 이렇게 하여 어느덧 우리는 한아름의 꽃을 꺾었읍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입니다.
“이놈들!”
하는, 벽력 같은 소리와 함께 수위아저씨가 절룩거리며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읍니다. 우리들은 깜짝 놀라 다랍쥐처럼 달아나기 시작했읍니다.
“빨리 가시철망을 벌려춰!”
영수의 말에 나는 재빨리 가시철망을 벌려주었읍니다.
“이놈들! 게 섰지 못해?”
수위의 고함이 점점 크게 들립니다. 그 소리에 질렸던지 영수는 자기만 빠져나가고 그냥 도망가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영수야!”
외쳤지만 명영는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나는 등이 달았읍니다. 그러나 할
수없는 일입니다. 작대기를 먼저 밖으로 내던지고 혼자 가시철망을 벌렸읍니다.
“이놈!”
수위의 무서운 목소리가 내 뒷덜미를 움켜잡듯이 바로 뒤에까지 따라 왔읍니다.
-―익크!
나는 급하게 빠져나오는데 그만 등이 가시철망에 걸려서 쭉 찢어집니다. 그 바람에 몸을 푹 숙였더니 이번에는 아래로 가로지른 가시철망에 걸려 바지가 찢어지면서 무릎이 쭉 째졌읍니다. 그러나 지체할 수가 없어 아픈 줄도 모르고 그냥 막 빠져나와서 급한 통에 작대기도 가지지 못하고 달아났읍니다.
한참 도망가다가 숨을 돌리면서 힐끔 돌아다보니까 수위는 가시철망 안에서 나를 보며 주먹을 흔들고 있읍니다. 나는 그가 따라오지 않으므로 우선 마음을 놓았읍니다. 그때에야 째진 무릎이 몹시 쑤시고 아파옴을 느꼈읍니다.
나는 얼른 찢어진 바지를 걷어올렸읍니다. 새빨간 피가 상처에서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많이 다쳤니?”
어디에 숨어 있었던지 영수가 나타나서 내 무릎을 들여다봅니다. 나는 그러한
염치없는 영수가 얄미워서,
“비겁한 자식!”
하고, 쏘아주었읍니다. 생각 같아서는 그의 뺨이라도 막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뭐가 버겁하단 말이냐?”
영수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합니다.
“자아식, 나는 네가 나갈 때 가시철망을 벌려줬는데 너는 그냥 먼저 도망갔으
니 비겁하지 뭐냐.”
“너, 내가 거기 있다가 만약 둘이 다 붙들리면 이 아카시아꽃을 몽땅 빼앗겼을 게 아냐?”
영수의 말에 나는 새삼스럽게 아카시아꽃에 마음이 끌려 그가 들고 있는 것을 홱 낚아챘읍니다.
“이자식아, 너야말로 비겁하구나.”
영수는 고양이처럼 깜찍스럽게 달려듭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대판 싸움을 벌였읍니다. 막 치고 받고 하는데 어느덧 모여든 사람들이 우리들을 삥 둘러섰
읍니다.
“이녀석돌, 마침 잘 붙들었다.”
언제 왔는지 우리들보다 더 화가 난 수위가 숨을 헐떡이며 나와 영수의 뒷덜미를 꽉 잡았읍니다.
“이 강아지 같은 자식들아! 왜 몰래 기어들어와서 나무를 함부로 꺾느난 말이야!”
호령하는 수위의 콧등이 사뭇 실룩거립니다.
나와 영수는 무서움에 질려서 조금전까지 싸우던 용기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고양이에게 물린 쥐처럼 떨기만 하였읍니다.
“이놈들! 너희들의 집이 어디냐? 가서 너희들 부모를 만나야겠다.”
수위의 분은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습니다. 그때입니다.
“이젠 그만 용서하세요. 저렇게 코피가 터지고 서로 얻어터졌으니 다음부터는 그런 일이 없겠죠.”
하며, 만류하는 사람이 나섰읍니다. 약방 아저씨였읍니다. 그래도 수위는 우리들의 목덜미를 움켜쥔 채 씨근덕거리며 놓지 않습니다.
“자, 그만하고 놓으세요. 애들도 다시는 나무를 꺾지 않을 것입니다.”
약방 아저씨는 열심히 수위의 손을 잡고 만류합니다. 그러자 수위도 할 수 없다는 듯이 우리들의 목덜미를 놓으며,
“이녀석들, 다시한번 나무를 꺾어봐라, 그때는 정말 용서 없다.”
하고, 다짐하는 것이었읍니다.
