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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읽기 – 제11, 12, 13권] 아우구스티노의 우주 찬가
인간은 창조계의 작은 조각 하나
성경 다음으로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많이 읽혀 온 「고백록」의 전반부(제1-10권)는 자기 생애 전반을 회상하면서 “고백실에서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가”였다. 이 책의 후반부(제11-13권)는 우주 한곳에다 “당신께서는 저를 지으셨고” 그 광활한 공간에서도 “저를 당신께서는 잊지 않으셨음”(13.1.1)을 두고, 이렇게 외치는 ‘우주 찬가’다. “주님은 위대하시고 크게 찬양받으실 분”(11.1.1).
그래서 “당신 창조계의 작은 조각 하나가 당신을 찬미하고 싶어”(1,1,1), 고백록」 제11권은 이런 기도로 시작한다. 곧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는 구절의 절반, 곧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는 문구를 놓고, “태초에 어떻게 하늘과 땅을 만드셨는지 듣고 싶고 또 알아듣고 싶습니다.”
(11.3.5). 제12권에서는 저 구절의 나머지 절반, 곧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문구를 성찰한다. 제13권은 「창세기」 첫 대목(1,1-2,4)을 주교가 신자들과 함께 읽어 내려가는 ‘영적 독서’라고 하겠다.
철학적 성찰에 가까운 제11권에서는 ‘태초에’가 시간의 시초라기보다 존재의 시원을 가리킨다고, ‘하느님의 말씀 곧 성자 안에서’라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말씀이 “태초이시니 저희가 방랑하다가 돌아갈 적에는 그분께로 돌아갑니다. 그분이 태초이시고 … 이 태초에서 당신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8.10-9.11).
제12권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땅’이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지 묻고서 ‘하늘’은 천사라는 영적 피조물을 의미하고, ‘땅’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제일 질료’(第一 質料)라고 부르던 것이며, 이것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임을 역설한다. 교부의 창조 신학은 응당 삼위일체 신앙의 고백이기도 하다.
“보십시오, 저의 하느님, 여기서 삼위일체이신 당신께서 어렴풋이 제게 나타나십니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저희 지혜이신 분의 ‘태초’ 안에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께서는 당신 아드님 안에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보십시오, 당신의 영이 물 위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삼위일체이신 저의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13.5.6).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뭘 하시고
「창세기」에 따라 인간을 ‘피조물’로 규정하고 그리스도교 ‘창조 신학’을 완성한 교부가 아우구스티노다. 이 책 말고도 「마니교 반박 창세기 해설」(388년), 「창세기 문자적 해설 미완성 작품」(393년), 「창세기 문자적 해설」(401년)을 집필하였다.
하늘과 땅이 있고, 자기들은 만들어졌다고 외칩니다. 하늘과 땅은 자기를 스스로 만들지 않았다고 외칩니다. ‘우리가 존재함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는 우리는 없었으니, 그렇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생겨날 수 있는 것처럼 되고 만다’”(11.4.6).
이교도들이 흔히 주장하듯이, 세상은 ‘일자’(一者)로부터 필연적으로 유출된 무엇도 아니고, 타락한 물질이 응결되어 던져진 우연도 아니다. 인간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고 합의하고 당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만들어 하나뿐인 지구에 고이 가져다 놓으신 조물이다.
하지만 창조론에는 갖가지 시비가 따라붙게 마련. “어떻게 창조하셨느냐?”는 물음에는 “말씀으로!”라고 답한다. “당신께서는 그것들을 대체 어떻게 만드십니까? 하느님, 하늘과 땅을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당신께서 말씀하시자 생겨났고 당신 말씀으로 그것들을 만드신 것입니다”(11.5.7). “뭘 갖고 만드셨느냐?”고 힐문하면 ‘그냥 말씀만으로’ 만드셨다고 한다. “당신께서 생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다 생겨납니다. 당신께서는 오로지 말씀을 하시면서 만드십니다”(11.7.9).
“그래도 뭔가 재료가 있었을 게 아니냐?”고 따지면 “아무것도 없이, 다시 말해서 무(無)로부터”라고 대답한다. 창조주이신 만큼 영원히 존재하던 재료(물질)로 세상을 빚어 만들었으리라는 이원론을 배척한다. “당신께서는 무엇을 만드셨는데 무로부터 만드셨습니다. 당신 외에 무엇이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저것들을 만드실 만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당신께서 존재하셨고, 다른 것은 무였으니, 그 무로부터 당신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12.7.7).
그럼 “무엇 때문에 만드셨느냐?”는 장난기에는, 뭔가 아쉬워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착하셔서 만드셨다는 답이 나온다. “당신에게는 당신께서 선(善)이신데, 저런 것들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든, 또는 무형한 것으로 남아 있든, 당신의 선에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무엇이 부족하여 그것들을 만드신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당신 충만한 선하심에서 만드신 터에 말입니다”(13.4.5).
“세상을 언제 만드셨느냐?”는 물음에는 못된 저변이 깔려 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느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더냐? 피조물을 조성하려는 의지, 전에는 한 번도 조성한 일이 없는 것을 조성하려는 새로운 의지라는 것이 발생했는데 어떻게 하느님이 영원하시다는 말인가? 하느님의 의지는 그분의 실체에 속할 테고, 그 실체에 전에 없던 무엇이 발생하였다면 그 실체가 정말 영원하다고 말할 수 없다. 또 만일 피조물이 존재하게 만드는 하느님의 의지가 영원하다면, 피조물 또한 왜 영원하지 않다는 말인가?”(11.10.12)
여기서 아우구스티노의 철학 사상에서 가장 난해한 시간론(時間論)이 나오는데 그런 공부는 철학도들에게 넘길 만하다. 요컨대, 시간은 피조물과 함께 창조되었고, 피조물이 있기 ‘전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느님께서는 뭘 하시고 계셨더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하느님, 당신께서 모든 세기의 제작자요 조물주이신데, 당신께서 모든 시간의 작동자이신데, 시간 그 자체도 당신께서 만드셨고, 따라서 당신께서 시간을 만드시기 전에는 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불가능하였는데, 당신께서 그때는 무엇을 하고 계셨느냐는 말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입니까?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는 ‘그때는’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11.13.15). 시간 자체가 하느님에게서 창조되었고 시간은 유한한 사물이 갖는 존재론적 차원이다, 그것도 인간의 의식에서만 감지되는!
