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체의 철학
반경환
나는 나의 스승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손을 잡고 낙천주의 사상의 신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자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1844년 프러시아 삭손州 뢰켄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일생내내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정신으로, 모든 가치들의 전복을 기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너희에게 초인(超人)을 가르친다. 인간은 초극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다”라고 그가 부르짖었을 때, 바로 그 부르짖음 속에는 ‘신의 사망선고’가 내려져 있었던 것이며, 따라서 그의 반기독교주의와 반형이상학주의, 그리고 그의 반이상주의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가 있는 것이다. 초인은 신을 섬기지 않은 사람이며, 하늘 나라의 이상적인 천국도 믿지 않는 사람이다. 초인은 우리 인간들의 미래의 인간이며, 그는 이 땅에 두 발을 튼튼히 내리고 있는 짜라투스트라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삶의 본능의 옹호자이며, 그는 그의 일생내내 우리 인간들의 삶을 비방하고 헐뜯고 부정하는 기독교와 염세주의 사상에 맞서 싸워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가령, 예컨대,
“나는 필연적으로 내일의 인간, 모레의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철학자가 항시 스스로를 오늘과 상반되는 존재로 생각해왔고,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기분을 점점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그의 적은 오늘의 이상이었다. 철학자라는 이름의 인간의 육성자, 이 비범한 존재들은 이제까지 스스로를 지혜의 친구라기보다는 위험스러운 물음표, 불쾌한 바보라고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당대의 불쾌한 양심이 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자각해왔다. 그러한 사명은 수행하기도 어렵고 달갑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회피할 수도 없는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로 위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시대의 미덕의 심장에다가 메스를 댐으로써 그들의 비밀한 과업이 무엇인가 드러냈다. 즉 인간의 새로운 위대함을 인식하고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전인미답의 새 길을 탐구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때마다 그들은 당대의 가장 찬양받는 도덕들 속에 얼마나 많은 위선과 안일, 나태, 타락, 허위 등이 숨겨져 있는가를, 그리고 당대의 미덕이 얼마나 낡은 것인가를 폭로해왔다. 그들은 항시 다음과 같이 말해왔다. ‘우리들은 오늘날 그대들이 가장 불편스러워하는 곳으로, 그러한 길로 가야만 한다”
라는, 선악을 넘어서(청하, 1982)에서처럼, 니체의 철학은 철두철미하게 비판철학이며, 다른 한편,
“내가 ‘비극적인’이라는 말의 개념과 비극의 심리학에 관한 궁극적인 지식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를 우상의 황혼에서 최근에 설명한 바 있다. ‘인생의 가장 풀기 어렵고 가혹한 문제에 당해서도 생을 긍정한다는 것, 비견할 바 없는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무한한 즐거움을 느끼는 생의 의미----그것이이른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비극적 시인의 심리에 도달하기 위한 교량 역할로서 파악하였다. 시인이 비극을 쓰는 것은 공포나 연민을 제거하기 위함이 아니요, 공포와 연민의 맹렬한 폭발로부터 생기는 하나의 위험한 영향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함도 아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점에서 오해한 바 없지 않다.----그것은 모든 공포와 연민을 초월하여 생성이라는 영원한 기쁨도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나 자신을 최초의 ‘비극적 철학자’로 이해할 만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즉 염세적 철학가의 정반대되는 철학자로서 말이다. 나 이전에는 이와같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하나의 비극적 파토스로 인식한 자는 없었다. 즉 비극적 지혜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라는 이 사람을 보라(청하, 1982)에서처럼, 니체의 철학은 생의 철학, 즉 비극철학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비극철학은 그의 목표이며, 비판철학은 그의 수단이다. 그는 그 디오니소스적인 세계, 즉 짜라투스트라적인 초인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하여, 기독교와 형이상학, 그리고 이상주의의 심장에다가 그의 메스를 들이댔던 것이고, 그 결과, 그는 ‘만인 대 일인의 싸움’에서 패배를 하여, 그 광대와도 같은 짜라투스트라의 삶을 살다가 갔던 것이다. 고독, 정적, 병, 短命이라는 운명, 너무나도 울고 싶을 때에도 익살스러운 광대가 되어야만 했던 그의 삶은 얼마나 쓰디 쓰고 처절했던 것이며, 다른 한편, 대학사회와 출판사, 그리고 언론사와 그의 조국인 독일에서의 홀대와 멸시의 아픔 등은 또한 얼마나 쓰디 쓰고 처절했던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비극철학자답게 그 비판철학의 건강함으로 우리 인간들의 삶의 본능을 옹호하고, 이 땅에 두 발을 튼튼히 내린 ‘초인의 사상’을 완성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니체의 ‘초인 사상’은 ‘위험스러운 물음표’와 ‘불쾌한 바보’가 되어야만 했던 그의 비판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며, 그 사상의 신전에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씌어져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은 불멸하기 위해서는 비싼 대가를 치뤄야 한다. 사람은 불멸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이 사람을 보라).