“너희들은 참 공연한 짓을 했구나. 이것 봐, 이처럼 향기로운 아카시아꽃이 이렇게 짓밟혀 아깝게 되고, 이 코피, 그리고 그 얼굴은 뭐냐!”
약방 아저씨는 조용하면서도 엄하게 책망하십니다. 그러다가 나와 영수의 손
을 잡고,
“너희들 나와 함께 가자!”
하며, 잡아끄는 것이었읍니다. 우리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겁이 덜걱 났으나 어쩔 수 없이 죄인처럼 그대로 끌려갔읍니다.
약방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온 약방 아저씨는 약솜으로 영수의 코피를 말끔히 닦아주고 이윽고 약물로 내 무릎의 상처를 닦은 다음 옥도정기를 발라주는 것이었읍니다. 옥도정기가 상처에 스며들어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아파서 나는 상을 찌푸렸읍니다.
“대장부가 그까짓 것을 못 참아?”
약방 아저씨는 이렇게 웃는 말을 하며 상처를 후우후우 불었읍니다. 그 시원함, 나는 새삼스럽게 약의 신비스러움을 깨달았읍니다.
우리들의 상처를 치료해준 약방 아저씨는 나와 영수의 손을 맞잡게 하고,
“다시는 싸움을 하지 말자고 서로 맹세해!”
하고, 명령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쑥스러운 것 같아 서로 눈을 내리깔았읍니다.
“서로 맹세하지 못하겠어?”
다시 약방 아저씨의 엄한 명령이 떨어졌읍니다. 만약 그래도 잠자코 있는다면 무슨 벼락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무서운 명령이었읍니다.
“다시는 싸움을 하지 말자!”
나는 머리를 숙인 채 꺼질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읍니다. 그러자 영수도 머리를 숙인 채,
“다시는 싸움을 하지 말자.”
하고 속삭이듯 말했읍니다.
“됐어, 됐어! 정말 앞으로는 싸우면 못써. 이게 뭐람, 옷이 이렇게 찢어지고··…·”
조금 전의 엄한 표정은 어디로 몰아넣었는지 약방 아저씨의 넓적한 얼굴에는 웃음이 빙그르르 감돌았읍니다. 이때 바람이 살랑거리며 아카시아의 향긋한 꽃
냄새를 몰아왔읍니다.
“이것 봐. 이렇게 자연은 우려들에게 향기로운 꽃냄새를 갖다주는데 그 자연을 함부로 꺾으면 어떻게 되지?”
하며, 약방 아저씨는 우리들의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너희들은 아카시아꽃을 먹으려고 꺾은 모양인데 그것을 함부로 먹으면 못써요. 그 꽃속에 무슨 벌레가 들어 있는지 알아? 그러니까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야.”
하고, 차근히 말해주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침에 방으로 날아든 꽃속에 개미가 있었던 것이 새삼스럽게 생각나서 약방 아저씨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었읍니다.
“내가 우리 다락을 치우고 조그만 도서실을 만들어줄 테니까 틈이 있으면 와서 책을 읽도록 해라. 그리고 너는 나와 같이 이 옆의 세탁소에 가서 옷을 꿰매 입고 가거라.”
약방 아저씨는 영수를 보낸 후 나를 데리고 세탁소로 가서 찢어진 옷을 꿰매
주셨읍니다.
그후 우리들은 약방 아저씨와 무척 친해졌읍니다. 그래서 약방에 자주 놀러 가게 되었읍니다. 우리가 놀러갈 때마다 약방 아저씨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말을 많이 들려주었읍니다. 그리고는,
“빨리 도서실을 만들어야 할 텐데----”
하고, 걱정을 하시기도 하였읍니다.
약방 아저씨는 고향인 황해도에서 학교 일을 보다가 1 ·4후퇴 때 혼자 피난 왔다고 합니다. 그때 두고 온 어린 아들이 꼭 우리들 만할 것이라고 하며 쓸쓸
히 웃음짓기도 하였읍니다.
어느 날 약방 아저씨는 약속대로 다락을 정리하고 도서실을 만들어주셨읍니다. 우리들은 그 도서실을 〈샘물〉이라고 이름지었읍니다.
샘물도서실에는 책들이 나날이 늘어갔읍니다. 세계명작 위인전, 학습 수련장 그리고 재미있는 만화 등이 약 백 권 가량 되었고 달마다 나오는 학생 잡지도 매달 사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너희들뿐만 아니라 너희들 친구들도 데리고 와서 같이 봐도 좋다. 그러나 이 도서실의 책임은 너희 둘이서 져야 한다.”
