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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룡포와 통제영, 길손의 감회(感懷)> 고영화(高永和)
1. <두룡포에서 우연히 읊다(頭龍浦偶占)>
두룡포(頭龍浦)는 통영의 옛 지명으로 현재의 강구안 항구를 일컫는 말이다. 옛 전언에 의하면, '頭龍'은 '용머리'라는 뜻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위인은 반드시 두룡포에 의지해야 용으로 승천한다고 전한다.
경남의 서남부에 위치한 통영시는, 고성반도의 중남부와 부속도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선시대 후기 수군을 통괄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위치하고 있었던 곳이다. 통영이라는 명칭은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인 말로 선조 37년(1604)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지금의 통영)로 통제영을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다음 한시 몇 편의 저자 조임도(趙任道, 1585~1664)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써 본관 영산(靈山), 자 덕용(德勇), 호 간송당(澗松堂)이다. 학문에 정진하며 전원생활을 하다가 1611년(광해군3) 이황(李滉) ·이언적(李彦迪)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하는 정인홍(鄭仁弘)을 규탄했다. 이후 칠원(漆原)에 은거하다가, 광해군 8년(1615) 을묘년에 통영과 거제도를 방문하여 아래 한시들을 남겼다. 1623년의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공조좌랑이 되었으며 지평(持平)에 추증되고 함안의 향사(鄕祠)에 배향되었다. 문집 《간송집(澗松集)》이 있다.
1) 두룡포우점(頭龍浦偶占) 우연히 두룡포를 읊는다. / 1615년(乙卯) 조임도(趙任道)
桂棹蘭檣放海門 작은 노에 돛대 세운 배가 바다로 나아가니
奇觀勝狀愜前聞 기이하고 아름다운 경치가 소문 그대로일세.
玲瓏樓閣丹靑麗 누각은 영롱하고 단청은 화려하고
縹緲煙霞島嶼分 아득한 안개와 노을 속에, 크고 작은 섬들 나뉘었네.
漁火遶船星點點 고기 잡는 횃불이 어선을 감싸니 별이 점점이 박힌 듯하고
長鯨吹浪雪紛紛 고래가 길게 물결을 뿜어내니 눈발이 흩날리듯 한다.
此間知有安期子 이제야 안기생(安期生)이 있음을 깨닫는데
風引鸞笙撤彩雲 바람에 이끌려온 난생(鸞笙)이 고운 빛의 구름 거두네.
[주1] 단청(丹靑) : 집의 벽ㆍ기둥ㆍ천장 등에 붉고 푸른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과 무늬를 그림.
[주2] 표묘(縹緲) : 끝없이 넓거나 멀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렴풋함.
[주3] 취랑(吹浪) : 물고기가 물위에 떠서 숨 쉬느라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함. 물결을 뿜어냄.
[주4] 안기자(安期子) : 동해의 선산(仙山)에서 살았다는 전설상의 선인(仙人) 안기생(安期生)을 말한다.
[주5] 난생(鸞笙) : 난(鸞)을 타고 피리를 부는 신선을 이름. 난생은 생황(笙簧)의 미칭(美稱).
2) 두룡포통영(頭龍浦統營) / 1615년(乙卯) 조임도(趙任道)
淸絶頭龍浦 더할 수 없이 깨끗한 두룡포는
雄奇鎭甕城 웅위롭고 기이한 옹성(甕城)의 진영이다.
旌旗翻日影 새털 깃발의 해 그림자 나부끼고
鼓角徹雲程 고각소리는 구름 속을 꿰뚫네.
滄海無邊鏡 넓고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있고
靑山幾疊屛 청산이 겹겹 병풍으로 둘렀구나.
扁舟探勝客 조각배 탐승객(探勝客)들은
留滯不知行 머무르며 떠날 줄 모르네.
[주1] 옹성(甕城) : 무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히 쌓은 산성이라는 뜻으로, 매우 튼튼히 둘러싼 것이나 그러한 상태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주2] 탐승객(探勝客) : 경치(景致)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
3) 두룡포 잡영 2수(頭龍浦雜詠二首). 1615년 여름 편안하고 어진 사촌형을 따라 바다의 배에 승선하고 8진영 성에서 두룡포로 들어가 통영중군 이장(李丈)을 방문했다.[乙卯夏 隨安仁從兄 乘海船於八鎭城 入頭龍浦 訪統營中軍李丈] / 조임도(趙任道).
酷愛滄洲勝 심히 사랑한 바닷가 경치 속에
張帆八鎭城 8진영 성(城)을 향해 돛을 편다.
