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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용돈을 주는 친척이 좋아요.
마 6:2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명절이 되면 일가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어른들은 오랜만에 만난 손주/조카들에게 으레 용돈을 줍니다.
용돈을 주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쑥쑥 커져서 나타난
귀여운 녀석들을 보며 어른들은 반가운 마음에 미리 준비한 용돈을 꺼내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속으론 은근히 기다렸어도 겉으로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면서
손사래를 약 두세 번 정도 친 후에 못이기는 척하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환하게 웃으면서 기쁘게 용돈을 받습니다.
이제는 누구에게 용돈을 받을 일이 없고, 위 아래로 주기만 해야 하는 입장의 나이가 되었다 해도
모두가 한 때는 명절날 친척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아본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여러 사람들에게 용돈을 받으면 평소 부모님께 받아왔던 용돈보다 많은 액수에
기분도 좋아지고, 머릿속으론 어디에 사용할지 생각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또한 자신에게 용돈을 준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그 사람에 대한 감정도 좋아지기 마련입니다.
용돈을 주신 그 친척 어른을 원래 사랑하고 존경하여
평소에도 자주 찾아뵙거나 연락을 드리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좋은 감정을 품게 됩니다.
용돈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마 6:21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그런데 단 한 번도, 천 원짜리 한 장도 조카들에게 준 적이 없는 친척 어른도 있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은 명절에 용돈을 많이 받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평생 백 원짜리 동전 하나도 조카들에게 준 적이 없는 구두쇠가 집안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난해서 용돈을 못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인 강남에서
종업원들을 부리는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며 거금의 재산을 모아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그 특유의 인색함 때문에 절대로 용돈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의 어른은 조카들이 좋아하질 않습니다.
용돈을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볼 때마다 듣기 싫은 말까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있거나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이 세상 최고인 척을 하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잘난 척까지 한다면
그런 사람은 조카들 사이에서 요즘 애들 말로 극혐(극도의 혐오)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다면서 제 상상력이 너무 풍부한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것은 상상이 아닙니다.)
이 내용을 정리해보면 ‘사람은 자신에게 용돈을 주는 사람에 대해선 좋은 감정을 품으며,
인색하기에 용돈을 안 주는 것은 물론이고, 듣기 싫은 말까지 늘어놓는 사람에 대해선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다.‘ 입니다.
자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그 사람의 마음도 있기에
사람이 땀을 흘려 일해서 번 돈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거저 준다는 그 행위 자체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에게 호의와 사랑을 베풀어 준 것,
최소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 것으로 느낀다는 사실입니다.
꼭 돈이 아니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물질적인 가치가 무료로 이동되어야
사람은 대접받고, 존중받는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용돈이라고 쓴 봉투에 아무 것도 넣지 않거나
요즘은 사용할 데가 없는 십 원짜리를 한 두 개씩 넣고
그 봉투를 명절 용돈이라며 조카들에게 나눠주면 평생의 얘깃거리,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아무 것도 주지 않는 것이 더 낫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가치가 무료로 제공되어야만 사람 사이에 호감이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원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가치 기준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미성년 자녀들에게 정기적으로 주는 용돈은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자녀가 평소에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등 사이가 좋은 관계면
부모가 용돈을 많이 줄 수 있는 상황이든, 적게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든 상관없이
평소와 동일하게 부모에게 인사도 잘하고, 사랑을 표현하겠지만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녀는 부모가 주는 용돈이 적어지거나 없어지면
화를 내고, 인사도 안하고, 일부러 부모의 마음이 속상하게끔 밥도 안 먹고, 계속 짜증을 낼 것입니다.
부모가 주는 용돈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명절에 친척들이 주는 용돈보다 부모가 그동안 준 용돈이 훨씬 더 많고,
용돈 외에도 자녀를 위해 사용하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많은데도
철들지 않은 미성년의 자녀들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합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나는 안 그래.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그런 감정을 품는 것들이 한심한 것들이지.’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바로 저와 여러분들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고후 13:5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사업이 커지서 (월급/보너스 제때 받아서) 돈도 점점 많아지고,
자녀들도 이제 성인이 되어 좋은 곳에 취직하는 등 돈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잘 지낼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하고, 정성을 다한 예물을 올리다가도
사업이 점점 힘들어져 (월급이 밀리거나 받지 못하게 되어) 수입이 줄어서
예금해두었던 돈이 계속 줄어들면서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지고,
자녀들에게 속상한 일들도 이어지고, 건강도 잃어서 몸이 힘들어지면, 즉 고난이 찾아오면
어느 새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사라지고, 찬양은 멈추고 한숨이 늘어나며,
하나님께 예물도 올리지 않고, 쉽게 분노와 짜증이 일어나며,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이 곰팡이처럼 퍼져나가면 그 모습이 바로
부모의 보살핌과 용돈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가 용돈이 적어지면 (원하는 만큼 더 주지 않으면)
부모를 미워하며, 분노를 표출하는 철없는 미성년 자녀와 완전히 동일한 모습인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고, 감사하며, 예물을 올린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공급해주시는 돈 때문이었던 겁니다.