해넘이가 없는 안식일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는 마지막 제13권에서 ‘6일 창조’의 피조물들이 영성생활에 어떻게 해당하는지 풀이하면서 최고선이신 하느님께도, 천사와 영혼에도, 모든 미물에게도 실존의 중심(重心)은저 ‘심연의 물 위를 감돌던’ 하느님의 영, 곧 사랑이라고 역설한다.
“제 중심은 저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제가 끌려갑니다. 불은 위로 향하고, 돌은 아래로 향합니다. 제 중심을 향해 움직이면서 제자리를 찾습니다. 당신 선물로는 저희가 불타오르고 위로 이끌려 갑니다. 타오르면서 갑니다. 선한 의지가 저희를 그곳에 데려다 놓을 것이니 그곳에 영원히 머무는 일 외에 저희가 바라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13.9.10).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듯이, 시간도 영원의 한 조각이듯이, “당신을 찬미함으로써 즐기라고 일깨우시는 이는 당신이시니,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 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하기”(1.1.1) 마련이다. 따라서 각자가 올리는 ‘찬미의 고백’은 ‘하느님의 오늘’ 곧 ‘저녁이 없고 해넘이도 없는 안식일’이라야 끝을 본다. “당신께서 지금 저희 안에서 일하시듯, 그때도 당신께서 저희 안에서 쉬실 것입니다. 저 일들이 저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당신의 것이듯이, 저 때는 그 안식이 저희를 통해서 이뤄지는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일하시고 언제나 쉬십니다”(13.37.52).
그러니까 ‘자아’와 ‘하느님’이라는 두 과녁을 두고 일평생 탐구하던 교부, 죽음의 침상에서 “멍청하게도 나는 다 알아듣고 싶었어.”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아우구스티노가 저 영원한 생명의 안식일에 깨달았음 직한 바가 「고백록」 마지막 장(13.38.53)에 기술되어 있다.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저희가 보는 것은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들이 존재합니다. 또 저희는 그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밖으로 보고 그것들이 좋기 때문에 안으로 봅니다. 그 대신 당신께서는 그것들이 만들어져야 하리라고 보시자마자 바로 만들어져 있음을 보셨습니다. 어느 인간이 이런 깨달음을 인간에게 베풀어 주겠습니까? 어느 천사가 천사에게 베풀어 주겠습니까? 어느 천사가 인간에게 베풀어 주겠습니까?”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읽기 – 제10권] 인간, 하느님을 담을 수 있는 존재
밀라노 회심으로 「고백록」은 정점을 지났고 아우구스티노의 여울졌던 감정은 고요한 흐름으로 바뀐다. 그 뒤 10여 년이 흐르고 히포의 신자들은 자기네 주교한테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져 왔다. “당신의 과거는 그랬다 치고 지금의 당신은 어떤 심경이오?” 그래서 「고백록」 제10권은 세태를 관찰하고, 자기 정신을 분석하며, 자기 양심을 성찰하고 하느님을 탐구해 온 한 인간의 여정을 돌이켜 “진리시여, 어디인들 당신께서 저와 함께 걷지 않으신 적이 있습니까?”(10.40.65)라고 차분히 말씀드리는 글이다.
“제가 누구였던가를 두고서가 아니라 제가 아직도 누군지를 두고 고백을 하는 이 시점에서 제가 누구인지, 이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10.3.4). 당신께서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는 바를 제 안에서 발견하고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께서 마음 아파하라고 가르치시는 바를 제 안에서 발견하고 아파했으면 좋겠습니다”(10.4.5).
나이 든 독자가 「고백록」 제10권 후반부(28.39─39.64)를 읽노라면 젊어서 읽었을 「준주성범」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수도자로서, 성직자로서 요한 사도가 경고한 삼중의 욕망,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속의 야심”을 어떻게 이겨 내는 중인지 참 솔직하고 세세하게 풀어 낸다. 그래도 가장 힘든 것은 학자의 호기심과 성직자의 명예욕이더라는 자백은 온전한 정화에 이르는 “오직 한 가닥 희망, 하나의 믿음, 하나의 든든한 언약은 당신의 자비뿐입니다.”(10.32.48)라는 탄식으로 끝맺는다.
‘무척이나 하느님을 탐하는’ 인간
루터와 칼뱅의 종교 개혁, 동시대 코르넬리우스 얀센이 가톨릭에 퍼뜨린 염세주의는 원죄론, 예정설, ‘믿음으로만’ 또는 ‘은총으로만’ 같은 표어를 아우구스티노의 저술에서 끄집어냈다. 이 때문에 교부는 인간 신체와 성생활, 인간 존엄성과 자유 의지, 인생의 현세적 차원과 역사적 사명에 관해 비관론을 퍼뜨렸다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고백록」 제10권의 전반부(6.8-27.38)를 새겨 읽는 독자라면 그의 사상이 참으로 현실감 있는 인간론일뿐더러 아마도 철학사상 가장 위대한 ‘인간 예찬론’이라는 견해에도 공감하리라 본다.
아우구스티노의 평생 작업은 하느님을 알고 인간을 알아 가는 탐구였다. 인간이 참으로 위대한 ‘수수께끼’(4.4.9)이자 바닥없는 ‘심연’(4.14.22)임을 절감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죽을 운명을 메고 다니며, 자기 죄의 증거와 당신께서 오만한 자들을 물리치신다는 그 증거를 짊어지고 다니면서도”(1.1.1) ‘하느님 더구나 삼위일체를 닮았고’, ‘하느님을 파악하고 사랑하며’, ‘하느님으로 채워지기까지는 만족을 모르고 마냥 행복을 추구하는’ 신비로운 존재로 보였다
“존재하는 무엇이든지 당신 없이는 존재 못하는 까닭에, 존재하는 것이 무엇이든 당신을 담기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까?”(1.2.2)라는 물음이 거기서 나오고, ‘하느님을 담을 수 있는 존재’(homo capax Dei)라는 인간 정의를 아우구스티노가 철학사에 남겼다. 세계를 ‘피조물’로 정립하면서 「고백록」 첫 구절부터, “사람 곧 당신 창조계의 작은 조각 하나가 당신을 찬미하고 싶어 합니다.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 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1.1.1)라면서 말이다.
