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상 하나: 인지과학 - 사람은 어차피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아래의 글을 읽어 보세요
- 눈으로 보는 것과 인지하는 것은 전혀 별개다 -
이거 완전대~~~~박!!! 캠릿브지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 은 중요하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망 창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 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다 읽으셨습니까~?
그럼 다시 한번 한자 한자 또박 또박 읽 어보세요. 순간 놀랄껄요ㅋㅋ.
2. 현상 둘: 플라톤의 동굴
- 보는 것이 실은 보는 것이 아니다 -

▲ 류가미의 환상여행 32회 동북아 (9) 선종 과 유교
노하우업 연재칼럼 - http://cafe.daum.net/knowhowup/Dnrv/33
***********
플라톤이 예술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이 예술의 중심에 미술을 놓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중심에 음악을 놓았습니다
※ 아프로만 주석: 플라톤은 '미술 - 즉 '시각' 적 환상' 이 집단에 대한 영향력이 더 크다고 보았기 때문
▲ 류가미의 문예기행 (6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노하우업 연재칼럼 - http://cafe.daum.net/knowhowup/HgGz/7
***********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실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가 아닌 모사물의 세계인 감각적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데아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오직 감각적인 세계를 벗어날 때뿐이다.
플라톤 사상은 감각적인 것과 지성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데서 출발한다. 감각적인 것이란 우리가 흔히 오감이라고 부르는 감각과 그 감각의 대상들인 물질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 박홍순의 [미술로 보는 서양철학사] 플라톤, 서양의 공자
노하우업 / 컬쳐클럽 - http://cafe.daum.net/knowhowup/Dnry/99
3. 현상 셋: 마야 - '가식' 과 '의식화'
아프로만 2013.01.16. 20:36
전에도 언급했지만, 영화얘기 나오면 참 난감한게, 개인적으로 나는 영화를 철두철미 재미로만 본다.
심오한 의미? 예술영화? 이 딴거 내겐 별로다. 재미 그것도 말초적 재미 추구가 나의 영화 취향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딱~ 내 취향이다. 영화는 시간 때우기로 본다.
다른 장르는 메시지나 의미 가지고 후까시도 잘 잡으면서 으째~ 영화분야만 철저히 속물인지 나 스스로도 참 신기하고 히안한 노릇이라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 ( 이라고 쓰고 변명이라 읽는다) 해 보니, 그런거 같다. 나는 인간의 감각과 인상에 대한 어떤 불신이 있다.
동물의 원천적 감각 종류로 보면, - 촉각, 후각, 미각, 청각, 시각 - 이렇게 '5감' 이 있다.
가장 하등의 감각이 원생동물의 '촉각' 이고 가장 고등감각이 '시각' 이다.
그러나 '교란' 의 여지가 가장 많은 것이 고등감각 '시각' 이고, 가장 적은게 하등의 '촉각' 이다.
마술이나 야바위 쇼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대상이 시각에 의존하는 구경꾼이다. 그러나 맹인은 못 속인다.
음악은 청각, 음식은 미각, 미술이나 책을 읽는 것은 시각이지만, 영화란게 뭔가? 시청각 이다. 고등감각이 모두 동원된 복합감각이다. 그만큼 '교란' 여지가 많다. 나는 이걸 '마야' 라고 보는 것이다.
'마야' 의미는 감각나름인 거다. 영화가 그렇다
4. 현상 넷: SBS 정글의 법칙 - 리얼리티 신드롬 호들갑 쇼 ~
아프로만 2013.02.09. 23:49
리얼이냐? 연출 Show 냐?
카메라 앞에서 인간이 리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한마디로 우끼는 노릇. - 우리결혼했어요? / 1박2일? / 아마존의 눈물? / 정글의 법칙?
- 인간과 카메라(=구경꾼의 눈) 가 결합하는 것은 본시 Show 가 맞다.
리얼? 진정성? 우끼지마~ 애당초 리얼 따위는 없다

SBS <정글의 법칙> 리얼리티 조작논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591
아프로만 2013.02.14. 20:43
김병만의 명언 전적으로 맞다 - " 사람앞에 카메라가 있으면 그건 결코 리얼' 일 수가 없는거다 "
짐승이나 자연다큐만 촬영해도 100% 리얼' 일 수는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 카메라에 낑겨들었다면 이걸 '리얼' 이라고 여기는 그 자체가 '정신병' 아닌가?
정글의법칙 - 리얼 아닌 거 몰랐다고? 몰랐다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쇼~!" 다.

