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맡은 후 이왕에 맡은 업무이니 열심히 해보자고 몇 번 국토관리청으로 국장을 찾고 과장을 찾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고 가끔 일의 성과를 물어보는 사장은 처음에 일을 맡길 때는 최상무가 포기한 어려운 일이니 최선을 다해보라고 하고는 이제 입찰일이 가까워지니까 일을 맡길 때와는 달리 은연중 능력이 없는 임원으로 취급하려고 한다.
그때 사장에게서 말을 듣더라도 일을 인계받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그러나 지금은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생각다 못한 기철은 다시 담당과장을 일과 후 술집으로 불러냈다.
친분 관계로 불려나 온 과장에게 기철이
“과장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이러다가는 회사에서 능력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목이 잘리게 생겼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한다.
“내가 박상무의 입장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내 입장도 딱하게 생겼어요. 나도 이번 00도로 건설공사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입장이고 혹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라도 찾아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누구를 도와주고 누구를 안 도와줄 수도 없어요. 공사비가 워낙 크다 보니 시공사 간 경쟁이 이렇게 너무 심해 잘못하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비위 공무원으로 지목되어 철장 신세를 지게 생겼어요. 그래서 박국장이 그렇게 수주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고.”
과장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다.
“과장님 나를 한두 번 겪어 보셨습니까? 절대로 과장님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으니 저를 믿고 좀 도와주세요.”
“나야, 될 수 있으면 박상무를 도와주고 싶지만, 이번 00도로 건설공사와 관련된 모든 서류는 작성이 완료되자 박국장이 자기 방에 보관하고 있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어떻게 좀 안 되겠습니까?”
기철이 다시 한번 부탁을 한다.
“참! 딱하군요. 내가 도울 수 있으면 왜 박상무를 안 돕겠어요.”
과장의 대답에 짜증이 밴다.
그래서 그날은 두 사람이 다 답답한 마음에 술만 곤드레가 되도록 마셨다.
한 사람은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한 사람은 어색한 입장을 잃어버리기 위해서 술만 먹었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기 부하직원 중에 담당 계장과 고교동창으로 친분이 두터운 이사를 보내 계장에게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결과는 역시나이었다.
입찰일은 다가오고 수주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은 아무런 성과도 없고 기철은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심정이다.
이러한 어려운 상태에 빠진 기철을 궁지에서 구해준 사람이 기철의 회사인 대영의 협력업체 사장인 안성호이였다.
안성호는 전문 건설회사의 사장으로 부산에 살고있는 기철의 대학교 후배다.
안성호는 기철의 도움으로 기철의 회사 대양건설의 협력업체로 등록하고 부산이나 경남에서 대양건설이 시공하는 공사 중 하도 주는 대부분의 공사를 하도급받아 하고 있는 하청회사 사장이다.
이번에도 지금 수행하고 있는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어서 새로 하도 받을 만한 다른 공사가 없는가, 알아보기 위해 삼 일 전에 기철을 만나러 서울에 올라왔다.
회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지금 안사장이 맡아 하고 있는 공사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안상호가 저녁에 자기 회사 받은 하도공사에 관련이 있는 대영건설 직원들을 불러내어 저녁을 샀다.
안성호는 공사를 성실히 수행할 뿐 아니라 이러한 일도 잘한다.
하도급 회사 사장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잘 알고 또 그렇게 행동을 한다는 말이 된다.
하도공사 중에 원도급회사 직원이 공사의 진행 상황 점검이나 공사문제 협의를 위해 현장에 내려오면 되도록 안성호가 현장에 나와 원도급회사 직원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를 하고
또 하도급받은 공사가 끝나면 공사의 손익에 관계 없이 그 공사에 관련된 원도급회사 직원들에게 지나치지 않는 적당한 선물을 한다.
이러한 안성호 사장의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 그와 한번 거래를 해본 원도급회사 직원들은 같은 값이면 안성호 사장을 도우려고 한다.
안성호가 대영건설의 협력업체로 등록하고 또 처음 공사를 하도급받을 때까지는 기철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으나 그 후로는 안성호 스스로의 노력이 오늘에 이르게 했다.
저녁 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기철을 성호가 잡았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대로 헤어질 수도 없지만, 못처럼 서울에 온 갈 곳 없는 동생을 형님이 위로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너스레를 더해서
그래서 둘이는 가벼운 2차 술자리로 일식집에서 마주 앉았다.
성호는 기철보다 나이가 몇 살 아래고 또 대학 후배이기도 하여 기철을 친형처럼 따른다.
두세 잔 술이 오고 간 후에
“형님!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어요? 회사에서도 안색이 별로 안 좋더니 저녁 자리에서도 별로 말이 없으시던데, 무슨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공석에서는 상무님이라고 존칭을 쓰지만, 사석이 되면 이렇게 호칭을 변경하며 성호가 묻는다.
“아니 별로 없어. 안 좋은 일은 무슨.”
기철이 성호에게 자기의 처지를 이야기해서 성호에게서까지 동정을 받는 것이 싫어서 하는 말에 강한 부정이 들어간다.
“그렇지가 않은데요. 내가 생긴 것은 둔하게 생겼어도 눈치 하나는 빠른 사람입니다. 그렇게 강하게 부정하시는 것도 그렇고,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해 보세요.”
“별로 없다니까.”
대꾸하는 기철의 말에 힘이 빠진다.
“별로라는 말은 있기는 있다는 것 아니에요, 작은 것이라도. 고민은 말을 하지 않고 품고 있으면 곪는다지 않아요, 그러면 병이 되고. 또 누가 알아요?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 성호를 보며 기철은 웃는다.
