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하기만 하던 일요일에 케이블TV에서 방영하던 ‘이퀼리브리엄’을 보았다. 그 영화 속에서 세계 3차대전이 일어났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유토피아’로 부르는 사회와 그에 딸려있는 모든 부속요소를 만들었다. 전쟁의 참혹성을 몸소 체험한 21세기 인들이 이상향을 바라고 만든 사회이니 그 사회구성원들은 정말로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것 같지만, 그 사회를 자세히 살펴보면 영 아니다. 리브리아라는 새로운 세계는 잔인한 성격인 ‘총사령관’의 철권통치아래, 모든 이들이 인간의 온갖 ‘해로운’ 기쁨, 슬픔, 분노 등의 어떤 감정도 내지 못하게 만드는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에 의해 통제당하는,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사회이다. 게다가 프로지움의 투약을 거부하고 감정을 느끼려는 자들은 ‘반역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체 숙청당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신들의 사회가 유토피아라고 끊임없이 세뇌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해낸 작품의 주제는 [이상향을 구체화하면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가?]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만들어낸 사회이지만, 그 사회가 현실의 인간과 맞물리게 되자 결국 괴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이상향을 구현하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할까? utopia는 그리스어로 no place,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유토피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이상향일 뿐일까?
개인적 좌절이 심하거나 시대가 처참하고 가혹할 때 우리는 흔히 이상향을 꿈꾸게 되고, 그것이 지나치면 사람들은 결국 도피나 일탈을 행하게 된다. 16세기 영국의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꿈꾸고 그 구체적인 모습까지 구성해 내었다는 사실은 헨리 8세가 집권하던 당시 영국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으면 농민들이 굶주리고 헐벗고 있었고, 소수의 귀족들과 지주들이 모든 부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시대여서, 의식 있는 선각자들이 얼마나 부심하며 초월과 일탈을 꿈꾸고 자신만의 관념세계로 도피하려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천년이 넘게 누적된 봉건적 사고방식과 인클로저 운동 등의 사회 변동으로 말미암아 민생의 피폐가 극에 달한 최악의 상황을 목격하여, 영국 사회에 대한 기대를 접은 채 상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모어에게 어느날 결정적인 시련이 닥쳐왔다. 폭군 헨리 8세와 앤 블레인과의 재혼문제로 불거진 영국과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갈등이었다.
헨리 8세가 수장령을 선포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이 영국 교회의 교주임을 선언하자 상심한 모어는 대법관직을 사퇴했다. 1534년 왕위 계승법이 의회에서 동의를 얻자 모어는 이 법안에 동의한다는 선서를 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요구를 침묵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대법관으로서 명성을 날렸던 그의 침묵의 무게는 허다한 변설보다 더 압도적이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던 헨리 8세의 심기를 자극했을 것이다. 그래서 헨리8세는 모어를 반역자들의 감옥, 런던탑에 가두고, 결국 모어는 1535년 7월 6일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형이 집행되던 날, 그는 사형집행인에게 "기운을 내게, 자네의 직책을 과감히 수행해야 하네.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태연히 농담을 하며 최후를 마쳤다.
모어가 꿈꿨던 지도자와 이상적인 나라는 지구상의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니 초월을 꿈꿀 수밖에, 그리하여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위안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으로 스스로를 유폐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유토피아』의 집필 시점은 수장령에 대항하다가 시련을 당한 사건이 있기 훨씬 전의 일이지만 모어의 심성이나 내면의 지적 경향이 늘 현실에 목말라있었고, 그 갈증을 순식간에 해결할 원대한 구상, 즉 유토피아를 형상화하고 있었기에 그의 작품과 삶은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의,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에 대해서의 유익하고 즐거운 저작>이라는 유토피아의 원래 제목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모어는 오래전부터 누적되고 중첩된 모순으로 인해 한계 상황에 처한 영국 사회를 최선의 상태로 만드는데 있어 점진적 개량이라는 미온적인 방법은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근본적인 재구성을 통해 기존 질서와는 완전 딴판인 새로운 사회를 모색한 결과 유토피아라는 이상향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향치곤 아이러니하지만, 당시 영국 민중들의 의식 수준을 감안해서인지 그 새로운 섬 정치제도는 민주적인 제도가 아닌 단 한명의 지도자가 주도면밀하게 계획적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독재제로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강력한 권한에다가 지혜를 겸비하였으며 민중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민생을 해결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한 지도자에 의해 최고의 상태로 운영되는 완전히 새로운 섬 유토피아가 우리 앞에 그 정교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모어가 유토피아의 모습을 근거까지 제시하며 세밀하게 그려낸 이후에 그것을 모방한 수많은 이상향의 모델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것은 시대의 질곡에 갈급한 사람들의 마지막 아우성이고 도피처였다. 그 이상향이란 때론 종교와 그 지도자가 약속하는 내세의 파라다이스로, 혹은 과학발전으로 편리의 극치를 달리는 고도화된 미래사회의 모습으로, 더러는 자기 자신의 심적 수련을 통한 인간 내면이 도달하는 경지로 변모하기도 했다. 지식 정보화 시대인 오늘날에는 정보화 사회가 실현된 모습을 유토피아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불과 수십 년 전에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가상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바야흐로 지상 낙원이 도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암울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떠올린 이상향이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현실이지 이상향이 아니다. 존재할 수 없기에 이상향인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유토피아라는 관념으로 상정하지 않고 즉각 실천적 몰입으로 이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다고 믿은 많은 이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어왔다. 허나 혁명은 빈곤과 또다른 혁명을 불러왔고, 사회주의 국가는 무너졌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빨리 이루려고 덤벼들 성질의 것이 아니고 다만 원대하게 지향할 따름인 것이다.
또 그것은 자칫 디스토피아(dystopia)로 치달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관념이다. 유토피아로 설정한 것들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것인지 예기치 못한 부작용으로 큰 폐해만 끼칠 건지 검증할 수 있는 건 오직 긴 시간 말고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달한 정보화 사회가 영화 매트릭스(matrix)에서처럼 정보 감옥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유토피아는 라틴어로서 실제로는 없는 장소이며(no place = utopia) 더구나 그 관념을 현실화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인간의 원초적이며 이기적이기도 한 욕망과 섞이면 앞의 이퀼리브리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칫 우리에게 디스토피아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는 우리의 머리와 가슴속에 언제까지나 새겨져 있어야 한다. 유토피아란 관념이 비현실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백안시하여 우리의 의식세계에서 배제해 버린다면, 그리하여 이상향을 염원하고 동경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상향이 없다면, 우리 인류는 암울한 현실을 무슨 수로 버틸 것이며, 스스로 바람직한 미래를 구성하기 위한 동기 유발과 헌신을 어찌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럴 때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어떻게 해결되며 또 정체를 모면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아찔한 일이다.
따라서 관념적으로 상정한 이상향일 뿐이고 또 그로 인한 역기능이 막대하지만 ‘유토피아’는 인간 개인의 내면적 위안을 위해서나 사회 집단의 더 나은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간직해야할 소중한 관념인 것이다.
어두움이 짙을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별처럼, 도탄에 빠져있던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해준, 이상향의 비전을 또렷하게 제시한 토마스 모어에게, 현실에 목말라하며 유토피아를 간절히 올려다볼 모든 이들이 더 없는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유토피아.....논술 어쩌고 나왔을때부터 때려치웠는데 -_-;;
유토피아.... 뭐라말해야할까... 암튼 뭐라 말하기 힘든...
꿈과 사랑이 넘치는 곳이야 말로 유토피아~