▲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케빈 카터(Kevin Carter)기자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사진이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굶주림에 지쳐서 엎드린 소녀와 그 소녀의 죽음을 노리는 독수리
아프리카 수단 내전의 비극을 보도한 1993년 3월26일자 뉴욕타임즈에 실린 상기의 사진으로 1994년 5월 카터기자는 언론계 사람들에게 가장 명예로운 ‘퓰리처(Pulitzer)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개월 뒤 7월 케빈 카터기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33세였다
아프로만 / 2013-02-14
■ 노하우업 - http://cafe.daum.net/knowhowup/Dnqf/731
첫댓글 김병만만 맞는 소리했을 뿐, 방어하는 방송국이나, 질타 하는 논객이나 몽조리 '쇼~' 하고 있다
- 본질보다 현상이 먼저다 - 아프로만 어록
신드롬에 편승하려고 하는 이유.. 숟가락 들이밀려고..!! 한마디로 '지분 -영향력- 에 대한 욕심' 때문이죠.
이 역시 '판단'을 "개입"시키기 때문입니다. 판단을 개입시키니까 무리하게 '비약'시키는 행동도 서슴치 않는 것이죠.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정말 드뭅니다.
그래서 노무현은 죽어야 했던 것이죠! "부끄러움을 알았기 때문에"
고로 결론은 또 다시 도돌이 표입니다 "태초에 부끄러움이 있었다!" - 아프로만 어록.
다 어차피 쇼라면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를 두고 김동렬 님은 너무 거창하게 구조적 관점을 들이 밀었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이 문제가 이렇게 번질 수 밖에 없는 건 정법이라는 예능 자체가 '김병만의 캐릭터 쇼'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흥할 수 있었는데 바로 그 뿌리를 '의심'받게 되었으니 더는 버틸 수가 없게 된 것.. 이게 정법 사태의 핵심입니다.
김동렬님은 거창한 구조 분석을 하기보다 '흥하는 이유와 망하는 이유는 같은 법'이라는 본인의 '강론'내용을 강조하는 것이 더 나았습니다. 그것이 구조론적 관점에서도 더 타당한 분석이 될 수 있구요
구조론은 '현상'을 분석하는 '툴'이라는 게 김동렬님의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구조론 자체로 현상을 살필 때에는 '판단'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건조하게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나열하고 그것의 상호관계를 짚어주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김동렬님은 여기서 더 나가버렸습니다. 그게 앞말로 뒷말을 까고 뒷말로 앞말을 치받는 '삼천포'로 빠진 원인이지요. 정법 얘기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습니다. -_-;
판단이 개입하면 '비약'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물론 김동렬님이 정법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암묵적 카르텔을 논한 것이 아주 말도 안되는 '소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건조하게 핵심을 추려냈다고 보기도 어렵죠.
이 얘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을 찍었던 케빈 카터가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이것이 바로 '현상과 판단'이라는 관점에서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어서 수단의 실상을 고발하는 게 나았던 것인지? 아니면 소녀부터 구해야 했는지 무엇이 옳은지를 논하는 것은 그래서 저마다 다른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 자체를 다룰 때는 되도록 판단과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이걸 제대로 해주지 못하게 되면 '개입'이라는 과정을 한번 더 거치게 되죠. '개입'! 이것이 바로 '왜곡과 교란'이 일어나게 되는 첫번째 단초! 입니다.
하지만 '판단'의 개입이라는 것을 아예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인간이라고 보긴 어렵겠죠.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자신이 평소에 어떤 판단의 '기준'을 갖고 있는가를 설정하고 이를 '명시적'으로 공표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분석에 '판단'이 개입했다면 이를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 언론과 대한민국 언론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죠. 팩트에 대한 판단이 갈라진다는 점을 NYT나 WP는 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판단의 기반이 되는 '팩트'에 대해서는 최대한 거리를 두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대한민국 언론에는 이게 없죠. 그저 점잖게 중립적인 척만 할 뿐입니다.
YTN 이나 MBC 노조 문제를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해 보면서 느낀 것은 바로 이 '중립의 환상'에 우리나라 전체가 홀라당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더라는 것이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권력의 방송장악>이라는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터져도 이에 대한 해결책 역시 딱히 나오기가 어렵죠..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_-;;
예전에 아프로만님께서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라는 논제를 제기하면서 하셨던 말씀이 최소한 모욕은 주지 말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팩트와 판단 정도는 구별해주기 바랍니다. 기준을 분명히 명시하고 판단이 개입한 분석이라면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비겁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저널리즘입니다!
다시금 또다시 도돌이표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이번에도 입증된 것입니다! 태초에 부끄러움이 있었다! - 아프로만 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