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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3일 제 휴대폰으로 문자 하나가 왔습니다.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날아온 무상수리고객통지문이었습니다. 일명 ‘리콜서비스’라는 것이죠. 2010년 8월 20일부터 2016년 8월 30일까지 생산된 그랜드스타렉스의 부품에서 하자가 자주 발생하게 되는 것이 인정되어 그 시기 출고된 그랜드스타렉스차량은 모두 무상수리하기로 결정되어 해당 차주는 가까운 현대자동차서비스에 차량입고하여 수리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그랜드스타렉스도 그 시기에 해당되었고 그래서 저에게 문자가 날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목요일 수리하러 향남 현대자동차서비스에 가서 수리요청했는데 아직 부품이 조달되지 않아서 일부만 수리하고 추후 부품도착하면 다시 연락줘서 완전히 수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 정말 수 없이 연구하고 개발한 이후에도 수없이 테스트한 차량을 판매했는데 ‘벌써 십 수년이 지난 차량을 이제야 하자에 대해 깨닫고 이렇게 수리하다니’ ‘참 완전한 차는 없구나’라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감사한 것은 출고한 지 그렇게 오래된 차량도 하자가 발생하니 그냥 넘기지 않고 무상으로 차를 고쳐주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주니 참 좋은 자동차회사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잘못 적용하며 잘못되게 썼던 율법을 리콜해주시며 완전하게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잘못 사용하는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회복시켜주시는 예수님의 귀하신 사역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도록 하실 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을 잘못 이해했고 잘못 적용했습니다.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께서 이제 이 땅에 오셔서 그 율법의 참된 의미와 뜻을 알려주시고 그 율법이 완성하지 못한 구원의 길, 율법이 해결하지 못한 죄의 값을 해결하시며 율법의 본 뜻을 완성하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율법의 완성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법, 율법의 참 의미를 깨닫고 제대로 이해하며 바르게 적용하며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 신앙을 회복하며 살아가는 복된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율법이 가르쳐주는 것, 첫째는 율법은 예수님을 통해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께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율법(律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תוהֹּ’(토라)’, 헬라어로 ‘νόμος’(노모스), 영어로는 ‘law’라고 바꿀 수 있습니다. 의미를 따져 뜻을 번역하면 “말씀, 율법, 계명, 율례, 규례, 명령,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될 수 있는 “율법”을 예수님께서는 ‘폐하러 오시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폐하다’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파라르’이고 헬라어는 ‘καταργέω’(카타르게오)입니다. 영어로 바꾸면 ‘make ineffective’입니다. 즉 ‘깨뜨리다, 좌절시키다, 무효화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을 파괴하는 분이라고 오해했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도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셨는데 그 행위는 유대교가 정한 규례를 무시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깨뜨리거나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4장 44,45절을 보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유대인들이 잘못 알고 잘못 적용해서 퇴색되어버린 율법의 의미를 되살리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율법과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제정자이시며 수여자이시고 또한 완성자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기하시지 않고 완성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율법과 복음이 폐지와 부정의 관계가 아니라 완성과 발전의 관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이 복음을 예표하는 도구였다면 신약에서는 이 율법이 복음의 실체로 나타나며 율법이 복음으로 계승, 완성, 승화되어 결국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면서 선지자의 사역을 또한 완성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 쓰인 ‘선지자’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נָבִיא’(나비), 헬라어로는 ‘προφήτης’(프로페테스), 영어는 ‘prophet’입니다. 이 단어는 ‘대변자, 율법을 전하는 자, 진리를 먼저 아는 자’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이 단어가 뜻하는 선지자의 역할, 선지자의 사역을 완성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껏 완성되지 못한 채 명칭으로 이어져 내려왔던 선지자라는 직책의 완결자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이후로는 선지자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완전’이라는 단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완전’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תמים’(타밈)이고 헬라어로는 ‘τέλειος’(텔레이오스)인데 영어로 바꾸면 ‘blameless’입니다. 이 단어는 ‘온전히, 빠짐이 없이, 결점이 없이’ 라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서 “흠이 사라지고 틈이 매워지고 완성되지 못한 건물을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자체가 율법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오늘 본문과 신약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율법을 완성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이 존재할 필요가 없어졌을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만드셨다’고 하시면서 그 뒤에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18절 말씀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주님께서 사셨던 당시 그 땅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모세의 가르침을 우리 주 예수님께서 업신여기고 무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 그 자체이시기에 모세의 가르쳐준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업신여길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철저히 율법과 율법의 가르침을 몸에 익히고 준수하신 분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의 한 획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율법에 대한 설명과 사도 바울이 구약 율법을 평가한 것과 차이가 있는 듯한 말씀을 성경속에서 발견하기도 합니다. 