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순간을 소중하게 하는 마흔세 가지 미덕
김선화 시인의 신작 에세이다. 산을 오르는 시간과 인연을 기록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는 작가로서의 길과 일상에서 포착한 사유의 순간들을 담았다.
작가는 마흔세 편의 글 첫머리에 각 글과 관련된 미덕을 키워드로 삼았다. 감사, 결의, 너그러움, 목적의식, 배려, 사랑, 신뢰, 열정, 용기 등 마흔세 가지 미덕을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한 말과 행동을 선택하는 것처럼, 이 미덕들이 순간마다 잘 발휘되기를,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신중이 오래 머물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책에는 작가의 일상과 사유의 순간들이 잔잔한 어조로 펼쳐진다. 가족과 벗,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속에서 사람살이의 즐거움과 쓸쓸함을 함께 돌아보고, 여행길에서의 경이를 소개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일의 환희와 고독을 기록하고, 지나간 시간의 그리움과 새로운 다짐들을 읊조린다.
‘순간이 소중해지는 순간’은 매 순간의 미덕을 품고 나를 다지는 시간이면서, 베풂과 나눔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다. 나직한 목소리로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목차
프롤로그
감사|그곳에 가는 이유
결의|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기뻐함|집 밖을 나가게 된 이유
기지|나무 같은 사람
끈기|우리는 모두 아플 수 있다
너그러움|운수 좋은 날
도움|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목적의식|몽캐는 책고팡
믿음직함|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배려|달빛에 취하다
봉사|가만히 들어주었어
사랑|간질간질 아끼고 싶은 마음
사려|무언의 지지를 해주는 사람
상냥함|있는 그대로 괜찮아
소신|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신뢰|밥 한 끼
신용|교학상장敎學相長
열정|좋아하는 것을 오래 하려면
예의|다섯째 이모
용기|파란 바지 동수 씨
용서|베인지도 모르고
우의|중학교 담임선생님
유연성|보이차 찻잔 위로 이야기가 흐르고
이상 품기|술 한잔을 올린다
이해|누구에게나 상처가 있다
인내|ALL is well
인정|고마운 말 한마디
자율|밤 산책
정의로움|폭낭의 아이들
중용|오래된 통증
존중|그리움
진실|마음속에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창의성|그저 다르게 보기
책임감|남편의 손
초연|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친절|춘자 할머니
탁월함|같은 마음
평온함|세잎클로버
한결같음|나를 키운 팔 할은
헌신|여름 나기
협동|마음 일으키기
화합|마주 보며 함께 살기
확신|새벽의 약속
에필로그
책 속으로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달빛 아래 모여 춤을 춘다. 음력 15일의 달빛은 강력하다. 6월 달빛 명상은 청도의 사과나무 농장에서 이루어졌다. 깊은 산중이라 그런지 달빛이 깊고 그윽했다. 과묵하지만 은근한 미소를 보내며 안주인 옆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바깥주인을 닮았다.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하며 맨발로 잔디를 걷는다. 달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몸 구석구석의 감각을 알아차린다. 은근한 달빛에 취해 새소리, 바람 소리도 잠시 잊는다. 오롯이 달빛과 하나가 되었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고양이들도 달빛과 하나 되어 몸을 일으켜 사뿐사뿐 걷고 있었다. 마치 오늘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고양이의 등과 허리가 꼿꼿하게 펴져 마치 사람처럼 움직인다. 깜깜하던 사방이 달빛으로 조금씩 밝아지고 사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는다. 모르는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각자의 호흡에만 집중하면 된다. 한 사람이 눈을 감고 뒷걸음으로 여행을 떠난다. 반대쪽 손을 마주 잡은 사람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안전하게 가이드한다.
---pp.45-46
아침에 어디서 베인지도 모르고 손가락 끝에 붉게 맺힌 피를 보며 생각이 참 많다. 피가 멈출 때까지 꾹 눌러본다. 아파야 할 때 아프고 슬퍼야 할 때 슬프고 기뻐야 할 때 기쁘고 싶다. 그런데 꼭 몇 박자씩 늦게 오는 것들이 있다. 아니, 많다. 오늘 베인 건 뾰족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때때로 우리는 동그란 어떤 것에 베이기도 한다. 동그랗고 예쁘고 반질반질한 것에도 다칠 수 있다. 친절하고 상냥한 어떤 것에 상처받기도 한다. 아픈 줄도 몰랐다가 한참 후에야 따끔하게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
---p.88
가을이 되면 우리 가족은 전어를 먹는다. 할머니 얘기를 안주 삼아 깨소금보다 더 고소한 전어를 음미한다. 그래서 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그 음식을 먹게 되나 보다. 오는 주말에는 박하사탕 한 봉지를 들고 부산에 계신 외할머니 산소를 찾아가 보려고 한다. 그리고 구포시장에 들러 전어 한 접시를 먹고 와야겠다. 당연히 소주는 소독용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한잔을 마셔야겠지. 입 안에 넣으면 싸한 향기를 뿜어내는 박하사탕과 고소한 전어는 내게 외할머니이자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p.123
인생이 참 재밌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은 또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온다는 거다. 그러니 기뻐도 너무 기뻐 말고 슬퍼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다섯클로버의 꽃말은 불행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뭐든 과하면 좋지 않다. 그래서 난 귀한 네잎클로버도 좋지만, 도처에 흔한 세잎클로버가 더 좋다. 행운을 찾기 위해 무릎 구부리고 앉아 뒤적이는 것도 좋지만, 행복을 주는 세잎클로버를 한 움큼 건져 올려 눈앞에 두고 싶다.
---p.148
출판사 리뷰
머리글
우리 모두에게는 미덕이 있다. 그 미덕들 중에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것들이 사용된다. 아니, 저절로 발휘되는 것들도 있다.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는 인내와 사랑, 유연성을 나 자신을 온전히 만날 때는 존중, 진실, 소신이 필요하다. 친구와 한라산을 오를 때 발걸음을 맞추는 건 배려, 비 오는 날 횡단보도 앞까지 우산을 들고 마중 나가는 건 사랑, 어릴 적 길을 잃었을 때는 부모님이 날 찾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가끔 내가 가지고 있는 미덕들이 오작동을 할 때가 있다. 불의를 보고 참고, 한결같지 않은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때도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한 말과 행동을 선택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T시간 P장소 O상황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미덕도 그 순간에 잘 표현되면 좋을 것 같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에 신중이 너무 오래 머물지 않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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