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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울싱잉커플즈 (서울부부합창단) 원문보기 글쓴이: 주형동
동행하는 길, 스페인 산티아고 여행기
3부
묵시아에서
여행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올리니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1. 여행기간 : 2014. 8. 25 - 10. 10 (47일)
2. 경로: 프랑스 - 바욘-생장피드포르-산티아고-피스테라-묵시아-프랑스(약 900킬로)
3. 비용: 항공료, 알베르게숙식, 프랑스 3일 포함 : 1인 기준 400만원 이내( 순전히 본인 기준임, 간혹 호텔과 고급 식사 등 늘어남)
4.사진 및 준비물 등 여행에 필요한 자세한 것은 따로 올림
소똥마을을 지나다 (라파바-트리아 카스테라, 26Km 9/23)
해발 1300m 산간 마을을 앞두고, 오늘 도착할 곳은 900m 지점의 라파바 마을이다. 서서히 산과 산 사이를 따라 발길을 들여놓으니 주변의 수려한 경치가 우리를 즐겁게 맞아준다. 계곡에 개천과 차로가 나란히 하면서 깊숙이 들어가면 한가로운 전원의 풍경화 같은 작은 마을들이 나타난다.
마을 입구에 동상하나가 눈에 띠었다. 한 수도사가 근엄하게 서있는데 이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 임을 암시해주는 안내자 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비속에서 판쵸우의를 걸치고 그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른 시간 오로지 이 길을 걷는 이는 순례자들 뿐 이다. 마을들은 전형적인 산골마을인데 녹지를 조성하여 대부분 목축업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이런 곳에 어떻게 초지를 조성하고 높은 산비탈의 초지에서 소나 말을 방목하여 관리를 하는지 그리고 저녁이면 그들을 데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려면 어떻게 하는지 자못 궁금한 생각이 든다.
부슬부슬 비속을 걸어 안개 낀 산속에서 마을이 나타나면 따끈한 커피와 함께 몸을 추스리고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산 밑에 당도하여 개울을 건너게 되었다. 깊은 골짜기 여기저기서 모아진 물은 생수처럼 맑아서 손으로 떠먹어도 될 만큼 깨끗하여 배낭을 내려놓고 쉬어가고 싶을 지경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비갠 오후에 집 앞을 흐르는 도랑물, 뒷산을 거쳐 마을을 지나 흘러내리는 물이 그러했다. 우리들은 감자를 둥글게 깎아서 팔랑개비를 끼워 물레방아를 만들어 돌리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한가로운 이곳 산 마을이 우리 고향마을과 오버랩 되어 진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한 무리 소떼가 지나간다. 수 십 마리가 행렬을 이루며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마치 대 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목초지를 향해 가는 것 같다.
마을 앞 공터를 축사장으로 이용하는지 외양간을 방불케 해 소똥 냄새가 진동하여 코를 잡고 걸을 지경이었다. 가정의 축사에서 가축을 돌보는 아주머니는 퇴비를 치우고 사료 작업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 마을 전체가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로 베어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나가는 길까지 소똥으로 뒤덮여 피한다고 해보지만 신발에 달라붙어 툭툭 털고 지나갔다. 스틱을 짚을 곳이 마땅치 않아 차라리 들고 간다. 한편으로 매일 소와 함께 생활하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묵묵히 생업을 꾸려나가는 이들의 삶의 건너에는 짙은 시골 향기가 스며있었다.
산속을 향해 걷다보니 목적지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마을을 지나 뒷산 너머로 길이 인도되었다. ‘또 가파른 산길이 시작되나?’ 터벅터벅 걸어 올랐다. 제법 땀이 나고 숨이 차오른다. 아내가 땀을 닦으며 잠시 쉬자고 한다. 깔딱고개가 멀리에 보인다. 그 곳을 넘어서면 아랫마을이 보이겠지. 고지를 오르면 산 아래 마을이 있을거라 생각하며 배낭끈을 다시 한 번 고쳐 매어본다.
뜻밖에도 힘겹게 고개에 올라서자마자 마을 초입이 곧장 나타났다. 그러니까 산 아래 마을에서 뒷산을 올라서면 라파바 마을이 그 위에서 사람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을이 쉽게 눈앞에서 펼쳐져 긴장한 마음이 갑자기 풀어진다.
알베르게에 수녀 두 분이서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계셨다. 심심산골이라서인지 구멍가게처럼 작은 상점에서 소규모의 시장을 볼 수 있도록 시장거리가 있었다. 식사를 할 만한 곳도 마땅히 없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오늘은 여기서 간단히 감자 양파 등 부식을 구입하여 알베르게에서 취사를 하였다.
카스테라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우리는 망설였다. 길은 멀어도 낮은 지형을 돌아서걸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높은 지형을 따라 걸을지 서성이다가 걷기좋은 낮은 지형을 선택하였다. 결국 너무 많이 우회를 하여 종일 산길을 걷다보니 몸이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이 지역은 깊은 산중에 마을이 띄엄띄엄 있어 이런 마을을 거쳐가게 된다. 스페인 북부 산간지역에 아름다운 곳이 많다는 것을 걸으면 알 수 있다.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전체가 특이한 모양으로 가옥들이 모두 돌로 지어져 있다. 지붕까지도 돌이다. 우리의 강원도 산간에서 볼 수 있는 너와집처럼 편마암석으로 지붕을 만들어 놓았다. 처음에는 공장에서 틀에 찍어 내놓은 것으로 생각했다. 모두가 이 지역에서 나온 돌을 이용하여 만든 돌 지붕 일색이었다.