신약성경 바울서신에는 율법이 완전히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신약성경 바울서신에서도 율법이 쓸모없어졌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서신에서도 율법이 그리스도로 인해 완성되어 그리스도를 통한 율법의 비밀을 깨달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31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파기하겠느냐?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굳게’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וןּכ’(쿤)이라는 단어이고 헬라어로는 ‘στηρίζω’(스테리조)입니다. 영어로 바꾸면 ‘establish’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확정하다, 고정시키다. 견고하게 만들다’라는 의미입니다. 시멘트를 부어 건물이나 땅을 튼튼하게 만들 때 굳게 만드는 작업에 이 단어를 쓸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세운다’라는 단어가 뒤에 나오는데 이 단어의 히브리어는 ‘מדַעָ’(아마드)입니다. 헬라어로는 ‘ἵστημι’(히스테미)라고 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남겨두고 지속하면서 다시 일으킨다는 의미입니다. 사도바울이 율법을 파기한다라고 했을 때 그 율법의 파기는 율법으로 정죄받던 육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정죄된 죄된 몸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율법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까지 ‘율법의 작은 것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이뤄진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완전무결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일점 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모든 율법은 다 성취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말씀과 무관한 분이 아니십니다. 구약에서 말씀하신 메시야가 신약시대 우리에게 오신 분이시고 이 분은 구약의 율법을 온전하게 하며 완성시키시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율법을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오셨으니 구약의 말씀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라는 것은 우리가 구약을 무시하는 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살아가는 우리는 구약의 말씀을 무시하는 존재가 아닌 구약의 말씀도 구원의 길을 설명하기에 믿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약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왜 그것이 중요한 지 자세히 알고 구약의 말씀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통해 구약의 하나님 뜻을 잘 분별하고 구약을 통해 주신 역사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능력으로 임하시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율법이 가르쳐주는 것, 둘째는 율법은 삶속의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9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이해하며 적용하는 태도에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위한 법이 죄인을 정하는 법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두 번째는 율법의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생명으로 인도하려는 것이지, 결코 백성들을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분명해야 한다고 우리 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결국 천국갈 영혼, 생명을 얻을 영혼은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의 항목을 지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기보다 그 의미를 깨닫고 그 정신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잘 알아갈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분명하십니다.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생명의 법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을 바로 지키는 자들은 다 생명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머리로 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천국에 거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5장 20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 주님께서 제자에게 말씀하신 의(義)라는 단어 헬라어는 ‘δικαιούνη’(디카이오쉬네)입니다. 영어로는 ‘righteousness’입니다. 이 단어는 ‘사람이 지킬 도리’를 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신 이 단어의 뜻은 예수님을 믿게 될 때 생기는 의를 뜻합니다. 여기에서 ‘낫다’라고 번역된 단어의 헬라어는 ‘ὑπερεεχω’(휘페에코)라는 단어입니다. ‘우세하다, 능가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와 있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는 말의 헬라어는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인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바리새인의 의는 자신을 드러내고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자랑하며 자신이 의롭다고 강조하는 의입니다. 이런 의는 간헐적으로 행하는 선한 일일 뿐 본질적인 의는 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의 의는 형식적인 의요, 외적인 의요,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로워지려는 소극적 의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이 행할 의, 천국에 들어갈 의는 완전한 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 말씀에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완전한 ‘의’는 인간이 완성할 수 없는 의이고 예수님을 통해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의’입니다. 의롭다고 인정받는 의이지 의로워지도록 만들 수 있는 인위적인 의가 아닌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마음에 주인으로 영접하면 옛사람을 제거하신 후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義)를 주심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7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 율법, 거룩한 명령은 우리가 행할 수 있어야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을 말씀하신 것이고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존재는 우리 하나님밖에 없음을 말씀하신 것을 신약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율법을 지킬 수 없기에 스스로 구원받을 존재는 인간중에는 아무도 없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질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의로움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에 매여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역사를 체험할 때 의로운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아닌 