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45
마리아에게 왔다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본 유대인들 중의 많은 자들이 그때에 그분을 믿었으나 46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길로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그들에게 고하니라,
믿는자들 (Savour of Life):위로하러 왔다가 '살아있는 증거(나사로)'를 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됨.
고발자들 (Savour of Death):동일한 기적을 보고도 마음이 더 완악해져서 산헤드린(바리새인)에게 달려가 '밀고'함.
나사로의 부활은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난 사건이었다.하나님의 역사는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우리의 죄를 드러내어 더 완악하게 만든다.증거가 부족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과 전통(바리새인)을 하나님의 말씀(The Work of God)보다 위에 두기 때문이다.
요11:47
그때에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기적들을 행하고 있으나 우리가 어찌해야 하겠느냐?
* 우리가 어찌해야 하겠느냐? ----> 진리를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책을 묻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를 보고도 어떻게 하면 이 증거를 덮을까?를 고민한 것이다.
* 이 장면은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통치 기구인 산헤드린이 메시아를 공식적으로 거부하기 위해 모인 장면입니다. 그들이 "기적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막으려고 술수를 부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 부인할 수 없는 사실 (The Undeniable Fact): 진실을 보고도 묻는 잘못된 질문: What do we?
**This man doth many miracles." 그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알았다.
** 말씀 앞에 납작 엎드리는 믿음:"What do we?"라고 대책을 세우지 말고, "Lord, I believe"라고 굴복해야 한다.
** 보존된 말씀(KJV)의 증거 앞에 인간의 논리는 멈추어야 한다.
. * 진리 앞에서 결단하지 않는 것은 곧 대적하는 것이다.
** 그들은 성경을 오용하여 기적을 부인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전통과 학문의 틀에 가둘 때, 기적이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한다.
48,49 - 만일 우리가 그를 이대로 내버려 두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믿을 것이요 또 로마 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터전과 민족을 다 빼앗아 가리라, 하매 49 그들의 중의 한 사람으로서 바로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라 하는 자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 "The Romans will come." 산헤드린은 세상을 두려워하여 창조주를 배척했다.
* 오늘날도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진리를 거부하고 타협하는 자들이 있다. 입술로는 진리인척, 바른 것인척,하면서 자신의 이해타산만 고집하는 자들이다,
** 그들이 종교적, 시민적 특권을 뺏길까 봐 걱정했다고 한다. 말씀(진리)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내 영역, 내자리만(Place)을 고집할 때, 우리는 말씀의 통치를 거부하게 된다.
결론 - 바른 양심은 오직 말씀 안에 있다 처음부터 주신 양심을 지키라,
* 너희가 결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 가야바는 "죽여야 산다"는 이 극단적인 실용주의적 계산을 못 따라오는 동료 바리새인들의 무능함을 질책하고 있다,
50 - 또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서 온 민족이 멸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는 것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더라,
* 한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서 -----> 가야바는 '민족의 안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 사람(예수님)'을 희생시키는 것이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 가야바는 아주 똑똑한 정치가처럼 행동하지만 비겁한 살인 공모자요, 교활한 정치가다, 그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 지귀연 판사는 비겁하고 불의에 타협한 교활한 정치 술수가이다, 윤석열' 한사람을 제거하면 자신들의 기득권과 세력들을 지킬 수 있을것으로 생각하지만 오산이다,
* 가야바는 '유대 민족'의 멸망을 막으려 했으나, 예수님의 죽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가야바는 "예수를 죽여야 이스라엘이 산다"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예수를 죽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서기 70년에 로마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인간의 꾀가 결국 민족의 재앙이 된 것이다,
* 지귀연 판사는 비겁한 재판으로 결국 자신의 양심만 타협꾼들에게 판 셈이 되었다,
가야바의 입술은 자기도 모르게 '대속의 진리'를 뱉어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의도까지도 자신의 보존된 계획(Predetermined plan)을 이루는 데 사용하신다.
* 지귀연 판사는 양심을 타협하고 윤석열을 죽였지만 1명이 하나님의 자유질서 법치 1000만이 다시 하나가 되는데 일격 했음을 알아야 한다,
51,52 - 그는 스스로 이 말을 하지 아니하고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님께서 그 민족을 위해 죽으실 것을 대언하되, 52 그분께서 그 민족만을 위해 죽지 아니하시고 또한 널리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함께 모으기 위해 죽으실 것을 대언 하였더라,
* 가야바가 '살인'을 모의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 악한 계획을 '대속(Atonement)'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 가야바는 참된대언자가 아니었으나 그가 내뱉은 단어'는 도구에 사용되는 워딩이였다는 것이다, 주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흩어진 우리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죽으셨다. 이 죽음은 "죄인들을 위한 대속(Atonement for sinners)"이다.
53,54 - 이에 그들이 그 날부터 그분을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니 54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는 유대인들 가운데 공개적으로 다니지 아니하사고 거기를 떠나 광야에 가까운 시골로 가셔서 에브라임이라 하는 도시로 들어가 자기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 머무시니라,
* 산헤드린은 가야바의 제안에 따라 법적 절차도 무시한 채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고, 주님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더 이상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공식적으로 거부하자, 주님은 그들에게 보여주시던 표적과 공적 가르침을 중단하신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동시에, 제자들에게 집중하시려고 시간을 할애 하셨다,
* 세상은 증거가 부족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진리를 '미리 정죄'한다.
* 윤석열 무죄 증거가 차고 넘쳐도 민주당의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마녀 사냥, 정죄 사냥을 마구잡이 하는 것이다,
* 예수님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시고 제자 교육에 집중하셨다.
* 우리도 세상이 진리를 거부하는 이 때에,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과 개인적인 교제(Private conversation)를 나누는 일에 힘써야 한다.
* 예수님은 아무 때나 죽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죽으셔야 한다.
* 에브라임으로의 후퇴는 도망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예수님의 사역의 타이밍을 맞추기 위한 주권적인 발걸음이다
55,56 - 유대인들의 유월절이 가까이 오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정결하게 하려고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56 그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찾으며 성전 안에 서서 자기들끼리 말하되,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그가 명절을 지키러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라,
*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몸을 씻는 유대인들을 묘사한다.이제는 지나가는 옛 경륜의 마지막 모습이 될 것이다,. 진짜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이제는 붉은 암송아지의 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단번에 정결케 되는 새로운 경륜이 열리게 될 것이다,
* 주님은 자신의 때(Hour)가 이르렀음을 아시고,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기 위해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 외적 정결보다 내적 믿음이 중요하다, ,
57 - 한편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양측 다 그분을 붙잡기 위해 누구든지 그분께서 계신 곳을 알거든 그곳을 알리라고 명령을 내렸더라,
*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잡기 위해 공식적인 '칙령(Edict)'을 내렸고, 이는 사람들에게 '포상'과 '밀고'를 종용하는 영적 암흑기가 시작된다,
* 의회의 결의로 수배령이 떨어지는 종교적 권위 남용이 진리를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 이스라엘이 왕국을 거부하고 메시아를 죽이기로 작정한 '배도의 정점이다,
* 산헤드린은 주님을 잡았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러 가신 것이다. 오늘날도 배도의 정점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배도의 정점이 다가올수록 심판의 정점도 함께 맞이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