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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야스 1
배장로를 제외한 네
사람의 술잔이 똥파리처럼 여러차례 테이블 위를 날아다니고 배장로는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다. 배장로는 자신의 말처럼 전혀 반찬에 손도 대지
않았다. 김치와 밥. 오로지 김치와 밥만 먹었다. 술잔을 돌리던 최사장이 곱잖은 시선으로 배장로를 쳐다봤다. 사실 이런 경우 자리가 어색해
진다. 그러나 아무도 불편해 하는 기색은 없었다.
몇 차례 술잔이 더
순례한 후.
취기가 오른 최사장이
술잔을 배장로 앞에 불쑥 내밀며 말했다.
“나으 큰스님이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허상이요, 마음으로 보는 거이 현상이라 설법하셨는디, 요거 술 아닌께 한잔 받으시오.”
최사장이 내민 술잔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배장로가 다급하게 말했다.
“최사장님 저는 반찬
안 먹는다 했잖습니까?”
최사장이 밥상위의
진짜 반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으메, 이거는
반찬이 아니고 숭늉이어라. 반찬은 안 먹어도 숭늉은 마셔야 할 것이오. 맨밥에 목메잉께.”
최사장이 가득 뜬
밥숟갈을 입으로 가져가는 배장로에게 술잔을 재차 내밀었다. 배장로가 숟갈의 밥을 입에 물고 말했다.
“전 술 진짜 못
마십니다.”
“우리 큰스님 말씀이
눈에 보이는 건 다 허상이라 안합디요? 장로님이 지금 먹는 거이 술이고 요거는 숭늉인디. 어찌 마음으로 보지를 몬하요?”
“함께 어울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배장로가 한사코
최사장의 권주를 사양하자 차츰 표정이 바뀐 최사장이 마침내 시무룩해졌다. 최사장은, 언짢은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요상하게 두 뺨이 부풀어
오른다. 그 모습이 때론 두꺼비 같아 최사장을 두겹사장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최사장의 기분이
틀어지면 가장 민감해 지는 것이 제비다. 한두 번 아니다. 최사장의 심기가 돌변해서, 온다 간다 말없이 사라지는 경우 말이다. 그런 돌발사태가
벌어지면 설거지는 당연히 제비가 하는 것이 관례였다.
최사장의 양 볼이
반쯤 부풀기 시작하자 제비가 조심스럽게 배장로에게 눈짓을 했으나 배장로는 제비의 사인을 확인하지 않았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사랑은
눈이 마주쳐야 시작되는 건데, 배장로에게 아무리 사인을 보내도 그저 묵묵히 밥만 먹고 있는 배장로. 생김새만큼 눈치가 없는 것인지 신경이 무뎌
관심이 없는 것인지. 제비의 속이 타들어 갔다.
“우리 부처님이
친구따라 강남가라 캤소. 독 아닌께 딱 한잔만 받으시오.”
배장로가 몹시 난처한
표정으로 잘라 말했다.
“괜찮습니다.”
최사장. 배장로의
단언에 심기가 틀어지는 1단계에 돌입했다. 그 증거는 곧바로 최사장의 행동에서 나타났다.
최사장이 배장로에게
내밀었던 술잔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예수님 말씀에
이것은 나의 살이고 피니라. 글고, 니 이웃이 원하걸랑 있는 거 다 주라했는디. 장로님은 교리에만 얽매여 사는 옹졸한 사람인 줄 몰랐소. 설령
내가 싫어도 이웃이 원하면 한잔 쯤 마셔 주는 거이 기독교 희생정신인줄 알았는디. 서운하요.”
최사장은 머쓱해진
손을 회수해서 단숨에 원샷했다. 그리고 배장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허지만 미안해하긴
하면서도 배장로의 태도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갑자기 팽팽해진 분위기에 긴장한 제비와 쁘리쌰 진회장의 눈빛이 LED만큼 빤짝
거렸다.
숙연한 분위기였다.
물론 숙연하다해도
각자의 생각이 빚어내는 느낌은 모두 다를 것이다. 만약 여기서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면.
제비는 설거지가
문제이고, 쁘리쌰는 취소될 2차가 아쉽고,진회장은 최사장의 차에 편승하지 못하고 지하철을 타야 하는 것이 불안했다.
최사장과 진회장은
한동네에 산다. 서로 격은 다르지만 독신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내통한 최사장의 권유로 한동네 주민이 된 것이다. 최사장의 동네로 이사한지 이제
1년 정도 됐다. 그러니까 올인의 나이하고 비슷하다.
매일 편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어려운 환경에 부닥치면 극단의 행동을 구상할 수도 있다. 진회장의 구상이 여러갈래로 나뉘어 골치 아프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최사장의 저녁자리는
2차가 분명 할테고 2차에 편승하면 오늘은 기필코 제비에게 하고 싶은 고백을 다 하리라 마음먹은 쁘리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위기에 한숨이 절로 나올 것 같다.
또?
열 눈 뜨고 한 도둑
못 지킨다는 말처럼 사태가 불안해지면 두 눈과 신경에 계엄을 선포해도 번번이 최사장을 놓친 제비는 그래서 불안했다.
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제비는 최사장의 본심을 알기에 오늘만은 절반의 안심상태였다.
왜냐면?
매사를 직선적이고
긍정적이며 경량으로 생각하는 최사장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사장이 배장로에게 권주를 내밀었지만, 칼날처럼 거절당해서
최사장이 서운해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아는 제비는 두 사람의 대화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누구보다 최사장을 잘
알기에 가능한 여유였다.
겉으로는 배장로를
골려 주는 것 같지만 그 속마음은 배장로를 존경하고 속없이 친해 보고 싶은 최사장이란 것을 제비는 정확히 알았던 것이다.
최사장이 남은 말을
했다.
“미안하요. 예수
믿는 친구하나 만들어 뿔라캤는디. 서운하게 생각마시오. 허지만 본인은 돌아서면 다 잊어뿡께.”
첫댓글 부처님은 술마시고 예수님은 술못하제
최사장과 배장로 이김질 할만 하요..
ㅎ
교회나간다고 꼭 술 못마시고 절에 나간다고 진짜 술 마셔도 되나요?
전 안그런데요...ㅎ
오늘도 좋은날되시고 행복하세요
연제 소설 잘보앗슴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믿음의 맞대결 스님과 장로
그친구들 잘만났네요..
일찍 일어나셨군요. 멋진 주말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