祥飆吹帽去 상서 바람 불어 모자를 벗겨도
靈物護舟行 영물은 출항하는 배를 보호하네.
海盪銀濤湧 바다가 밀어내는 은빛물결 솟구치고
雲移翠黛橫 구름은 먼 푸른 산을 가로지른다.
篙師莫停棹 노련한 뱃사공 쉼 없이 노를 저어
直可到蓬瀛 곧바로 봉영(蓬瀛)에 이르리라.
爲訪中軍丈 통영중군 이장(李丈)을 만나려고
來觀統制營 통제영에 와서 구경하니,
艨衝聯百艦 백 척의 전선(戰船)이 잇닿고
熊虎擁千兵 수많은 용맹한 군사가 호위하네.
邊靜藏刀斗 고요한 변방에 조두(刀斗)를 감추고
官閒沸管笙 한가로운 관리는 생황피리 불구나.
元戎必良將 통제사는 필히 훌륭한 장수인지라,
高枕虜塵淸 오랑캐 먼지 사라져, 베개 높이 벤다네.
[주1] 봉영(蓬瀛) :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蓬萊山)과 영주산(瀛州山).
[주2] 도두, 조두(刀斗) : 옛날 군대에서 취사도구와 징을 겸하여 쓰였던 기구. 구리로 솥처럼 만들어 낮에는 음식을 짓는 데 쓰고 밤에는 징으로 썼다. or 행인의 밥솥.
[주3] 고침(高枕) : 높은 베개, or 안락(安樂)하고 근심이 없는 생활(生活).
4) 두룡포에서 배를 돌려 진해에 정박해, 예전에 노닐던 바를 그리워했다(自頭龍浦廻舟 來泊於鎭海 眷戀舊遊) / 조임도(趙任道).
周覽名山滄海東 푸른 바다 동쪽 명산을 두루 구경하려
廻舟掛席駕長風 돛을 걸고 배를 돌려 긴 바람 타누나.
夜來枕上遊仙夢 밤중에 침상에서 신선세계 꿈꾸는데
飛入虛無縹緲中 아득한 허공 먼 곳을 날아 들어갔다네.
5) 삼도수군통제영(三道舟師統制營) / 이유원(李裕元) 1881년 거제유배 길에.
三道舟師統制營 삼도 수군(주사) 통제영
空中櫓出大船橫 공중에 큰 망루 드러나더니 큰 배가 바다를 가로지르네.
將軍暇日行過路 장군이 틈을 내어 길을 지나다니고
十里轅門闐甲兵 십리에 걸친 진영의 문에는 갑옷 입은 병사가 가득하구나.
內洋初渡可投鞭 내양(內洋)으로 처음 바다를 건너려니 엄청 군사가 많아
山徑回回遮後前 산길을 돌아 도니 앞뒤가 막히어 보이질 않은데
水環如島還非島 섬처럼 물이 둘러싸기도 하고, 섬은 아닌데도 물이 돌며 흐르는
一幅岐城望裏全 한 폭의 거제가 온통 내 눈에 들었으랴.
6) 고성을 지나 통영에 이르러. / 김진규(金鎭圭) 1689년 거제유배 길에.
天明歷固城 하늘이 맑을 무렵 고성을 지나
溟渤縣南拆 큰 바다에 이르니 고을이 남쪽으로 터져있고
肅肅統帥營 엄숙하고 고요한 통제영(통수영)이로다.
山海轅門闢 산과 바다가 진영의 문을 열고
徒旅敢徑度 나그네 무리가 감히 질러가지 아니하랴
武士嚴關鑰 무사가 엄중한 관문을 지키는데
路盡迫海漘 길 끝이 바다 물가에 닿아 있어
下馬催登舶 말에서 내려 배에 오르길 재촉한다.
7) 통영[統營] / 이서우(李瑞雨 1633~1709)
季節春臨上將㙜 봄을 만난 계절에 장대(將臺)에 올라보니
滄波熨帖瘴雲開 고요한 푸른 물결 속에 장기(瘴氣) 낀 구름이 개인다.
狼烟不起樓船靜 봉화 불은 일어나지 않고 누선(樓船)도 조용한데
唯見漁人採鰒回 오직 전복 캐고 돌아오는 어부만 보이네.