니체의 사상의 신전에는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선악을 넘어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즐거운 지식, 도덕의 계보, 권력에의 의지, 반그리스도, 서광, 니체 대 바그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상의 황혼 등의 저서들이 그 빛을 발하고 있고, 그 빛 속에는 하이데거, 데리다, 미셸 푸코, 들뢰즈 등, 그의 후학들이자 세계적인 석학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직, 단 한 사람 뿐이었고 고문받는 순교자에 지나지 않았을 때, 니체는 “괴테도, 셰익스피어도, 단테도, 짜라투스트라에 비교하면 단순한 하나의 신봉자에 불과하며”, “베다의 시인들역시도 짜라투스트라의 구두끈도 풀어줄 만한 가치도 없는 자들”(이 사람을 보라)이라고 혹평을 하며, 마치 자기 자신을 人神의 높이로까지 끌어올린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니체 철학의 최대의 약점은 기독교에 대한 혐오가 지나치다 못해서, 모든 형이상학과 우리 인간들의 이상마저도 극단적으로 부정하고 매장을 시켜버리려고 했다는 사실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와도 같고 니체와도 같은 신성모독자들은 오늘날 무척이나 많이 늘어났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역사의 종말을 맞이한 것도 아니고, 또한 형이상학과 이상이 그 종적을 감춘 것도 아니다. 기독교와 형이상학, 그리고 이상 역시도 삶의 본능의 옹호이며, 그리고 그것들이 종적을 감추게 되면, 니체의 초인 사상도 그 설 땅을 잃어버리게 된다.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다같이 바라보고 그 진정한 의미를 밝히려고 했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의 극단적인 사고방식만은 교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인간은 초극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다”라는 초인 사상은 예수(신)와도 같은 인물을 지칭하며, 그 초월성 때문에 이상주의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따지고 보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가 기독교적인 예수에 지나지 않으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형이상학적(이상적)인 인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니체는 기독교, 형이상학, 이상주의, 그 어느 것도 뛰어넘지 못했으며, 그처럼 불가능하고 무모한 싸움을 수행해야만 되었던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너희가 이상적인 것을 볼 때 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본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청하, 1982)라는 그의 명제 역시도 하나의 횡설수설에 불과하며, 오히려 거꾸로 “너희가 인간적인 것을 볼 때 나는 신적인 너무나 신적인 것을 본다”라는 형이상학적인 명제를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니체의 비극의 개념과 그 의미에 대한 정의는 매우 섬세하고 정교해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독창적인 이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은 그의 무지와 몰이해의 소산에 불과하며, 한 마디로 말해서, 비극은 유한한 존재자인 우리 인간들의 자기 초월의 문제와도 매우 깊숙이 결부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극이란 우리 인간들의 비참한 사건과 그 불행들을 지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주체자들이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비극이란 말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말이며, 그 비극의 주인공이 더없이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갔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비극의 기원은 무엇이며, 왜 비극이 그토록 오랫동안 그처럼 중대한 문제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인간들이 불완전한 존재이며, 그 삶의 조건이 비극적이기 때문인 것이다. 신은 전지전능하며 영생불사의 존재인데 반하여, 우리 인간들은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들은 애정의 결핍과 재화의 결핍, 그리고 능력의 결핍과 존재의 결핍 등과도 같은 비극적인 조건들 속에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고, 또한 그 비극적인 삶의 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프로메테우스와도 같은 무모한 고행을 되풀이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인간들의 불완전성이 비극의 기원이며, 그토록 오랫동안 비극이 중대한 문제로 회자되고 있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조건이 ‘비극적인 것’으로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아버지----힌두교의 브라만과 유태교의 하나님----를 상징적으로 살해하고 민중들을 구원해냈던 부처와 예수, 살부와 근친상간을 범하고 테베 사회를 구원해냈던 외디프스, 문명과 문화의 원동력인 불을 발명하고 그 댓가로 카우카소스의 바윗산에 묶여서 제우스의 신조인 독수리에게 하염없이 간을 쪼아먹혀야만 했던 프로메테우스, 지동설을 역설했다가 화형을 당한 조르다노 브루노, 그의 스승인 헤겔의 절대정신을 비판하고 염세주의를 역설했던 쇼펜하우어, 이제까지의 모든 가치들의 전복을 기도하고 마침내 신의 사망증명서를 발급해주었던 니체 등의 삶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우리 인간들은 유한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영원하다. 