인간이란 하느님에게서 오고(작용인), 하느님께 향하는(목적인)존재임을 알아보았다. 그럼 왜 “우리 마음은 애초부터 안달하며 존재를 시작하였을까?” 먼지만도 못한 인간이 애초부터 무한한 선, 영원한 삶, 절대 행복을 탐할 만큼 야심에 찬 까닭이 무엇일까? “당신께서는 온갖 탈법한 저의 쾌락에다 쓰디쓴 거리낌을 뿌리시면서 제가 거리낌이 들지 않는 쾌락을 찾아 나서게 만드셨습니다”(2.2.4). 이러한 원망대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하찮은 행복에마저 초를 치시고, 죄와 타락, 유한성을 자꾸 들여다보게 만드시는 연유가 무엇일까?
모친과 함께 겪은 오스티아의 신비 체험(9.10.23-26)은 “인간은 무척이나 하느님을 탐한다.”( 「서간」 137.3.12)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아우구스티노는 먼저 주위를 둘러보고 삼라만상에서 창조주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세계라는 덩어리에게 저의 하느님에 관해서 묻자 제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니다. 오히려 그분이 나를 만드셨다.’ 바다와 심연, 생혼이 있는 길짐승들에게 물었으나 ‘우리는 너의 하느님이 아니다. 우리 위에서 찾아라.’ 하늘, 태양, 달과 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도 네가 찾는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10.6.9). 이런 대답을 듣고 “나는 바로 내 영혼을 통해 그분께로 올라가겠다, 내 영혼의 머리 위에 계시는 분을!”(10.7.11)이라고 다짐하며 “이성적 영혼 위에 있는 불변의 본성이 곧 하느님”( 「참된 종교」 31.57)이라는 신념이 생겼다.
‘기억’, 하느님을 만나 뵙는 지성소
인간은 하느님을 발견함으로써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분석함으로써만 하느님을 인식한다. 무한하고 영원하며 절대 존재인 분이 창조한 영혼이기에, ‘무한’과 ‘영원’과 ‘절대’의 잔상이 영혼에 새겨져 있으리라는 직감이다.
제10권 전반부에서는 이 기억을 분석하여 하느님께 다가가는 사다리를 찾아낸다. ‘기억’이라면 그에게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말하는 ‘지성’ 자체를 가리키기도,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맞닿아 있는 ‘존재의 뿌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기억의 위력, 바닥 모르고 한정이 없는 그 다면성, 바로 이것이 영혼이고 바로 이것이 나 자신입니다”(10.17.26).
진선미의 여러 가지 경험을 두고서 긍정 판단을 내리는 능력도 또한 기억이다. “그것들이 언급될 적에 ‘그렇다. 참말이다.’는 말을 제가 했는데, 이미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면 어디서 혹은 어째서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까?”(10.10.17)
그리스도교의 가장 심오한 교리를 사변적으로 확립한 아우구스티노의 「삼위일체론」(성염 역주, 분도출판사, 2016년)도 ‘기억’을 매개로 한다. 삼위일체 신비는 사후에도 영원히 탐구해야 할 대상일 텐데 무슨 수로 이 교리에 접근할지 궁리하던 교부는,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인간의 ‘기억’을 분석하여 모습의 원형인 하느님의 ‘구조’를 추정해 보겠다고 나섰다. ‘기억하는 나’, ‘기억되는 나’, ‘그 사이에 오가는 내 기억’이 온전히 하나면서도 구분이 되더라는 착상이다.
“기억의 저 능력은 참 크기도 합니다. 너무 큽니다. 광활하고 무량한 지밀입니다. 과연 누가 그 밑바닥에까지 이른 적 있습니까? 엄연히 제 정신의 능력이고 제 본성에 속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저 자신마저도 저를 전부 못 차지합니다”(10.8.15).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 뵙는 지성소가 기억이라는 이 심연이었다. “어디서 당신을 만나 뵐 수 있습니까? 제 기억 밖에서 당신을 뵙는다면 당신을 제가 기억 못 한다는 말입니다. 또 당신을 제가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당신을 만나 뵙겠습니까?”(10.17.26)
현대 천문학 개념으로 130억 년의 지름을 가진 우주도 인간 의식 속에서는 한낱 동그라미일 뿐 지성은 그 동그라미 바깥에 서서 바라본다. 무량하고 영원한 하느님마저도 개념상으로는 동그라미에 가두고서 신학을 편다. 그래서 교부는 다짐한다. “저는 기억이라고 불리는 저의 이 힘마저 통과해 넘겠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저의 영혼을 통해서 당신께로, 까마득하게 멀리 제 위에 머무시는 당신께로 오르면서 기억이라 불리는 저의 이 힘마저 통과해 넘겠습니다”(10.17.26).
사람이 사물을 사유하면서 자기가 인식 주체로서 지금 사물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데 교부는 인간 의식이 모든 인식 대상을 부단히 초월하면서 절대 지평을 향해 시선을 확대시키는 어떤 추동력을 ‘기억’이라고 부른다(10.22.32-23.34).
“제가 당신을 배워 알게 된 그것으로부터 당신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진리를 찾아 만난 곳에서 진리 자체이신 저의 하느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당신을 배워 알았을 그것으로부터 당신은 저의 기억 속에 머물러 계시며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을 두고 기쁨을 느낄 적마다 거기서 당신을 만나 뵙습니다”(10.24.35).