[주] 낭연(狼烟) : 봉화. 나라의 큰 난리가 있을 때, 신호로 올리던 불. 고대 군사용 경보(警報) 신호의 일종.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리의 똥을 햇볕에 말린 다음 태우면 연기가 곧게 한 가닥으로 피어올라 바람이 불어도 변형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군중 경보 신호로 널리 사용되었다. 후에는 전쟁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2. <통제영 감회(統制營有感)>
조선왕조실록 숙종 20년(1694) 7월 3일, 김진규(金鎭圭)선생이 아뢰길, "통영에는 봄·가을로 수군조련이 있는 것이 예입니다. 연해의 각 읍, 각 진에서는 모두 배를 타고 조련하려 영하(營下)로 나가는데, 이 일은 육군 조련에 비할 때 더욱 중대합니다. 그러나 통영에서 조련을 마친 뒤 호궤(犒饋, 군사(軍士)들에게 음식(飮食)을 베풀어 위로(慰勞)함)할 때에 사환(使喚,심부름꾼)으로 각 읍의 기악(妓樂, 풍류(風流) 하는 기생(妓生))을 불러 모으는데 이 때문에 수령은 이 명령을 핑계로 버젓이 전선(戰船)에 기생을 태우고 풍악을 울리며 질탕하게 놉니다. 여인이 군중(軍中)에 있음을 옛사람은 불가하다고 말하였는데 더구나 한 배 안에 군졸 및 기계(器械,무기)를 싣고 기악(妓樂)을 섞어놓으니 어찌 매우 놀랄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호궤할 때에는 원래 영기(營妓, 종군 기녀)가 있고, 또 군중의 호궤에는 사환하는 군졸과 인리(人吏, 아전)면 되는데 굳이 여악(女樂 여자 악사)을 쓸 거야 있겠습니까? 이 일도 통제사에게 신칙하도록 하여 특별히 금지시키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특별히 신칙하여 금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윤허했다"
1770년경 변일민이 두룡포대장가(頭龍大將歌)를 지었는데 통영기생은 물론 수군 장수들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전한다. 하지만 현재 그 내용이 전하질 않는다. 변일민은 한산도를 비롯한 통제영 관할 지역을 둘러보고 유람하면서, 여러 분들과 교류하다가 1778년 봄에 39세로 통영에서 사망했다.
8) 두룡포유감(頭龍浦有感) 느끼는 바가 있어 / 변일민(邊逸民,1740~1778).
水寨聲聲畵鼓撾 북 치는 화려한 수군진영 소리소리 들리고
一林冬柏落花多 동백나무 온 숲에 떨어진 꽃이 많기도 하다.
春風掩抑紅粧妓 봄바람에 움츠려 꽃단장한 기생이
忍唱頭龍大將歌 참으며, '두룡포대장가'를 부르네.
嶺樹南雲摠是愁 산꼭대기 나무 남쪽 구름, 모두가 시름인데
閒山島外水悠悠 한산도 외해 바다는 유유하기만 하다.
旅魂何處成飄泊 어디로 떠도는 나그네 신세인가?
木末流丹舊戍樓 아직도 저 멀리 옛 수루엔 단청 빛이 흐르네.
[주] 목말(木末) : 숲속, 메밀가루, 어깨위에 올라타는 것, 나무 꼭대기, 가지 끝, 아직도 멀리 있다는 말이다.(木末, 言猶遠也.)
9) 변일민을 애도하며(悼邊逸民,1740년~1778년) 二首 / 유득공(柳得恭,1749년∼?) 조선 후기의 실학자.
‘변일민’ 그대는 우아한 시에 능했다. 한바탕 노닐던 남해의 물가에서 병으로 죽었다. 두룡포대장가는 그의 유작이다. 왜국의 말 가운데 이르길, "두룡포 대장이 가장 두렵다." 모두 삼도통제사를 가리키며 전하길, "모래 언덕에 도깨비불은 오랑캐의 넋이로다. 숲속의 수루엔 붉은 빛이 흐르네." 이 또한 그대의 훌륭한 글귀이다.[君雅能詩 薄游南海之濱病歿 頭龍浦大將歌其所作也 倭中語曰頭龍浦大將最可畏 盖指三道統制使云 "沙頭走燐皆蠻鬼 木末流丹卽戍樓" 又君佳句]
◯ 이덕무(李德懋)가 전하는 변일민(邊逸民) : 변일휴(邊日休)의 자는 일민(逸民)이며 원성인(原城人)인데, 자호(自號)를 성유리관가가생(聖琉璃館呵呵生)이라고 하였다. 노불(老佛,도교 불교)에 출입(出入)하면서 태식(胎息,도가의 호흡수련)과 도인(導引,도가의 양생술)을 수련하기도 하고, 가부좌(跏趺坐)하고 범패(梵唄,찬불가)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는 저속함을 초탈하였으며, 서원(徐袁)을 매우 좋아하였고, 서천지(徐天池)의 사람됨을 더욱 흠모하였다. 일찍이 통제영(統制營)에 놀면서, 두룡포대장가(頭龍浦大將歌)를 지었고, 정유년(1777, 영조 1)에 또다시 박재선(朴在先)과 누선(樓船)을 타고 한산도(閑山島)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며 소타(嘯咤)하였고, 그 때에 쓴 시가 모두 호장하였는데, [沙頭走燐皆蠻鬼사두주린개만귀 木末流丹卽戍樓목말류단즉수류] "모래 언덕에 도깨비불은 오랑캐의 넋이구나. 숲속의 수루엔 붉은 빛이 흐르네."한 시구를 남겼다. 이듬해 봄에 남해안 통제영(統制營中)에서 죽었다.
