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호 기자 :
우리나라의 연예산업은 이미 벤처산업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소속 가수의 앨범이 히트하기라도 하면 기획사는 금새 돈방석에
앉게 됩니다. 문제는 소속 연예인이 스타가 됐을 때 불거져 나옵니다. 재주는 곰이 넘지만 스타들은 실제 속 빈 강정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연예인들 사이에서 노예문서라고 불리는 전속계약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일본 연예인의 월급제도를 현지에서
취재했습니다.
영상취재 김상진 / 영상편집 함상호 / AD 이재연
인기그룹 H·O·T의 멤버 다섯 명 중 장우혁, 이재원, 토니 안 등 세 명은 최근 소속 기획사와 5년 간의 전속계약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13일, 세 명의 멤버는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를 떠나 예전미디어와 새롭게 전속계약을
맺었습니다. H·O·T의 해체를 우려하는 팬들의 항의는 대단했습니다. H·O·T가 다른 기획사로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SM측은 홍보 담당자를 통해 탈퇴멤버 3명과 재계약 협상을 그동안 꾸준히 진행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 홍현종 / SM 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 :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드리긴 곤란하지만 저희가 최종적으로 세 멤버들한테 제시한 내용이 현재 예전미디어와 세 멤버가 계약되어
있는 조건보다 상향된 조건입니다.
- 더 좋은 조건이었단 말씀이죠? 근데 왜 예전미디어로...
그건 모르겠습니다.
서울 마포에 있는 예전미디어입니다. H·O·T 세 멤버와의 계약 내용을 묻자 예전 측은 앨범 두 장을 내는 조건으로 총
계약금 10억 원에 인세 25%를 주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계약금이 30억에 달할 거라는 항간의 소문과는 달랐습니다.
그동안 언론의 접촉을 꺼려온 H·O·T 멤버들은 2580의 인터뷰 요청에 비로소 입을 열었습니다.
⊙ 토니 안 :
1월 29일날 그 날 SM 대표자분께서 저희에게 오셔서 "H·O·T는 오늘 이후로 해체를 할 것이니 각자의 길을 가도록
합시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충격도 많이 받았고 마음이 떠날 수밖에 없었죠.
- (SM측과의) 계약 조건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 이재원 :
대부분의 멤버들이 (앨범 한 장당) 20원인 걸로 알고 있구요. 사실이고...
⊙ 장우혁 :
정확히 얘기하자면 토니만 빼고 네 명은 맞고요.
⊙ 토니 안 :
평균적으로 100만장을 팔았을 때 평균적으로 보니까 32원 정도...
계약금이나 인세보다는 기획사와의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H·O·T는 말합니다.
⊙ 장우혁 :
동등한 위치에서 같이 도움도 주고 힘들 땐 위로도 주고 그런 관계 있잖아요. 10년, 20년, 30년 가서 같이 그렇게
소속사도 커가고 가수도 같이 끝까지 같이 가주는 그런 형태가 제일 좋죠.
지난 98년 예당음향 소속으로 1집 음반을 냈던 한스밴드, 중학생의 해맑은 모습으로 데뷔 직후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무리한 일정 탓에 쌓인 피로와 생활고를 호소하며 전속 1년 만에 계약해지를 요구했습니다.
⊙ 김한나 / 한스밴드 :
방송 쫓아다니고 행사 쫓아다니고 그러느라고 쉴 시간도 없구요. 계속 피곤한 게 쌓이니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래서 좀
그런 게 힘들었구요.
⊙ 김칠준 / 변호사 :
당시 한스밴드가 모든 나이 어린 청소년이자 학생이었는데 전속계약에 의해서 기획사가 아이들의 일과, 일체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게 됨으로써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를 못하고 같이 또래 아이들과 같이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릴 수 없는 그런
시스템이 돼 버렸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소속 기획사는 한스밴드가 나머지 계약기간 4년 동안 일체의 방송 연예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신청했습니다.
