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 상태에 따라 낯빛이 수시로 바뀌는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마음 씀씀이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인상 좋은 사람은 관상도 좋을까? 반대로 관상 나쁜 사람은 인상도 나쁠까? 온 나라를 경악하게 한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은 이런 의문에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을 읽기 힘든 얼굴이기 때문이다. 관상과 인상의 미묘한 관계. 그 의문을 풀기 위해 관상이론의 대가로 손꼽히는 신기원 선생과 인상이론의 틀을 체계화한 주선희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 사람은 엇갈린 주장을 편다. 신 선생은 관상과 인상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주 교수는 마음에 따라 인상도 달라지고 자연히 관상도 변한다고 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주장은 맞닿아 있다. 관상과 인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같은 얼굴’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 본성은 불변” 관상이론 대가 신기원 선생 “자기 분수를 알아야 현명한 행동”
구부정한 어깨, 코끝에 걸린 안경 너머의 작고 동그란 눈, 갸름한 얼굴에 뾰족한 턱과 웃을 때 환하게 드러나는 가지런한 치아. 관상가들 사이에서 관상이론의 대가로 꼽히는 신기원(70) 선생은 허영만 화백의 동아일보 인기 연재만화 ‘꼴’에 등장하는 모습 그대로다. 만화 속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정말로 똑같다.
신 선생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 자신의 집에서 관상 강의를 한다. 허 화백과 위즈덤하우스 편집장 고정란 씨, 용인대 이동철 교수(중국학), 문화평론가 강영희 씨 등이 주요 수강생. 동아일보에 매일 실리는 허 화백의 만화는 이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신 선생은 또 월요일마다 성동구 도선동 주민자치센터 3층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강의한다. 6시부터 7시까지는 기초반, 이후부터 10시까지는 심화반이다. 30~40명의 수강생은 대부분 40, 50대 중년층으로 수업 열기가 뜨겁다. 평범한 주부와 직장인, 사주와 관상을 접목하려는 역술인, 스님 등 수강생의 직종은 다양하다. 신 선생은 ‘마의상법(麻衣相法)’을 주교재로 삼고, 유명인이나 뉴스에 등장한 인물들의 사진을 보조교재로 활용한다.
“호상불여호신(好相不如好身)이라는 말이 있어요. 관상이 좋아도 몸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관상이 4라면 몸이 6이에요. 몸의 생김새와 건강이 그만큼 중요하죠.”
기초반 강의가 끝난 뒤 신 선생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평일은 손님이 끊이지 않아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어 금요일 저녁 7시 자택에서 만나기로 어렵게 약속시간을 잡았다.
신 선생의 집은 ‘신기원 관상학당’으로 불린다. 약속한 시간에 집에 도착하니 손님 한 사람이 상담을 하고 있었다. 뭔가 심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신 선생은 관상도 보지만 단골에게는 상담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손님은 자신의 재산 중 일부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듯했다. 1시간 넘게 상담을 받은 손님은 결국 신 선생의 조언에 따르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비운 자리에 앉으면서 슬쩍 물었다.
“상담도 관상을 보고 하세요?”
“그렇지, 상을 보면 그 사람의 재복이 보이거든. 재복이 없는데 무리하게 욕심을 내서는 곤란하지.”
만화 ‘꼴’을 보면 관상의 정의에 대한 신 선생의 언급이 자주 나온다. 가장 빈번한 말이 특정 부위만 보고 그 사람의 운명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정리하면 이렇다.
“얼굴의 기세가 전부 나쁜 꼴은 없다. 낮은 곳이 있으면 높은 곳이 있고, 부족한 곳이 있으면 넘치는 곳이 있다. 얼굴 구석구석을 모두 따져서 꼴의 총점을 봐야 그 사람의 관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한두 곳이 나쁘더라도 실망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상은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일까. 관상 전문가에게 관상을 믿느냐고 묻는 것이 결례일까 싶어 망설였지만 궁금한 것을 안 묻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관상이란 꼴을 보고 그 사람의 본성부터 타고난 자질과 격, 복까지 알아보는 것이다. 관상학 책을 보면 관상은 60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연구됐다. 일반인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100% 믿는다. 상법(相法)은 얼굴을 살피는 방법을 말하는데, 명확하고 신빙성이 있다. 글자로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사주명리학과는 비교가 안 된다. 관상은 바로 실상을 살피는 것이다.”
같은 사람의 관상과 사주는 비슷한가, 아니면 차이가 있나.
“사주는 한날한시에 태어난 사람이 똑같을 수밖에 없다. 쌍둥이가 그렇다. 하지만 실제 두 사람이 사는 인생이 같은 경우를 본 적이 있나? 사주로는 이들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반면 관상은 두 사람의 인생을 구분할 수 있다. 어느 날 쌍둥이 형이 동생을 데려온 적이 있다. 형은 성공한 의사인데 동생은 취직을 못해 형의 병원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쌍둥이인데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안신(眼神·눈빛의 기운)에 차이가 있었다. 정신의 기운이 안신의 차이를 가져온다. 음성도 달랐다. 음성 또한 그 사람의 기운에 영향을 미친다.”
관상이론이 오래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는데, 그때와 지금의 얼굴이 많이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면 기준도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무슨 소리… 기준과 원리는 그대로다. 사람들의 상과 체형이 진화한 것이지 바뀐 게 아니다.”
관상이 좋으면 인상도 좋은 건 아닌지.
“그건 아니다. 좋은 인상인지, 나쁜 인상인지는 마음이 순수한 어린아이에게 물어보면 가장 잘 안다. 넉넉하게 방긋 웃는 해적왕 털보를 어린이들에게 보여줘봐라. 해적이 무서운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털보는 좋은 인상으로 남을 것이다. 인상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다. 그냥 보이는 것일 뿐이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보라. 인상으로만 보면 도저히 살인마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관상학적으로 보면 무서운 범죄자형이다. 감정이 없는 찬피(冷血) 동물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