이처럼 난해한 인식론적 사색을 개진하면서도 한때 자력 구원과 진리 터득을 자신하던 지성인이 지금은 소박한 그리스도교 신자요 설교가로 돌아와 있음을 끝기도가 잘 보여 준다. “좋으신 아버지, 당신께서 저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당신 외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셨고 저희 불경한 자들을 위해서 그를 넘겨주기까지 하셨습니다! 당신의 저 외아드님,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10.43.69-70).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읽기 - 제9권] 아우구스티노의 사모곡
“그대처럼 훌륭한 자식을 낳으신 정숙한 모친이 / 이곳에 재를 남기셨으니, 아우구스티노여, / 그대 공덕이 남긴 또 하나 빛살이어라. / 사제로서 평화의 막중한 천상 율법을 수호하며 / 그대는 맡겨진 중생을 도덕으로 제도하느니 / 그대가 이루는 위업이 두 분에게 영광의 화관을 둘러 드릴수록 / 온갖 덕성을 갖추신 어머니, 아드님을 두고 더욱 행복해하시리니.”
지금 오스티아 안티카의 ‘아우레아 성녀 성당’ 오른쪽 경당의 벽에는 1945년에 발굴된 비석이 설치되어 있다. 이미 크게 명망을 떨치는 히포의 사제 아우구스티노의 모친 무덤에 바수스라는 정치가(408년에 로마 집정관을 지냈다.)가 새긴 비문이다. 아우구스티노가 사제품을 받은 해가 391년(주교품을 받은 해는 395년)이니까, 모니카가 세상을 떠난 해(387년)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워진 것이다.
열댓 번 넘게 비문을 읽을 적마다 필자는 교회사의 현장 하나를 목격하는 감동을 느끼곤 했다. 오스티아에 매장되어 있던 모니카의 유해는 1430년 로마 성 아우구스티노 성당으로 옮겨졌다. 아들 명의의 성당에 안치된 모니카의 석관 옆에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어머니들의 자식 걱정과 불효를 하소연하는 편지가 무수히 쌓인다.
“아, 주님, 저는 당신의 종, 당신의 종이자 당신 여종의 아들입니다.”(9.1.1)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고백록」 제9권 후반부(8.17-13.37)는 고대 서양 문학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사모곡이다. 하느님의 가없는 자비를 고스란히 체현하기에, ‘엄마’라는 이름은 모든 잘못을 용서받는 꿈이 아니던가?
“저 여종은 몸으로 저를 이 현세의 빛 속으로 빚어 주고 마음으로는 제가 영원한 빛 속으로 태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제가 얘기하려는 것은 제게 베푼 그이의 은혜가 아니라 그이에게 베푸신 당신의 은혜입니다”(9.8.17).
그렇게나 속을 썩이던 아들이 “집어라, 읽어라!”라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저 밀라노 정원에서 “순간적으로 마치 확신의 빛이 제 마음에 부어지듯 의혹의 모든 어둠이 흩어져 버렸습니다.”(8.12.29)라는 신비 체험을 한다. 그 뒤 모니카와 아우구스티노 모자는 이미 “당신께서는 저희 심장에 당신 사랑으로 화살을 쏘아 맞히셨고, 당신 말씀이 오장육부에 박힌 채로 고스란히 지고 가는 중”(9.2.3)이었다. 그렇게 밀라노에서, 알프스의 산자락 카시키아쿰에서, 그리고 오스티아에서 바싹 아들 곁에 보낸 세월은 모니카에게 꿈같기만 했다.
이 행복은 이러한 회고로 남겨졌다. “주님, 마지막에는 그이가 당신 안에서 영면하기 전에 저희 모두가 당신 세례의 은총을 받고서 한데 모여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이는 저희 모두를 마치 자기가 낳은 것처럼 거두었고, 또 마치 자기가 저희 모두에게서 태어난 것처럼 저희 모두를 섬겼습니다”(9.9.22).
고향 타가스테로 함께 귀향하던 길에 하필 내전이 일어나 아프리카로 건너가는 뱃길이 끊겨 일행은 항구 도시 오스티아에서 반년 넘게 머물게 된다. 거기서 모친 모니카는 죽음을 맞는다. 하느님께 오롯이 헌신하려는 아우구스티노에게서 ‘마지막 사슬’이 풀려나는 장면이다.
교부의 단 하나 혈육, 아데오다투스의 죽음도 실려 있다. 교부의 철학 교본 가운데 가장 난해한 언어 철학서 「교사론」의 대담 상대가 될 만큼 “아이의 대단한 재능이 두렵기까지 한” 까닭은 자기가 걸었던 파란만장을 따라 걷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그의 생명을 당신께서는 일찍 지상에서 거두어 가셨으니 차라리 저는 마음 놓고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그의 소년기도 청년기도 어른으로서도 전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9.6.14)라고 실토한다.
평범한 성녀
아들을 그리스도교에 입문시키려는 집념과 눈물과 기도를 제외하면, 「고백록」에 묘사되는 모니카의 언행은 평범하기까지 하다. 그녀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그렇다.
처녀 시절 술 곳간 심부름을 하다 한 모금 두 모금이 잔술로 늘어 계집종한테서 ‘모주망태’라는 욕설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9.8.18). 남편 파트리키우스의 횡포와 손찌검을 집 밖에서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였다(9.9.19-21). 어린 아우구스티노가 중병에 들자 서둘러 세례를 준비시키더니만 병이 금세 낫자 세례를 미뤄 버리는데 그 핑계가 “아직 더 산다면 때가 더 묻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식”이었다(1.11.17). 유학하다 일시 귀향한 아들이 온갖 염문을 뿌리는데도 모친의 유일한 걱정은 동네 유부녀를 건드려 사달이 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2.3.7). 서둘러 장가를 들이자니 “아내라는 족쇄 때문에” 아들의 출셋길이 묶일지 망설였다(2.3.8).
