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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면 신현리의 봉생정에서 野草, 德山, 海山, 樂山, 牛步의 밝은 모습...11:56:49
德山의 수고로 진남휴게소에 주차 후 산행을 출발한다....09:19:04
관리자가 빗자루 청소를 하고 있는 "문경오미자테마터널" 을 지나서 石峴城(석현성)으로 오른다...09:23:35
石峴城 鎭南門(진남문)을 배경으로 아침의 밝은 氣運을 마시는 樂山, 野草, 德山, 牛步의 모습...09:29:17
돌 고개 주막거리 ....09:31:32
예로부터 주막(酒幕)은 오고 가는 길손들의 휴식처로서 술과 여관을 겸한 곳이다. 이곳은 영남대로 구간 중 가장 통행이 빈번해 오래 전부터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달리 꿀떡고개로도 불렀다. 주막을 복원하고자 문경시에서 지난 2003년 발굴 조사를 실시하고 2006년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복원된 건물 중 위편의 건물은 문경에 남아 있는 마지막 주막인 영순 주막을, 아래편은 예천지역에 남아 있는 마지막주막인 삼강주막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城隍堂 由來 (樂山의 해설을 적음) .....09:33:03
父女(아버지와 딸)가 석현성 고개에서 떡 장사를 하며 지내다가, 科擧 보러 漢陽가는 도련님이 해가 저물어 留宿하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美色인 過年한 딸을 도련님과 맺어 주니, 도련님은 及第하여 돌아온다는 約束을 남기고 떠나간 뒤, 科擧에 及第를 하자 漢陽의 세력가들이 사위 삼으려 慾心을 내는 바람에 지난날을 잊고 장가를 들어 자녀를 낳고 잘 살다가 故鄕을 가려고 석현성 고개에 와서야, 옛 생각이 들어 살펴보니 冷氣만 돌고 지난날 草屋은 허물어져 雜草만 茂盛하여 마을에 내려가 事緣을 들어 보니, 머리 올린 딸은 每日 정화수(井華水)를 떠놓고 서방님의 壯元及第를 빌고 또 빌다가 서방님이 數年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아버지도 몇 해 뒤 돌아가시어 집도 허물어진 안타까운 事緣을 듣고, 크게 참회(懺悔)를 하고 눈물로 원혼(冤魂)을 달래는 祭祀를 지내고 나니, 꿈에 각시가 나타나 “서방님이 찾아와서 저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慰撫해주니 고맙다”고 하여 선비는 城隍堂을 세워 지나는 길에 들러서 祭를 지냈다는 유래가 있다, 그 뒤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올리고 도움을 받았다고 하며, 지금은 신현리 里長님이 주관하여 매년 祭를 올려 마을의 平安과 福을 빌며 管理해 오고 있다.
석현마을에 오르면 주흘산이 우뚝 솟아 가까이 닥아와서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09:34:32
대구 서씨 비석(大丘 徐氏 碑石)....09:34:38
앞 : 成均進士大丘徐公諱相馥永世不忘碑忘碑 (성균진사대구서공휘상복영세불망비)
檀紀 4304年 8月 21日 子 孫 載瑀謹拜 曾孫 貞錫 玄孫 龍源
건너편 : 處士大丘徐公諱載瑀永世不忘碑忘碑 (처사대구서공휘재우영세불망비)
西紀2001년10월7일 子 洪錫 謹拜 鉉錫 女 鎬順 哲 孫 珍源 大源
*進士:조선 때, 小科·진사과에 급제한 사람 *諱(휘: 돌아간 어른의 生前 이름)
*단기 4304년 = 서기 1971년 *處士: 예전에, 벼슬을 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던 선비
비석 뒷면 글귀
앞 : 天尊地卑 乾坤定矣 見善如渴 聞惡如聾 천존지비 건곤정의 견선여갈 문악여롱
一日行惡 惡自有餘 一日不念 諸惡皆自 일일행악 악자여유 일일불념 제악개자
終身行善 善猶不足 종신행선 선유부족 *공자의 역경(주역) 중에 : 繫辭上傳계사상전 제1장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과 곤이 정해지고, 착한 일에 목말라 하고, 악한 소리에 귀를 닫아라.
하루 나쁜 일을 행하면, 악은 몸에 남아있고 하루 공을 들리지 않으면, 모든 악이 일어난다.
일생을 선한 일을 행하여도 선은 오히려 부족하다.