◯ 변일민(邊逸民,1740년~1778년) / 이덕무(李德懋)
변일휴(邊日休)의 자는 일민(逸民)이며 원성인(原城人)인데, 자호(自號)를 성유리관가가생(聖琉璃館呵呵生)이라고 하였다. 경신생(1740, 영조 16)으로 나보다 한 해가 위이다. 노불(老佛,도교 불교)에 출입(出入)하면서 태식(胎息,도가의 호흡수련)과 도인(導引,도가의 양생술)을 수련하기도 하고, 가부좌(跏趺坐)하고 범패(梵唄,찬불가)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는 저속함을 초탈하였으며, 서원(徐袁)을 매우 좋아하였고, 서천지(徐天池)의 사람됨을 더욱 흠모하였다. 일찍이 통제영(統制營)에 놀면서, 두룡포대장가(頭龍浦大將歌)를 지었고, 정유년(1777, 영조 1)에 또다시 박재선(朴在先)과 누선(樓船)을 타고 한산도(閑山島)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며 소타(嘯咤)하였고, 그 때에 쓴 시가 모두 호장하였는데, “모래 언덕에 도깨비불은 오랑캐의 넋이구나. 숲속의 수루엔 붉은 빛이 흐르네.(沙頭走燐皆蠻鬼 木末流丹卽戍樓)” 한 시구를 남겼다. 이듬해 봄에 영중(營中)에서 죽었는데, 슬픔을 금할 수 없다. 일찍이 박치천(朴穉川 박상홍(朴相洪)의 호)과 담담정(淡淡亭) 호수에서 뱃놀이하면서, “큰 강은 발묵과 같고 봄비는 금천에 가득하여라. 오늘날 이처럼 까마득한 일들은 우리들도 역시 그럴 테지, 술잔과 접시는 물결 위에 흔들리고 붓과 벼루는 구름 가에 어지럽네. 모든 것을 등한하게 보지 말라. 삽시간에 백 년이 다가오리라” 하였는데, 이렇게 좋은 시는 옛사람의 시보다 무엇이 못하겠는가. “일찍이, 노자는 순수한 은색이네(鸕鶿純銀色)” 한 시구가 있다는 것을 듣고 나는 웃으며, “변일민(邊逸民)은 박식(博識)하면서도 자의(字義)에는 익숙하지 못하단 말인가? 노(盧)는 검은 것이고 자(玆)도 검은 것이다. 그래서 노와 자의 자의(字意)가 모두 틀렸다. 그것은 빛깔이 희지 않음을 뜻한 것이다. 어떻게 순수한 은색이 용납된단 말인가.” 하였다. 원통(袁桶)의 시에, “노자가 맑은 하늘에 둥둥 떠가니 그 태도 지극히 초초하구나. 바람에 뒤집히니 푸른 눈이 맴돌고 햇빛에 번뜩이니 은빛이 춤추네.” 하였는데, 이것은 먹물 빛 회색을 말함이지 순전히 검거나 흰 것은 아니다. ‘푸른 눈’이란 회색을 잘 표현한 말이고, ‘은빛’이란 번쩍이는 날개의 빛이지 흰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나는 변일민을 만나 한 번 웃으며 공박하면서 바로잡으려고 하였었는데,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으니 모든 것이 끝이로구나. 아 슬퍼라!