해발600m의 산간지역인데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우리와는 다른 풍경이어서 새롭고 특이한 점들을 보여준다.
사모스 마을, 배낭을 매고 끙끙거리다 고개 마루에 서니 바로 아래에 웅장한 수도원이 숲 사이로 보인다. 짜임새가 있고 한 눈에 보아도 색다른 건물이 아래에 보인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바로 홀리안 이 바실리사 왕립 수도원건물이었다. 수도원의 기원은 6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남아 있는 수도원 건물은 16,18세기에 건축된 것들이다. 원래 이 수도원은 은둔하기에 적당하여 울창한 산속에 파묻혀있어 구석구석이 닫혀있기에 수직으로 위를 쳐다보지 않으면 별을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슬람사원으로 착각을 했었다. 지붕의 둥근 모형이 기존의 성당과는 다르고 이슬람과 카톨릭 간 전쟁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왕립수도원이었다.
(사리아 -포르토마린, 22.6Km 9/25)
“한국에서 오셨군요?” 가게에서 우연히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을 만났다.
“한국 사람을 만나니 반갑네. 자넨 어디서 왔나?”
“고향이 부산입니다.”
“그래, 시장을 보러 온 모양인데 뭘 살 건가?”
“예, 무엇을 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고향음식이 간절해서 무작정 나왔지요.”
그는 혼자서 여행을 하며 매일 빵과 인스턴트로 배를 채워 한국음식이 생각나 살만한 것을 찾아 마켓에 들린 것이다.
이 청년은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을 과감히 중퇴하고 지금 석 달 째 여행 중이다.
“다시 대학에 돌아갈 생각은 없나?”
“여행을 하면서 생각해 보아야지요.”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그리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현명하게 결정하게.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일세.”
“네, 고맙습니다.”
역시 젊음이 좋다.
아무런 준비 없이 비행기 왕복 티켓 두 장과 약간의 비상금만 가지고 집을 나선 그 청년은 배낭마저도 없었다. 필수품인 침낭도 없이 여행을 떠난 괴짜를 여기서 만나고 지금 보고 있다. 엊그제는 이곳 근처에서 영화 촬영을 했는데 감독이 지나가는 자기를 한 번 훑어보더니 엑스트라에 출연하라고 권유해서 6시간 일을 해주고 50유로를 벌었다고 자랑한다. 아시아인으로 색다르고 잘생긴 용모 때문에 그를 부른 것은 아닐까? 돈이 떨어지면 민박집 같은 곳에서 일거리를 찾는다며 현지에서 벌어가면서 여행을 하는 제법 강단이 있는 청년이었다.
며칠 뒤 또다시 이 청년을 마트에서 만났다. 우리는 그를 알베르게로 초대해 고기를 먹이고 식사를 함께 했다. 여기와서 처음으로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는다며 좋아하는걸 보니 갑자기 우리 아들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오후 3시경, 꽤 큰 도시로 진입한다. 사리아이다. 도시 초입에서부터 알베르게가 보여 깨끗하고 괜찮은 곳을 선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중 취사시설이 갖추어진 아담한 곳을 찾아서 여장을 풀었다.
상냥한 안주인과 활동적인 남자 부부가 손님을 맞이하는데 마침 아가씨로 보이는 카미노 한 명이 도착했다. 잠시 후 여자의 배낭을 모두 풀어 헤치고 소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는 배드버그에 물려 고통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얼마나 간지러웠으면 가슴을 드러내놓고 긁는 모습을 보았다. 남자주인은 배드버그 박멸을 위해 짐을 풀어 큰 비닐에 담아 소독준비를 하느라 한참동안 바빴다. 세심하게 소독을 하는데 여간 정성을 들인다. 그렇지 않고 빠뜨렸다가는 다시 옮기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한다.
레온의 베네딕티네스 알베르게에 머물 때였다. 한국인 부부 카미노가 숙소에 들어왔다. 이 부부의 짐은 곧장 소독에 들어갔는데 속옷까지 벗어 모두 소독을 마치고 숙소에 들여보냈다. 부인의 말에 의하면 남편이 배드버그에 물려 오른쪽 팔 전체가 퉁퉁 부어올라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피부가 예민한 사람에게는 더 고통이 심하여 피부가 흉할 정도로 부어오른다. 또 다른 한 사람도 이것에 물려 들어왔는데 그는 결국 되돌려 보냈다. 이미 어두워서 소독할 시간이 없어 부득이 보낸 것 같았다.
배드버그, 일명 빈대이다. 70년대 우리나라에도 이것이 들끓은 적이 있다. 위생적이지 못한 곳에 서식하며 책상 틈이나 나무의 갈라진 틈바구니 등에서 발견되는데 물리면 벌겋게 부어오르고 참지 못할 정도로 간지럽다. 야행성이라서 발견하기가 힘들다. 당시 대학시절 자취방에서 빈대에 물린 경험이 있다.