서른아홉에 과부가 되어서인지 큰아들에 대한 애착이 유달랐던 모니카는 카르타고에서 훈장질하던 아들이 로마로 떠나려는 낌새를 보이자 따라가겠다고 한사코 덤빈다. “엄마, 저 안 떠나요. 저기 키프리아누스 경당에서 기도하고 계셔요.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올게요.” 이렇게 말하고선 밤새 훌쩍 떠나 버린 아들의 “속임수와 매정함을 실컷 원망했으면서도”(5.8.15) ‘아양에 가까운 말투’(아들이 남긴 표현)를 접을 줄을 몰랐다. “마지막 병상에서 드리는 시중을 두고 효자라고 불렀고, 아들이 자기한테 쏘아붙이거나 무례한 소리를 그 입에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9.12.30).
아들이 밀라노로 가서 황실 교수로 출세하자 16년이나 아들을 수발하면서 손주까지 낳아 준 여자를 기어이 쫓아내고, 서른세 살 아들을 열 살짜리 양갓집 규수한테 약혼시키는 극성은 비록 아들 후광으로 성녀로 추앙을 받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느낌도 든다.
단 신심만은 대단했다. 성깔 사나운 “남편의 이승살이 마지막에 그를 교회에 인도하여 세례받게 하였다”(9.9.22). 똑똑하다던 아들이 마니교에 빠지자 한 번만 아들을 만나 타일러 달라고 어느 주교에게 하도 조르는 바람에 “그렇게나 많은 눈물 바람을 받은 자식이 망할 리 없소.”라는 짜증도 들어야 했다(3.12.21). 아들 사정이면 “하느님의 자비를 마치 하느님이 발부하신 채무 증서나 되듯이 하느님께 마구 꺼내 보이는” 몰염치로 보면 전형적인 ‘엄마’였다.
여하튼 “극진한 충정을 다해서 날마다 흘리는 내 어머니의 눈물에 내가 멸망하지 않도록 허락되었다는 사실”을 아들도 인정한 이상, 모친에 대한 아들의 다음과 같은 총평은 로마인 묘비명에 흔히 쓰는 어투였다. “그이는 한 남편의 충실한 아내였고, 어버이에게 은덕의 보답을 하였고, 자기 집안을 경건하게 건사하였고, 선행으로 평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자식들이 당신에게서 멀어져 간다고 느낄 때마다 산고를 다시 겪다시피 하며 그들을 길렀습니다”(9.9.22).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 다오”
아들한테 걸던 소원이 다 이루어지자 모니카는 휘적휘적 이승을 서둘러 떠난다. “당신 눈에 저를 살아 있게 하려고 저를 두고 여러 해를 울었던 어머니”(9.12.33)와의 대화는 퍽 소탈하다. “아들아, 나로 말하면 이승살이에서는 이미 아무것도 재미가 없어졌다. 이 세상에 대한 희망이 다 채워진 마당에 여기서 아직도 뭘 해야 하는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구나”(9.10.26).여관집 창가에서 모자가 겪은 신비 체험은 부럽기까지 하다(9.10.23-26). 신비 체험이 있은 지 겨우 닷새쯤 지나 모니카는 열병으로 몸져눕는다. 모니카는 묏자리에 유난히 마음을 썼고, 남편 옆에 묻힐 터도 장만해 둔 터였다.
“너희 어미를 여기다 묻는구나. … 이 몸이야 아무 데나 묻어라. 그 일로 너희가 조금도 걱정하지 마라. … 하느님께 멀리 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세상 종말에 그분이 어디에서 나를 부활시켜야 할지 모르실까 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단다. … 오직 한 가지 부탁이니 너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 다오”(9.11.27-28).
구구절절 모친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깃든 사모곡은 “그렇게 병석에 누운 지 아흐레 되던 날, 그이의 나이 쉰여섯, 제 나이 서른셋 되던 해에 그 독실하고 경건한 영혼이 육신에서 놓여났습니다.”(9.11.28)라는 말마디로 끝난다.
모친을 오스티아에 묻은 아우구스티노의 기도는 간절하다. “그이가 구원의 물로 세례받은 뒤에 그 많은 햇수 동안 혹시라도 진 빚이 있거든 당신께서도 그이의 빚을 탕감해 주십시오. 주님, 탕감해 주십시오. 비오니 탕감해 주십시오. 저의 어머니를 데리고 법정에 들지 마십시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9.13.35). 그리고 당부한다. “글로써 제가 섬기는 그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때면 당신 제단에서 당신 여종 모니카를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9.13.37).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읽기 - 제8권] 하느님의 승부욕
1981년 5월 13일 바티칸 광장에서 두 방의 총성이 울렸다. 그 총상으로 1년 넘게 사경을 헤매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병상에서 ‘어째서 세상에 악이 있는가?’라는 고전적인 질문보다 다음과 같은 의문에 더 시달렸다. “세상에서 인간에게 고통이 오고 있는데도, 인간은 이 물음을 세상을 향하여 묻지 않고 하느님께 묻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고통」, 9항). 인류사에서 이를 가장 심각하게 천착한 아우구스티노가 평생을 두고 씨름하여 얻어 낸 몇 가닥 해답은 이렇다.
첫째, “악은 인간에서 유래하였다, 그것도 개인적 집단적 의지에서!” 이 해답이 우리 귀에 아무리 억울하게 들리더라도 한 가지는 가능해졌다, 적어도 인류의 개인적 집단적 노력으로 악을 청산하는 일이! 선과 더불어 악이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라면 인간은 무슨 수로도 악을 이기지 못한다. 단, 넘어지기야 제멋대로지만 무릎이 까지고 갈비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으면 자기 힘만으로 못 일어난다. 넘어진 자는 구세주라는 분의 덕을 봐야 한다는 ‘은총론’이다.
둘째, 온갖 과일나무가 밀림을 이루는 낙원에서 딱 한 그루만 따 먹지 말라는 금령은 왜 내리셨을까? 따 먹지 말라고 말리실수록 걸음마를 하고 목말을 탈 줄 안다면 기어이 그 나무를 서리해 먹고서 모조리 울타리 밖으로 내뺄 게 뻔한데.