건너편: 乾知大始 坤作成物 一攫千金 一場春夢 건지대시 곤작성물 일확천금 일장춘몽
精神一到 何事不成 吾愚子孫 此書不忘 정신일도 하사불성 오우자손 차서불망
*공자의 역경(주역) 중에...계사상편 1장
하늘이 크게 주관하여 땅에서 이루고. 한 번에 천금을 잡는 것은 봄날의 한바탕 꿈이며.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어찌 이루지 못하리. 어리석은 자손은 이 책을 잊지 말라.
※ 여기서 책은 역경(주역) ※ 공자의 제자들이 기록한 경전 : 대학, 중용, 맹자, 논어
공자가 직접 쓴 경전 : 시경, 서경, 역경(주역) -4서 3경-
*** 고대 지명이 大丘였는데, 丘字는 孔子의 이름이 丘이므로 조선시대 유교사상에 젖어 大邱로 지명을 고쳐 쓰고, 대구 서씨 족보 창간 당시 본관을 제정할 때, 몽어공(夢漁公:숙종 때 영의정) 서문중이 구(丘)는 공자의 이름이므로 자의로 사용할 수 없어 숙종에게 주청하자, 숙종은 경의 본가는 나라에 공신이 많으며 본관을 제정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니 구(丘)자를 변경하지 말고 그대로 사용하여도 좋다는 윤허를 내려 구(丘) 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
역사의 인물로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좌찬성,대제학, 彌性(미성)아들, 權近외손
*개화파 범무대신 서광범(徐光範) *의병장 서상렬, *독립운동가 서재필(徐載弼) 등이 있다.
고모산성 북쪽 벼랑 아래 숲에 가려서 볼 수 없었던 암봉이 예사롭지 않다(龍馬像?)....09:42:21
"신현리 하수종말 처리장"이 겨울이 되어서 속이 들여다 보이고 큐모가 무척 크다....09:45:29
* 지난날 故人이 된 친구가 고모산성 유적지 아래 하수처리장 설치는 불가하다고 강 건너편 골짜기에 설치하기 를 주민들과 한마음으로 반대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현 위치에 설치하였다...
중부내륙고속국도 아래를 통과하여 멀리 주흘산을 보면서 우측의 언덕 위 문경선 철로를 따라서 걷는다....09:48:08
옛날 영남대로였던 길가에 세월에 그을린 觀察使李相國景在永世不忘碑 (2020.07.30)는 옮겨지고,
진성이씨 노목공파 가족묘원이 납골당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09:50:06
표석 뒷면 : 20세 귀암 강달순. 학기 고숙희. 학용 김순자. 명기 21세 화순 홍범균. 해숙 홍정표.
22세 은준 조원영. 동식 조정숙. 유진 김성철. 유현 백훈철. 은주 이병헌. 남식 박재영.
춘애. 영옥 김영배. 광식
23세 대혁. 수지. 려원. 희지. 예지. 세빈. 승언. 승주.
백봉사가 길게 들어선 신현1리 골목길에 아침 햇살이 가득하고, 정적이 감돈다....09:54:54
마성면 신현1리 이장의 집에 문패가 붙어 있어 정겹게 느껴진다....09:57:16
내고향 신현1리 새원의 든든한 마을 표지석.
현수막 " 우리동네 ‘이해규(새사모회장)’ 집에 아기가 태어났어요." 새사모(새원을 사랑하는 모임)
옆에 작은 비석이 눈에 뛴다(觀察使李相國景在永世不忘碑 丁未 三月 日 新院 · 釘峴 立)
* 不忘碑 글씨는 묻혀있다. * 진성이씨 노목공파 가족묘원 옆에서 옮겨왔다.
* 상국(相國 : 조선 때 영의정·좌의정·우의정 총칭. 相臣)
신현교를 건너는데. 중장비와 츄레라가 따라서 들어와 난간쪽으로 붙어섰다.....10:20:05
총연장 120m 교폭 5m 하중 : 설계하중 DB24TON. 통과하중 43.2TON 공사기간 1996년1월5일~1996년8월20일
시행청 문경시청. 시공자 동진건설(주). 감독자 지방토목주사보 윤성구.
신현교 아래로 흐르는 조령천과 양쪽 강둑에 벚나무가 도열하여 봄이면 만개한 벚꽂 길로 유명하다.