이 녀석이 어찌 빠른지 틈새로 숨은 것을 잡아내었다. 붉은색에 발이 많아 빠르고 냄새도 지독하다. 아주 간지럽고 부어오르며 보리이삭을 몸에 넣으면 껄끄럽듯이 그러하고 물리면 한동안 고생하는 벌레이다. 하지만 예민한 피부가 아니라면 그리 고생하지 않을 수 있으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요즈음 알베르게는 위생에 철저하여 물리진 않지만 간혹 운이 없으면 그 녀석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랐지만 결국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였다. 엊그제 라파바 알베르게에서 숙박을 하였는데 같은 1층 침대인데도 아내에게서 증상이 나타났다. 자고나니 귀밑 목 부분이 동전 크기만큼 부어있고 턱밑과 손목에도 반점이 생겼다. 서울에서 가져간 약과 현지에서 구입한 약을 번갈라가며 발랐다. 며칠 동안 새로운 알베르게에 머물 때에는 알면 혹여 난처해질까 봐 얘기를 않고 숙박을 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모기에 물려 가렵듯 가벼워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렇게 좋은 지역을 걸으며 즐겁게 카미노를 즐겨야하지만 운 없게도 그 녀석에게 걸리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나도 한 번 물렸는데 아내보다는 가벼워 열심히 약을 바르고 한 곳이 낳으면 또 다른 곳이 생기고 하여 계속 약을 바르며 지냈었다.
오늘은 17km를 걷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어제 여유를 가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보자고 출발했지만 지름길 대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여 24km를 걷고 그것도 오르막 길을 걸으니 7시간을 넘겼다. 너무도 피곤하여 욕심은 금물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다.
하지만 계획은 그 뿐 다음날 길이 너무 좋아서 더 걷고 알베르게가 시원치 않아 지나치고 하다보면 훨씬 많은 길을 걷기도 한다. 내일은 이를 교훈삼아 느긋하고 차분한 걷기를 하자고 마음을 다 잡아본다.
신기한 숲길 보엔테 (보엔테 -페드로우죠, 29km, 9/28)
참 한가한 마을이다. 구름과 함께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에 마을 골목이 더욱 고즈넉하다. 사람의 왕래가 드물고 거리도 한산하다. 다행스럽게도 알베르게는 있어서 많이 걷지 않고 이쯤에서 머물기로 했다. 이곳은 산티아고 입성 이틀을 앞두고 여정을 조정하기위해 머문 마을이다. 내일부터 대략 24킬로씩 걸으면 산티아고에 도착할 것이다. 계획으로는 30일 오전 일찍 도착하여 대성당을 둘러보고 시내를 돌아 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정을 바짝 당겨 29일 도착하여 피니스 테라와 묵시아를 가기 위해 서둘렀다.
하루 이틀을 기다리노라면 지루한 듯 짧지만 46일간 기나긴 여정의 끝이 언제나 보일까 멀게만 느꼈는데 어느덧 눈앞에 와 있으니 이 또한 짧은 시간이 된다. 하루를 쪼개 새벽녘부터 시작하여 걷기를 800km. 걸음을 옮기다보니 입성을 눈앞에 두었다. 시간은 흐르고 여기에 발자국이 남겨지고 그 결실이 눈앞에 와있다.
새벽녘에 비가 왔다. 7시경에도 그치지 않아 판쵸를 입고 출발하였다. 비는 1시간 가량 내리다 개였는데 시원한 걸음을 옮기라고 그쳐준 것 같았다.
보엔테에서 페드로우죠 까지 29km는 꽤 먼 거리이다. 산티아고 입성 하루를 앞두고 다음 날 20km를 남겨두기 위해 조금 더 걷기로 했다. 페드로우죠는 산티아고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역과 같다. 5킬로 전방에 하루를 묵고 천천히 콤포스텔라에 다달을 수도 있지만 보통은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 몸을 추스린 후 11시경 도착하면 된다. 순례자들은 12시 성당 미사를 보기위해 이런 일정을 세운다.
보엔테에서 한참을 걸으면 띄엄띄엄 산마을이 심심찮게 보여 지루하지가 않다.
마을을 이어주는 산길이 신기하게도 온통 터널 숲을 연상 시킨다. 나무숲이 ‘겨울연가’에서 등장하는 메타세콰이어 숲길처럼 그늘 숲속을 종일 걸었다. 이런 길을 걸어보는 특이한 여행을 하며 마을의 카페나 광장을 지나 다음 마을을 향해 가는 길은 산속에 나무가 가지런히 도열하듯 또 터널을 만들어준다. 29킬로를 걷는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구간을 걸었다. 늦여름의 햇살아래 시원한 그늘에서 우리는 축복받는 길을 걸으며 행복해 했다.
헤어짐과 만남의 연속은 카미노에서 늘상 있는 일이다. 헤어진 지 꽤 오래 된 성당팀을 여기 페드로우죠에서 다시 재회하였다.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걷는 할머니 팀이다. 뒷모습을 보면 한 눈에 보아도 시골 할머니들의 약간 뒤뚱거리 듯하며 걷는 걸음걸이가 눈에 들어와 그냥 알아볼 수 있으니 눈썰미란 참 신기하다.
식사를 하러 카페에 들어가다 우리부부를 본 이분들이 달려와 손을 덥석 잡으며 친 동기간처럼 반가워한다.
