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난 창
갑작스레 밀어닥친 한파에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오늘 아침 화장실에 들었다가 북쪽으로 난 창문에 얼음이 두껍게 낀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집은 남향집이어서 아침이면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길게 눕습니다. 그러니 창문이 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지요. 아침저녁으로 얼었다 녹았다 하다가 습기가 마르기 전에 들이닥친 추위에 얼어버린 것입니다. 아예 얼음 창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는 습기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창문 유리 위의 얼음을 보니 습기가 아니라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나 봅니다. 창은 물론 창틀까지 두꺼운 얼음이 뒤덮어버렸습니다. 바깥쪽이 얼고 안쪽이 멀쩡한 것은 제 등을 북으로 돌려 추위를 막아내고 있음입니다. 그런가 하면 남쪽으로 난 창문은 늘 보송보송합니다. 가끔 휙 하고 지나가는 칼바람에 ‘덜컹’ 하고 소리를 낼 뿐 추위와는 상관없어 보입니다. 북쪽으로 향한 창문은 늘 춥고 한기로 가득해야 하며,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창은 따듯한 햇살을 받아들이는 창문인 줄만 알았습니다. 사실 두 창문의 역할이 다를 바 없는데 말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와 함께 서울 나들이를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겨울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추웠습니다. 바람막이라고는 없는 신작로에서 할머니와 둘이서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햇살조차도 하늘에서 얼어붙었는지 온기라고는 없었습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남아있던 눈이 칼바람에 반짝이며 날려 목줄에 내려앉고, 신내에서는 얼음장 쪼개지는 소리가 쩌렁쩌렁 들리기도 했습니다. 전깃줄에 걸린 바람이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기도 했지요. 너무 추워 마른 갈대도 서걱서걱 우는 소리를 냈습니다. 할머니는 옥양목 치마저고리에 흰색 무명두루마기를 입으셨고, 흰 고무신에 버선을 신으셨습니다. 목에는 인견 목도리를 두르셨지요. 나는 골덴 바지와 어머니가 짜 준 두툼한 스웨터에 인조가죽점퍼를 입었을 겁니다. 그리고 검정 운동화를 신었지요. 그런 것으로는 추위를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나 다녔는지…버스 시간에 대 집으로부터 한참을 걸어 나와 얼어 죽기 직전까지 기다려야 했지요. 벙어리장갑 속으로 한기가 몰려들어 손이 얼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을 동동 굴렀지만, 추위는 점점 지독해지기만 했습니다. 서울 간다는 기쁨과 설렘에 춥다는 말조차도 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당신의 치마폭에 나를 감싸고 햇살이 비추는 남쪽을 향해 서셨지요. 두 손으로 내 뺨을 감싸 녹여주셨습니다. 차 소리가 들리면 할머니 저거 버스야? 하고 물었죠. 할머니는 다른 차구나. 다음에 오려나 보다, 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 품에서는 발이 시린 것 말고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 볼이 할머니의 온기로 발그스레해졌지요. 간혹 제 갈 길을 가던 바람이 방향을 바꿔 눈가루를 흩뿌리고는 했어도 말입니다.
할머니는 북으로 난 창문이었습니다. 할머니 등은 창문에 얼어붙은 얼음처럼 꽁꽁 얼었어도 굳건히 서서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어디 나뿐이겠는지요. 우리 가족 모두를 그렇게 지켜내셨지요. 화장실 창문을 보니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나도 누군가의 추위를 막아주는 창문이기를 바라는데, 그 역할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겠습니다. 춥고 더운 것은 나도 싫으니까요. 겨우내 얼음을 등에 지고 지내면서도 봄을 기다리는 창문처럼 당신 몸으로 추위를 막아내며 가족을 지켜준 할머니 덕에 우리는 무사히 추위를 견뎠습니다.
온도계를 불에 쬔다고 방이 따듯해지지는 않습니다. 창문은 온도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제 몸을 온통 얼리면서도 한기를 막아내 방을 따듯하게 합니다. 세상에 북창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부족해 보입니다. 모두 따듯한 방에 앉아있기만을 바라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더 많아 할머니 품에 안겨 추위를 피하려고만 합니다.
남쪽 창문가에 호접란(팔레놉시스)이 두 분(盆) 있는데, 이미 한 달 전부터 꽃대를 힘겹게 밀어 올리더니 근래에 꽃망울이 도드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만간에 붉은 팥알만 해질 것이고, 연이어 꽃을 피워낼 것입니다. 남향집 창문으로 들어온 따듯한 햇볕에 그리된 것으로 알겠지만, 북쪽 창문이 단단히 버티고 서서 추위를 막아준 덕이기도 합니다. 수레도 밀고 당기고 해야 수월하게 가는 것처럼 자연의 이치도 이와 같아서 한쪽에서는 한기를 막아주고, 다른 쪽에서는 따듯한 기운을 불어넣어야 꽃도 피는 것이겠지요.
할머니처럼 북으로 등을 돌려 추위를 막아주어야 온 가족이 따듯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봄이 오면 창문을 떼어내 잘 닦아 끼워야겠습니다. 한겨울 고생하고 난 끝이니 보상이랄 것도 없이 노고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라도 알릴까 합니다. 유리를 깨끗이 닦고, 창틀을 잘 말려서 지저분한 채로 겨울을 맞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돌아온 호미를 깨끗하게 닦아서 대문 안 시렁 밑에 걸어놓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