“약방 아저씨의 이러한 말에 나는 영수와 의논해서 우리와 함께 책읽기를 약
속하는 아이들을 데려오기도 하였읍니다.
“그래, 책을 많이 읽어라. 책을 많이 읽고 착하고 씩씩한 소년들이 되거라.”
약방 아저씨는 가끔 우리들이 오손도손 모여앉아서 책을 읽는 생물도서실에 올라와서는 이렇게 격려해주시기도 하였읍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입니다. 약방 아저씨는 집을 우리들에게 맡기고 창경원에서 열리는 고향사람들의 모임에 간다고 나갔읍니다.
“약방 아저씨는 너의 친척이니?”
그날 처음 온 창덕이가 내게 물었읍니다.
“아니, 친척은 무슨 친척------”
“그런데 왜 너희들을 위해서 이렇게 돈을 쓰니?”
“약방 아저씨는 늘 얼굴에 웃음을 띠고 었기는 하지만 몹시 외로운가봐, 그래서 애들을 좋아하는 것 같애.”
“아무리 그렇더라도 남을 위해서 돈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지만 약방 아저씨는 여느 사람들과는 달라.”
이렇게 대답하는 내 머릿속에는 언젠가 약방 아저씨가 하시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쓰겠니, 가족도 없으니 말이다. 혹시 돈이 많이 벌기만 하면 사회사업이나 해보겠다만 이 약방으로는 겨우 밥밖에 먹을 수 없 으니 그런 사업도 할 수 없구------.
하며, 한숨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말을 창덕이에게 들려주었읍 니다. 그런데 마침 내 말이 끝났을 때입니다.
“ 이야!” 를--
떠드는 소리가 밖에서 들렸읍니다. 연기가 갑자기 우리 도서실에도 뭉클뭉클 기어듭니다. 우리들은 왈각 겁이 나서 밖으로 뛰어나갔읍니다.
불은 바로 옆의 세탁소에서 일어났읍니다. 휘발유에 불이 당겼는지 순식간에 불길이 무섭게 타오르고 연기가 하늘을 덮었읍니다.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며 불을 끄느라고 법석이지만 불은 사정없이 확 번져서 어느덧 약방에까지 당겼읍니다.
“불! 불! 얘들아, 빨리 약을 꺼내자!”
나는 목이 터져라고 외치며 약방으로 뛰어들어갔으나 약은커녕 연기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어서 그냥 뛰어나오는 수밖에 없었읍니다.
“약방 주인은 어디 갔어?”
사람들은 저마다 외치며 물을 끼얹었지만 소방차가 왔을 때는 불길은 이미 세탁소와 약방을 완전히 삼켜버리고 다음 집으로 옮고 있었읍니다.
이렇게 불이 난 후 약방 아저씨는 재산을 몽땅 잃고 알몸으로 우리 동네를 떠났기 때문에 전혀 그 소식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렇게 북을 치며 당고를 팔러 왔으니 내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
“할수없이 이 장사를 시작하긴 했지만 나는 얼마나 이 동네에 오고 싶었는지 .
모른다.”
약방 아저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읍니다. .
“이젠 다들 모였니? 민식이, 영수도 왔구나. 오늘 하루쯤 못 팔았다고 설마.
굶어죽진 않을 태니 이것은 너희들이나 먹어라.”
약방 아저씨는 당고를 꺼내어 아이들에게 쭉 나누어줍니다.
“민식아! 너도 한 꼬치 먹어라.”
그러나 나는 선뜻 손을 내밀 수가 없었읍니다. 아마 약방 아저씨가 그대로 약방을 하여 사주시는 것이라면 나는 얼른 받았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받을 수가 없었읍니다.
“민식아! 너, 내가 주는데 안 받겠니?”
약방 아저끼는 악간 노여운 듯 나를 쏘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할수없이 당고를 받았읍니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는 성움이 북받쳐서 훌쩍훌쩍 울지 않을 수가 없었읍니다.
“울지 말아라, 민식아! 맨주먹으로 피난와서도 살았는데 무슨 걱정이겠니.
내가 곧 돈을 많이 벌어가지고 이 동네로 다시 올께-----”
그러나 약방 아저씨의 말에도 울음이 섞인 것을 나는 깨달았읍니다.
이윽고 불탄 자리를 한참동안 애처롭게 바라보던 약방 아저씨는 시름없이 당고 통을 매고 터벌터벌 걷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가련한 뒷모습을 나는 눈물로 바라보며 언제까지나 서 있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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