이 팀은 처음부터 걱정스런 팀이었다. 그러나 한 명의 낙오자 없이 건강하게 산티아고를 향해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만 해도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서 걷지 못한 사람 때문에 중도 포기 할 줄 알았다. 후에 이 팀은 땅끝 마을 피니스테라와 묵시아까지 자랑스럽게 주파하는 실력있는 순례자로 변모하는 기적을 만들어낸 자랑스런 팀이 되었다.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버지 생신을 축하합니다.” 미리 보내온 것이다. 내일이 내 생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날이 내 생일과 맞아 떨어져 일부러 맞춘 것처럼 보였다.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하며 맥주를 마시며 축하의 건배를 하였다. 무슨 인연이 작용하여 그리도 맞춰주는 걸까? 아마도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잘 마무리하라는 좋은 징조가 아닐까,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오후 공해와는 거리가 먼 스페인의 페드로우죠 하늘이 유난히도 붉게 빛나고 있다.
마침 휴일(일요일)의 거리는 한산하여 가게마다 문을 닫아 손님은 없지만 카페에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아무래도 내일 산티아고에 들어갈 순례자의 수가 만만찮게 많을 것 같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20km, 9/29)
짙은 안개가 거리를 채우고 붉은색 가로등이 광채를 내고 있다.
아내와 가벼운 걸음으로 숙소를 나와 산티아고를 향해 걸었다. 평소에는 내가 항상 아내를 깨웠는데 오늘 따라 서둘러 나를 깨운다. 거리에 큰길로 나서자 젊은 남녀들이 줄줄이 다른 알베르게에서 나오기에 함께 걸었다. 그들도 남은 20km를 일찍 주파하고 싶은 마음에 새벽같이 서두른 것 같다.
그동안 대 장정을 생각하면 생장으로부터 여기 페드로우죠까지 걸어온 길이 아스라이 주마등이 되어 스쳐간다.
피레네와 함께 이리도 아름다운 곳을 또 어느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카메라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압축을 할 수 없기에 한 편의 파노라마에 담아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젊은이들이 앞 다퉈 새벽길을 헤치며 걷는다. 산티아고의 오래된 도시의 모습은 아담하면서 깔끔하고 요즈음 도시들과 다른 점이 많아서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 진다. 외곽은 현대식 넓은 도로와 주택이 들어서고 도심으로 가면 수 백 년 전의 건물과 구조물, 1차로 일방로의 도로가 나온다. 아스팔트가 아닌 자갈과 대리석으로 깔린 도로는 특이하다.
순례자들이 배낭은 짊어지고 횡단보도가에 서있노라면 달려오던 버스가 우리를 보고 멈춰 선다. 승용차나 택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는 그들의 마음을 외국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추어질까? 고맙고 한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한국에서는 차가 우선 지나가고 보지만 이곳은 사람이 먼저다.
천년의 산티아고에 왔다. 스페인 북부 서쪽 끝에 있는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다. 도시 초입에 산티아고 표지석이 반갑게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함께 간 독일 아가씨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노란색 화살표와 함께 시내에 들어서면 이제부터 보도블럭에 드문드문 박힌 황갈색 조가비를 따라가면 된다. 조가비는 우리를 대성당으로 인도하고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대성당이 보인다. 오밀조밀 길을 따라 가다보니 광장의 돌문 앞에 이르렀다.
광장에는 이미 순례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성당 앞에 수많은 순례자들, 그리고 관광객들은 인솔자를 따라 다니며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광장에 깔아놓은 돌바닥에서 젊은이들이 주저앉아 사진을 찍고 한참을 누워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도착한 이들의 걸음걸이가 이제는 느리고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별들의 들판을 향해 멀다않고 찾아 온 이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난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정면의 성당건물이 한창 보수 공사를 하느라 철골에 싸여 작업이 한창이었다. 오래된 건물이기에 수혈을 아니 할 수 없는 중요한 공사가 진행 중인 모습을 보면서 고풍스런 성당의 모습 그대로를 상상했던 일종의 묘한 환상이 사라진 기분이지만 이곳 광장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말로써 표현할 길이 없다.
여기에 도착한 이들은 힘들고 피곤해 보이는 육체와 달리 눈빛은 영롱하게 빛난다. 감격에 겨워 말이 없다. 그러다 아는 얼굴과 마주치면 서로 끌어안고 감격의 기쁨을 나누기에 바쁘다. 이곳은 그런 매력을 지닌 곳이다.
순례자들의 눈빛을 직접 보게 된다면, 누구라도 죽기 전에 한 번쯤 이곳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하리라.순례자들은 지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려는 듯 쉽사리 광장을 떠나지 못했다. 누군가는 앉아서, 또 누군가는 누워서 산티아고 대성당의 모습을 눈과 가슴에 담고 있다.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돌바닥에 주저 앉아보고 싶었다. 저쪽에서 젊은 연인들이 껴안고 다정스레 앉아 있는데 모습이 아름다워 살짝 한 컷 찍어보았다.
순례지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은 이제 다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갈리시아 지방의 종교도시로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그 위에 대성당이 건축되고 로마와 함께 유럽 3대 순례지로서 이 도시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매일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가 찾아와 대성당의 광장은 세계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 산티아고는 그들로 인해 산티아고의 의미를 전파하는 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성당아래에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기에 가보았더니 순례증서를 발급 받는 줄이었다. 무려 1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산티아고 입성 기념증서와 완주 800km 증서를 받았다. 산티아고 입성 증서는 산티아고를 기준으로 100km 이상을 걸어온 순례자와 자전거 순례자는 200km 전방에서부터 크레덴시알에 확인 도장을 받으면서 완주한 경우 증서를 만들어 준다.