어려서 배 서리를 해 본 심보(제2권)로 미루어, 교부가 어림잡은 풀이는 이렇다. 선과 악은 하느님께서 정하시고 피조물은 따라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라며 성삼위께서 머리를 짜서 지어 내신 종족이 “하느님을 거슬러 하느님을 본뜨는”(2.6.14) 짓이 참 대견키만 하셨으리라.
“달려가거라! 내가 안고 데려오리라!”(6.16.26) 하시는 하느님의 자신감! 인간에게 그 위험한 자유 의지를 주시고 세상에 악이 창궐하게 허락하신 모험심! 「고백록」 제8권에 이르면 아우구스티노가 자기 삶에서 얻어 낸 세 번째 답이 나온다.
소박한 서민 라틴어로 옮겨진 불가타 성경을 펼치자마자 코웃음 치며 내던지던(3.5.9) 젊은 시절의 호기와 달리,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오의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 구절들도 ‘변호의 여지가 있다.’고 보이고, 마니교도로서 자기가 능멸하던 가톨릭 교리도 ‘함부로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니 ‘아하, 가톨릭에도 나름대로 논변가들이 있구나!’ 하였단다.
또 암브로시오가 「나봇 이야기」(최원오 역주, 분도출판사, 2012년)에서처럼, 사회 불의를 과감하게 손가락질하거나, 이단 논쟁의 와중에 유스티나 황후가 밀라노 포르키아나 성당을 아리우스파에 인도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성당에서 농성하여 명령을 철회하게 만든다든지(9.7.15),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테살로니카 양민들을 학살하자 황제의 성당 입장을 저지하고 속죄를 하게 만드는(390년) 결단에서 복음에 담긴 ‘사회적 사랑’을 파악하였다.
그 무렵의 심경은 이렇게 쓰여 있다. “저로 말하자면 속세에서 제가 해 오던 바가 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정욕마저도 평소처럼 타오르지도 않은 데다, 명예나 돈에 대한 희망으로 속세의 저토록 무거운 종살이를 견뎌 내는 일이 제게 무척 짐이 되던 참이었습니다. 다만 아직 여자에게만은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 귀한 보석을 저는 이미 발견했고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그 보석을 사야 했건만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습니다”(8.1.2).
그를 번뇌케 하는 것은 이제 논리적 사변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을 요구하는 ‘실존의 문제’였음을 “제가 간절히 바라던 바는 당신께 관해서 더욱 확실해지는 것보다는 당신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는 것이었습니다.”(8.1.1)라고 실토한다.
“순결과 절제를 주소서, 금방은 말고”
“저를 꼼짝 못 하게 묶어 놓았던, 성애의 욕망이란 사슬과 속세 업무의 예속으로부터 당신께서 저를 어떻게 풀어 주셨는지 얘기하겠습니다”(8.6.13). 먼저 그는 암브로시오가 ‘멘토’(인생 길잡이)로 삼아 왔다고 소문난 심플리키아누스라는 노인을 찾아갔다. 암브로시오 주교가 죽자 고령에 그 주교직을 계승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인은 그 젊은 카르타고인의 영혼 속에 몰아치는 노도 광풍이 그리스도교 사상사에 얼마나 위대한 화재를 일으킬지 꿰뚫어 보았다.
노인은 빅토리노라는 인물의 일화를 들려주며 아우구스티노가 가야 할 길을 손가락질해 보였다. 당대 제국 최고의 웅변가로서 그리스도교를 냉소하고 조상 전래의 이교 문화를 재건하는 데 혼신을 다하던 지성인 빅토리노가 돌연히 가톨릭교회로 입교한 실화(8.2.3-4.9)였다.
그 얘기를 듣고 나오던 아우구스티노는 속으로 “저도 불현듯 그를 본받아야겠다는 열망이 불타올랐습니다.”(8.5.10) 하면서도, 천둥벌거숭이 인간들에게 자비를 한없이 투자하시다 외아들마저 서슴없이 담보로 내놓으시는 ‘하느님의 승부욕’을 간파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이기에, 절망한 영혼의 구원을 두고, 더 큰 위험에서 구출된 영혼의 구원을 두고 더 기뻐하시는 것입니까?”(8.3.6)“적이 어떤 사람을 더 철저히 장악하고 있고 그 어떤 사람을 내세워 더 많은 사람을 장악하고 있는 터에 그 어떤 사람이 패하고 만다면 적의 패배가 그만큼 큰 법인가요?”(8.4.9)
이런 힐문에는 신자들에 대한 체포 영장을 들고 다마스쿠스로 달려가던 사울을 걷어찬 발길이 머지않아 자기한테 떨어지리라는 예감을 담고 있다. 예언자들도 하느님의 그런 심경을 짐작했다.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가 거기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에제 36,22).
뒤이어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 안토니오의 생애를 읽었고, 지인 폰티키아누스가 찾아와 황실 근위대 무관 둘이 최근 갑자기 출세 가도를 포기하고 밀라노 교외의 수도원에 은둔해 버린 사건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자신의 달콤한 권태감이 한스럽기만 했다.
“저는 묶인 채, 그것도 딴 사람의 쇠사슬이 아니고 쇠사슬이 된 제 의지에 묶인 채였습니다. 그렇게 거꾸로 뒤집힌 의지에서 육욕이 생겼고, 육욕을 섬기는 가운데 습관이 생겼고, 습관에 저항하지 않다보니 당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두 의지가 저희끼리 맞부딪치고 어긋나며 저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 놓았습니다”(8.5.10).
아우구스티노가 회심 직전 불만스럽고 죄스러운 처지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면서도 한사코 미적거리던 심경은 현실 인간으로서 ‘하고 싶다와 할 수 있다’(velle et posse)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실감케 하고, 인간이라는 심연 속에서 일어나는, 죄의 율법과 하느님의 율법의 투쟁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미세레레 시편’으로 읽혀 오고 있다.
입으로는 “주님, 어서 하십시오! 몰아세우십시오! 저희를 불러 주십시오! 타오르게 만드시고 끌어당겨 주십시오! 달구어 주시고 애무해 주십시오!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치닫게 해 주십시오!”(8.4.9)라고 호소하면서, 내심의 기도는 “저에게 순결과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금방은 말고”(8.7.17)였다.