성령의 인도로 행하게 되는 의로운 행위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녀인 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8~20절입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주의 백성은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 나타나는 언행의 열매, 은사의 열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나타나는 인격변화의 열매를 보여줘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 또한 우리 스스로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거룩한 자만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열매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룩한 열매의 언행, 거룩한 열매의 성령 사역, 거룩한 열매의 은사가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율법이 가르쳐주는 것, 셋째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율법을 지키며 율법대로 행하고 율법을 가르쳐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이 방대한 율법, 너무나 구체적인 규칙들을 다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 인간이 이 말씀을 다 지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우리 스스로는 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연약하여 지킬 수 없었던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자책하거나 남을 정죄하는 삶에서 이제 완전한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겐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성령안에서 자유를 얻고 성령안에서 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들어갈 수 없던 존재였는데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들어갈 수 없는 천국을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 성령의 도우심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가지게 된 궁극적 기쁨의 소식입니다. 이 땅이 창조된 이후 이 땅에 인간이 생긴 이후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지금까지 천국은 의로운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의”를 가진 사람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의를 만들어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렇게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는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의”는 하늘에서 난 “의”입니다. 사람들과 비교해서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기에 가지는 “더 나은 의”가 있어 나는 천국갈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 상대평가를 통해 다른 사람보다 나으면 의롭다고 말하는 ‘의’가 아닙니다. 성경의 ‘의’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난 ‘의’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의”입니다. 나의 공로로 얻어지는 “의”가 아니고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의”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 성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의는 양적인 ‘의’가 아니고 질적인 ‘의’입니다. 착한 일, 선한 언행을 많이 하면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인간적 기준과 다른 ‘의’의 상태를 이루어야 의로워지는 ‘의’입니다. 이런 순수하고 완전한 의를 충족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완전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이 완전한 ‘의’를 이루셨는데 이것을 통해 율법이 사랑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4~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의로울 수 없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의로운 인간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서 의로운 인간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 보혈로 구원을 받았기에 의로운 인간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가치가 없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의로운 육체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얻은 의로 천국에 가는 하나님 백성의 자부심을 가지고 항상 그리스도를 닮아 희생과 헌신, 사랑을 보여주는 참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시며 율법의 완성자, 선지자의 완결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율법의 완성, 선지자의 완결을 통해 이 땅에 구현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율법을 통해 구원받을 영혼이 없고 율법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결과물을 만들 인생이 없기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허락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보혈 그 피로 복음을 깨닫고 그 보혈의 열매로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의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신 메시야이신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죄를 해결할 방법이 예수님밖에 없음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로마서 5장 20, 2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 속에 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이제는 영생을 얻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안에 들어와 거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은혜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된 성도들, 이제 천국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율법에 얽매여 율법 하나하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바리새인같은 삶을 살지 않고 율법이 주는 유익을 깨닫고 율법의 본질적 의미를 지키며 바른 신앙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천국을 차지하게 된 우리들은 이제 율법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의’는 율법을 다 지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로 인해 변화된 천국백성,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속에서 ‘의’를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보여주는 ‘의’ 진리의 말씀으로 깨끗함을 받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인격과 삶이 변화되어 나타나는 신령한 ‘의’를 보여주며 참 하나님의 나라의 ‘의’가 저와 여러분의 삶, 저와 여러분이 생활하는 모든 터전에서 이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