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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매거진] 2018-04-06>
'눈꺼풀' 오멸 감독
사유 잃은 시대 앞에 서다
박꽃 기자
어려운 영화와 마주한 우리는 종종 권위 있는 전문가의 해설을 듣고 싶어 한다. 무얼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이미지와 불친절한 상징들을 과연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려 든다. 타인이 내려준 답을 습득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이해하는 시대적 변화 앞에서 가장 구차하고 민망해지는 건, 아마도 그 작품을 내놓은 창작자일 것이다. 총력을 기울여 빚어낸 작품에 소중히 은유해둔 이야기를 말로 재차 설명해야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의 직업은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닌 해설자일지도 모른다.
고고한 흑백 영상과 한 서린 제주 전통 음악으로 4.3 희생자의 혼을 위로한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2012)의 오멸 감독은, 당시만큼이나 절절한 마음으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눈꺼풀>을 완성했다. 참사 직후의 원통함과 분노, 그리고 먹먹함을 담아낸 영상에는 그만의 우직한 화법이 녹아있다. 때로 과도하게 축약된 듯하며, 불친절하게 느낄 정도로 상징적인 장면이 오래간 스크린을 잠식한다. 비극을 대하는 예술가의 예우를 다하기 위해 성심을 다하는 오멸 감독이지만 기실, 감히, 소망한다. 타인의 해석에서 해방된 개인이 자신만의 사유로 작품에 다가와 주길. 오멸 감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제주 4.3 사건을 다룬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이하 ‘지슬’)일 텐데, 마침 4월 3일에 당신을 인터뷰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
4월만 되면 내 시간이 멈춰버린다. ‘지슬’ 관련 행사와 인터뷰가 너무 많다. 날 찾아주는 건 고맙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라 4.3을 찾아야 한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관련된 장소를 찾아가거나…
‘지슬’이 대중에게 제주 4.3 사건을 가장 잘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 덕일 것이다.
이러다가 영원히 ‘지슬’ 감독으로만 남는 것 아닌가.(웃음) 한 가지에 푹 빠져서 작업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떨 때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져 징글징글하다. 새로운 작업 도중에도 4월만 되면 여기저기서 계속 연락을 취해와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한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언제까지 남의 행사만 도와줄 수 있겠나. 나도 (새로운) 내 작업을 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핸드폰 번호도 굉장히 자주 바꾼다.
아마도 당신이 말하는 새로운 작업 도중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을 것이다. 2014년 그해 소규모 스태프와 함께 무인도로 들어가 <눈꺼풀>을 촬영했다.
시나리오를 쓰고, 포털 사이트의 항공뷰 기능으로 다도해에 있는 수천 개의 섬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며칠간 그 작업을 반복하면서 ‘그래 이 섬 같다’고 느낀 곳이 있다.
항공뷰로 바라보는 섬이라… 무얼 기준으로, 어떤 방식으로 섬들을 구분하고 촬영에 적합할 것으로 판단했는가.
대개 다도해의 섬은 북쪽에 마을이 있다. 큰 파도가 남쪽 태평양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그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다. 제주에서도 서귀포에 내려앉는 태풍이 더 강하다. 그러니 북쪽에 집 몇 채만 남아있는 섬이라면 그곳은 척박한 곳이라는 의미다. 항공뷰로 그런 섬을 찾았다.
이른바 ‘묻’ 출신은 알기 쉽지 않은 사실이다. 죽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들른다는 섬 미륵도를 구현하려고 일부러 척박하고 인적 없는 섬을 찾아 들어간 모양이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60도 정도의 경사가 나타나더라. 그야말로 달리기를 할 수 없는 섬이었다. 사람이 살 수 없어 지난 몇 년간 버려진 듯한 곳이었다.
영화는 죽은 자 마지막 가는 길에 먹일 따뜻한 떡을 손수 만드는 노인(문석범)의 이야기다. 동시에 쥐, 지네, 뱀처럼 야생의 섬에서 사는 생명체를 오랜 시간 관찰하기도 한다.