주님께서 기도를 당장 들어주실까 두려웠단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잠꼬대처럼 느릿한 말로 ‘금방’, ‘예, 금방’, ‘조금만 놔두십시오.’였습니다. 하지만 그놈의 ‘금방 또 금방’은 아예 대중이 없었고 ‘조금만 놔두십시오.’는 오래도 갔습니다’”(8.5.12).
“집어라, 읽어라!”
그러다 그날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하늘 사냥개’한테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음을 절감했다. “저의 가련함을 저 깊은 밑바닥에서 통째로 끄집어내더니 제 마음의 눈앞에다 턱하니 쌓아놓았습니다. 그러자 거대한 폭풍이 일어 거대한 눈물의 소나기를 싣고 왔습니다”(8.12.28). “저는 얼빠진 듯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한없이 끓어오르는 분개심에 씩씩거리고 있었습니다”(8.8.19).
“어느 무화과나무 밑에 주저앉았고 제 눈의 강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당신께 부르짖었습니다. ‘도대체 주님, 언제까지 입니까? 주님, 언제까지 끝끝내 진노하시렵니까?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일 또 내일입니까? 왜 지금은 아닙니까? 어째서 바로 이 시각에 저의 추접함을 끝장내지 않으십니까?’”(8.12.28)아마 난생처음 진정으로 ‘살려 주십쇼!’ 하고 외쳤다.
그리고 “난데없이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 집어 들었습니다. 폈습니다. 그리고 읽었습니다. 제 눈이 가서 꽂힌 첫 대목 : ‘술상과 만취에도 말고, 잠자리와 음탕에도 말고, 다툼과 시비에도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시오. 그리고 욕망에 빠져 육신을 돌보지 마시오.’ 더 읽을 마음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구절의 끝에 이르자 마치 확신의 빛이 저의 마음에 부어지듯 의혹의 모든 어둠이 홀연히 흩어져 버렸습니다”(8.12.29).
서기 386년 초가을 밀라노 정원의 어느 날 밤, 그에게 돈오의 경지를 열어 준 ‘홀연히’라는 한 마디는 이후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비 신학과 은총론을 푸는 열쇠가 된다.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읽기 - 제7권] 사랑이 진리를 깨닫게 한다
“찬미하는 사람의 고백이거나 뉘우치는 사람의 고백이거나”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을 왜 썼을까? 그리스 문학가든 로마 정치인이든 자서전을 쓸 때는 설화에 가까운 영웅담들,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간들을 싣고서 ‘자기선전’이라는 수사학적 허세를 부리기 마련이었다. 바오로 사도 이후 그리스도교의 가장 위대한 이 교부는 생애 전반부를 담담하게 들려주면서 하느님과 독자들 앞에 자비와 동정을 비는 참회를 써내려 간다.
395년에 히포의 주교로 서품된 아우구스티노가 북아프리카 교회를 결딴내다시피 한 도나투스파 이단에 정면으로 맞서자 “저자가 도대체 누구야?”라는 인신공격이 쏟아져 나왔다. 새 주교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밝힌다. “저의 선업을 두고는 안도의 한숨을, 저의 악업을 두고는 탄식의 한숨을 쉬면 좋겠습니다. 저의 선업은 당신의 업적이자 당신의 선물이며, 저의 악업은 저의 죄악이자 당신의 심판입니다”(10.4.5). “그토록 많은 제 죄의 질병에서 제가 누구 덕분에 빠져나왔는지 보았다면 자기가 그 많은 죄의 질병에 시달리지 않았음이 바로 그분 덕분임을 발견하겠기에 말입니다.”(2.7.15)라는 기대에서였다.
「성경의 시편」,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으로 한국 가톨릭 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번역문을 남긴 시인 최민순 신부님이 우리가 읽어 온 이 책에 ‘님 기림’이라는 부제를 단 것은 참으로 멋진 재치였다. 실상 책 전체에 자기를 지성적 오류와 도덕적 죄악에서 해방해 주신 하느님의 자비에 드리는 ‘찬미의 고백’과 ‘지은 죄의 고백’, 그리고 후반부의 창조론에 드러나는 ‘신앙의 고백’ 셋이 촘촘히 엇갈려 있다.
헬레니즘 문화의 과장된 ‘자아 성취록’과는 판이하게도 세계 문학사에서 이 책은 자기 죄악의 체험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을 거쳐 한 지성이 하느님께 돌아가는 종교적 서사시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참회자가 회중 앞에서 땅에 엎드려 바치는 시편 51(50)편 ‘미세레레’에 버금가는 공개 보속이다. 또한 신비신학에서는 “하느님의 침묵 앞에서 써 내려가는 짝사랑의 연서”(O’Donnell)이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아는 사람들과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고백록」의 13권 가운데 딱 중간에 자리 잡은 제7권을 읽는 독자에게는 하느님께서 아우구스티노에게 드디어 손을 쓰시기로 작정하신 기미가 엿보인다. 본인도 “당신의 오른손이 진즉부터 제게 닿아 있었고 진창에서 저를 끄집어내어 씻어 주실 작정임”(6.16.26)을 예감한 참이다.
384년 가을, 북아프리카 출신 아우구스티노는 로마 황실 수사학 교수로 출세해서 밀라노에 와 있었다. 모친과 아이엄마와 식솔들도 바다 건너 쫓아왔다. “그러는 동안 못되고 삿된 저의 청춘은 죽어 버렸고 어느새 장년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허영으로 추해졌습니다.”(7.1.1)라고 자백하지만, 진리를 찾아가던 구도의 길에 드디어 세 단계 ‘회심’이 일어난다.
첫 번째는 마니교 선악 이원론을 빙자하여 자기가 무슨 못된 짓을 저질러도 우주를 지배하는 악의 원리에서 비롯하지 자기 탓이 아니라는 자기기만이 깨어지는 ‘도덕적 회심’(제6권)이다.