재판부는 전속 계약보다 한스밴드의 학습권이 우선한다고 판시했고, 한스밴드는 2년 만에 학교로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서울
마포의 한 지하 연습실입니다. 오후 5시가 넘자 수업을 마친 한스밴드 자매가 속속 연습실로 모여듭니다. 법원이 정한
연예활동 금지 시한이 이번 달로 종료되면 다음 달쯤 새 앨범을 낼 작정입니다. 갈채와 환호 속에 첫발을 내딛은 한스밴드,
그러나 이들이 곧바로 마주친 것은 연예계의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 김한별 / 한스밴드 :
저희를요, 상품 보듯이 그렇게 하지 않구요. 저희와 함께 상의하고 의견 같은 거 물어보면서 같이 상의하면서 하나가 돼서
같이 모든 걸 다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연예계의 계약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일반인을 연예인 지망생으로 꾸며서 실제로 투입해 봤습니다. 기획사들의 달콤한 유혹이
시작됩니다.
⊙ A 기획사 간부 :
감독님이랑 어느 정도 (일을) 하다보면 감독님이 일일이 바쁘고 그러니까 캐스팅 하는 것보다 우리한테 아예 맡겨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거의 우리가 맞춰서 캐스팅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기획사가 제시한 계약기간은 5년, 다른 기획사들의 경우도 5년이 보통이고 계약내용도 연예인에게 매우 불리했습니다.
- 수입에 관한 부분은?
⊙ B 기획사 간부 :
그거는 좀 민감한 부분인데 기획사마다 다르고 7:3 정도로 알고 있다.
- 7:3이라면 기획사가 7, 제가 3?
네, 그렇게 되는 거죠.
가수가 전속계약을 맺을 경우 노래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기획사가 노래에 대한 절대적 권리를 갖고
가수는 몇 푼의 인세만을 챙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 이은미 / 가수 :
아마 노비문서라는 말이 거의 그러한 얘기랑 흡사할 거예요. 가수는 권리가 없어요. 그래서 그 음반의 판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요즘에 많이 나오죠. 그런 음반들... 편집음반들 많이 나오잖아요. 아무데나 갖다가 그 가수의 이름을 넣어서 그
가수의 곡을 집어넣어도 법적인 제재를 할 수가 없어요.
특히 나이 어린 연예인들은 불평등 계약의 주요 대상입니다. 한 중소기획사는 청소년 스타와 10년 계약을 맺었다가 문제가
되자 CF수익을 기획사가 챙기는 조건으로 서둘러 계약을 해지해 주기로 했습니다.
⊙ 기획사 사장 :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게 최소한 고등학교나 대학교 가야 올릴 수 있는데, 그래서 협의해서 십 년 동안 했던 것이지.
실질적으로 비즈니스 상으로 연기자 쪽이 메리트가 없어요.
2580을 찾은 현직 매니저들은 장기계약은 불리한 입장의 연예인들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관행이라고 털어놨습니다.
⊙ 현직 매니저 :
아역 탤런트하고 십 년 계약을 한다거나 그 계약서를 가지고 노비문서 형식으로 이런 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니까 계약서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죠.
이른바 노예계약이 일부에 국한된 일이고 전속계약의 피해자는 오히려 기획사 측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부 스타급
연예인의 경우 소속기획사를 옮겨가며 몸값 올이기에 여념이 없고 스타가 요구하는 각종 부대비용을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성공가능성이 낮은 연예산업의 특성도 전속계약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요소란
지적입니다. 한 중견기획사 소속의 4인조 댄스그룹입니다. 국내 인기를 토대로 중국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는 이 그룹이 4집
앨범을 내는데 소요된 돈은 어림잡아 3억 원, 홍보를 위해 TV쇼라도 출연하려면 회당 수백 만 원의 추가경비가 들어갑니다.
⊙ 박계은 / 뮤직 빅토리 실장 :
의상제작비하고 액세서리, 그 다음에 댄서들 페이를 저희가 지급해야 되고 댄서들이 입는 의상도 저희가 제작을 하고 코디네이터
월급이며 기름 값, 식대... 그건 기본이죠.