생명을 이야기해야 죽음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비되는 감정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세계가 있다. 무엇보다 벌레나 곤충 같은 생명체를 우리들이라고 생각했다. 다채로운 생명이 존재하는 섬이라는 하나의 세계에서, 그들은 때로 떡 짓는 노인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그 노인의 명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쥐라는 존재의 나쁜 영향을 받아 죽어가는 상황도 생긴다.
언론시사회 당시 영화에 등장하는 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가 집권한 시절 이후 우리 사회의 어떤 시스템이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오직 쥐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는데.
영화에서 떡 찧는 노인의 절구는 결국 부서진다. 노인은 그게 다 쥐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쥐가 절구를 부순 건 아니다. 노인이 분노하면서 쥐와 같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MB에게 잘 보이려고 줄 선 사람이 그 당시 한 둘이겠는가. 다른 한편에서는 MB로부터 비롯된 이런저런 사건의 핵심으로 들어가서 맞서 싸우는 사람도 있었고,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외면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회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는 누군가의 분노, 혹은 무관심 등 다양한 감정이 상호작용하고 그래서 문제가 더 극대화된다.
<눈꺼풀>은 그중에서도 특히 ‘무관심’을 통렬하게 견제하는 것처럼 읽힌다. 무언가를 바라보기 위해 졸음을 견디고 눈꺼풀을 도려냈다는 달마대사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우리의 무관심과 방치가 세월호 사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작게 보면 안전불감증이 문제였지만, 크게 보면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자행되고 있는지 우리들이 속속들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 점에서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작품의 톤이 전반적으로 절절하고 고통스럽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작업한 만큼, 무언가를 토해내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원통함과 분노가 너무 강했다. 아마 배가 침몰하는 장면을 본 모든 이들이 누군가에게 빌었을 거다. 미륵이 됐건, 부처가 됐건 제발 아이들이 나오게 해 달라고… 종교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통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기도밖에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도 있었지만 당시의 막연하고 먹먹한 감정으로 작업했다.
공교롭게도 블랙리스트의 악영향으로 <눈꺼풀> 개봉이 쉽지 않았고, 4년 만에 드디어 극장에 걸게 됐다. 정작 기자들 앞에선 “영화도 늙는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4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세월호 선장이 구속되고, 해경도 해체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구속됐다. 너무나도 다채로운 시간이 흐르다 보니 당시의 분노 감정도 조금 다른 형태로 변화한 것 같다. 때로는 기억에서 그날이 조금씩 멀어지는 걸 느낄 때도 있다. 이런저런 감정이 층층이 쌓인 상태에서 영화를 다시 보니, 참사 직후 상황에 찍었던 영화가 저-어 먼 과거에 있는 것 같더라.
<눈꺼풀>은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씻김굿’이자 ‘진혼곡’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역할이기도 한가.
예전에는 시대를 이끌고 사람들을 깨우치는 게 예술이었던 것 같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후세에나 그들의 존재와 작품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예술이 시대를 못 쫓아간다. 사회의 변화하는 속도가 더 빠르지 않나 싶다. 고등학생이 국어의 문법을 바꾸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과연 예술은 뭘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예술이 할 수 있는 건 시대를 끌어안는 것이다.
시대를 끌어안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지금껏 꾸준히 존재해왔지만 앞으로는 그런 작업이 더 많이 필요하다. 정말로 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예술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그럼 뭘 더 하겠는가.(웃음) 물론 상업적인 역할을 포함해 여러 기능을 하는 게 예술이긴 하지만, 그 본질이 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당신처럼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활동을 상당 부분 제약할 것이다. 작업을 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기관의 지원금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자기 직업으로 버는 돈, 그러니까 소득이라고 할 게 없다. 4대 보험도 안 되고, 얼마나 처참한가. 예술가는 갈수록 사회적 약자가 돼 간다. 자기가 약자라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약자를 바라본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나 먹고살기도 힘드니까, 그저 살기 위해서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예술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바라본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돈을 벌면 좋지만, 예술가의 소명 역시 너무나 중요하다.