매일 정오에 시작되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일요일 정오 미사는 대주교의 집전으로 이루어지는데 많은 순례자들이 참석하여 성당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만원을 이룬다. 배낭을 짊어지고 도착하는 이들을 위해 따로 짐을 보관하는 유료보관소가 있을 정도이고 어떤 이들은 성당 밖에 배낭을 그대로 두고 미사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마침 미사 준비 중이었다. 각국에서 온 이들이 미사를 원활하게 하도록 진행 수녀께서 예행연습을 시키고 계셨다. 나이 지긋한 수녀 분의 낭랑한 기도와 성가는 지금도 내 귀를 울리고 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맑고 고운 소리가 마치 파이프 오르간의 건반에서 울려 나오는듯하다. 그것의 음색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부드럽고 고운 소리였다.
라틴어로 진행되는 미사에 주민이나 순례자나 모두 경건한 얼굴이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몇 차례 반복한 다음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성당 안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순례자에게 보내는 주교님의 축복 메시지가 이어진다. 주로 라틴어로 진행되는 의식에 뜻을 파악하지 못해 답답한 점이 있었지만 의식만큼은 경건하고 장엄 했다.
대성당 미사의 하이라이트는 대형 향로에 향불을 피워 흔드는 것이다. 5명의 신부님들이 천정에 고정한 줄에 향로를 매달고 잡아당기는 것으로 의식은 시작된다. 향로는 좌우로 흔들리며 약 5분여간의 축복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대략 높이 30m 가량의 긴 줄이 내려와 이것에 향로를 고정시키고 좌우로 그네를 태우듯 흔든다.
향로에서 나오는 연기와 함께 신부님들이 힘을 합해 신호에 맞추어 줄을 당기면 향로가 서서히 진자가 움직이듯 좌우로 이동을 한다. 점점 성당 공간의 천정 높이까지 그네를 탄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향로를 따라 움직이며 경건함에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이러한 독특한 의식은 순례자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며 산티아고 대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라 할 수 있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안의 모든 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감사의 인사를 나누는 모습 또한 감동적이다. 나도 모르게 끓어오르는 뭉클함과 미소는 어떤 의미였을까.
별들의 들판에서 순례자들은 이제 가슴속에 켜진 자신만의 빛을 소중히 간직한 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이곳 순례자의 길을 그리워하면서 세계 곳곳, 저마다 제자리에서 자신의 빛을 환히 밝힐 것이다.‘별들의 들판’이란 뜻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날에는 성 야고보를 가리키지만, 지금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별처럼 반짝이는 마음을 가리킨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와 역사의 현장에 서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들 것이다. 수많은 수도사와 순례자들과 함께한 이 길을 바라보며 잊지 못할 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밤이 되자 잠을 이룰 수 없어 거리로 나왔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음악소리가 나를 이끈다. 삼거리 카페 앞에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회를 하고 있었다.
땅끝 마을과 묵시아로 들어서다.(산티아고-묵시아100Km, 9/30-10/2)
피스테라(Fistella) 또는 피니스테레(Finisterre), 땅 끝의 의미가 엿보이는 지명이다. 알려지기로는 우리나라 해남에 남쪽의 땅 끝이 있고 중국 동쪽 땅 끝에는 성산두가 있듯 스페인 서쪽에는 피스테라가 있다. 산티아고에서 이 서쪽 땅 끝을 가기위해서는 만만찮은 높고 낮은 고개를 넘어야한다. 가는 길에 Cee라는 아름다운 항구를 만나게 된다.
그동안 북부지역의 드넓은 들판과 산을 보며 걸었다. 이후 처음으로 이곳 항구도시를 지나간다. 대서양을 접한 이 항구는 스페인 어느 곳이나 그러하듯 깔끔하고 잘 정돈된 계획도시의 인상을 풍겨주며 항구도시로서 내항이 무척 아름다워 산위에 올라서 한참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카미노는 시내를 관통하여 바다와 접한 도로를 거치도록 되어있다. 간혹 표시가 눈에 잘 띠지 않아 세심하게 관찰하며 걸어야 한다.
다시 언덕을 향해 길이 보인다. 걷는 길은 평지 혹은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 항상 있기 마련이어서 또다시 언덕을 바라보며 오르기 시작했다. 산마루에서 바라보는 항구와 도시는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어 카메라에 많이 담았다.
피스테라는 쉽게 보여주기를 허용하지 않은 것 같다. 목적지가 보일 듯한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기나긴 고개를 넘자 산마루와 하늘이 함께한 수평선이 나타난다. 백사장이 시원스레 바다를 품으며 멋진 풍경이 다가선다. 바라던 서쪽 땅 끝 피스테라가 눈앞에 펼쳐졌다. 같이 걷던 센프란시스코에서 온 순례자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환호를 하였다.
바다와 인접한 마을의 첫인상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서양식 주택과 짜임새 있는 풍경은 스페인만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었다. 거리상으로 실제 땅 끝은 마을에서 3킬로를 더 가야하니 생각지 않게 발품을 팔아야 하는 거리이다.
스페인 맨 서쪽 땅 끝 피스테라 바닷가에 섰다. 더 이상 나아갈 곳 없는 육지의 끝에서 바다를 바라본다.