- 결국 한 3∼40백 들겠네요.
평균 그 정도 드는 것 같아요.
⊙ 엄용섭 / 한국 연예제작협회 회장 :
260개 제작자들 중에서 그런 대로 유지해 나가는 게 50개 정도가 유지해 나가고 나머지는 다 지금 어려운 상태입니다.
우리 연예시장보다 몇 년 앞서 있다는 일본의 경우도 지난 80년대까지 연예인과 소속사간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연예계는 연예인 월급제라는 특유의 스타시스템을 정착시키면서 안정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2580은 우선
투명한 기업경영의 토대 위에 연예인 월급제를 완성시킨 일본의 대표적인 기획사를 찾았습니다. 이 회사는 23년 전 발굴한
써던 올스타즈 등 일본 최고의 그룹과 배우, DJ 등 100여 명의 스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매년
있는 임금협상을 거쳐 결정된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 오오사토 오키치 :
확실하게 숫자가 나옵니다. 레코드는 얼마가 팔렸다, 콘서트를 통해 어느 정도 수익이 있었다, 머천다이징(스타관련상품)은
얼마정도 매상이 올랐는지 모두 컴퓨터를 통해 숫자로 나온다. 그것을 바탕으로 아뮤즈는 이만큼 이 필요하고, 당신은 이
정도로 괜찮은지 공정하게 정한다.
공정한 수익배분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수익과 비용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몇 백엔 짜리
제작비 영수증 등 각종 세무자료를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 이건 고속도로비, 통행료, 택시비, 고속도로 통행료...
이 회사 소속 R&B 그룹인 블리즈입니다. 인기 차트 정상급의 그룹인 이들도 매월 일정 급여를 받고 노래합니다.
⊙ 키이치 / 블리즈 멤버 :
우리는 음악을 열심히 할 테니까 나머지는 (기획사에) 부탁한다. 사사로운 것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 큐 / 블리즈 멤버 :
안심이 되죠. (월급은) 항상 일을 하는 만큼의 생활비라고 할까, 일정한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부분이 안심이 됩니다.
사상 첫 번째 한·일 공동제작 작품으로 관심을 모았던 영화 '순애보', 여주인공을 맡은 다치바나 미사토양은 대형기획사 대신
중소기획사에 소속돼 있지만 역시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 다치바나 미사토 / 일본 영화배우 :
같이 의논하면서 같이 만들어 나가는 즐거움이 있다고 할까요. 뭔지 모를 불안감은 있지만 뭔가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라무라 / 존-월드사 사장 :
1년 동안 이런 형식으로 활동하겠다는 것에 대한 계약을 하자고 해서 1년 후에 갱신할 때는 서로 대화를 해서 서로 계약이
가능한지 개선할 점이 없는지를 의논합니다.
우리 연예계가 공정한 전속계약을 맺지 못하는 데는 기획사와 대중매체가 떠받치고 있는 기형적인 스타시스템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경찰은 최근 자식을 가수로 키우려고 수억 원을 뿌렸다는 한 기업인의 진술을 받았습니다.
⊙ 강승수 / 서울 경찰청 사이버 범죄 수사대장 :
실제 본인 말에 의하면은 방송사 관계자들한테 수많은 돈을 상납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말을 했고, 소위 말하면 살생부를 갖고
있다라는 말까지 했고.
⊙ 최정환 / 연예전문 변호사 :
아직까지 우리 연예산업이 어떤 신인가수나 신인연기자의 재능에 의존하기보다는 매니저나 또는 프로듀서의 어떤 영향력,
연예계에서의 실력에 많이 의존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체결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 밤에 지고 마는 별똥별처럼 짧은 생을 마감하는 수많은 스타들, 연예산업의 한탕주의 풍토 속에서 이들은 이내 멍들고
있고 일그러진 스타시스템은 오늘도 일회용 패스트푸드 스타를 내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