“거봐요. 그렇게 웃으니까 좋지 않아요. 무슨 일이에요?”
“좀 골치 아픈 일이 있긴 있어.”
“그래요? 개인적인 일이에요?”
“아니, 회사 일이야.”
“회사 일이면 나도 조금은 관계가 있네. 대영이 잘되어야 나도 잘될 수 있으니까. 무슨 일인지?”
말하기 어려워하는 기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성호는 계속 너스레를 떤다.
“수주 문제로 골치가 아파.”
“수주 문제라면 정말 나도 알아야겠네요. 대영에서 좋은 공사를 수주해야 나도 좋은 공사를 하도 받을 수 있지 않아요.”
“사람! 욕심은. 지금도 할 만큼 하고 있잖아.”
“지금보다 앞으로가 문제지요. 어떤 공사인데요?”
“경기지방 국토관리청에서 발주하는 00-00간 도로건설공사.”
“아! 요즘 한창 건설회사 간에 톰 뉴스가 된 공사비가 3,500억 원이 넘는다는 그 공사요.”
“맞아. 그 공사야. 안 사장도 알고 있네.”
“알다마다요. 요새 건설공사 하는 사람치고 그 공사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건설공사 사상 최대 공사인데요.”
“하긴 그렇군.”
“그런데 왜요?”
“입찰일이 한 보름 정도뿐이 안 남았는데 아직 수주 정보를 하나도 알 수 없으니.”
하는 기철의 말에 탄식이 곁든다.
“왜요? 대영의 로비력은 건설업계에 정평이 나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어려워. 경기지방 국토관리청 박국장이 00도로 건설공사 관련 서류 일체를 직접 관리하면서 시공사에 수주 정보가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를 하고 있어.”
“경기청 박국장이요?”
“그래! 그 사람이 이번에는 되게 깐깐하게 굴어. 내가 몇 번을 찾아가도 만나주지도 않고, 어렵게 만나도 00도로 건설공사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해.”
하며 기철은 자기가 그 일을 맡게 된 경우와 그동안의 일을 간략하게 말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성호가
“박국장이라는 사람 혹 이름이 박성국이예요?”
“그래. 박국장 이름이 박성국이야. 안사장이 그 이름을 어떻게 알아?”
“그 사람 키가 크고 왼쪽 눈 위에 작은 점이 있고 얼굴이 약간 긴 편 아니에요.” 하고 묻는다.
“그래. 맞아 아니, 그런데 안 사장이 그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의외의 성호 물음에 놀라며 기철이 대답했다.
“그 사람 고향이 경기도 파주일 거예요.”
“맞아! 박국장 고향이 파주라고 했어.”
기철이 알기로는 한 번도 박국장을 만난 적이 없는 성호가 박국장에 대하여 이렇게 소상히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점점 괴이한 생각을 하며 성호가 박국장과 잘 아는 사이인 것을 자기가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한다.
“맞는군요. 그 사람이 담당 국장이란 말이죠?”
이렇게 묻는 성호에 말에 어떤 비웃음과 분노가 이는 것 같다.
“그래! 맞아. 그 사람 안 사장이 잘 아는 사람이야?”
“아니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경기지방 국토관리청 공사 담당 국장이란 말이죠?”
다시 이렇게 묻는 성호에 말에 이번에는 어딘지 모르게 같지 않아 하는 감정이 배어난다.
기철의 무능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박국장을 비웃는 것 같은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 깐깐하게 굴고 있다고요?”
하며 이번에는 아주 조롱조가 된다.
“그렇다니까.”
안성호의 이상한 태도에 기철은 떨떠름하게 대답한다.
“내가 한번 알아볼까요?”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던 성호의 말이다.
“정말 그럴 수 있어”
“그 사람도 사람인데 알아보면 알 수 있겠죠.”
“안 사장은 그 사람 모른다며?”
“처음부터 알던 사람이 어디 있어요. 사귀면 다 아는 것이지.”
“그렇지만---”
다시 떨떠름해 하는 기철을 보더니 무슨 결심이 섰는지
“걱정말고 박국장 그 사람 연락처나 가르쳐 주세요.”
하고 성호가 다그친다.
“안 사장과 박국장이 어떤 사이인데? 잘 아는 사이야? 웬만큼 알아서는 안 되던데. 그와 친한 그의 친구들도 어쩌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박국장과 선후배 관계로 잘 아는 우리 회사 최상무도 못한 일이야.”
하고 기철이 망설인다.
공연히 성호까지 망신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그것까지 형님에게 말씀드릴 수 없고, 연락처나 가르쳐 주세요. 내가 한번 만나보게. 밑져야 본전 아니에요?”
기철은 상황판단이 잘되지 않는다.
성호의 말을 들으며 자기를 그렇게 어렵게 하던 일이 방향이 바뀌어 호전될 것 같은 조짐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는 물론 최영식 상무도 물먹었는데 하는 생각에 성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리둥절 해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또한 기철의 심정이다.
“그야 어렵지 않지만.”
반신반의하며 박국장의 전화번호와 사무실 주소를 가르쳐주는 기철은 혹 일이 잘되어 자기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며 막연하게 나마 기대를 걸어 본다
첫댓글 즐~~~감!
잘 보고 갑니다
무언가 돌파구가 생기나본데 차후가
무혈님!
구리천리향님!
지키미님!
끊임 없는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1월의 마지막일 보람된 2월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