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 보도·연재(報道·連載) > 세이쿄(聖敎)뉴스 > 기사(記事)]
〈제8회 본부간부회·제2회 청년부간부회〉 활동체험
2022년 3월 13일
남자부 지바(千葉)미도리영광구(緑榮光区)
이나가키 유우(稲垣優, 구남자부서기장) 씨
스승과 동지의 격려를 버팀목으로 악성 뇌종양 극복
一, 제가 고난(苦難)의 폭풍우에 휩싸인 것은 아내와 결혼한 직후인 2015년 6월의 일이었습니다. 이발소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어, 병원에 긴급 이송되어, 뇌에 종양이 있다고 판명. 의사는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도, 언어나 기억의 장애가 남을 확률은 90%이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절망의 늪에 빠진 저를 구해 준 것은 창가반(創價班) 선배로, 이전부터 저에게도 가족에게도 계속해 격려를 보내주신 장년부(壯年部) 본부장(=지역장)이었습니다. 병이 판명된 직후의 회합(會合). 내 옆에서 혼신의 지휘를 하는 본부장의 눈에는 눈물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절대로 병마(病魔)를 타고 넘길 바란다!”라는 마음을 느껴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와 어둠에 덮여있던 제 마음에 한 줄기 광명이 비쳤던 일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초엔 제목(題目)을 부르면서도 오열(嗚咽)을 참기 힘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승 이케다(池田) 선생님으로부터의 전언(傳言)이나, 동지로부터 전해진 색지(롤링 페이퍼)에 헤아릴 수 없는 용기를 받아, “반드시 병마를 이겨 보이겠다.”라는 일념(一念)으로 기원하는 가운데,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입회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박수)
一, 맞이한 수술은 성공했지만, 수술 후, 병세(病勢)가 나빠져, 끙끙 앓는 소리(신음)만 나올 뿐 대화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제거한 악성종양이 주위에 퍼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며 다시 개두(開頭) 수술을 제안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저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히라가나로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선명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소중한 존재를 잊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행동을 ‘회복의 조짐’이라고 느끼신 어머니가 제게 사진을 보여주며 물으셨습니다. “누군지 아니?” 자애로운 스승의 모습을 본 저는 자연스럽게 “이케다 선생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생명의 깊은 곳에 새겨져 있던 사제(師弟)의 맹세가 소생(蘇生)하는 힘을 주었던 걸까요? 이 날을 경계(境界)로 점차 몸 상태는 차도(差度)를 보여, 수술 후 10일째에는 퇴원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
하지만 이후에도 항암제 치료를 받으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듣는 등 혹독한 시련(試鍊)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제 스스로도 놀랄 만큼 불안하지 않고 평온한 심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병과 맞서온 경험으로 어떠한 고난(苦難)이 있어도 절대로 신심(信心)으로 타고 넘을 수 있다. “훌륭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라!” - 제 가슴에는 이케다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말이 울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복귀한 일에도, 학회활동(學會活動)에도 전력(全力)으로 도전(挑戰). 수술 후, 민머리가 된 저를 따뜻하게 맞아 준 동지와 함께, 확대(擴大)에, 격려(激勵)에 분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로부터 뜻밖의 말이 있었습니다. 병의 진행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는 필요 없다.” “방심할 수 없지만 정기적인 검사로 괜찮다.”라고 전해진 것입니다.
그 후에도 병마를 억제(抑制)하는 투쟁은 계속 되었지만, 재발(再發)하지 않고, 염원하던 결혼식을 올리고 대망(大望)인 장녀도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5년의 투병을 거친 재작년의 겨울, 드디어 관해(寬解)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
一, 저는 지금, 병으로 고생한 만큼, 이 순간에 살아있다는 기쁨을 마음속 깊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당연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보은감사(報恩感謝)의 마음을 불태워 광포에 꿋꿋이 달려 ‘훌륭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가겠습니다.
여성부 아이치(愛知) 나고야이케다총현(名古屋池田總県)
야스에 다에코(安江多恵子) 씨
곤란(困難)을 발판으로 브랜드를 설립
一, 저는 학회(學會) 3세로 아이치(愛知), 나고야(名古屋)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장래, 무엇을 목표로 할까 고민하고 있던 22살 때, 시험삼아 모델 사무소의 오디션에 응모. 뜻하지 않게 사무소의 메인 모델로 선택되었습니다.
