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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로
- 06:00 우리집 출발
- 07:29 은파호수공원 도착
- 이동거리 : 88km
- 소요시간 : 1시간 29분
- 머문시간 : 32분
▽ 내비야 내비야 군산 은파호수까지 가려면 어디로 가야헌담...
추천도로로 가야 쓰겄는디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국도는 가히 고속도로 못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4차로에 아스팔트 노면에 시멘트의 고속도로보다 승차감도 좋고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가는 추천도로는 97.3km 1시간 12분 걸리며 통행요금 3,400원
▽ 국도로 가면?
거리 80.5km, 도착시간은 07시 17분
거리는 무려 16.8km가 가깝고 시간은 25분 더 걸린다고 하는데 고속도로는 정해진 시간보다 통상 더 걸리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요소이다
국도로 가자
□ 오늘 우리가 쏴 댕간곳
20 은파호수공원 21. 군산 예술의 전당 22. 동국사 23. 일제 강점기 군산역사관 24. 영화시장
25. 이당미술관 26. 군산근대역사 박물관 27. 옛군산세관 28. 근대미술관 29. 안중근의사 여순감옥전시관
30. 근대건축관 31. 송강식당(중식) 32. 해망굴 33. 월명공원 34. 신흥동 일본식 가옥 35. 초원사진관
36. 신흥동 말랭이 마을 37. 군산 항쟁관 38. 경암동 철길마을 39. 군산시청 40. 이영춘 가옥 41. 이성당
42. 금강미래 체험관 43.금강습지 생태공원
▽ 은파호수에 도착하자 이게 웬떡?
그기 와 떡이냐.
아이스끄리무이다.
영광님 고맙심더
뒤이어 강대장의 코피(?) 한잔씩
▽ 이곳 은파호수공원은 5백리도 아니되는 군산 구불길을 천리길이라고 떠벌이는 군산시의 허풍에 장단을 맞춰주는 제 5길로 마실길이라는 이름의 길이다.
구불 5길은 옥구저수지를 한바퀴 돌고 논길따라 이곳 은파호수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이라고 안내를 하고 있다.
옥구저수지가 군산호수로 이름이 바뀐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옥구저수지인가...
▽ 호수공원에 내려 둘레길로 들어서는 입구에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고은의 시가 지나는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다.
고은이 이곳 사람인 모양이다.
고은이 뉘기여?
고은도 모리냐?
▽ 고은은 1933년 이곳 군산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문단에 찬란한 존재로 우뚝솟은 매우 특이한 사람이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평론가 등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정렬의 화신이다.
학력은 군산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것이 전부이나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할 정도로 석학의 경지를 구축한 천재이다.
본명은 은태인데 전쟁이 일어나던 1950년에 자신의 이름자에서 태자를 떼어버리고 고은이라고 개명을 한다.
1952년에 그 유명한 효봉스님을 만나 승려생활을 하게 되는데 법명은 일초이다.
그로부터 10여년간 중이 되어 방랑생활을 하다가 인생의 허무를 느낀다.
그는 1963년에 목포에서 제주도행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는데 배를 탄 목적이 적당한 장소에서 빠져 죽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자살을 실행하지 못하고 제주도에 도착하게 되었다.
제주도에 도착한 그는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며 그의 끼가 묻어나는 작품활동에 그의 인생을 묻기 시작한다.
천재는 보통 성격이 괴팍하다고 하는데 고은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노벨상 후보에 여러번 올랐던 그는 80대 중반의 나이에 미투에 걸려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미투???
성폭력사건이다.
80대 중반에 성폭력 사건이라.
정력이 남아 돈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동서 고금을 통털어 영웅호걸들은 성문제에도 남다른 경지(?)를 구축하지 않았던가.
그런 정열이 있었기에 그들이 이룩한 업적 또한 남다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 우리들의 필수과목 단체사진 하나
▽ 단사 두울
▽ 참 좋은 세상이다.
아니 참 무서운 세상이다.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몰래카메라에 찍히며 살고 있지 아니한가.