앞으로는 어떨까.
서로의 숙제가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에 천만 명이 드는 영화가 나오는 비율만큼 독립, 예술영화 역시 일정 비율의 관객과 수요층이 있어야 한다. 영화도, 미술도, 연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문화는 이미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쪽으로 기울어졌다. 시대가 바뀌고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이 소비 중심으로 바뀌었다. 순수 예술은 더 이상 위기도 아닌, 소멸 단계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는 종종 길을 잃는다.
서로의 숙제라고 말했으니, 각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예술이더라도, 왜 그런 작업이 이뤄졌는지 관심을 두고 찾아봐 준다면 예술은 언제고 존재할 수 있다. 대중이 스스로 사유하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가면 갈수록 고민하기 싫어하는 세대가 나타난다. 산다는 것에 쫓겨 사유나 사색이라는 단어와도 멀어진다. 안타깝다. 일본은 아직도 작은 영화를 꾸준히 찾는 관객층이 있다. 그런 분위기에 국가적 복지가 더해지면 예술가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가성비’와 ‘가심비’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다. 달리 해석하면, 일단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나면 자신이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의 만족감을 꼭 되돌려 받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순수예술의 경우 그 만족감을 보장받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서 3년, 5년씩 혼자 해답을 찾기 위해 쫓아다닌 적도 있다. 작품의 작명 이유와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그 세계가 온전한 나의 것이 된다. 나와 내 앞 세대는 그렇게 사유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지만 요즘은 질문과 대답으로 누군가의 궁금증이 손쉽게 해소된다. <눈꺼풀> 같은 영화도 자리를 만들어 해설을 해줘야 한다. 찍은 사람 입장에서는 설명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그런 자리에 찾아온 이들은 이론적으로는 작품을 이해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 자신의 것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순수예술을 찾아 나서지 않는 관객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는 것 같다.
작품 한두 번 해보나…(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많이 팔리든 안 팔리든, 재미가 있든 없든, 나만의 사유를 지속하는 중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GV에 성실히 임하는 걸 보면 변화한 세대와 요즘 대중에게 어느 정도 협조하고 있는 것 같은데.(웃음)
당연하다. 그러지 않으면 대중과 너무 많이 멀어질 수도 있다. 영화를 보는 방식이 과거와는 다르다. 가끔은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나 싶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뒤돌아버리면 관객은 그 뜻을 알기를 포기한다. 무엇보다 세월호 영화를 찍어놓고 ‘알아서 보십시오’ 하는 건 엄청나게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아픔을 이야기해놓고 다 만들었으니 끝이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불손한 것이다.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것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다만 관객의 사유를 막을 정도로 방해하지는 말자는 생각이다.
그 타협점을 늘 고민할 것 같다. 얼마큼 설명할 것인가, 어디에서 말을 아낄 것인가.
항상 그렇다.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도 그저 찍고만 있을 뿐 뭘 찍는 건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함께 작업하는 것이니 그럴 때는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나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닌지 돌아본다. 하지만 어떨 때는, 이건 좀 스스로 찾아보면 좋을 것 같은 싶은 마음도 든다. 그 간극이 참 크다.
다음 작품도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라고 들었다.
계속 쓰고 있다. 어떤 작품이 될지는 해봐야 안다. 말 먼저 던지는 순간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돼 버린다. 어떤 제약도 없이 싸워나가야 한다.
잘 알겠다.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다. 최근 소소하게 기쁜 순간이 있었다면.
음… 술값 내기 당구에서 이길 때.(후후후) 사회가 날 즐겁게 해 준 적도 거의 없고, 주변 사람들의 사연도 우울한 경우가 더 많다. 일상 속 즐거움이 잦지는 않다. 그래도 술값 내기 당구에서 이기면 기분 좋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