[邊日休字逸民 原城人 自號聖琉璃館呵呵生 生庚申 長於余一歲 出入老佛 或胎息導引 或跌(趺)坐梵唄 詩脫去凡陋 酷嗜徐袁 尤慕徐天池之爲人 甞客遊統制營 作頭龍浦大將歌 丁酉又游 與朴在先 汎樓船 入閒山島 飮酒嘯咜 詩皆豪壯 有沙頭走燐皆蠻鬼 木末流丹卽戍樓之句 粤明年春 沒于營中 嗟乎悲哉 甞與朴穉川 泛舟淡淡亭湖 有詩曰 大江如潑墨 春雨滿黔川 今日杳如許 吾曺猶復然 杯盤驚浪上 筆硯亂雲邊 莫作等間視 霎時當百年 如此好詩 何减古人 甞聞有鸕鷀純銀色句 余笑曰 邊生之博洽 而不嫺字義耶 盧墨也 玆玄也 故盧玆字意兼聲 以其色不白也 何處容著純銀色 袁桶詩 鸕鷀漾晴空 意態極楚楚 翻風靑雪廻 轉日爛銀 此則水墨色灰色 非純黑全白 而蒼雪善言其色 爛銀 乃羽光閃閃 非謂白也 將遇逸民 一笑而駁正之 今已矣 不可見矣 嗟乎悲哉]
10) 통제영(統制營) / 강위(姜瑋,1820년~1884년). 조선 후기의 한학자, 개화사상가.
江漢樓前萬里波 강한루 앞 만 리 물결
太平元帥大刀歌 태평한 때, 통제사의 대도가를 부른다.
遙夜群鴻都睡着 긴 밤 기러기 떼 모두 잠들고
碧空無際月華多 가없이 넓은 짙푸른 하늘에 달빛 쏟아지네.
書劒無成老更哀 문무(文武)를 못 이루고 나이드니 더욱 슬픈데
沈吟終日在戎臺 종일 군사훈련장에서 깊은 한숨뿐이로다.
天中積翠頭流出 하늘의 짙푸름이 산머리를 떠돌다 나타나고
海上斜陽巨濟來 해상에는 저문 햇살이 거제로부터 비춰오네.
水偏淸處毒龍浮 독룡이 떠다니는 물은 편벽되게 맑고,
讀得唐詩可戰不 당시(唐詩)를 읽으니 어찌 싸우지 않으리오.
神解如公千古少 신령을 깨우친, 공 같은 분이 먼 옛적에도 적었으니
莫將敦說擬凡流 범부에 비견해 지나친 말이라 하지 말라.
忠武祠堂萬竹林 무성한 대숲 속 충무공 사당에는
英雄事畢海沉沉 영웅의 일을 끝내고 바다에 잠긴,
世間不乏千名將 세상에 드문 아름다운 명장으로
有否盟山誓海心 굳게 맹세한 마음만 있도다.
[주1] 수편청처독룡부(水偏淸處毒龍浮) : 율곡이 이순신에게 "독룡이 숨어 있는 곳의 물은 편벽되게 맑고 산에서 나무 찍는 소리가 ‘정정’ 울리니 산은 다시 그윽하다(伐木丁丁山更幽 毒龍潛處水偏淸)"이란 시구를 전해주었는데 "伐木丁丁山更幽"는 두보의 시인 "제장씨은거(題張氏隱居)"에 실려 있다.
[주2] 맹산서해(盟山誓海) : 썩 굳게 맹세(盟誓)함을 이르는 말.
3. <통영객사(統營客思) 길손의 시름>
11) ‘통영누선(統營樓船) 통영 다락배’ 통제사 부채면의 글과 버드나무에 취하여(醉書柳統制扇面) / 이소한(李昭漢,1598년∼1645년) 조선 중기의 문신.
控制藩維壯 장한 번유(藩維)가 말고삐를 당기니
將軍氣槩雄 장군의 기개 씩씩하네.
樓船掛片席 이층 다락배 한쪽 자리에 앉아
大海駕長風 넓은 바다 향해 장풍타고 달린다.
天水相圍遠 하늘과 바다가 저 멀리서 서로 경계 짓고
雲煙一望空 한번 허공을 바라보니 뿌연 구름이네.
朝宗萬折意 중국 하수가 결국 동쪽으로 흘러가듯,
此路可能通 이 길은 가히 능통하리라.
積水茫茫闊 모인 바닷물은 넓고도 아득하고
遙山點點靑 먼 산은 점점이 푸르다.
長天霽景豁 비 개인 높은 하늘에 햇살 뚫려 내리니
孤帆夕陽明 외로운 돛단배 석양에서 밝다네.
畫角當秋鬧 화각(畫角)은 가을마다 시끄러워지니
銀鱗入座腥 은빛 물고기 놓인 좌판이 비릿하다.