그런 모습을 가진 사람은 삶의 이유, 인생의 목표, 행복의 기준이
바로 돈인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좋아 보이는 것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세상적인 복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로서
정작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는 별로 관심이 없는
육신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세상을 주님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돈(세상의 것들)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요일 2:15-17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대해서, 내 인생의 목적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이, 거룩한 고민도 없이
그저 멍하니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당연하다는 듯 가장 사랑하고,
그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모습, 즉 동물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육신적인 모습,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애써 유지하는 모습,
말로는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자기를 부인하지 않은 (부인하기 싫은) 모습,
예수님을 닮고 싶다고 기도는 곧잘 하지만 여전히 자기의 십자가를 지기는 싫고,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단 한 걸음도 따라가기가 싫은 고집스러운 불순종, 거역의 모습,
그야말로 하나님을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무료로 다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던 제자들은 전부 다 예수님을 배신하여 도망가며 저주까지 했고,
예수님께선 배신과 폭행과 채찍질과 욕설과 업신여김과 멸시와 천대를 당해주셔서
마음은 아프셨고, 온 몸은 다 피로 물드셨고, 관절과 내장이 다 드러나신 상태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그 죽음의 언덕을 올라가셨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제가! 바로 당신이! 한 짓입니다.
그 당시의 이름 모를 유대인들이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께 그렇게 한 것이 맞습니다.
상징적인 얘기가 아니라 실제적인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죄를 선택하여, 죄를 사랑하여 하나님을 배신했기 때문에,
그 상태로는 우리 모두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살려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땅에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겁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을 우리 대신 찢으셔서 유일한 구원의 기회를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겁니다.
뭐 하나 잘 난 것이 없는 저와 여러분들, 더러운 죄인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 내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찢어지지 않고, 눈물도 나질 않고,
여전히 하나님께 불평하는 마음만 있고,
여전히 세상의 것들, 쾌락을 가장 사랑하여 갈망하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지금 이 상태론 분명히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는데도,
그런데도 더 내놓으라고,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라고 말하자마자
부족하다며 세상의 것들, 돈을 더 내놓으라면서
예수님의 멱살을 쥐고 앞뒤로 힘차게 흔드는 악행을 그만 멈추고,
이제는 우리가 거만함을 버리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기도도 안 하거나 대충 형식적으로만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예물도 마음과 뜻과 정성은 찾아볼 수가 없는 모습이었으면서
육신적인 문제, 돈 문제, 마음이 힘들어지는 일들이 생기면
그 때 갑자기 거룩한 모습의 신앙인이 되어
열심히 기도도 하고, 말씀도 묵상하고, 찬양도 큰 소리로 하고, 하나님께 정성껏 예물도 올립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으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으면
다시 평시모드로 변경,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눈을 돌려 세상을 바라보며,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인생을 즐기기 바쁩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육신적으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예배드리고, 예물을 올리고, 순종하는 가식적인 모습이었으면서
힘든 일들이 생기면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시냐고,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느냐며
분노를 뿜어대다가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으면 분노를 가라앉히면서 안정을 되찾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내가 부리는 노예쯤으로 여기는 저열한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육신적인 소원이 도저히 이뤄질 것 같지 않으면
그 비슷한 다른 거라도 취하여 애써 만족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즉 세상의 것으로 영적인 공허함을 채우려하면서 계속 시간만 허비하고 있으면,
즉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순종도 죽을 만큼 싫어서 시간만 계속 흘려보내다보면
어느 날 큰 물고기가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욘 1:17-2:10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그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께선 계속 불순종하는 우리,
겸손한 척하는 교만한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랑이 가득한 큰 물고기를 보내주십니다.
그리고 참 고맙게도 그 물고기는 우리를 꿀꺽 삼켜줄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한 기도를 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쉽게 말해 “잘못했습니다, 주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앞으로는 진짜 순종하겠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요나의 이 기도는 사실 엄청난 믿음을 품은 기도입니다.
만약 요나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마치 용돈을 적게 준다고 부모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행동하는 자녀처럼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분노를 내뿜으면서 패역한 짓을 했거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제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이 죄나 실컷 지어야겠다.
그동안 죄와 싸워온 내 노력, 예배드린 세월, 올려드렸던 예물,
하나님께 순종했던 그 시간이 아깝다! XX!’ 하면서 죄와 완전히 연합했을 것입니다만
요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한 물고기 뱃속, 다시 말해 죽음의 공포 앞에서
“제가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지만 그래도 저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겠습니다.