씨씨티비 때문에 소매치기가 없어졌다고 한다.
무슨말을 할려고 서두가 그리 기냐.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동선이 핸폰속에 빼도 박도 못하게 기록이 되고 있다.
- 출발시각 07:42분
- 소요시간 : 1시간 15분
- 이동거리 : 5.3km
▽ 은파호수를 한바퀴 돌기에는 우리는 시간이 없다.
아니 오늘이 이곳을 찾은지가 세번째
반바퀴만 돌자.
▽ 데크길로 가야 하는데 공사중인가 못가게 막아놨다.
▽ 도로따라 가야지 별수 있어...
▽ 호수에서 망중한(?)을 한가로히 즐기고 있는 백로 한마리?
야 기기 와 백로냐?
기럼 무시기?
그건 기러기다 기러기...
둘따 땡,,,
이건 물오리라고 하는 새님이다.
▽ 강대장이 소리친다.
왕대님 저거 찌거
물위에 비친 산과 나무가 고요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바람한점 없는 잔잔하기 짝이 없는 날씨다.
▽ 광장 안에는 하늘을 찌를듯한 조형물이 떠억 버티고 있다.
100주년 기념탑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군산이 시로 승격한지 100년이 되었다는 얘기인가?
가까이 다가가니 군산이 아니고 한국 농촌공사이다.
한국 농촌공사는 1908년 12월 이곳 군산의 옥구수리조합이 원조이다.
2005년에 한국 농촌공사로 사명을 바꾸었고 다시 2008년 12월 어촌을 합하여 농어촌 공사로 사명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사는 전남 나주시의 혁신도시에 위치해 있다.
▽ 한국 농어촌 공사 본사 <나주시 위치>
▽ 용과 거북아가 사랑을 했따꼬?
왕대의 눈에는 거북이 용의 여의주를 빼앗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세상만사는 보기 나름이다
▽ 미제지의 유래
송파선생께서 미제지라는 한자가 잘못됐다고 지적을 한다.
쌀미(米)짜에 방죽제(堤)짜를 써야 맞는데
지난 2020. 9. 14 백우회와 이곳을 지날 때 찍어놓은 정거(?)가 있다.
군산시장 님 米堤池 가 맞아요? 未提池가 맞아요?
▽ 이곳 방죽(?) 아니 호수이름이 예전에는 米堤池였다.
미제지라는 이름의 방죽은 둑을 높이고(1954년) 이곳에 유원지를 만들면서(1972년) 은파관광지로 개명을 한다.
사업가 유모씨가 이곳에 영업 허가를 낼때 아버지 호인 은파를 붙여 허가권을 따냈단다.
그때부터 역사가 깊은 미제지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곳은 은파관광지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른다.
그러다가 201년 7월 18일 은파호수공원으로 다시 개명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요기서 찰칵
▽ 사진도 찍고 에쓰엔에쓰에도 올리고 기념품도 받고
▽ 이곳 은파호수공원은 군산시 나운동과 지곡동에 걸쳐 있는 정말 오래된 방죽이다.
언제 축조했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다는데 중종 25년(1530)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미제지라고 기록된 것만 보아도 그 이전에 축조된 것만은 확실하다.
오래된 호수나 방죽은 어김없이 전해내려오는 설화가 깃들여 있다.
여기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이 호수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그 마을에 심술이 사납고 구두쇠인 영감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시주 나온 중에게 구두쇠 영감은 흙과 거름을 퍼주며 내쫓았다.
마음씨가 착한 며느리가 뒤쫓아 나오면서 쌀과 금은보화로 시주를 하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며칠 후 그 중이 나타나 며느리에게 이 마을에 큰 재앙이 닥칠테니 이 곳을 떠나라고 했다.
마을을 떠날 때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받았는데 마을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뒤를 돌아보니 집도 마을도 순간 물속으로 잠기는게 아닌가.
세살짜리 등에 업은 애기와 함께 순간 돌이 되고 며느리를 따라왔던 개도 인도하던 중도 돌로 변하였다고 한다.
바로 사랑의 중바우 전설이다.