충실한 나날이었지만, 신인 아이가 들어오자 점차 일이 감소해,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간 지 4년째 되던 어느 날 사장님께 말을 들었습니다. “모델은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이 좋겠다.” 저는 충격을 받는 동시에 어째서 노력을 몰라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렵, 어머니의 권유로 좌담회(座談會)에 참석. 저를 잘 아는 신심(信心) 선배에게 상황을 이야기하자, “다에 씨는 감사의 마음이 부족할지도 몰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의미를 몰랐지만, 점차 모든 결과를 환경 탓으로 돌려온 제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고민이 있을 때야말로, 제목(題目)이야.”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 ‘우선 내 자신이 바뀌자’며 진지한 창제(唱題)에 도전. 작은 인연도 소중히 하며 일에 임하자, 전기(轉機)가 찾아왔습니다. 유명한 액세서리 회사의 디자이너와 일할 기회가 생겨 “다혜라면 무조건 팔릴 수 있어”라며 프리랜서 모델의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모델의 가능성을 부정당한 저에게 든든한 한마디였습니다. 저는 결심을 하고 ‘TAE(타에)’라는 이름으로 독립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一, 그 무렵 근행(勤行)·창제(唱題)는 실천하고 있었지만 학회활동(學會活動)에는 소극적이었습니다. ‘활동할 시간이 있으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배의 권유로 당시의 여자부(女子部)의 모임에 가자, 거기에는 성격이나 일도 다양한 멤버들의 모습이. 모두 저와 같은 갈등을 겪으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선배로부터 듣는 이케다(池田) 선생님에 대한 것, 불법(佛法)에 대한 것 등이 신선(新鮮)해, ‘더 신심(信心)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하면 돌진하는 성격인 저는, 이후, 적극적으로 회합(會合)에 참석. 선생님의 지침도 많이 배워 ‘취미는 학회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을 쏟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처음으로 친구에게 홍교(弘敎)의 결실을 맺을 수도 있었습니다. (박수)
무엇보다, 활동에 힘쓰면 힘쓸수록, ‘모두를 위해 힘을 내고(노력하고) 싶다’라는 용기가 생겨, 그때까지 ‘어떻게 하면 팔릴까’뿐이었던 자기중심의 생각으로부터 시야가 넓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일과 활동의 양립에 힘쓰는 가운데, SNS 상에서 모델로서의 지명도(知名度)가 서서히 향상. 패션잡지의 공식 인플루언서(influencer,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 발탁(拔擢)되는 등, 사회에서 실증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박수)
一, 순조롭다고 생각하자마자 코로나 재난이라는 시련이 닥쳤습니다. 잡지의 촬영이나 이벤트가 모두 중지. 게다가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져 입원했습니다. 퇴원할 수 있었지만, 자택요양을 해야 하는 어머니의 컨디션을 생각하면, 밖에서 일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저는 ‘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있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창제근본(唱題根本)으로 지혜를 솟게 해 ‘집에서 패션을 발신하자’라며 집의 방 하나에 스튜디오를 만들 것을 결단. 개장(改装)한 후에는 촬영·편집을 직접 실시하며 코디한 패션을 SNS로 적극적으로 발신했습니다. 그러자 몇 달 후, 대기업 패션 회사의 담당자가 “함께 브랜드를 런칭하지 않겠습니까?”라고 권해 주었습니다.
뜻밖의 제안에 신심(信心)의 공덕(功德)을 실감. 그리고 지난해 봄에,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박수) 현재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찾아왔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창가가족의 존재와 사랑하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제목(題目)의 힘 덕분입니다. 어머니도 점차 좋아지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케다 선생님의 “고생(苦生)은 힘이 된다. /고민(苦悶)은 지혜(智慧)가 된다. / 슬픔은 상냥함이 된다. / 가장 괴로워한 사람이 /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라는 격려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목(題目)을 부르면 절대로 지지 않는 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벗을 위해 행동했을 때, 자신도 크게 성장할 수 있다.”라고.
앞으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갈고 닦아, 우인이나 직장의 동료에게 대화를 펼치며 격려와 용기를 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사명(使命)의 무대에서 빛나 가겠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멋진체험담이네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