감사하는 목소리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저의 서원을 갚겠습니다.“ 라고 기도함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향해 스스로 힘껏 달려가 안기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 신앙을 증명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을 피해서 숨은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끊임없이 (기회와 시간은 무한으로 주어지지 않기에 언젠가는 끊어지겠지만 아직까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기회를 베풀어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자백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고, 돌이키지도 않으면 그 때는 지금보다 더 힘든 일들, 더 험난한 고난들,
여러 종류의 위험한 일들, 불만족스러운 일들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 무엇도 당신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입니다.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아시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큰 물고기는 우리를 괴롭히고자 하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초대하는 초대장인 것입니다.
현재 하나님과 단절되어 죄 가운데 있는데도
고난이 별로 없는 것 같고, 돈도 많아지며, 마음껏 세상 쾌락을 즐기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상황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면서도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며
오로지 세상 일, 육신적인 일,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방법에만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과 나의 관계, 그 본질을 살필 수 있어야 요나처럼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더 나아가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드렸는지?’ 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께 그저 받기만을 원하는 어리석고, 탐심 가득한 모습은 버리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드렸는지에 관해서도 솔직하게 생각을 해보는
성숙한 자들이 다 되십시다.
각자 자신의 신분과 위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범위가 다 다르겠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 것도 못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명을 받았다고 해서
그 내용은 그저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명하신 일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모두가 당연히 순종해야 할 일들,
즉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면서도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되뇌는 것은
불순종이라는 단어 외엔 사용할 단어가 없습니다.
눅 3:9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직업이 있고, 현재 돈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면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으면)
자기가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먹고, 드러누워서 드라마나 보는 등의 세상 쾌락을 즐기면서
아무 열매도 맺지 않는 삶은 하나님께 받기만 좋아하는 인생,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섬기고 있는 인생이 맞습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는데도
도무지 깨닫질 못하고 계속 불순종하면서 도망만 다니면
결국 그 사람을 깨닫게 해줄 거대한 물고기가 찾아와 삼켜줄 것입니다.
그 물고기가 바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와 자비와 긍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여
물고기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요나처럼 기도하여 하나님 앞에 순종하십시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2023년이 된지 벌써 1개월이 지났습니다.
새해 첫 주일 설교로 주신 말씀,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기로
우리 모두가 다짐을 했고,
각 사람마다 스스로 작정하여 ‘올해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해야겠다.’
했던 부분들이 각자 있을 것입니다.
다들 연초마다 뭔가 다짐을 하지만 매너리즘에 쉽게 빠지는 우리의 다짐은
결국 작심삼일이 되기 쉽습니다.
약 1:22-25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눅 11:27-28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를 듣고, 깊이 깨달아 마음에 굳게 다짐을 했어도
작심삼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즉 꾸준히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꾸만 다시 새롭게 각성하여 말씀을 듣고 지키는 순종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고, 참된 순종입니다.
우리가 3일에 한 번씩 122번만 작심하고 각성하면 1년 내내 순종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 매일 나아가서 깊은 교제를 나누면 작심을 이어갈 수 있고,
작심을 계속 이어가면 꾸준히 순종할 수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한 마디로 ‘나는 할 수 없지만 매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내 안에 거해주시는 성령님께서 하시면 가능하다.‘ 는 뜻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육신의 생각은 확연하여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이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자기 자신을 쳐서라도 복종하게 하여 온전히 순종하면
하나님과 다시 화평한 자가 된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고 기억하여
부디, 제발 올해는 육신을 따르는 육신의 일을 싹 다 내버리고,
오직 영을 따르는 영의 일을 생각하는 자가 되어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 빚진 자들답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아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롬 8:5-14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3.01.29.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475장 이 세상은 요란하나
1. 이 세상은 요란하나 내 마음은 늘 편하다 구주의 뜻 준행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2. 이 세상은 늘 변하고 험악한 일 참 많으나 주 은혜만 생각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3. 육신의 눈 못볼 때에 신령한 눈 곧 밝히사 저 천성문 보게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4. 내 마음과 내 영혼이 모든 욕심 다 버리고 주 은혜로 성결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5. 이 육신의 복락보다 신령한 복 더 좋으니 내 맘과 뜻 다 합하여 저 천성만 향해가네
첫댓글 아멘! 큰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가기 전에
회개하고 순종하는 인생이되어 매맞고 후회하는
인생이 아니라 맞기전에 잘 하는 아들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 혼나기 전에 순종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자세지만
스스로를 의롭게 여길 수 있는 함정이 있으니 그 부분을 늘 주의하시면서
앞으로도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는 멋진 인생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