男兒破浪志 남아가 물결 헤쳐 나가고자 하는 마음은
悔作一書生 이제야 후회하는 서생보다 낫다네.
[주1] 공제(控制) : 마술(馬術)에서 고삐를 잡아당기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일, 제압하다, 제어하다.
[주2] 번유(藩維) : 번국(藩國). 나라와 조정을 수호하는 사람에 비유한 말.
[주3] 만절조종의(萬折朝宗意) : 중국의 하수가 모두 동쪽을 향하면서[萬折必東]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朝宗于海]에서 연유한 것이다.
[주4] 능통(能通) : 능히 오거나 가거나 함.
[주5] 화각(畫角) : 목기 세공품의 공예기법, 옛날 군중에서 쓰던 대나무나 가죽 따위로 만든 나팔의 일종.
[주6] 송풍파랑(乘風破浪) : '바람을 타고 물결을 헤쳐 나간다'라는 뜻으로, 원대한 포부를 비유할 때 쓰인다.
◯ 이소한(李昭漢) : 1598(선조 31)∼1645(인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도장(道章), 호는 현주(玄洲). 서울출신. 1612년(광해군 4)진사시에 합격하고, 162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나아가 벼슬하였다. 1623년(인조 1)인조반정과 함께 승문원주서를 거쳐 홍문관정자에 승진되면서부터 그의 풍부한 학식이 정부관료들간에 널리 인정되었다. 충원현감·진주목사·예조참의 등의 내외관직을 역임, 1644년 형조참판으로 비변사당상을 겸임하였다. 그는 시문에 능하고 글씨에 조예가 깊었으며, 20여 년간 관계에서 활동하면서 〈동사록 東槎錄〉·〈진양록 晋陽錄〉·〈심관록 글館錄〉·〈방축록 放逐錄〉 등의 시를 남겼다. 시문집으로 《현주집》 7권이 있다.
12) 통제영이 폐지 됐다는 소리를 듣고 붓 가는 대로 쓰다가 한번 탄식하노라(聞統營廢止縱筆一歎) / 오횡묵(吳宖默) 1886년 영남향별사, 고성부사(固城府使, 1893~1894년).
興言嘖嘖洗兵軒 시끌벅끌한 세병헌,
畵閣丹樓逈入雲 붉게 칠한 단청의 누각이 멀리 구름 속에 있네.
控制三南大都督 삼남을 제압한 대도독,
嵬勳千古李將軍 오랜 옛적에 높은 공적, 장군 이순신이여~
昔時全盛渾如夢 옛적 전성기가 아련한 꿈만 같고
此日荒凉不可聞 처량한 이날 차마 듣지 못하겠네.
想見省中舊豪俊 생각건대, 성중의 옛 준걸들도
强銷金甲事春耘 쇠 갑옷을 녹여 김매기에 썼다지.
[주] 성중(省中):예제禮制에 의하면, 옛날에는 宮中을 省中이라 하였으나 후대에는 帝王이 거처하는 곳을 宮中 혹은 금중(禁中)이라 했고, 제공(諸公,三公)들이 거처하는 곳을 성중省中이라 하였다.
13) 통영 각 관청에서 음식을 권하며 시를 읊조린다(統營各廳有饋有吟) / 오횡묵(吳宖默) 1886년 영남향별사, 고성부사(固城府使, 1893~1894년).
對酒當歌續續來 술을 들고 노래하니 자꾸 몰려들어
今朝又復此筵開 오늘 아침도 또다시 연회가 열리네.
月明黃鶴長吹笛 달 밝은 날 황학이 피리 길게 불고
春暎靑蛾更擧盃 봄볕에서 미인과 계속 술잔을 든다.
我雖閑了人忙了 내 비록 한가하지만 사람들은 바쁘다하네
一巳多哉再况哉 한 마리 뱀이 뛰어나지만 거듭 되리까.
南去蓮花將有事 남쪽 연화도에 가서 일을 보고
幾時候得順風回 몇 번을 기다리다 순풍 타고 돌아왔다네.
14) 스님을 보내고 통영으로 달려가 통제사를 배알하다.(送僧赴統營謁元帥) / 백암집(栢庵集) 성총(性聰:1631~1700).
騰騰擊鼓戍樓中 힘차게 북을 두드리는 수루에서
獵獵紅旗拂曉風 새벽바람에 펄럭이는 붉은 깃발,
令肅轅門爲上將 군문(軍門)의 명령이 엄숙하매, 상장군의
威加馬島號征東 위엄이 대마도까지 떨치니 동쪽을 정벌하자 일컫네.