또 고모산성이 앞에 누워있고, 어룡산이 높게 솟아 긴 능선에 눈이 쌓여 겨울 풍경을 보여준다....10:21:12
중부고속국도에 차량이 줄지어 다니고, 힘차게 솟은 주흘산의 모습이 감동을 준다...10:22:37
신현교를 건너서면 3개의 크고 작은 비석이 산객을 반긴다....10:26:19
"환경 친화 마을" 신현2리(정현). 金八鳳氏功績不忘碑 西紀 一九七二年 十二月 日 釘峴洞民一同 立. 주지봉→
주지봉 아래 양지바른 넉넉한 평지에 정현 마을이 겨울 날씨에도 봄같이 따뜻해 보인다...10:31:01
조령천 둑에 깨끗한 원두막 쉼터 아래 주민들의 보호를 받는 느티나무가 있다...10:31:14
우측의 이층과 단층 건물은 송어장 건물...
보호수
품격 군나무 고유번호:11-26-11 지정일자 1982.10.26. 수종및 수령 느티나무 300년
소재지 문경군 마성면 신현리 326
신현교를 꽉차게 지나가던 중장비와 츄레라가 벌목장에 도착하여 츄레라 기사가 차를 산에 올려 놓고,
걸어서 내려와 포크레인을 몰고 다시 올라간다....10:35:26
둑길이 막혀서 野草는 앞서서 내려가고, 돌망태기 비탈을 천천히 내려선다....10:37:01
좁은 境界堡(경계보)를 외나무 다리를 걷는 심정으로 균형을 잡으며 牛步가 앞서서 나아간다....10:39:49
물길이 조령천으로 내려가는 작은 水門을 빠져 나가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10:40:42
봉생마을로 연결된 봉득교(鳳得橋) 건너편에 바닥의 흙을 인부가 열심히 쓸고 있다... 10:41:37
사과 묘목이 빽빽하게 들판을 채우고 있어서, 봄이 오면 모두 새로운 농장으로 팔려간다....10:45:16
양지바른 봉생정에 올라 마루에 앉아서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고 간식을 들며 담소를 나눈다.
봉생정 현판 글씨의 원본은 "옛길박물관" 에 보관하고 재생 현판을 걸어 놓았다....11:10:25
* 봉생정 현판은 한말의 명필 해사 김성근의 글씨.
봉생정 입구에 안내판(좌)과 연혁(우) 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11:57:58
안내판(좌)
봉생정(鳳笙亭) 문경시 향토유적.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471-1
봉생정은 속리산과 대야산, 희양산 등지에서 발원한 가은천과 주흘산, 조령산, 대미산 등에서 발원한 조령천이 합수하는 용연(龍淵)에 위치한다. 독립적으로 구성된 야산의 정상부에 정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형적인 정자의 형태로 건립되었다. 주변에는 고모산성, 석현성, 토끼비리 등의 역사유적지가 산재하고, 건물은 사방의 낮은 담으로 둘러쳐 있으며 밖으로는 오죽과 소나무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봉생정은 선조 16년(1583)에 유성룡(柳成龍)선생께서 한양을 오갈 때 쉬어갔던 장리지소(杖履之所:지팡이 짚고 쉬는 곳)를 기리기 위하여 그의 문인 우복 정경세와 향유(鄕儒)들이 세웠는데 안타깝게도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말았다. 이후 순조 4년(1804) 서애 선생의 8대손인 병조판서(兵曹判書) 류상조(柳相祚)와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 각각 오십냥을, 25개 문중에서 각 두냥씩을 내어 중수하려다가 파당(罷堂)된 것을 헌종 10년(1844)에 여섯 문중에서 수계(修契)하여 옛 터에 복원하였다. 진성 이상행이 事跡記를 짓고 진사 이명호가 上樑文을 지었으며 봉생정 현판은 한말의 명필 해사 김성근의 글씨다. 최근에 2005년에 중수하여 일곱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2년에 한번 씩 취회(聚會)를 통해 봉생정 건립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丁酉年 八月 (2005년 8월)
*파당(罷堂 : 집을 그만두다).
연혁(우)
沿 革 (연혁: 변천하여 온 과정)
1583 癸未 宣廟 16 西厓先生 遺躅地로 起亭 1592 壬辰 宣廟 25 倭亂으로 燒失되다.