두 번째는 세상에는 물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회의론에 휘말리다 신플라톤 철학의 서적들을 접하면서 하느님 같은 영적인 존재도 있음을 수긍하고 그리스도라는 중개자의 필요를 인정하는 ‘철학적 회심’(제7권)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이라는 진리에 평생을 헌신하겠노라 선언하는 ‘종교적 회심’(제8권)이다.
서양 사상사에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합류하는 ‘양수리’(兩水里)로,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고대의 플라톤과 근대의 칸트와 더불어 ‘근원적으로 사유한 철학자’로 꼽은 아우구스티노의 ‘철학적 회심’이 제7권에서 ‘진리를 향한 상승의 길’(7.9.13?21.27)이라는 제목으로 치밀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사변적 득도와 실존적 구원은 구도자의 정신 자세 곧 겸손과 오만으로 좌우된다는 깨달음도 얻는다. 오만한 지성, 그것은 “자기가 만든 우상의 신전, 당신께 가증스러운 신전”(7.14.20)일 따름이다. “당신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는 점과, 당신의 말씀께서 사람이 되셔서 사람들 가운데 사실 만큼 겸손의 길을 통해서 당신의 자비가 얼마나 큰지 사람들에게 드러났다는 사실”(7.9.13)이 가슴에 와닿았다.
밀라노 지성인들을 사로잡던,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를 읽고 난 감회를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회고한다. “당신께서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를 안아주시고 저의 눈을 감겨 주셔서 더 이상 헛것을 보지 않게 하신 다음에는 저도 깜빡 제게서 놓여났고 그러다 깨어나 당신 품에서 눈을 떴습니다”(7.14.20).
“또 놀랍게도 어느덧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하느님을 향유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우심으로 말미암아 당신께 사로잡혀 가고 있으면서도 머지않아 저의 중력에 눌려 당신께로부터 떨어져 나가곤 하였으며 … 저 중력이란 곧 육욕의 습관이었습니다”(7.17.23).
이어서 교부는 철학과 종교의 차이, 사변적 추정과 신앙적 고백의 거리에 눈뜬다. “어디까지 가야 할지 아는 사람들과 그것을 알아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사이가 얼마나 거리가 먼지, 행복을 주는 고향으로 데려가는 길을 감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살기에 이르는 것 사이에 얼마나 거리가 먼지를 분간하게 만드셨습니다”(7.20.26).
그리스 철학자들의 책에는 “경건심의 얼굴도, 고백의 눈물도, 당신께 드리는 희생 제사도, 괴로워하는 영도, 부서지고 꺾인 마음도 없었습니다”(7.21.27). 역사상 최초의 실존주의자에게 참된 철학이란 여생을 오롯이 바칠 만한 ‘참된 종교’여야 했다.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니다”
그럼 철학자들과 종교인들의 안광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사람이 어떻게 진리를 알까?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훈계대로 인간 내면에 들어가 의식과 기억을 분석하면서 진리를 찾아가는 사다리를 그가 찾아낸 것도 밀라노에서였다. 진리를 찾아서 “밖으로 나가지 말라. 그대에게로 돌아가라. 인간의 내면에 진리께서 거하신다. 그리고 그대의 본성이 가변적임을 발견하거든 그대 자신도 초월하라.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가 자신을 초월할 때 그대가 초월하는 바는 추론하는 영혼임을! 그러니 이성을 비춰 주는 원초적 광명이 빛나고 있는 그곳을 향하여 나아가라”( 「참된 종교」 39.72, 성염 역주, 분도출판사, 1988년).
들에 핀 무수한 화초를 보면서 사람은 ‘꽃’이 무엇인지 뽑아내서 알아 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상설’(抽象說)이다. 그런가 하면 플라톤의 ‘상기설’(想起說)도 있다. 곧 손에 들고 코로 냄새 맡는 꽃이든 사진이나 기억으로 떠올리는 꽃이든 색색의 식물을 ‘꽃’이라고 알아보는 까닭은, 우리 영혼이 육체로 귀양 오기 전에 전생에서 ‘꽃’이라는 이념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노는 한걸음 나아가 ‘꽃은 아름답다.’라는 진선미의 판단이 어디서 올지 궁금했다.
“천상 물체든 지상 물체든 물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대체 무엇이 제 앞에 현전(現前)하기에, 제가 가변적인 사물들을 두고서 ‘이것은 이래야 되고, 저것은 저래야 된다.’고 판단하거나 말하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따지게 되었습니다. … 저는 가변적인 저의 지성 위에 진리의 영원, 불변하고 참된 영원을 발견했습니다”(7.17.23).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는 시편(36,10)의 말씀대로, 인간이 사물에서 선하고 아름답고 참되고 확실함을 알아보는 빛은 위에서 쏟아져 내리며, 그 빛 자체가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시라는 깨달음이 아우구스티노의 인식론인 ‘조명설’(照明說)이다.
“저는 제 자신에게 돌아가라는 권유를 받았고 당신의 이끄심으로 저의 내면 깊숙이 들어갔는데 … 제 영혼의 어떤 눈으로 보았습니다, 제 영혼의 눈 바로 그 위에, 저의 지성 위에 불변하는 빛을. … 그 빛이 저를 만들었으므로 제 위였고 그 빛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므로 제가 그 아래였습니다. 진리를 아는 이는 그를 알고 그를 아는 이는 영원을 압니다. 사랑이 그를 압니다. 오, 영원한 진리여, 참된 사랑이여, 사랑스러운 영원이여! 당신께서 저의 하느님이시니 밤낮으로 당신을 향해 한숨짓습니다”(7.10.16).
그리스인들은 ‘알면 사랑한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 말을 뒤집어 ‘사랑하면 안다.’고 한다. 사랑하면 진리를 알고 하느님을 알고 사람을, 특히 한숨에 젖고 눈물 흘리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알아본다! 19세기에 이르면 이는 마르크스의 입에서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면’ 진실을 안다는, ‘사회적 사랑’으로 바뀔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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