이런 절설은 이곳 말고도 화진포, 황지, 의림지의 전설이 모두 비슷하다.
▽ 기럭지가 월마여?
총연장 370미터, 교폭 3미터에서 9.8미터
공사는 2005년 9월 26일부터 2006년 8월 30일까지, 다리전체는 용의 형상이란다.
▽ 사랑의 문을 지나
▽ 데크길 치고는 고속도로이다.
▽ 이곳 다리는 사장교이다.
▽ 그리고 멋을 한껏 부리고 있다.
누군가는 이 모양이 태극기 닮았다고 하는데 물결모양이 아닌가?
사실 태극기 모양은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에 있다.
▽ 식수대와 화장실
▽ 방아동
이곳 은파호수공원은 1954년 현재의 제방을 새로이 높여 증축하는 과정에서 10여개의 마을이 모두 수몰된다.
방아동도 그중 한 마을이다.
▽ 2020년 9월 14일 백우회와 찾았을때의 간판
4년의 세월흔적을 말해주는 것 같다.
▽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을 줌으로 땡겨 잡았다.
나운 현대마파트의 글짜가 또렸히게 잡히고 궁전예식장이라고 했는데 건물모양이 선명하게 걸려들었다.
예전 초창기에 핸드폰은 통화만 가능했다.
벽돌만하다고 하여 일명 벽돌폰이라고 부르가도 했다.
1980년대 초 한개의 가격이 300만원을 넘었었다.
부자들만이 가지고 다녔던 귀한 물건이었다.
삼성은 이 핸드폰에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세월속에 핸드폰은 요술방망이로 변했다.
금나와라 뚝딱하면 금이 은나와라 뚝딱하면 정말 은이 나오는 요술방망이 말이다.
왕대가 가지고 있는 울트라 23이라는 핸드폰 카메라는 달의 곰보자국까지 잡을 수 있고 1km 떨어진 곳에 있는 어지간한 크기의 글자를 알아볼 수 있는데 100미터 거리에서 사람 얼굴을 땡겨서 찍으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 안백두게
이곳 은파호수는 구절양장의 형태를 갖춘 호수가 아닌 저수지이다.
사람들은 어이된 심판인지 호수와 저수지를 구별도 못한다.
호수는 자연이 만든 물 웅덩이이고 저수지는 사람이 만든 물 웅덩이이다.
▽ 다리를 향하여 거총 발사.
그 큰 다리가 한방에 이 쬐끄만 핸드폰 속으로 빨려들어온다.
▽ 세터를 지나다.
이곳 은파호수를 끼고 여러개의 마을이 옹기종기 살고 있었다.
이제는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일부만이 남아 이곳이 내땅이요 하고 소리라도 치는 것 같다.
▽ 호수를 끼고 도는 곳에 자라잡은 아파트는 호수가 정원이다.
프리미엄으로 억대의 돈이 더 홋가할 것 같다.
아무려면 억대까지야
진짜 호숫가에 자라잡은 정원의 소나무가 장관이다.
무슨 소나무인가 모야모에게 물어보니 소나무의 일종이란다.
▽ 자전거 박물관쯤 되는 줄 알았는데 자전거 판매소
▽ 은파호수공원 요도가 있어 잽싸게 카메라 속으로 집어넣다.
▽ 여러번 이곳을 지나며 의문을 품었던 집 한채
분명 별장은 아닌것 같고
올라가니 비석의 주인들이 경주이씨판이다.
경주이씨 종산이고 건물은 재실이었다. 궁금증 해소
▽ 절메산
처갓집, 역전앞처럼 메와 산이 두번 겹쳐 부르고 있는 지명이라고 한다.
▽ 송파선생께서 리츠 플라자 호텔은 군산지역에서 제알 먼저 생긴호텔이라고 소개를 한다.
▽ 벌이(보리)마당
▽ 강대장의 포효
어제 100평이나 되는 밭에 고랑을 쳤다네.