또한 우리 인간들 개,개인은 더없이 어리석고 약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영웅들이 이룩해낸 업적은 그들의 사상의 신전에서 더없이 거룩하고 위대하게 그 빛을 발한다. 모든 문명과 문화는 고귀한 것, 거룩한 것, 위대한 것을 위하여 이처럼 목숨을 바쳤던 영웅들의 성과에 의해서 구축된 것이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 우리 인간들의 비극적인 삶의 조건들은 그때 그때마다 슬기롭게 극복되어 왔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포와 연민을 몰아내기 위해서 비극을 보는 것도 아니며, 또한 공포와 연민의 위험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비극을 보는 것도 아니다.비극은 삶의 조건이며, 삶 자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비극)이라는 거대한 장애물 앞에서 쓰러져 가고 있는 사람들과, 그리고 비록 일시적이고 잠정적이긴 하지만, 그 장애물을 극복해낸 문화적 영웅들에게 자기 자신을 일체화시키고 있는 것이지,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비극을 보는 것은 아니다. 비극의 주인공들에게는 그 비극적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적인 과제이며, 공포와 연민의 감정은 매우 진부하고 방관자적인 관객의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이론’은 비극의 주인공들(모든 인간들)에 대한 모독이며 불필요한 감정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비극의 주인공들과, 그 주인공들의 삶과 일체화된 관객들은 모두가 다같이 삶이라는 거대한 장애물 앞에 쓰러져서 아주 처절한 고통과 그 아픔에 신음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하고 상상할 수조차도 없었던 그 장애물들을 극복해내가며, 하늘을 찌를듯한 환희에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왜냐하면 배우와 관객들이 모두가 다같이 하나가 되어, 자기 자신과 인간이라는 삶의 문제에 몰두해 있기 때문이다. 비극은 연극이 아니라 삶 자체이며, 우리 인간들은 그 비극을 극복해나가는 데서,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또 그 비극 앞에서 장렬하게 전사(순교)해간 선인들의 업적과 그 숨결을 통해서 삶의 아름다움과 그 경건함을 체득하게 된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비극을 삶의 본능의 옹호와 그 찬가로 바라본 니체의 정의는 매우 정확하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극에 대한 니체의 정의는 그가 그토록 부정하고 비판했던 ‘자기 초월’의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게 된다. 부처, 예수, 프로메테우스, 디오니소스, 조르다노 브루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우리 인간들의 미래의 이상형이며,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인신의 경지로까지 올라간 문화적 영웅들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그토록 기독교와 형이상학에 반대하고 플라톤의 이상주의에 반대했던 니체의 ‘초인 사상’이 그들과 너무나도 똑같이 닮아 있다는 것은 이상 야릇한 역설이 아닐 수가 없다. 하나의 신전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신전들이 파괴되어야만 한다는 진리가 이처럼 정확하게 들어맞은 일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니체만이 자기 자신을 최초로 ‘비극철학자’로 인식할 만한 권리를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니체 이전에, 부처, 예수, 호머, 프로메테우스, 소크라테스 등의 수많은 문화적 영웅들이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건강과 그 문명과 문화의 삶을 위하여, 자기 자신들의 단 하나 뿐인 생명을, 마치 한 자루의 촛불처럼 소진시켜 나갔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자기 초월, 즉 불사에 도전함으로써 영원불멸의 삶을 획득한 문화적 영웅들이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 “사람들은 불멸하기 위하여 여러 번 죽어야 한다”는 니체의 통찰은 꼭 들어맞는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니체가 자기 자신을 최초로 ‘비극철학자’라고 명명한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그만큼 침소봉대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니체의 손을 이끌고 나의 ‘사색인의 십계명’ 중 제4계를 소리높여 낭송해본다.
제4계: 사상의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라;
우리는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놓을 필요가 있다.
나는 낙천주의자로서 ‘세계는 나의 범죄의 표상이다’라고 역설한 바가 있다. 이 말은 나의 범죄 행위가 있고, 그 다음에 세계가 있다라는 뜻이다.
創字에는 칼 도(刀)字가 들어 있다.
나의 사상의 신전, 낙천주의 속에는 우리 인간들의 꿈과 행복이 들어 있고, 언제나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짓고 있다.
----{반경환 {행복의 깊이} 제4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