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책을 읽고 글을 쓰지 못해서, 쓰고 있었던 글 중 일부분을 가져오게 되었다. (앞, 뒤가 많이 짤려서 흐름이 잘 이해가 안가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살아가는 줄 알았다. 하나님의 뜻대로 누구보다 잘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고, 잘 나아가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점점 교만해져다. 남을 정죄하고 내가 맞다고 생각했다. 바르게 살아가지 못하는 크리스천들을 보고 기도하는 것이 아닌, 저들은 왜 저렇게 살아갈까 비판했다. 이 모습은 더욱 커져만 갔다. 마치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온전한 순종은커녕, 애초에 불순종의 길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내 안에서 더 큰 우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의 욕구와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남을 정죄하고 나 자신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하기 시작했다. 내가 맞을 거라고,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님의 뜻일 거라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지만, 마음은 우상을 사랑하고 있었다. 거짓의 길에 빠지고, 결국 많은 사람에게 상처 또한 남겨버렸다. 마음에 원하는 것이 생기면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 먼저 묻고 구하는 나였지만, 우상이 너무나 커져 버린 탓에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었다. 주변에서도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같다고, 잘 분별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저 나의 마음에 더욱 초점을 맞출 뿐이었다. 이런 삶이 지속되었고, 심지어 몇 개월간 마음이 불편했지만, 꿋꿋이 우상을 사랑했다. 매일 아침 성경을 읽고, 묵상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고, 잘 들리지 않았다. 당연히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 귀에 들리겠는가. 하나님은 무너진 나의 모습에, 우상에게 마음을 돌린 나의 모습에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라고, 다시 돌이키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결국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 후, 그리고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긴 후 무너지고 말았다. 이 무너짐은 나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에,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잘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더욱 나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나를 믿던 많은 사람의 신뢰 또한 깨트렸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참 어리석게도 그렇게 무너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우상을 놓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 우상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한다는 마음이 끊임없이 갈등했다. 옳은 길이 눈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돌이키지 못했다. 결국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정말 몇 십분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우상을 사랑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교만했던 마음을 천천히 회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니 눈물만 끊임없이 났다. 나의 진실된 마음을 하나하나 고백하고 나니 마음은 점차 편안해졌고, 눈물은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온전한 순종 또한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하나님은 정말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그 날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회복과 치유를 허락하시고, 죄에서 돌이킨 나 조차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다. 그 후 순종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셨다. 끝까지 내 마음은 갈등으로 인해 요동쳤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게 하셨다.
순종 또한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내 뜻과 마음을 내려놓는 것 또한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순종하는 부분에서도 자신의 힘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모세를 보며 알 수 있다.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했고, 갈수록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지자 두려움을 느낀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다. 노예로 삼아 노역을 시키고, 학대를 받았지만 갈수록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점점 늘어갔다. 결국 바로는 히브리인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태어났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필사적으로 모세를 숨겼고, 모세가 점점 크면서 숨기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역청과 나뭇진을 칠한 갈대 상자에 모세를 넣어 나일강에 띄워 보냈다. 목욕하러 나온 바로의 공주가 갈대 상자를 발견하게 되면서 모세는 왕궁에서 자라게 된다. 이 상황을 지켜봤던 모세의 누나가 아이의 젖을 먹일 유모로 어머니 요게벳을 소개해 주었고, 그렇게 모세는 40년간 왕궁에서 살아간다. 어느 날, 모세가 장성한 후 자기 민족 히브리 사람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보며 화가 난 모세는 그를 죽이게 되었다. 이 사실을 잘 감췄지만, 다음 날 탄로가 나게 되었고 결국 바로는 모세를 찾아서 죽이려 한다. 모세는 바로의 눈을 피해서 미디안으로 도망쳤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은 같은 민족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은 모세 자신의 힘이었다.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렇게 미디안 광야로 도망간 모세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40년간 훈련 시키셨다. 이 시기에 모세는 겸손을 배우게 되었고, 애굽 사람을 죽였던 자신만만한 모세가 아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결국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 낸 지도자가 되었다. 모세가 처음 자신의 힘으로 했을 때는 그저 도망자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순종의 자리로 이끄셨을 때 그는 자기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 수 있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보면, 순종 또한 하나님의 이끄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해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 3:11-12)
모세를 부르시고, 순종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했지만,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간 모세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다. 순종 또한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자리로 이끄신다.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길 바란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솔직하게 하나님께 털어놓으며 도우심을 구하길 바란다.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었고, 어떤 것을 택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굉장히 자책했다. 끝까지 내 힘으로 하려고 하는 바람에 나의 몸과 마음만 더욱 힘들어질 뿐이었다. 결국 부서지고 상처난 내 마음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다.
"하나님, 도저히 순종할 수 없어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겠어요. 이 시간, 다시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 주세요. 나를 가장 완전한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해 주세요."
기도를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기도가 나오지 않아서 눈물만 펑펑 흘릴 뿐이었다. 그날,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말씀을 주셨다. 또다시 불순종의 길로 빠질까 봐, 착각하며 살아갈까 봐 두려운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나의 힘을 모두 빼고, 솔직한 나의 마음을 털어놓은 후 하나님은 나를 일으키셨다.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했던 나를, 순종의 자리로 이끌어주셨다. 기도할 때 신기한 것을 느꼈다. 정말 펑펑 울면서 기도했는데, 내 마음이 찢기는 그런 느낌이 들면서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무릎을 꿇게 되었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었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순종한 뒤 나의 삶 또한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다.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하심을 느낀다. 죄에 대해 마땅히 징계하시지만, 하나님은 그 순간 회복 또한 준비하신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 죄로 무너진 나의 삶을 회복시킬 것을 믿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40년간 광야 생활을 할 때에 그들은 온갖 불평, 불만과 우상숭배를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세우시고, 회복시키신다. 순종하기 어렵다면,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길 기도한다. 기도가 되지 않고, 말씀이 읽혀지지 않는다면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길 바란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당신을 회복시키실 것이고, 다시 일으키실 것이다. 그런데, 참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연약한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매일 죄로 인해 무너지는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 답은 말씀에 있었다.
그들이 울며 돌아오리니 나의 인도함을 받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넘어지지 아니하고 물 있는 계곡의 곧은 길로 가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렘 31:9)
이스라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지금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를 씻어주셨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 되신다.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나를 사랑하시고, 죄로 인해 매일 무너지는 나를 일으키시는 이유는, 바로 나의 아버지 되시기 때문이다.
지난 잘못을 눈물로 뉘우치며 간구하는 그들을 인도하시되 넘어지지 않도록 평탄한 길로, 목마르지 않도록 시냇가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낮아지고 약해지고 멀어져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찾아내고 돌보십니다. 우리의 어긋난 마음을 바로 잡으시고, 무너진 삶을 일으키시며, 억울한 사정을 신원해주십니다.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20240708, 44p.)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서 자책하며 숨어버렸다.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지만, 기도할 때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 되셔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아오라고 말씀하신다. 어긋난 마음을 바로잡아주셨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으키셨다. 나의 잘못을 바로잡으시며,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해 주셨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마치 걸음마를 연습하는 아기와 같았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여 결국 부모의 품에 안기는 아기와 같았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결국 순종의 자에 나아갔다. 내 힘으로 했다면 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니 하나씩 해결되고 있었다. 그렇게 죄로부터 한 걸음 멀어지며,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걸음마를 연습하는 아기와 같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순종의 자리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비록 넘어져서 눈물을 흘리고, 어떨 땐 상처가 나기도 하지만,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길 소망한다. 그렇게 순종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