헉 100평이나
▽ 추억의 세계로 나들이를
이곳 은파호수는 백우회, 삼동회 그리고 국사봉 산악회를 꼬시어 시번(?)이나 찾았던 곳이다.
2020. 9. 14 백우회
좌로부터 아모스, 아리랑, 도암, 철람
▽ 사진사 아모스
▽ 정원이 기가막힌 집들의 향연????
▽ 2020. 11. 21 삼동회
▽ 2023. 10. 31 국사봉 산악회
▽ 은파호수의 볼거리는 바로 야경인데 야경은 밤에 와야만 볼 수 있다.
야경을 보러 밤에 온다는 건 사치라서 백파선생 신세좀 졌다.
□ 이동로
- 09:01 은파호수공원 출발
- 09:09 예술의 전당 도착
- 이동거리 : 2km
- 소요시간 : 8분
- 머문시간 : 16분
▽ 우와 초 호화 건물이다.
▽ 예슬의 전당은 취재꺼리가 별로 없어 항상 우리들의 목표에서 제외되었던 치외법권(?)지역이었다.
한번쯤은 와보는 것도 괜찮아 목표에 설정했는데 문은 잠겨있고 사람새끼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이 예술의 전당은 공연을 주로 하는 공연장이 있는데 1천 2백석의 대공연장과 450석 규모의 소공연장이 있다.
2013년 810억의 예산을 들여 준공했다.
▽ 송파선생께서 전역후 오래도록 근무했다는 아파트로 향하다.
가는 길목에 기가막힌 돌로 쌀은 담벼락에 왕대 뿅 가삐린다.
어디서 구한 돌맹이인가.
아모스가 하품을 한다.
성님 그건 인조 돌이야요.
▽ 아파트 관리소장을 했던 나운세경 아피트
□ 이동로
- 09:25 문화의 전당 출발
- 09:44 동국사 도착
- 이동거리 : 5km
- 소요시간 : 19분
- 머문시간 : 27분
▽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 강점기 36년을 일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에 많은 창문이 일본색을 나타낸다.
조계종 제 24교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동국사의 대웅전은 2003년 7월에 국가지정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계종 사찰이다.
▽ 일본불교는 1877년 부산의 개항과 함께 일본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하였고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하였고 일연종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고자 1911년 6월 3일자로 사찰령을 발령한다.
이를 계기로 일본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하였다.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은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회하다가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1913년 7월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을 신축하였다
▽ 동국사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사찰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은 모두 없어지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동국사 대웅전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안으로 들어서니 불자들이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다.
▽ 밖으로 나와 대웅전 옆 건물을 싸잡아 잡다.
대웅전에서 복도로 연결된 요사체이다.
▽ 군산 평화의 소녀상
다른 곳의 소녀상과는 모양이 다르다.
2015년 8월에 세웠다.
▽ 천불전
▽ 내부
▽ 종각
1919년에 건립한 종각으로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일본식 종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종이 유난히 작다.
꼭 학교종 만하다.
▽ 다음은 어디로
오늘 우리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우리들의 목표물(?) 대부분이 포진하고 있다.
50미터 거리에 다음 목표물이 기다리고 있다.

첫댓글 군산탐방 2일차 1탄으로 은파호수공원~예술의 전당~동국사 순으로
명품작품 제작에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
코로나 사태시 기 방문했던 은파호수공원은 또 찾아도 좋은산책코스입니다.
전국투어팀에서도 방문했었군요. 빼먹었지 머여
@왕대나무 오늘은 백우회에서 군산호수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멧돼지 사냥이 계획되어 그 대타로 은파호수공원을 찾았다.
군산시민들이 자랑할 만한 명소였음을 기록하고 싶다.
지금까지 다녀본 호수 둘레길 중에서는 가장 멋진 코스였음을 널리 알리고 싶다.
은파호수공원으로 여러분들을 안내할까 한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고래잡으러...
아참 삼천포로 빠질뻔 했다.
자 다시 떠나자 군산의 은파호수 공원으로
(코로나가 한창 만연하던 2020.9.14,월요일로 탑재하셨구만요. 워낙 오래 되어 저도 살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