1804 甲子 純廟 04 復元을 爲해 修契하다 1836 丙申 憲廟 02 罷堂되다,
1844 甲辰 憲廟 10 六門中이 復元 旧趾하다 1990 郡守 黃仁星 郡費補助로 重修하다
1993 郡守 申庠撤 郡費補助로 重修하다 1999 市長 金學文 市費補助로 大補修하다
뒷면
鳳笙亭 重修推進委員會 顧問 李源榮 丁 湜 蔡瑃植 高台煥 張基煥 申錫厚 柳寧夏
委員長 申相憲 諮問役 李炳采 李在敎 申東澈 幹事 金啓漢
委員 姜鏞宇 申鉉和 金萬熙 鄕有司 申範湜 金志悅 門中有司
1999 辛己卯 2月 日
以上과 같이 委員會를 構成하고 都廳以下 任員 監理下에 全州 柳承逸이 施工하다
*신상철(申庠撤)郡守
봉생마을 길을 내려오며 밝은 기운이 가득한 마을 풍경에 明堂임을 느꼈다....12:00:05
솔잎낙엽(갈비)을 마대에 곽곽 채워서 수북히 쌓아 놓고 필요한 장소로 옮겨가려 한다....12:00:42
아름답고 채광이 좋은 비움(팬션)이 이용객을 기다린다....12:01:03
골목길의 추억 속의 길삼을 하는벽화를 보면서 樂山이 설명을 한다....12:01:51
晃儋窯(밝을황, 항아리담, 가마요) 글로벌 한국도예명장 문경시 도자기명장(황백원님)...12:03:35
"황백원 건강 / 비움과 채움 " "오혜숙생활단식/ 다이어트/ 차와 도자기"
봉생마을 봉황샘 소원쉼터의 유래 ....12:04:47
500여 년 동안 주민들의 목을 축였던 우물과 400여 년 이를 지켜온 향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대변한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마을이 생길 무렵부터 있었다는 봉생샘은 지금도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석간수를 뿜어내고 있다. 특히 봉생마을은 봉황이 둥지를 틀고 있는 마을로서 대나무숲 바위 밑 공간에서 봉황 세 마리가 날아올랐다고 하여(鳳笙) 이라 이름 붙여졌다. 2017년 마을 숙원사업으로 우물을 정비하여 「봉생마을 봉생샘 소원 쉼터」로 새롭게 복원하였다.
전통음식체험관 모심정의 모습 .....12:05:25
봉황 다시 날다 - 봉생 마을 화려한 안내도....12:08:24
봉생정, 봉생샘, 고모산성, 봉생 문화복지관, 봉생안심길, 백운사, 전통자기황담요, 전통음식모심정...12:08:29
팬션 강이 있는 풍경... 밝은 주황색 톤의 지붕과 하얀 벽이 편안함을 준다....12:10:18
진남휴게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들고, 담소를 나누며 여유있게 귀가하는 모습...13:10:21
첫댓글 때늦은 2次 立春寒波가 氣勝이다.性急한 버들개지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連日 零下 九度를 記錄하고 있으니 山行이 조심스럽다.鎭南休憩所에 駐車하고 石峴城으로 가는 길은 多幸스럽게도 바람에 떠밀려 간다.五味子테마공원은 空室이라 허전한데 村老는 비질에 餘念없다.薄石鋪裝路를 따라 오르는 길은 薄石鋪裝 틈에 잔 돌로 틈새를 메워주면 步行이 편할텐데 當局은 觀心이 없다.石峴城에 걸린 鎭南門 懸板을 대하니 불현 듯 深耕先生이 생각난다.아까운 선비를 너무 쉽게 잃었다.城隍堂은 荒涼하지만 그래도 新峴 住民들의 보살핌으로 恒常 淸潔하다.이곳에서 眺望되는 主屹山은 가히 聞慶一景으로 遜色없는데 碑石이 가로막아 祕境을 망친 기분이다.名門의 所重한 碑石이라면 側面으로 할량해도 좋으련만... 北西强風이 너무 강하여 아랫길을 통하여 新峴里로 들었지만 麻城 第一洞은 沈默과 고요와 靜寂뿐인데 白鳳寺만 寺勢가 날로 繁昌하고 있다.洞口밖 園頭幕에 休息하나 强風을 피할 수 없어서 移席하는데 出生祝賀 懸垂幕이 눈길을 끈다.昭野川 건너 고즈넉한 旌顯마을 堤坊따라 下向하는데 伐採木 運搬 車輛이 威脅的이다.鳳笙亭은 淸潔하고 四方 絶景地가 눈길을 끈다.몇해전 대진대 교수 가족과 조우했던 기억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