낙조가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마침 기울어가는 해가 곧 바다에 잠기는 순간이었다. 멀리서 작은 고깃배가 들어오는 광경 또한 멋스럽다. 기념탑과 땅 끝 표지판에서 사진을 찍으며 여기까지 온 이들은 일몰 광경에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너무 지친 나머지 마을에서 떨어진 이곳 땅 끝에 오기를 주저하였으나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카미노들은 순례길에 오르면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동서를 잇는 800킬로를 생각한다. 대부분 이곳에서 여행의 마무리를 하며 정리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일부는 이곳 피스테라와 묵시아는 버스를 이용하여 또는 차를 빌려 오는 사람들이 많으며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수의 대략 10-15% 가량이 이 길을 걷는다고 하니 종교적인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이곳 또한 가보아야 할 곳이다.
산티아고를 출발하여 이틀만에 도착한 이곳, 북적대는 항구가 순례자로 넘쳐나 카페는 가는 곳 마다 만원이다. 대부분 여기서 다시 되돌아 간다. 전야제 처럼 이들은 순례의 마무리를 기념이라도 하듯 밤 늦도록 술을 마시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 우리 숙소의 알베르게에는 12시가 넘도록 밖으로 나간이들이 들어오지 않아 내일 묵시아로 출발하는 우리만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종착지인 묵시아를 향했다.
묵시아는 종교적인 면에서 카톨릭 신자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지역이기에 그들은 반드시 이곳을 찾는다. 함께 동행한 성당 팀은 이곳을 최종착지로 계획하고서 지금까지 고된 길을 여행하였다. 나와 아내는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오늘 함께 묵시아를 향하고 있다.
피스테라에서 북쪽으로 산길을 따라 작은 마을들을 거쳐간다. 옥수수 농사를 위주로 하는 농가에는 가축을 길르며 생활하고 있었다. 옥수수 종자를 수확하고는 수수대는 트랙터로 대부분 사료를 만들어 처분한다. 마을마다 입구에 들어서면 지상에서 1-2미터 높이 위에 돌로 만들어 놓은 조그마한 집이 매우 특이했다. 물어보니 옥수수 종자와 곡식 보관창고라고 했다. 수 백 년 전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통풍이 잘 된 곡식 저장 창고라고 한다.
삼거리 길에서 아리송한 팻말로 인해 헛걸음을 했다. 마을길과 산속길로 나눠져서 살피다 마을길로 내려섰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어 낭패를 볼 때가 있는데 아니다 싶으면 신속히 되돌아와야 한다. 다시 산속 길 따라 한참을 걸으니 표지석이 보여 그제서야 제 길을 찾고보니 힘이 쭉 빠진다.
엊그제 산티아고에서 네그레이나 21km를 걸을 때였다. 표지석과 노란색 화살표를 보며 새벽길을 걷다 길을 잃었다. 넷이서 랜턴을 밝히고 걸어가다 안내표시가 없어졌다. 3km 이상을 걷도록 보이지 않아 애를 태웠다. 딱 한곳 갈림길에서 대충 확인없이 지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다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앞서간 두 사람은 자신있게 걸어가더니 결국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려고 손을 흔들어 보기도 한다.
날이 밝아와 마을 사람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걸었다. 이른 아침에 사람이 있을 리 없고 난처한 상황이다.
쓰레기 운반 차량이 지나간다. 세워서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니 지금 가는 방향으로 가면 목적지가 나온다고 손짓을 해 주었다. 헛걸음이 아니기에 얼마나 안심을 했는지 모른다. 화살표가 안보이니 허전하기 그지없다. 마치 등대없는 어둠을 헤매는 배와 같다. 원래는 마을로 들어가서 이어지는 길을 걷다가 결국 다시 대로에서 만나게 되어있었지만 마을 진입로를 놓쳤던 것이다.
카미노의 표시는 서쪽을 향해 걷는 동안 나에게 가장 친근한 동반자가 되었다. 길을 가다 표지석이 보이면 지팡이로 툭 치며 ‘반갑다’ 인사를 하기도 하고 때론 “그래, 알았어.” 너무 자주 보인다치면 귀찮기도 하고. 하지만 카미노에서는 가장 든든하고 아끼는 동행이다.
건너에 “묵시아 2km" 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인다. 그 너머로 바다가 가까이 다가온다. 묵시아에 이르는 도로는 유난히 확 트여 보인다. 갑자기 잔잔하던 심장이 요동을 치며 걸음은 묵직해지면서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산 고비를 돌아서니 묵시아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 끝에 온 기분이 이럴까.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 끝에 온 듯 차라리 허전함이 몰려올 것 같아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이곳은 성인 야고보가 이스라엘에서 묵시아로 건너와 포교활동을 펼친 최초의 지역이자 출발지이다. 그러기에 수도사와 카톨릭 신자들은 이곳 묵시아에 대해 매우 의미 있는 곳으로 평가하고 있다.
묵시아, 항구를 낀 작고 아름다운 어촌마을이다. 외딴 섬처럼 홀로 떨어져 있기에 번거롭지 않고 조용하며 아름다운 대서양의 한 켠에 아담하게 자리 잡아 사람들이 각지에서 모여들고 있다. 이날도 한척의 여객선이 항구에 들어왔다. 한동안 술렁이다 이내 거리가 조용해진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짐은 숙소에 두고 우의만 걸치고 가벼운 차림으로 거리에 나섰다.
