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라는 것은 익숙하고 안정적인 곳이다. 그 곳으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왜? 그 구조 속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졌기에 진짜 내가 아닌 경우가 많다. 떠나고 나서야 내가 어떤 존재인지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떠나는 것 만으로는 또 안 되겠지. 치열하게 깨지고 탈주하고 새로워지는 과정이 필요할거다. 고통스러울 수 있겠다. 지겹고 반복되는 것 일수도..
하지만 하나님은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이 떠남의 이유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신뢰다.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고 이끌어가고 계시니까. 이미 예비한 길이 있으니까 그 길을 신뢰함으로 걸어간다.
올해 독립을 했다. 지금이 아브라함과 같이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마을로 매주 오간지 1년반이 넘어가던 시점에 옮기겠다 결단했다. 전까지 많은 땡김 받으며 고민을 해오니 지체들이 많이 기다려주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고민하는 시간들이었다. 심할때는 너 답답하다는 얘기까지 들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기도 했지만.. 결단하지 못하던 시기에는 내 분명함, 내 고백,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으론 지금은 아닌, 안 가고픈 마음도 있었다. 실체 없는 두려움, 걱정들이 있었으니.
몸을 움직이고 이제 와 돌아보니 이게 그렇게까지 미룰 일이었나 생각 들기도 하면서 왜 가겠다는 결정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갈 이유도, 안 갈 이유도 없었던 거다. 지금의 고백으로는 기도하고 고민해 오던 시간 속에 함께하는 힘의 기운, 하나님의 이끔심이라고 이해할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해서 인생이 순탄하진 않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대로 떠나 가나안으로 갔는데 기근을 만난다. 그러니 관성적으로, 옛 습대로 대도시로 향한다.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풍요와 화려함이 넘치는 곳이지만 착취와 폭력 또한 넘쳐나던 곳이다. 그래서 아내를 뺏기고 죽임 당할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어딜 가던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던 아브라함이 애굽에 가서는 그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나도 처음 이사를 하고 한달간은 몸살을 앓았다. 몸이 아픈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아주 골병들었었나보다. 누가 봐도 표정이 썩어있었달까. 누가 봐도 쟤 상태 안 좋았달까. 특별할거 없이 그냥 불편하고 답답하고 짜증나고 속이 울렁였다. 식물도 분갈이 하면 몸살 앓는다고, 동물도 허물 벗을때가 가장 약해 안전한 곳에 움츠리고 숨는다. 아.. 나도 지금은 몸도 마음도 약해질 수 있겠구나. 잠잠히 견디고 기다리자 싶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불러주고 확인해 주며 만나는 지체들, 항상 밝게 만나는 아이들, 변화하는 자연까지. 다양한 생명 만나며 내 어두운 기운에서 꺼내주고 깨워주는 이들 있어 지금을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살아간다.
반면 하나님은 하나님을 뜻을 저버린, 심지어 거짓말하고 아내를 버리기까지한 해롱대던 아브라함을 탓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바로를 탓하신다. 바로 한 개인이라기 보다는 민중들을 이렇게 살 수 밖에 없게 만든 힘과 구조를 꾸짖으신 것일거다.
자본 구조에 너무 만족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싸우고 정죄하던 모습 있었다. 하지만 저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저들을 저렇게 살 수 밖에 없도록, 바로 알지 못하도록, 홀로 분절되어 살아가도록 만든 힘과 구조. 저들조차 이 구조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저들에 대한 애통함과 긍휼함이 생기더라. 저들도 구원할 대상이구나. 어떻게 보면 그 누구보다 약자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자녀를 낳지 못해 낙심한 아브라함에게 찾아가는 하나님.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려했지만 생명에 대한 애통한 아브라함의 마음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아브라함과 직접 만나시고 소돔과 고모라를 직접 확인하는 인격적인 하나님. 다양한 하나님의 모습들을 만난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통해서도 새로운 하나님을 만난다. 각자가 경험한 하나님은 다양할 것이다.
논리적으로 어떤 하나님이 맞냐 하는 것은 관념 싸움, 관념 싸움밖에는 안 될 거다. 신에 대한 이해를 내가 사유할 수도, 신의 이름을, 모습을 규정지을 수도 없다. 전체이신 하나님은 배제되지 않으시고 축소되지 않으실테니.
그저 내가 만난, 경험한 하나님을 따르는 것. 그리고 지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해 들어 살아감 속에 하나님과의 관계, 만남이 더욱 풍성해질 거다.
그래서 지금 내가, 우리가 믿는 신은 누구인가. 어떤 삶을 따르며 살아갈 것인가. 합비루, 민중과 직접 함께 하며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신. 생명답게, 창조된 형상답게 살아가길 바라는 신. 그 이름 예수를 믿고 그의 삶을 배우고 계승 받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