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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이런이런.....a mercy를 Mercy라니...
토니 모리슨의 최근작인 a mercy 는 2008년 발간되었다. 167쪽으로 판형도 작아 큰 수첩만 하며 글씨 역시 작다. 작품 제목은 원래 대문자가 아니라 소문자이다. 소문자인 자비는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일반적으로 대문자로 쓰는 제목에 저항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전통에 대한 저항의식이 여기서도 살아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작은 이야기이며 작은 자비라는 뜻이기도 한 셈이다.
이 소설은 한 흑인 노예 소녀 플로렌스의 자아 인식과정을 다루는 성장소설이지만 무엇보다도 그 시대적 배경이 눈을 끈다. 1673년 그리고 1680년대로 미국이 아직 초창기, 나라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시대의 일이다. 그 뿐 아니라 극히 초기 노예제도 시절로 자유로운 흑인이 있는 시절이다. 토니 모리슨의 시대 선택에는 언제나 의도가 숨어있다. 대다수의 흑인 문학처럼 모리슨은 역사속에서 한 시점을 택해 자신의 소설 배경으로 삼으며 그 시절은 반드시 흑인 역사와 관련해 특정한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모리슨의 모든 소설은 역사소설이라고까지 평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이니 역사와 어우러져 흑인들의 상황을 그려나가는 그녀의 역사적 인식은 그녀의 소설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흑인이 역사의 표면으로 떠오른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따라서 모리슨의 작업은 숨은 역사를 찾아내 복원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플로렌스는 16살로 8년전 전주인 포르투갈 농장주가 진 빚 대신 네덜란드 상인겸 농부에게 팔려온다. '써'라고 불리는 주인 제이콥 바아크는 심성이 어진 사람으로 자신의 아내 레베카를 위해 플로렌스를 산 것이다. 죽은 딸과 나이가 비슷한 플로렌스가 아내에게 위안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레베카는 런던 태생의 강하고 어진 여인으로 '미스트리스'라고 불린다. 그녀는 대서양을 건너 제이콥에게 시집왔으나 아이들 셋이 모두 죽는 비운을 겪는다. 하인들을 한번도 때린 적이 없을 정도로 노예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그녀지만 남편이 죽은 방에 소로우가 아이를 데리고 와 자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서슴없이 그녀의 뺨을 때릴 정도로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
소로우는 혼혈 여인으로 배가 난파해 모두 죽고 혼자 살아 남아 나무꾼에게 발견되고 나무꾼의 아내로부터 소로우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녀는 상상속에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제이콥의 집에 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를 낳는다. 리나는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부족이 전염병으로 모두 죽은 후 장로교도에게 발견되어 제이콥의 집으로 넘겨진다. 리나는 미스트리스의 아주 친한 친구로 살아간다. 여기에 계약 노동자인 윌라드와 스컬리가 있다. 이 집에 플로렌스가 팔려 온 것인데 이 모든 사람들의 분위기는 주인과 노예가 아니다. 이들은 당시 미국의 각 인종들, 그리고 각기 다른 면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제이콥의 집은 작은 사회를 이루며 마치 가족과 같은 친밀한 분위기를 풍긴다. 제이콥이 병들어 죽고 자신마저 병에 걸리자 미스트리스는 플로렌스를 보내 자유 흑인인 대장장이를 찾게 한다. 그는 약초를 다룰 줄 알고 있어 그 비법을 사용해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주었던 것이다.
대장장이가 제이콥을 따라 집에 왔을 때 플로렌스는 그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이제 그를 찾아 숲으로 가는 여정에서 플로렌스는 새로운 일들과 부딪친다. 숲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악마 취급하고 그녀는 이윽고 대장장이를 찾는데 성공한다. 대장장이는 미스트리스 치료를 위해 집으로 가고 플로렌스의 여행은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진정한 여행은 끝난 것이 아니다. 대장장이는 그녀를 거부하면서 의문을 남겨주는데 '자유'라는 그의 말은 플로렌스에게 극도의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경험한 바 없는 단어는 그저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는 대장장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살아있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지만 '자유'라는 말은 경험한 바 없으므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자비>에는 다양한 주제가 녹아 들어 있다. 미국 초기의 삶을 이루었던 자연적인 상태에 있는 공동체의 모습, 백인, 흑인, 인디언, 혼혈등의 다양한 인종이 빈부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가족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것은 노예제라는 인위적인 제도가 백인과 다른 인종을 어떻게 갈라놓았는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백인이 경제적 이득에 눈이 멀어 노예제를 만들어낸 이후 백인과 흑인은 철저히 분리되어 그 사회는 점점 비인간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내려오면서 인종적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미국인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어머니에게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플로렌스의 사고는 모리슨이 여전히 모녀간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 문제는 언제나 모리슨의 큰 줄기였다. 흑인은 백인에게 열등한 존재라면 여성은 남성에게 열등한 존재라는 것이 유럽 중심적 사고의 핵심이다. 이 사고에 따르면 흑인 여성은 사회에서 가장 약자 계급이다. 백인은 흑인을 억압하고 흑인은 흑인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가 성립되는 것이다. 모리슨의 모녀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 소설 <제일 파란 눈>에서 어머니는 딸을 방임하고 백인 우월주의 사고를 물려주며 두번째 소설 <술라>에서 어머니는 육체의 억매임에 억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다음 소설 <솔로몬의 노래>와 <재즈>에서 어머니들은 자신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빌러비드>에서는 노예로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판단하에 딸을 죽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타르 베이비>의 어머니는 자신의 고통에 겨워 어린 아들을 학대하고 <파라다이스>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삶에 몸부림치며, <러브>에서는 안위를 위해 딸을 억압하는데, <자비>에서 어머니는 다시 딸을 버리는 것이다. 플로렌스는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는 인식 여행을 거쳐 성인 자아에 이르게 되고 어머니가 말한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어머니와의 화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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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국에 역사라는 게 있긴 있나요? 흑인들의 역사라면 몰라도... '자유'라는 낱말 속에는 '살아있다'는 뜻이 기본적으로 숨어 있을 듯해요.
헉! 미국인들이 들으면 기절하겠군요. ^^ 역사가 짧은지라 그야말로 벽돌 한장도 귀중품처럼 다루더군요. 놀라실 겁니다. 얼마나 과거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지 아신다면. 우리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밀어버릴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필라델피아에 갔을때 포우 박물관에 들렀습니다. 아무 것도 없더군요. 벽지마저도 뜯겨진 상태.그럼에도 그 건물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자원봉사 안내원이 어찌나 당당하고 상세하게 안내하는지...실패하나 골무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빌러비드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도 저의 '읽고 싶은 책'
트에 올립니다. 
<빌러비드>는 물론 최고지요. <솔로몬의 노래>도 좋습니다. <가장 푸른 눈>도 좋지만. 원서는 더 멋있습니다. 모리슨은 대담하고 섬세하고 복잡하고 환상적이에요. 전 아무래도 모리슨만 잡으면 푹 빠지는 경향이 있어서리..
자비! 참 좋은 내용이겠군요. 역시 읽어봐야겠네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모리슨이 좀 힘이 빠진 것 같은데. 아마 올해쯤이나 내년 초쯤 번역본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