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김영부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등)이 10시 1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다. 날씨도 차갑고 새해가 시작된 데다가 국민애도기간이어서 그런지 산행객들이 팍 줄어들어 주차장도 자리가 많이 남았고, 올라가는 길도 한산하였다.
올라가면서 지난주에 이성조와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친구들에게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하였다. 조진흥이 세상을 떠난 이야기, 이태호의 건강이 걱정스러우며, 김재복은 건강을 회복하였고, 정한기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함평 월야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약사암에 도착하였다. 지난주까지 석등(石燈)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음양탕을 만들어 마셨는데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목감기 기운이 있는 것이나 윤상윤 박남용 등이 모두 감기를 앓고 있는 이유가 석등 옆에 걸려 있는 플라스틱 표주박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소독되지 않은 표주박을 사용하면서 감염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 표주박을 사용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남용도 윤상윤도 모두 그 표주박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모두 감기에 감염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된 것이다.
해우소에 들러서 근심을 해결하고 하산하였다.
박남용이 한창 수의대 병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의 전국 농가에서 앙골라라는 품종의 토끼를 사육하고 있었는데, 그 품종을 기르게 된 것은 털이 많아서 그 털로 모직물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에 앙골라에 전염병이 발생하게 되었고, 농장주들이 선진 토끼농장으로 가서 직접 배우러 다니는 과정에서,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았던 결과 순식간에 전염병이 전국으로 확산하게 되었고, 그 전염병의 병원균을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는데,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한 대처방법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관망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남대 수의과대학에 전자 현미경이 도입되었고, 박남용이 그 전자현미경에 빠져 있었는데, 전국으로 전염병이 확산되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어느 날 광주에 까지 전염병이 확산되었고, 광주에 발병한 토끼농장으로 박남용은 온 가족을 대리고 방문하였고, 백여 마리의 병든 토끼를 온 가족이 수의과대학 해부학실로 옮겨서, 학부생과 대학원생, 전문 수의사와 제약회사 전문가 등을 총 동원하여 밤을 세워가면서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여 드디어 병원체를 발견하였고, 그것이 바이라스라는 것을 찾아내었으며, 전 세계에서 앙골라 토끼가 전염병에 감염되었다가 선제적 치료에 성공한 사례를 수집하였으며, 우리나라도 앙골라 전염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학계에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크게 성공한 경험담을 들어보았다. 그렇게 활동한 박남용이 사범학교 출신이 전무한 수의과 대학에서 고군분투하여 수의과대학 학장이 되었고, 퇴직 전 몇 년 동안에는, 우리나라의 어느 수의과 대학에서도 하지 못한 사업을 수행해 내기도 하였다.
전 세계의 수의학 석학(碩學)들을 초청하여 전남대 수의과 대학에서 세계적 규모의 학술발표회를 개최하였고, 전남대 수의과 대학을 전 세계에 홍보하여 전남대 수의과 대학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이바지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거기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전남대 수의과 대학을 졸업한 제자들이 출연한 돈으로 이루어낸 쾌거였던 것이다. 제자들이 박남용을 그만큼 신뢰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수행해 내면서도 전혀 자기의 업적을 과시하거나 생색을 내지도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일이 또 있다. 전남대 수의과 대학에 동물병원을 지을 때, 현금 1억원을 쾌척한 일이다. 박남용이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전남대 수의과 대학의 장래를 위해서 자식에게 주는 것보다 후학들을 위해 학교에 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동물병원 3층에 <박남용홀>을 만들어 박남용의 거룩한 뜻에 보답한 것이다. 퇴직하고도 후학들을 위해 수의학의 교제들을 집필하느라 삼복더위의 긴 터널을 지내오며, 이겨낸 일들은 아무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지금은 명예교수로 활동하면서 명예교수 회장을 역임하였고, 매월 명예교수 집담회(集談會)를 개최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을 보고, 친구이지만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을 해 낸 그 친구가 참 존경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한다.
다시 식당으로 모였다. 김상문도 도착하여 6명이 점심을 먹었는데,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당에 고객들이 모두 나간 뒤에까지 우리만 남아서 이야기를 나눈 것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 시 : 2025.01.02(목)
참 가 : 김상문 김영부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등 6명
불 참 : 강공수 윤정남 이용환 이용환 등 4명
회 비 : 60,000원
식 대 : 41,000원 지출(애호박찌개 4, 김치찌개 1, 공기 1 등), 이정훈 선배가 준 막걸리와 사이다 반납으로 5,000원 공제함
금 일 잔 액 : 19,000원
이월 잔액 : 541,000원
총 잔 액 : 560,000원
끝
첫댓글 조진흥 친구의 부음을 늦게나마 듣고 너무 애닯고 허무합니다. 늠름하고 핸섬하고 멋진 친구였는데 어인일이오.
아주 전전에 광주 진흥 친구 집에 애사가 있을때 조문하고 황망(?)중에 부의금을 전하지 못하고 귀가한 후 늦게사 알고 다시 불야불야 재방문한 일이 생각납니다.
"삼가 친구의 명복을 빕니다"
기덕문 哭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