산위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하였다. 두 시간이면 족히 해안선을 따라 둘레 길처럼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다. 특히 마을을 감싸안은 근사한 해변, 항구를 가로지르는 산책로를 따라 가면 숨 막히는 경치에 탄성이 절로 우러나온다.
보통은 마을의 중심에 성당이 있기 마련인데 묵시아는 마을에서 멀지않은 산기슭에 성당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 묵시아 산따마리아 성당이다. 이 소박한 성당은 14세기에 만들어진 고딕 양식 건축물로 교구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바위를 깎아 돌로 만들어진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또 하나 바닷가 가까운 곳에 바르까 성모의 성소가 있는데 얼마 전 화재사건으로 인해 지금도 성소를 보수하느라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성소 옆 바닷가의 기슭에는 돌로 만든 선체와 거대한 돌로 된 조각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조각상이 서있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2002년 11월 3일 대형 유조선 프레스티지 호가 돌풍으로 난파하게 된다.
이곳 묵시아를 비롯해 63,000톤의 기름이 프랑스와 포르투갈 해안까지 검은 갯펄로 뒤 덮였다고 한다. 다행히 국가적인 방재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변모하게 되었다. 이를 기념하는 조각상을 세우게 되었다. 아내와 여기에서 사진을 한 컷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성당에서 바라보면 산의 정상이 뒷동산처럼 나지막하게 올려다 보인다. 정상에 오르는 동안 비바람이 몰아쳐서 간신히 올랐다가 내려왔다. 돌로 만든 돌배에 얽힌 전설이 서려있어 소개한다.
계획대로 하루를 더 머물렀다. 연일 3일간의 강행군으로 몸은 녹초가 되어 들어오자마자 잠에 빠져 들었다. 최종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안도감에 모든 긴장이 풀리니 마음의 평온함은 잠으로 이어진 것 같다.
이틀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대서양을 바라보며 조용한 항구에서 휴식을 취했다. 시간이 있다면 더 머물고 싶다. 각종 바다요리가 풍성하여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오랜만에 이곳 특산물 중 하나인 문어 요리와 몇 가지를 주문하여 저녁을 먹었다. 평소 곁들여 나오는 와인이 나오지 않기에 멋모르고 더 달라 했다가 모두 가격에 포함시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순례자 식단은 와인 1병이 딸려 나와 10유로의 식사 값에 포함되어있다. 여기 식당은 주문제여서 모두 제 값을 받는 것이다. 요리 1가지는 1인분에 해당하는데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3가지를 주문하여 이걸 먹다보니 맛이 있는 것을 남길 수도 없고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 묵시아의 마지막 밤은 음식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배 타고온 성모’
전설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가 포교 활동에 지친 산띠아고를 돕기위해
돌로 만들어진 배를 타고 이곳에 왔다고 한다.
태양을 숭배하는 오랜 토속신앙을 가지고 있던 피스 테라의 주민들을 선교하는데
실패한 산티아고 성인이 묵시아에 와서 기도와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성모 마리아가 돌로 만들 배를 타고 그에게 와서
성인의 포교를 치하하며 이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아직까지 묵시아의 바닷가에는 성모가 타고 온 돌로 만든 배가 남아있다고 믿어지고 있으며
‘돌로 만들어진 키와 돌로 만들어진 선체’도 부근에 있다.
돌로 만들어진 돛 아래를 9번 지나면 관절염이 치유된다고 한다.
이곳의 주민들은 되를 지은 사람들은 ‘졸로 만들어진 선체’로 데려와 죄의 유무를 심판했다고 전해진다.
묵시아의 밤은 평온하다.
몇 명 안되는 알베르게의 사람들이 내일 산티아고로 돌아갈 채비를 하며 분위기가 여느때와 달리 차분하다.
떠나는 마지막 날은 아내와 마을을 몇 바퀴 돌아보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기위해 사진도 찍고 증명서도 발급 받았다.
산티아고의 첫 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나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며 문득 떠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 길을 바쁜 걸음과 조급함을 앞세워 걷고 또 걸었다.
똑바로 앞만 보며 걸었다. 서두르지 말고 느긋이 세월과 시간을 바라보며 걷자는
당초의 생각은 비켜가고 그저 앞을 보며 황망히 나아간 시간들이었다.
계획되어진 삶의 길 위에 서면 누구나 그러할까. 길고 수많은 고개를 넘고난 후에야 뒤를 돌아보게 되는 우리.
하지만 산티아고를 거쳐 이곳 묵시아에 이르러서야 자그마한 무언가가 손에 잡힌 듯하다.
모두가 머나먼 길을 함께 왔지만 결국 혼자서 나를 바라보며 오지 않았을까
인생의 길 또한 이렇게 바쁜 걸음 속에 혼자서 묵묵히 걷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일 되돌아가서 다시보는 산티아고의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 투영이 되어 보일지 문득 궁금해 진다.
생장피드포르 첫마을에서
1.배낭 꾸리기 ( 장거리 도보 여행시) -부 록-
1)가능한 짐을 줄이자.
-배낭을 쌀 때 조금이라도 망설이게 되는 물건은 빼놓고 간다.
-도보중이라도 꼭 필요치 않는 물건을 택배로 집으로 보낸다.