秦關壓水靑山斷 관문(關門)은 바다가 가로막고 청산이 끊어진 곳,
漢月臨營碧海空 진영을 비추는 은하수 밝은 달, 푸른 바다 공허하다.
似對周郞論計策 주랑을 대하는 듯, 계책을 논(論)해서,
慈航還與戰船同 배를 안전히 운항해 전선과 함께 돌아오리다.
[주1] 고곡주랑(顧曲周郞) : '음악을 잘못 연주하면 주랑이 곧 알아차리고 돌아본다'는 뜻으로,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고곡 : 음악을 감상함). 삼국지의 인물 중 한명인 주유는 음악에 관해선 '고곡주랑'이었던 사람이다. 제갈공명은 동남풍 부르고 주랑(周郞), 즉 주유는 조조를 쳐부수었다.
[주2] 자항(慈航) : 부처가 자비심을 가지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배의 운항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배로 군중을 건네 생사고해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 성총(性聰) : 1631년(인조 9)∼1700년(숙종 26). 조선 중기의 고승. 호는 백암(佰庵). 성은 이씨(李氏). 남원 출신. 13세에 조계산(曹溪山)으로 출가하였고, 1681년(숙종 7) 임자도(荏子島)에 표류하다가 정박한 배에서 명나라 평림섭(平林葉)이 교간(校刊)한 《화엄경소초(華嚴經疏鈔)》‧《대명법수(大明法數)》‧《회현기(會玄記)》‧《대승기신론기(大乘起信論記)》‧《사대사소록(四大師所錄)》‧《정토제서(淨土諸書)》 등 190권을 발견하고 1681년부터 1696년까지 낙안의 징광사에 머물면서 이들을 5천개의 판(板)으로 만든 뒤, 인성(印成)하여 징광사와 쌍계사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1700년 7월에 70세의 나이로 쌍계사 신흥암(神興庵)에서 입적하였다. 부도는 송광사와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 있고, 비(碑)는 현재 송광사에 있다. 법맥(法脈)은 무용(無用)―영해(影海)―풍암(楓巖)―최눌(最訥)로 이어져서 새로운 선종의 1파를 형성하였다. 저서로는 《정토보서(淨土寶書)》 1책과 《치문집주(緇門集註)》 3권, 《백암집(栢庵集)》 2권, 《지험기(持驗記)》 1책 등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가 현존하고 있다.
15) 통제사 이순신 차운(次統制使李舜臣韻) / 서성(徐渻, 1558년~1631년)
虎節兼三道 왕명을 받던 절도사로 삼도를 아울러
勳勞聖主知 그 뛰어난 공적 나랏님도 아시는 터
如今休拊髀 지금에야 넓적다리 만지며 편안하도다.
應喜與同時 같은 때에 함께 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16) 도총부직소벽상 차운(次都摠府直所壁上韻) / 구사맹(具思孟,1531년~1604년) 조선중기 문신, 원균의 칠천량에서 대패한 일을 회상하며.
兵興成底事 임진왜란 때 무슨 일이 있었기에
錯愕六年間 뜻밖에 육 년간이나 놀라 했었나.
有屋非眞府 집들은 있는데 마을이 아닌데도
無軍只舊官 군사도 없이 오직 구관(이순신) 뿐.
低回身已病 배회하다 몸은 이미 병들어
直宿枕難安 숙직하는 베갯머리 편치 않았다.
念及舟師敗 생각건대 수군이 무너져버리니
中心自不閑 마음속이 절로 편치는 않았겠네.
(時間閑山島舟師之敗 故結句及之) 때맞추어 한산도 수군이 무너졌다. 고로 끝 구절과 같다.
17) 선유 한산도(宣諭閑山島) 정이통제사(呈李統制) 교리 조팽년(校理趙彭年) / 조팽년(趙彭年,1549∼?) 조선중기 문신. 1596년 9월 1일.
喪亂孤殘兩可傷 전쟁과 친상에 남은 잔해 두 일이 너무 슬프나
見公便覺意差强 공을 보니 문득 마음이 든든해진다.
傍船彩鷁隨風舞 뱃가의 화려한 장식이 바람 따라 춤추고
橫海長鯨見劍藏 바다 가로지르는 큰 고래에 감춘 칼이 보이네.
塞上水軍飛俊鶻 변경의 수군은 뛰어난 송골매 날 듯하여
腰間羽箭射天狼 허리춤 깃털화살로 천랑성을 쏘겠네.
