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덩굴 -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수직의 벽을 까마득히 올라가는 담쟁이덩굴을 보고 있으면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끝내는 이루고야 마는 어느 성공담보다 더 진한 감동을 받게 된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담쟁이덩굴을 시로 노래한다. 김진길의 시조 <담쟁이덩굴>은 4연으로 된 연시조이다. 이 시조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담쟁이덩굴의 특성을 시인 특유의 감성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첫 연에서 시인은 우리들에게 ‘길이 막혔다고 불평하지 말라’고 한다. ‘여기 고독의 벽 아니면 나서지 않는’ 담쟁이덩굴의 ‘유별난 생애 앞에서는’ 단지 길이 막혔다고 불평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나무란다. 인생사 어떤 고난도 수직의 벽을 올라야 하는 담쟁이에 비할 것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2연에서는 위태로운 돌담을 ‘자일도 없이 맨손’으로 오르는 모습을 통해 벽을 오르는 담쟁이의 자세를 보여준다. 3연은 그런 담쟁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나타난다. ‘점자 벽을 읽어가는 부르튼 손바닥’은 시인이 느끼고 있는 담쟁이 순의 모습이고 담쟁이덩굴의 어린 순은 시인의 눈에 ‘이슬 한 방울도 감당 못할 무게’처럼 보이기에 더 안타까운 것이다.
4연은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담쟁이덩굴의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벽이 높아지면 그만큼만 더 오를 뿐 / 준법의 경계를 딛고 월담하지 않는다’는 담쟁이덩굴. 맞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넘어 그 벽의 다른 쪽을 기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이는 위로만 오르려는 담쟁이의 특성이지만, 시인의 눈에는 ‘준법의 경계’를 지키는 삶의 자세로 보이는 것이다.
너도나도 시로 노래한 담쟁이덩굴의 특성들. 김진길은 시조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담쟁이에 대해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특성까지 제시하며 시로 승화시킨다. 많은 시인이 노래했지만 ‘그 조차도 사치다’, ‘자일도 없이 맨손으로’, ‘점자 벽을 읽어가는 부르튼 손바닥’, ‘준법의 경계를 딛고 월담하지 않는다’는 것들은 김 시인만이 보여주는 담쟁이덩굴의 특성이요 이는 시인의 예리한 관찰력이 없다면 이루지 못할 표현들이다.
언제나 담쟁이덩굴 앞에 서면, 특히 김 시인의 연시조를 읽고 나서는, 치열한 삶의 정신에 더욱 고개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