-배낭의 무게는 자신의 몸 무게의 10분의 1 정도가 가장 좋다.
(이렇게 하기가 힘들지만, 난 철저히 지켰다)
2)배낭 꾸리는 법
-가볍고 큰 물건은 아래로, 무거운 것은 위로 넣는다.
-배낭의 등 면적이 넓어지도록 양쪽 가에다 물건을 채운다.
-사용빈도가 높은 것은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배낭머리나 사이드 포켓에 넣는다.
-배낭이 등에 떨어지지 않도록 숄더 벨트의 길이를 조절한다.
-깨지지 쉬운 것은 타올이나 티셔츠등으로 한 번 감싼 뒤 배낭에 넣는다.
-세면도구 등 자질구레한 것은 종류별로 내용물이 비쳐 보이는 투명한 지퍼백에 넣는다.
-통 비닐로 배낭안을 감싸거나 배낭 커버등으로 우천에 대비하여 젖지 않게 해야 한다.
3)등산화 고르기
-목이 긴 등산화가 좋다.
-출발 전 적어도 10일 전에는 구입해서 신발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발은 저녁이 되면 부으므로 신발구입은 저녁에 하는 것이 좋다.
-길이는 실제로 사용할 양말을 신고 등산화를 신어 끈을 죄어봐서 편안하게 꼭 맞는것이 좋다.
(대체로 평상시 신는 운동화나 구두보다 5mm 정도 큰 것이 적합하다)
*신발이 젖었을 경우에는 신발 안에 신문지를 구겨 넣어 습기를 없애고 그늘에서 말린다.
4)비옷 (시중에서 약 2만원 미만 정도임)
-길이는 엉덩이까지 덮이고 소매끝이 약간 긴 것이 좋다.
-모자가 달린 것이라야 한다.
2.준비물
1)지도(필요한 부분만 오려서 가져가면 가벼워서 좋다)
-30만분의 1 지도:하루하루 지나온 구간을 표시하기에 적당하다.
-한 장짜리 전국지도:비닐로 싸서 구겨지거나 젖지 않도록 한다.
2)일기장과 작은 노트
-일기는 매일 쓰고 작은 노트는 걸으면서 필요할 때 기록한다.
3)옷-입고 걷는 옷 한 벌, 갈아 입을 옷 한 벌, 숙소에 도착시 입을 반바지나 트레이닝 복과 반팔 티셔츠 한 벌
4)양말 -나는 3개 갖고 갔지만 매일 빨아서 2개만 사용 하였다.
5)비상 약-안티프라민,감기 몸살 약, 소화제, 일회용 밴드, 바늘, 실. 빈대퇴치약.
-아침에 출발하기 전과 저녁에 샤워 후에 안티프라민을 발바닥, 발가락과 장딴지에 바른다.
6)모자_산티아고 길에선 챙이 넓은 모자가 필요함
7)비상식량-육포 하나
8)이 외에 스틱, 우의, 카메라와 충전기, 핸드폰과 충전기,핸드폰 밧데리 여분 한 개, 장갑, 칼, 지갑, 볼펜, 팔토시.
손톱깍기, 썬크림, 신문(쉴 때 깔고 앉고 땅 바닥에 깔아 맨발을 올려놓기 위해),
헤드랜턴(새벽에 걷거나 안개 낀 도로를 걸을 때), 여분의 지퍼백, 샤워 용 수건, 휴지, 치솔, 치약
3.잘 걷는 법
-몸이 적응 할 수 있도록 처음에는 천천히 걷는다.
-서서히 속력을 낸다.
-적당한 자신의 페이스를 계속 유지한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10여 분간 온 몸 스트레칭을 한다.(특히 당기는 근육부위를 중점으로)
-걸으면서 발 바닥이 뜨겁다고 느끼면 무조건 양말을 벗고 5분 간 쉬었다.
*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는 원인: 마찰로 인한 3도 화상으로 물집이 생김. 하여 마찰열이 생기기전에 예방이 최선이다.
-발 바닥이 뜨거워 질 때마다 양말을 벗고 통풍시켜주면 물집이 안 생기지만, 혹시 생겼을 때는 바늘에다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시켜서는 실을 그대로 둔 채 끝을 자르고 내버려두면 실을 타고 물이 흘러나와 아침이면 말끔해진다.
-간식은 허기를 느끼면 언제든 섭취할수 있어야 한다. 슈퍼에서 양갱, 초콜렛, 두유, 구운 계란, 빵, 비스켓등을 전 날 구입하였다.
-식수는 알베르게의 수돗물을 거의 이용하였음. 스페인의 물은 식수용으로 충분함
4.기타
-숙소에 도착하면
1)카메라, 핸폰 충전
2)샤워 및 빨래(욕조 있는 곳에선 반신욕도~)
3)내일 계획 세우기
순례자 사무실에서 준 A4 한 장짜리 와 지도와 카미노 네비게이션 참조
4)시장보기
5)식사
6)일기 쓰기
피스테라 땅끝입니다.
땅끝의 일몰과 함께...
조용한 어촌마을 묵시아 마을 전경입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묵시아
묵시아 항구 전경입니다.
대성당 앞에서 순례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동안 함께 걸어온 성당팀 할머니들과 아래 수사님 ,총무님 과 나
묵시아를 떠나는 새벽 버스에 오르며 .....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