從今要續浯溪頌 이제부터 오계송을 계속 덧붙이니
莫笑書生迂且狂 서생들이 우활하고 미쳤다고 비웃지를 마소.
[주1] 선유(宣諭) : 예전에, 임금의 훈유(訓諭)를 널리 백성에게 알리는 일을 이르던 말.
[주2] 채익(彩鷁) : 뱃놀이에 사용하는 호화로운 배를 말함. 익(鷁)은 백로와 비슷한 큰 물새로 그 새가 풍파를 잘 견딘다 하여 그 모양을 뱃머리에 장식함. or 화려하게 꾸민 배.
[주3] 천랑성(天狼星) : 큰개자리의 별인 시리우스(Sirius)의 중국 칭호. 항성 가운데서 광도(光度)가 가장 셈. 낭성. 천래(天來) 선친적인 것. 하늘에서 내러옴. 하늘로부터 얻은 것임.
[주4] 오계송(浯溪頌) : 당나라 때 안사의 난이 평정된 후에 원결(元結)이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을 짓고 그 글을 당시의 명필인 안진경에게 쓰게 하여 오계 옆 바위 벼랑에 새겨 숙종의 공덕을 칭송하였다. 선조가 임진왜란을 평정한 것과 당나라 숙종 때 안사의 난을 평정한 것에 비긴 것이다.
◯ 조팽년 [趙彭年, 1549~1612] :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기수(期叟), 호는 계음(溪陰)이다. 전라도 강진(康津) 生, 1573년(선조 6)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157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8년 전의현감(全義縣監) 재임, 1593년 임진왜란 때, 암행어사로 지방을 순찰하던 중 상소를 올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하던 이순신(李舜臣)을 장군으로 다시 기용하게 하였다. 1599년 여산군수(礪山郡守) 역임.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옴천면(唵川面)의 주봉서원(冑峰書院)에 배향되었다.
18) 객유시남해유권자(客有示南海游卷者) 권유변이이작(卷有邊李二作) 차기운(次其韻) / 유득공(柳得恭,1749년~1807년) 조선 후기의 실학자.
華泉北地兩詩䧺 북쪽 지방 화천(華泉)에는 뛰어난 두 시인이 있어
把酒同臨萬里風 술잔을 들어 만 리 바람과 함께 마신다네.
忠烈祠前秋樹合 충렬사 앞 가을나무 무성하고
閒山島外陣雲空 한산도 너머에 진을 친 구름 공허하다.
樓船壯士健于虎 다락배의 장수는 호랑이보다 굳세고
玉帳佳人翩若鴻 휘장속의 미인은 나부끼는 기러기 같도다.
話到南游頻促膝 자꾸 무릎 마주하며 남쪽여행 이야기하다보니
不知身在軟塵中 자신이 하찮은 세속에 있는지 알지 못하네.
19) 통영영해루 차운(統營映海樓次韻) / 김지남(金止男,1559년∼1631년) 조선 중기의 문신, 경상감사.
海邊舟楫壯關防 해변의 배와 돛대, 견고한 관방,
專制三方策亦良 삼면을 통제하고 대책 또한 훌륭하다.
山勢盡頭平地小 산세의 막다른 끝에 평지는 적고
海門通處碧天長 바다 어귀는 각각의 곳으로 통하는데, 푸른 하늘은 멀어라.
擁樓鼓角風傳響 전함의 고각소리 바람타고 울리니
蘸水星河影動芒 물에 담긴 은하수 그림자가 빛살에 흔들거린다.
老子年來能斷酒 이 늙은이가 요즈음 술을 끊었는데
登玆不覺倒瓊觴 북포루에 올라보니 옥술잔에 술 따르는 줄도 몰랐네.
20) 통영의 신(申) 종사관을 전송하며[送申從事之統營] / 조형도(趙亨道,1567~1637)
春城微雨浥塵輕 봄날에 보슬비가 가벼이 먼지를 적시더니
芳草初生幾驛程 역길 가에 향기로운 풀이 갓 생겨나구나.
去國靑衫今萬里 고향 떠난 남빛 적삼에 이제 만 리 길을 달려오니
思家白髮又千莖 흰머리 천 가닥 또한 집 생각이 간절하네.
堂前菽水時誰進 누가 때마다 마루에 검소한 음식 차려 주랴마는
海上軍機日自評 해상의 군사 기밀을 날마다 평가했다네.
攜手且休分手惜 손잡고 한가로이 쉬다가 이별하려니 아쉽지만
他年會見斬長鯨 다른 해에 서로 만나 큰 고래를 베어봄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